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균열에 산다 243화
78. 미궁에 들어서다(4)
새로운 작전이 확정되자마자 서율희는 빠르게 일행을 나누기 시작했다.
나를 포함한 임진혁, 엘디르 그리고 몇몇 엘프 대원들까지.
10명이 넘지 않는 적은 인원일지라도, 공격력 하나만큼은 확실히 보장된 인원들이었다.
거대한 뿌리의 공격과 좀비같이 몰려오는 시체 나무들 때문에 정신이 없는 상황 속에서.
서율희는 인원을 나눔과 동시에 나머지 일행에게 새로운 작전에 대해 빠르게 설명했다.
-드드드득! 쾅!
혼란스러운 난전 속에 거대한 나무를 향해 돌격할 인원들의 준비가 끝났다.
“모두 준비되셨죠?"
"네!"
“돌격하는 인원들이 이곳에서 빠져 나갈 수 있도록. 나머지 인원 모두 전방을 향해 화력 집중!"
그녀의 지시에 맞춰 전방을 향해 순간 화력이 집중됐다.
끝없이 밀려오던 시체 나무들이 잠시 주춤하는 사이, 골렘들을 앞세워 길을 뚫으며 돌격대와 함께 포위망을 돌파했다.
"세진아! 나중에 보자!"
“우리 걱정은 하지 말고 몸조심 해!"
등 뒤로 들려오는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돌격대 인원들은 거대한 나무를 향해 나아갔다. 포위망을 뚫어내고 전장을 이탈한 덕에 점들의 공세가 잠시 느슨해졌고.
우리는 이 틈을 타 최대한 빠르게 전진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뿌드드득.
-그워어어억.
어디선가 나타난 시체 나무들이 꾸역꾸역 우리의 앞길을 막아섰다.
나는 빠르게 움직이던 거대한 골렘의 관성을 이용해 놈들의 몸체를 한 방에 날려버렸다.
-기이이익 쾅!
-뿌드득. 퍽!
강력한 골렘의 일격에 잠시 흐트러졌던 시체 나무들은 금방 다시 모여 들었다.
그리고 놈들은 영리하게 골렘을 스쳐 지나간 뒤쪽의 돌격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큰일이다!'
골렘의 무지막지한 돌파력 덕분에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지만, 그에 비례해 돌격대의 진형은 매우 불안정했다.
자칫 잘못하면 녀석들의 방해에 일행이 와해되어 버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골렘의 속도를 늦춰 돌격대의 안전을 찾아야 하나 고민하는 순간, 내 마음을 읽었는지 옆에 있던 임진혁이 외쳤다.
“속도를 늦춰서는 안 돼!"
“하지만…...”
“위험한 건 뒤에 남은 사람들도 똑같아. 위험하더라도 빠르게 이곳을 돌파해야 해. 절대 속도를 늦추지 마!"
"....… 알았어요. 형.”
내가 결연한 표정으로 대답하자, 임진혁은 나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여준 뒤 전방으로 나아가 시체 나무들을 빠르게 쓰러뜨렸다.
우리의 대화를 들었는지 엘디르도 나머지 엘프 대원들에게 소리쳤다.
“절대 뒤처지지 마라. 속도를 유지한 채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네!!"
그들의 힘찬 대답과 함께 엘디르도 임진혁과 마찬가지로 전방으로 나아갔다.
나도 열심히 아티팩트로 마법을 발동시키며 그들에게 힘을 보탰다.
일행에서 떨어져나와 거대 나무로
돌격이 이어지고.
어느새 나무의 불길한 기운이 피부로 느껴질 만큼 가깝게 도달했다. 쉴 새 없이 움직인 탓에 나와 엘프 대원들은 물론, 괴물 같은 체력을 자랑하는 임진혁과 엘디르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정말 불행 중 다행이었던 건.
거대 나무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시체 나무들의 공격이 줄어들었고, 그나마 마지막 전투를 위해 어느 정도 체력을 남겨둘 수 있었다.
골렘을 앞세워 시체 나무들이 가득 했던 곳을 빠져나온 일행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눈앞의 거대 나무를 올려다봤다.
녀석은 사방으로 불쾌한 기운을 쏟아내며, 나무 기둥에 생겨난 거대한 눈으로 우리를 내려다봤다.
"아무래도 저 기분 나쁜 눈동자를 없애야겠지?"
임진혁의 말에 모든 일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눈동자에서 끊임없이 불길한 기운을 쏟아내는 것이 녀석의 중심부 같아 보였다.
우리는 각자 남겨두었던 모든 힘을 끌어모아 불쾌한 눈동자를 향해 공격을 집중시켰다.
엘프들의 강력한 정령 마법과 아티팩트의 마법이 동시에 눈동자를 강타했다.
-크콰가가각!
-그워어어어……
엄청난 폭발음과 동시에 거대한 나무는 다시 한번 귀곡성과 같은 소리를 냈다.
마치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놈의 눈동자는 큰 타격을 입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이걸로는 부족한 건가?"
"다시 한번 더!”
남아 있는 힘을 짜내듯 눈동자를 향한 공격이 계속되었으나, 녀석은 불쾌한 소리만 낼뿐 여전히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했다.
조금의 타격도 주지 못한 상황에 모든 일행이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다시 한번 거대 나무에서 불쾌한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워어어어…….
그리고 그 순간.
우리가 딛고 있는 땅 아래에서 거대한 진동과 함께 뭔가가 솟구쳐 올라오기 시작했다.
-드드드득!
"모두 피해!"
가장 먼저 이상을 감지한 엘디르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일행이 그곳을 신속하게 빠져 나오자마자 땅 아래에서는 기괴한 모습의 괴수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얼핏 시체 나무들과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지만.
코가 마비될 것 같은 썩은 내와 기괴한 모습, 그리고 온몸을 소름 돋게 만드는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우리는 긴장이 되었다.
땅을 뚫고 나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괴수들을 나는 골렘을 움직여 선제공격을 가했다.
쉽게 녀석들을 제압할 수 있을 거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놈들은 더욱 강력했다.
-끄어어억! 쾅!
골렘의 무지막지한 주먹 공격을 막아낸 괴수는 오히려 역공을 가했고, 녀석의 주먹질에 오히려 골렘이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이미 계속된 전투로 심한 손상을 입었던 골렘은 녀석의 공격과 쓰러지는 충격으로 기능이 정지됐다.
"이런..….”
많은 역할을 가지고 활약하던 골렘이 쓰러지자 일행의 표정에 어두운 그림자가 생겨났다.
큰 손해를 입었다고는 하지만, 어떠한 공격에도 버텨내던 골렘이었는데. 나무 괴수의 공격 한 번에 쓰러지다니.
망연자실한 우리의 모습에 상관하지 않고 땅속에서는 계속해서 나무 괴수들이 튀어나왔다.
그 위협적인 모습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뒷걸음을 하며 거리를 벌렸다.
'어떻게 하지?'
절망적인 상황에 나는 방법을 찾으려 끊임없이 머리를 굴렸다.
마치 우리를 비웃기라도 하듯 내려다보는 거대한 눈동자, 완전히 땅속에서 모습을 드러내 우리에게 접근하는 나무 괴수들, 그리고 볼품없이 땅에 쓰러진 골렘.
주변을 살피던 내 시선이 쓰러진 골렘에 멈췄다. 순간 뭔가를 떠올린 나는 임진혁에게 급히 외쳤다.
"형! 잠시만 엄호해 주세요!"
“뭐?”
나는 그의 대답도 듣지 않고 쓰러진 골렘을 향해 달려갔다.
-그워어어......
내가 달려가는 사이 나무 괴수들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대답은 좀 듣고 가라고."
“세진 님을 지켜라! 더이상 다가오지 못하게 해!"
다행히 내 돌발적인 행동에도 나머지 일행은 빠르게 지원을 나섰다.
나머지 일은 신경 쓰지 않고, 쓰러진 골렘을 향해 다가섰다.
엄청난 충격을 받은 여파인지 골렘의 몸체는 이미 걸레짝처럼 찢어진 상태였다.
나는 골렘의 가슴팍 부분을 열기 위해 손을 움직였다.
잠금장치를 해제했는데 충격으로 찌그러진 탓인지 쉽게 열리지 않았다.
"끄으으윽. 제발 좀 열려라……”
있는 힘을 다해 달려든 결과, 겨우 내부의 회로를 감싸던 가슴 외부 장갑을 뜯어낼 수 있었다.
내부의 회로를 살피던 나는 아직 멀쩡한 모습의 골렘 동력부를 발견했다.
-쾅! 쾅!
-뒤를 조심해!
점점 가까워지는 전투 소리.
다급한 손놀림으로 동력부를 해체해나갔다.
잠시 후.
나는 해체를 끝낸 동력부를 가지고
밖으로 나섰다.
주변에는 이미 처절한 전투가 한창
이어지는 중이었다.
강력한 나무 괴수들의 공세를 어떻게든 막아내고 있었지만, 이미 지칠대로 지친 일행은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방법은 이것뿐이다.'
골렘 동력부를 짊어진 나는 아직 멀쩡히 움직이는 골렘을 향해 다가섰다.
골렘의 손바닥 위에 올라선 나는 거대한 눈동자를 올려다봤다.
골렘 동력부를 꽉 끌어안으며 눈대중으로 거리를 가늠했다.
“세진아! 뭘 어떻게 하려는 거야?"
“방법은 이것뿐이에요.”
"이런 미친..….!”
내 계획을 눈치챘는지 임진혁은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엘디르!"
"......?"
“뒤를 부탁할게요."
“그게 무슨...… 윽!"
적의 공격을 막아내느라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는 엘디르.
대답은 듣지 못했지만 나는 지체하지 않고 생각했던 계획을 진행했다.
'실패하면 끝이다. 신중하게...…'
골렘은 내 명령을 따라 천천히 나를 집어 올렸다.
주변의 나무 괴수들의 기괴한 울음 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최대한 집중했다.
극도의 집중력을 유지해 골렘을 향해 마지막 명령을 입력했다.
-기이이익. 휘익!
나를 잡고 있던 골렘의 팔이 휘둘러지고.
"으윽!"
순간 몸이 부서질 것 같은 엄청난 압력이 느껴짐과 동시에 몸이 붕하고 허공으로 떠올랐다.
땅과 하늘이 빙글빙글 돌면서 어지러운 순간에 목표를 확인하기 위해 눈을 집중했다.
-휘이이잉!
거칠게 허공을 떠다니는 순간, 부드러운 바람이 내 몸을 감쌌다.
어렵게 균형을 잡은 내 몸이 천천히 거대한 눈동자 근처에 도달했다.
-탁!
약간 움푹한 나무 표면에 안착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죽는 줄 알았네."
아찔했던 순간을 넘기고, 나는 생각했던 계획을 곧바로 수행했다. 혹시 놓칠세라 꽉 끌어안고 있었던 골렘의 동력부를 나무 표면에 박아 넣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단단한 나무 껍질 때문에 나는 몇 번이고 발을 차 골렘 동력부를 고정했다.
어설프게나마 고정된 동력부에 손을 올리고 내부에 마력 흐름에 의식을 집중시켰다.
평소 같았으면 섬세하게 그 흐름을
조절하려 했겠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런 수고를 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거칠게 동력부의 마력 흐름을 이끌었다.
- 우우우웅..….
내 의도대로 골렘 동력부는 불안정한 마력 파동을 일으키며 작게 진동했다.
미미하게 시작됐던 그 파동은 점점 커지는 파도처럼, 큰 폭으로 그 위력을 키워나갔다.
'이걸로는 부족하지.'
나는 난폭한 마력 흐름에 문양의 힘을 억지로 쑤셔 넣기 시작했다.
원래 거칠게 요동치던 마력 흐름은 억지로 추가된 문양의 힘으로 인해, 마치 탄산음료처럼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이제는 몸이 떨릴 정도의 강력한 마력의 파동이 동력부에서 흘러나왔다.
이 기분 나쁜 눈동자에 제대로 한 방 먹일 수 있다는 생각에 슬쩍 미소가 흘러나왔다.
“……근데 나는 어떻게 돌아가지?"
생각했던 대로 계획은 수행했으나, 이 뒤의 상황은 생각하지 못했던 나는 멍한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봤다.
지금까지도 나무 괴수들과 전투를
벌이는 일행의 모습이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였다.
- 우우우웅.우우우우웅!!!
등 뒤로 점점 강력한 진동이 느껴지고.
더는 고민할 시간이 없었던 나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허공을 향해 뛰어내렸다.
그리고 잠시 후.
- 우우우웅······ 콰아아아앙!!!
조금 전까지 내가 있던 곳에서 엄청난 폭발과 함께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은 굉음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