소설리스트

나 혼자 균열에 산다-246화 (246/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246화

79. 미궁의 끝 (3)

온 세상이 태백산 미궁 클리어로 떠들썩했다.

TV에서는 속보로 이 소식을 전했고, 인터넷에는 관련 기사 수십 개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헬기를 통해 태백산 상공에서 촬영된 모습이 뉴스를 통해 공개됐다.

불길하고 어둑한 기운이 감싸고 있던 태백산의 모습은 사라지고, 평범한 산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모두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원래 미궁이 있던 장소는 아직 통제 중이지만, 멀리서도 그곳의 상황을 충분히 구경할 수 있었다.

인근 지역에 살던 많은 사람이 그 모습을 직접 찍어 인터넷에 올리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더더욱 집중됐다.

-이거 진짜냐?

-ㅇㅇ 진짜임. 아는 형이랑 근처까지 가서 직접 찍었음. 주변에 군인들 개많아서 접근하기 힘들었는데. 사진 찍는 것까지 통제하지는 않더 라.

-나도 근처에 사는데 며칠 전부터 대피해 있었음. 혹시 잘못될 수 있으니까 피해 있으라고 안내받았거든, 근데 진짜로 없애버렸네.

-우리 아빠 처음에는 개짓거리 한다고 욕 X나했는데. 지금 땅값 많이 오를 것 같다고 입이 귀에 걸렸음.

-개꿀이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미리 근처에 땅 좀 사둘걸, 거기 근처에 땅값 완전 똥값이었을 텐데.

-ㅋㅋㅋㅋ 누가 정말로 미궁을 클리어할 줄 알았겠음?

많은 사람의 궁금증에 이끌리듯, 인터넷에서는 미궁 근처 지역 주민들의 생생한 증언들이 점차 올라왔다.

오늘 새벽부터 몰려들었던 군인 이야기부터, 미궁이 클리어되는 순간까지. 사소한 이야기 하나하나가 사 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 수많은 이야기 중에 가장 뜨거운 화제로 떠오른 것은

-나 실제로 엘프 봤다. 인증 사진 올려줌.

-ㅎㄷㄷ 이거 진짜냐?

-현직 군인인데. 이번 미궁 공략에 엘프들이 투입된 것 같더라. 대부분 엘프가 부상으로 병원으로 이송됐는데, 사진은 안 다치고 멀쩡해서 남아 있는 엘프 사진임.

-엘프 숫자가 많았음?

-ㅇㅇ 몇십명 정도 되는 것 같던데.

바로 엘프에 관한 이야기였다.

미궁이 클리어 되면서 어쩔 수 없이 엘프들의 정체가 노출되었고, 인터넷을 통해 그 이야기가 급속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거기다 미궁 현장에 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병원 관계자들에게서도 엘프들에 대한 증언이 속속 이어졌다.

-지금 내가 일하는 병원에 엘프들 엄청나게 입원해 있음.

-우리 의사 쌤 엘프 환자 도착하니까 급당황 ㅋㅋㅋㅋ

-엘프들 치료해 주는데 어색한 한국말로 '고맙습니다' 하는데 엄청 귀엽더라.

-한국말도 함?

-대부분 다 간단한 의사소통은 가능하더라. 처음에는 치료를 약간 경계했는데, 지금은 대부분 다 고분고분하게 치료받는 중.

엘프들에 대한 신빙성 높은 증언들이 이어지고, 사람들의 관심은 이런 수많은 엘프와 함께 미궁을 공략한 아르킨 길드로 향했다.

-와. 아르킨 길드가 어떻게 그 어려운 균열들을 클리어하나 했더니, 모두 엘프 덕분이었구나.

-잠깐! 너튜버 중에 엘프 관련 영상 공개해서 화제가 된 너튜버 있지 않았나?

- 어어? 그러고 보니…….

그리고 사람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엘프에 관한 것들을 먼저 공개했던 어떤 너튜버와 아르킨 길드를 연관짓기 시작했다.

그리고 집요하게 자료를 찾아 헤매던 사람들은 결정적인 증거를 발견해냈다.

- '균숙자네 퓨이' 영상 속에 등장하는 엘프랑 오늘 인증 사진에 올라 온 엘프가 동일 인물인 것 같다. 비교 짤 올려 줌.

화질이 좋지 않은 인증 사진이었음에도 영상 속에 나온 엘프와 확실히 비교가 가능한 증거가 올라왔다.

-와…… 이거 실화냐?

-화질이 좀 구리긴 해도 맞는 것 같다.

-내가 평소에 자주 보던 채널인데. 그럼 이 채널이랑 아르킨 길드랑은 무슨 관계인 거야?

-채널 주인장이 아르킨 길드의 길드장 아님? 체형이 꽤 비슷한 것 같던데?

-아니, 그런 개쩌는 길드를 운영하면서 너튜브도 한다고? 뭐하러 그런 귀찮은 짓을.

-왜? 할 수도 있지. 거기다 너튜브 채널이 길드보다 먼저 만들어졌으니까 충분히 가능하지.

점차 맞춰지는 진실의 조각들을 두고 인터넷에서는 사람들의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진실이 궁금한 사람들은 새로운 소식을 찾아 헤맸지만.

비슷한 사진과 내용의 낚시 기사만 계속 추가되고, 새로운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다.

궁금증으로 미쳐버릴 것 같은 사람들의 시선이 수많은 취재진으로 고립된 한 병원으로 향했다.

****

미궁에서 빠져나와 하룻밤이 지나고.

내 병실에는 아침부터 부담스러운 사람들의 방문이 줄지어 이어졌다. 균열 관리센터의 총책임자부터, 각성자 협회장이 방문했고.

국가안보실장은 대통령의 친필 편지를 가지고 이곳을 찾아왔다.

“대통령님께서는 아르킨 길드의 희생적인 업적에 경의를 표하면서, 부상자들의 빠른 쾌유를 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 예..….”

나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되는 진지하고 딱딱한 대화에 몸이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옆에서 무서운 눈을 하고 지켜보는 서율희의 압박 때문에 허투루 대답할 수 없었다.

오전 내내 사람들의 방문을 받고, 점심때가 돼서야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푹신한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나는 창문가에 서서 아직도 바글바글 모여 있는 취재진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질린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와…… 저 사람들은 도대체 언제 돌아가는 걸까요?"

“아마 세진 씨가 한 번이라도 얼굴을 내밀 때까지 기다릴걸요? 기자의 끈기를 우습게 보면 안 되죠."

“오늘 병원에 오시면서 기자들이랑 말씀 나누신 거 아니었어요?"

“네. 몇 가지 질문을 받았지만 전부 길드장님이 직접 밝히셔야 할 문제라고 하면서 대답을 피했어요."

"맙소사..….”

서율희는 내 절망적인 표정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며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오후에 기자회견을 할 생각이에요. 더는 숨길 수 없는 것도 있고, 이번에는 저번처럼 억지로 넘어갈 수도 없으니까요."

“..… 율희 씨가 대신해 주면 안 되겠죠?"

"......."

"알았어요. 무서우니까 그런 표정은 그만두세요.”

내가 항복 의사를 표하자 그녀는 무서운 표정을 풀고 한숨을 내쉬었다.

“저도 같이 참여할 생각이니 너무 걱정 안 해도 될 거예요. 그리고 오늘 전부 퇴원해도 괜찮겠어요?"

"엘프들이 그걸 강하게 원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죠.”

부상자 중에서는 입원이 필요한 엘프들이 있었는데, 모두 마을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병원의 치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기보다는 아마 이곳의 상황을 불편하게 느끼고 있는 듯했다.

이쪽에 더 익숙한 나도 불편한데

엘프들은 오죽하겠는가.

부상자들의 상태를 우려하는 병원의 염려에도 모든 엘프와 아르킨 길드는 오늘 이곳에서 퇴원하기로 했다.

오후에 예정된 기자회견만 끝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서율희와 함께 기자회견에 관한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 기자회견에는……"

****

웅성웅성웅성.……

웅성웅성......

기자회견 시간에 맞춰 모여 있는 수많은 취재진들.

-덜컥!

병원에서 마련해 준 기자회견실의 문이 열리고, 순간 우리를 향해 취재진들의 엄청난 카메라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파파팟!

-찰칵! 찰칵!

병원 환자복에서 깔끔한 정장으로 차려입은 내가 가장 먼저 자리를 잡았고, 다음 차례로 서율희가.

마지막은 평범한 정장 차림이지만 신비한 느낌을 마구 뿜어내는 엘디르가 자리에 들어섰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취재진의 카메라 렌즈가 이끌리듯 엘디르 쪽으로 향했다.

엄청난 취재진의 압박 속에서도 엘디르는 태연한 표정으로 자세를 유지했다.

오히려 나보다도 더 의연한 모습이었다.

세 사람이 모두 자리에 앉고 서율희가 슬쩍 나에게 신호를 보냈다.

나는 그 신호에 맞춰 자리에 준비 된 마이크에 입을 가져갔다.

“크흠. 안녕하십니까. 아르킨 길드의 길드장을 맡은 전세진이라고 합니다. 옆에는 서율희 부길드장, 그리고 엘프들을 이끌고 길드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엘디르 경비대장입니다.”

나의 짧고 간단한 소개에도 취재진 사이에서 큰 술렁임이 일어났다.

“어제 저희 아르킨 길드는 균열 관리센터의 허가 아래 태백산 미궁에 진입했고 완전 공략을 끝냈습니다. 앞서 균열 관리센터에서 공식적인 발표가 있었지만, 이 자리에서 한 번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태백산 미궁은 저희 아르킨 길드에 의해서 완전히 제거되었습니다."

-오오……

-짝짝짝!

-파파팟! 파팟!

나의 공식적인 태백산 미궁 공략 선언이 끝나고, 취재진의 낮은 탄성과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고, 동시에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덧붙여 공략에 도움을 주셨던 균열 관리센터 직원분들, 군 관계자분들과 장병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의 짧은 공략 성공 선언이 끝나고,

곧바로 이어진 취재진의 질문 시간.

"하루일보의 최재원 기자입니다. 이 공략에 앞서서 많은 분이 무리한 도전이라고 우려를 했었는데, 길드장님께서는 공략 성공에 대해서 얼마나 자신하고 계셨습니까?"

"워낙 미궁에 대한 정보도 부족하고 악명이 높았기 때문에 완전히 확신은 하지 못했습니다. 최대한 철저하게 준비를 했지만, 성공 확률은 50%가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KB 뉴스의 서준환 기자입니다. 방금 낮은 성공률을 예상한다고 하셨는데 굳이 어려운 도전을 강행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개인적인 사정이라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저에게는 꼭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또 한 번 자세히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 같으니 대답은 짧게 하겠습니다."

취재진의 정신 없는 질문 세례에 나는 최대한 담담하게 대답하려 노력했고, 간간이 서율희의 도움을 받으며 무리 없이 기자회견을 이어나갔다.

“혹시 옆에 계신 엘프분에게도 질문할 수 있겠습니까?"

한 기자가 엘디르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슬쩍 나와 눈빛을 주고받은 엘디르는 오랜 침묵을 깨고 직접 입을 열었다.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질문해 주십시오."

-오오오.……

-웅성웅성.

꽤 능숙한 한국말이 엘디르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취재진 사이에서 다시 한번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 감사합니다. 엘디르 경비

대장님께서는 이번 미궁에서 엘프들을 이끌고 아르킨 길드를 도우셨다고 하셨는데. 혹시 언제부터 이런 관계를 유지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약간 긴 질문이었지만 엘디르는 무리 없이 질문을 알아듣고 다시 입을 열었다.

“여기 계신 세진 님과의 관계는 그렇게 오래됐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아르킨 길드를 도와 전투에 참여한 것도 이번이 겨우 두 번째일 뿐입니다.”

“그럼 이런 관계를 맺게 된 계기를 알 수 있을까요?"

두 번째 질문을 받고 엘디르는 슬쩍 내 눈치를 봤다. 나는 눈빛으로 그에게 신호를 보냈다.

“자세한 계기는 설명하기 힘들지 만. 세진 님께서 저희 엘프에게 많은 은혜를 베풀었다는 점만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엘프분들은 생명이 위험할 지도 모르는 이번 미궁에 참여하신 겁니까?"

“맞습니다. 아무리 위험한 전투라도 세진 님의 부탁이라면, 저와 제가 이끄는 대원들은 당장에라도 나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크게 감정이 섞이지 않은 아주 담담한 대답이었지만.

엘디르의 절제된 눈빛과 태도, 그리고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비장함에서 진실성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취재진도 그것을 느꼈는지 놀라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엘디르와 나를 번갈아 바라봤다.

한편,

나는 가슴 가득히 차오르는 뿌듯한 마음에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억제하고 기쁜 표정을 숨기느라 애를 먹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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