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균열에 산다 245화
79. 미궁의 끝(2)
지휘관과 관리센터 직원의 인사를 받은 뒤.
나머지는 내가 신경 쓸 것도 없이 전부 일사천리로 해결되었다.
가장 먼저 이루어진 조치는 역시 다친 인원들에 대한 치료 행위였다.
타박상 수준의 작은 상처부터, 수술이 필요할지 모르는 큰 부상까지 많은 부상자가 존재했다.
다친 인원들 대부분이 엘프들이라 의료진들이 조금 당황하기는 했어도,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금방 치료가 시작되었다.
신속하게 의료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지휘관은 눈치가 보였는지, 직접 나서서 의료진들을 독려하고 나섰다.
그 덕분인지 응급처치는 모두 적절하고 신속하게 이루어졌고 부상의 경중에 따라 가까운 병원으로의 이송이 시작됐다.
나는 마지막 폭발의 충격으로 인해 생겼던 어지럼증과 약간의 타박상 정도라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세진 님이 가셔야 저희도 마음 놓고 병원에 따라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다친 엘프들 이야기를 꺼내는 엘디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병원으로 가는 응급차에 몸을 실어야 했다.
서율희와 윤동현 그리고 임진혁은 남아서 상황을 정리하기로 했고, 나와 아저씨 아주머니는 부상자들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빠져나가는 길에 대기하고 있던 수많은 군인의 경례를 받으며 우리는 태백산을 빠져나왔다.
****
마치 고급 호텔처럼 호화로운 느낌이 나는 병실.
나는 그곳에서 편안함과 동시에 불편함을 느끼는 중이었다.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어울리게 내가 누워 있는 침대도 좋은 재질로 만들어졌는지 엄청 편했다.
단지 몸의 편안함과는 별개로 그 옆에 있는 인물들이 나를 심적으로 불편하게 만들었다.
나는 계속 눈치를 보다가 슬쩍 입을 열었다.
“그…… 두 분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예요?”
그 말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신지아는 도끼같이 눈을 뜨고 쳐다보았다.
움찔한 나는 슬쩍 눈을 피해 딴청을 부렸다.
이 모습을 지켜본 강유환 회장은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허허. 우리 신지아 부소장이 얼마나 마음을 졸이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너무 매정하구먼."
“그런 뜻이 아니라……”
"그리고 이제 나가고 싶어도 못 나가. 밖에 취재진 몰려든 거 봤지?"
"......"
내가 지금 있는 병원은 강유환 회장이 미리 협조를 구해 놓은 대형 병원이었다. 미궁에서 부상이 생긴 인원들 모두 이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뿐만 아니라 미궁 중간에 먼저 귀환했던 인원들도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중이었다.
처음 이곳 병원에 도착했을 때.
나를 발견한 신지아는 펑펑 울음을 터뜨렸다.
크게 다치지도 않았는데 너무 서럽게 울어서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혹시 몰라 받아본 정밀 검사에도 나는 큰 이상이 없었다.
몸 곳곳에 긁히고 부어오른 타박상 정도였고 치료는 금방 끝났다.
그게 벌써 한 시간 전.
두 사람은 병실에 누워 있는 내 옆을 지키고 어디 못 가게 계속 지키고 있었다.
나는 비서실장이 가져다준 병문안용 예쁜 과일 꾸러미를 바라보며 입 맛을 다셨다.
‘쩝. 그러면 과일이라도 좀 깎아주지.'
훨씬 연장자인 강유환 회장이나 왠지 미안한 신지아에게도 부탁할 수 없어 계속 입만 쩝쩝거렸다.
계속 작은 미소를 머금은 채 나를 바라보던 강유환 회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네가 원하던 것은 얻었느냐?"
그 질문에 나는 슬쩍 옆 테이블 쪽을 쳐다보았다.
테이블 위에는 푹신한 쿠션 위에 곤히 잠든 위니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많이 피곤했는지 병원에 도착하기 전부터 계속 잠든 상태였다.
처음 정신을 차리고 위니가 보여줬던 문양의 힘.
나는 그때를 떠올리며 강유환 회장을 향해 작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 성공한 것 같아요."
“그래, 그렇구나. 정말 수고했다.”
그의 말 자체는 짧고 간단했지만, 눈빛과 말투에서는 대견함과 신뢰가 가득해 왠지 쑥스러움이 느껴질 정도였다.
강유환 회장과 대화를 나누던 도중, 밖에서 대화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병실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병실 밖을 지키고 있던 경호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회장님. 정대훈이라는 분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아, 들여보내 주게."
회장의 허락이 떨어지자 굳게 닫혀 있던 병실 문이 열리고,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신지아는 두 사람을 확인하고 반갑게 그들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두 분은 괜찮으세요?"
“네. 괜찮아요. 저희는 괜찮아요, 지아 씨, 배려해 주셔서 정밀 검사를 모두 받느라 조금 늦었네요. 감사합니다, 회장님.”
“허허, 아닙니다. 영웅들에게 당연히 해드려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어머. 부끄럽네요."
아주머니는 아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눴지만, 아저씨는 뭔가 불편한 표정으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짚이는 게 있던 나는 쓴웃음을 지었고, 강유환 회장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우리 대훈 아우님은 오랜만에 형 님을 만났는데, 별로 반갑지 않은 모양일세."
“그게…… 죄송합니다. 저는 회장님인 줄 몰라뵙고……”
“그게 무슨 말인가? 내가 회장인 게 무슨 상관이야. 우리 즐겁게 낚시를 즐겼던 일들은 다 잊은 건가?"
"아니, 그건 아닌데…..."
강유환 회장의 정체를 눈치챈 아저씨는 쩔쩔매며 어렵게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러면서 괜히 내 쪽으로 원망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 왜 안 말해줬어?
나는 애써 그 시선을 외면하며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강유환 회장이 아저씨를 놀리는 사이.
아주머니는 과일 바구니를 발견하고 과일을 깎아오겠다며 병실에 딸린 부엌으로 향했고, 신지아도 그녀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주머니와 신지아가 과일을 깎아오는 동안 불편했던 상황에 조금 익숙해진 아저씨는 이곳에 온 목적을 꺼내놨다.
“몇몇을 제외하면 심각하게 다친 인원은 없는 것 같아. 나머지 몇몇도 치료만 잘 받으면 생명에는 큰 지장이 없다고 했고.”
“다행이네요. 아윤이랑 선우 그리고 유미 씨는요?”
“다 괜찮아. 녀석들 이런 고급스러운 병실에 처음 와본다면서 사진 찍고 신났더라."
나는 심각한 부상자가 없다는 이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신났을 정씨 남매와 김유미를 상상하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부상자들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아주머니와 신지아가 그릇에 과일을 담아 내왔다.
아저씨는 과일을 하나 찍어 먹으며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부길드장한테서도 남아 있던 인원이랑 정리도 깔끔하게 끝났다고 연락 왔어."
“율희 씨는 어디 다친 곳 없데요?"
"조금 긁힌 정도래, 여기 병원에 오면 좋겠지만, 지금 바깥이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니라서......"
병원 입구는 전국에 있는 모든 언론의 기자가 모여든 것 같이 북새통을 이뤘다.
다른 일반 환자들이 피해가 가지 않도록 경찰과 경비대원이 엄청난 고생중이었다.
“그리고 부길드장이 따로 전한 말이 있는데."
"......?"
"이제는 일일이 인터뷰 거절하는 것도 힘드니까. 어떻게든 알아서 인터뷰 준비해 놓으란다.”
“쩝……"
나는 끊임없이 몰려들 기자들의 질문을 상상하며, 벌써 질린다는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태백산 미궁의 공략 성공.
정말 누구도 예상치 못한 성과였다.
수많은 길드가 도전해서 실패의 쓴 맛을 봐야 했던 지옥 같은 곳이었는데.
이제 겨우 신생 길드의 딱지를 뗀, 인원도 얼마 되지 않는 아르킨 길드가 덜컥 공략에 성공해 버렸으니.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해 보였다.
거기다 의도치 않게 아르킨 길드의 은밀한 비밀이었던 든든한 지원군, 엘프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더욱 뜨거워졌다.
이전에 뜬금없이 B등급 균열을 공략했을 때도 많은 화제를 낳았었지만, 이번에는 차원이 다른 충격을 선사한 상황.
신지아의 말대로 무작정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며 거절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앞으로 있을 귀찮은 일들을 상상하니 씹고 있던 과일의 맛이 씁쓸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집에서도 연락이 왔는데. 아이들이 조금 불안해하고 있는 모양이더라."
"아이들이요?"
일부러 아이들에게는 위험한 미궁 공략에 대해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을 떠올리며 되물었다.
"중간에 돌아간 부상자들을 보고
아이들이 계속 걱정하고 있었나 봐.”
"아……”
나는 불안해하고 있을 아이들을 떠올리며 금방 옆에 있던 휴대폰을 집어 들어 통화를 연결했다.
-달칵!
-누구세요?
“시르엘? 저에요."
-아아. 세진 님. 무사하셨군요?
시르엘도 걱정이 많았는지, 나임을
확인하자마자 살짝 목소리가 떨려왔다.
“네, 저는 괜찮아요. 다치신 분들도
있지만 모두 치료를 받고 있어서 괜찮아요."
- 다행이에요. 정말 다행이에요.
"혹시 지금 아이들은 뭐 하고 있나요?"
-잠시만요.
그녀의 목소리가 멀어지고.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휴대폰을 통해 아이들의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가장 먼저 티아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 여보세요. 세진?
"나야. 잘 놀고 있었어?"
-......
"...... 티아야?"
-으아아앙!
일부러 아이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평소같이 말을 걸었는데, 티아는 돌연 울음을 터뜨렸다.
“티, 티아야. 왜 그래? 갑자기….…”
-으흑. 거짓말쟁이. 우리한테 말도 안 해주고……
“그게 무슨 말이야?"
-TV에서 다 봤어. 세진이랑 다른 사람들이 엄청 위험한 곳에 간거.
"아……”
아무래도 아이들은 TV를 통해 우리가 미궁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안 모양이었다. 나는 서럽게 우는 티아를 달래기 위해 한동안 쩔쩔매야 했다.
겨우겨우 시르엘의 도움으로 티아를 진정시키고.
-훌쩍, 세진 언제 와?
“금방 갈게. 정말로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알았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금방 와야 해. 잠깐만……
-여보세요.
이번에는 이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엘?"
-아빠. 괜찮아요?
"괜찮아."
다행히 이엘은 티아처럼 눈물을 터뜨리지는 않았지만, 시무룩해진 목소리로 말을 웅얼거렸다.
-아빠, 저 때문이죠?
"으음..….”
-제가 아파서…… 그것 때문에 위험한 곳에 가신 거죠? 그렇죠?
자신의 탓을 하는 이엘의 모습이 안쓰럽고 안타깝게 느껴졌다.
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엘을 달래줬다.
“아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그치만......
“괜찮아. 이엘. 내가 꼭 건강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아빠 믿지?"
-……네. 믿어요.
"하하. 그래, 그래야 내 착한 딸이지. 아빠 금방 갈 테니까, 아무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알았지?"
-알았어요. 금방 오셔야 해요?
억지로 울음을 참는 이엘의 목소리에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퓨이! 퓨이!
-후모! 후모!
-뀨우우. 뀨우!
이엘 다음으로 퓨이와 모렛, 세이까지 각자의 울음소리를 냈다.
일일이 녀석들의 목소리에 대답을 해주다 보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세진 님. 언제 돌아오시나요?
마지막으로 시르엘이 전화로 내게 물었다.
나도 당장 집으로 돌아가 아이들을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아직 치료를 받는 인원도 있는데 나 혼자 덜렁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조금만 더 있다가 갈게요."
-알겠어요. 기다리고 있을 테니 금방 돌아오세요.
그래도 처음보다는 걱정이 덜어진 시르엘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통화를 종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