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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균열에 산다-239화 (239/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239화

77. 마지막을 위한 준비(2)

서율희와의 회의가 끝나고.

나는 곧바로 강유환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의 사정을 설명해야 했다.

그는 쉽지 않은 부탁임에도 별다른 말없이 걱정하지 말라는 대답을 해 줬다.

-그런 일이라면 최대한 빨리 해결해 보도록 하마. 그것보다…….

"......?"

- 자신은 있는 거냐? 많은 길드가 도전해서 실패한 미궁이다. 내가 관여할 문제는 아니지만, 너무 서두르는 것 아니냐?

염려 가득한 강유환 회장의 말에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가 말한 대로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만약 더 미룰 수 있었다면 최대한

미뤘겠지만.

나에게는 더 이상 남아 있는 여유가 없었다.

지체했다가는 되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날 테니까.

“걱정해 주셔서 감사하지만, 제 생각은 변함없습니다."

-그렇구나. 알겠다. 그러면 일이

처리되는 대로 연락해 주겠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그의 마지막 말에서 아쉬움이 느껴졌지만, 나는 애써 모른척하며 통화를 종료했다.

****

균열로 돌아온 나는 곧장 엘프 마을을 방문했다.

시르엘과 엘디르 그리고 오르트가 함께 모였다.

나는 세 명의 엘프에게 미궁을 공략하기 위해 진입할 거라는 것과 그 위험성에 관해 설명했다.

시르엘은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다른 방법은 없겠죠?"

“그 방법 말고 다른 방법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우리에게 남은 방법은 이것뿐이에요."

"......"

내 단호한 대답에 시르엘은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설명했는데도 표정에 별다른 변화가 없는 엘디르와 오르트.

그중 오르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는 충분히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위험해도 세진 님이 이 일을 포기할 수 없듯이, 저희도 이 일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결연한 그의 말에 옆에 있던 엘디르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는 언제든지 준비가 돼 있습니다. 그러니 세진 님은 부담 없이 저희에게 명령을 내려주시면 됩니다."

“경비대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애초에 쉬운 일이었다면 저희가 이곳에 오지 않았을 겁니다."

믿음직스럽게 대답하는 두 엘프의 모습에 나는 가슴 한편이 찌르르 울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특히 이전에 나를 인정하지 않는듯한 오르트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이 놀라울 정도였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저도 꼭 성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다가올 시련에 맞서기 위해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강하게 의지를 다졌다.

앞으로 우리가 도전할 미궁에 관한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오르트와 엘디르는 각자 엘프들에게 미궁에 진입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그에 맞춰 전투준비를 지시했다.

최근에 새로운 마을을 건설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전투준비에 소홀하지 않았던 엘프들.

그들은 곧바로 익숙하게 전투를 준비하며 다가올 시련에 대비했다.

한동안 평화로웠던 마을에 다가올 전투를 준비하는 엘프들도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

엘프 마을에 미궁에 도전한다는 소식을 알리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쯤에는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집에는 아주 오랜만에 정씨 가족이 아이들과 함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뭐하다 이제 들어오는 거야?”

“잠시 엘프 마을에 다녀왔어요."

“이거 마을 장로님 되더니 이렇게 얼굴 보기 힘들어서 되겠어?"

평소와 다름없는 유쾌한 아저씨의 모습에 나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왠지 아저씨 덕분에 하루 종일 받았던 압박에서 조금이나마 해방되는 기분이었다.

집 안으로 들어서니 아주머니는 역시나 부엌에서 뭔가를 만들고 계셨고, 남매는 거실에서 아이들과 놀아주고 있었다.

“오빠, 이제 와요?"

"형. 어서오세요."

"세진이 왔어?”

분명 정씨 가족이 손님인데, 자연스럽게 나를 맞이하는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느껴졌다.

“네. 다녀왔습니다.”

나는 웃으며 인사를 하고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자연스럽게 이엘에게 먼저 시선이 갔는데, 다행히도 지금은 몸 상태가 괜찮은지, 평소와 다름없이 달라붙어 오늘 있었던 일을 나에게 재잘재잘 떠들었다.

괜찮아 보이는 이엘의 모습에 나는 남몰래 안도하며,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아이들의 응석을 받아주었다.

"세진이 왔냐?"

“네. 형.”

임진혁도 방에서 나와 거실에 합류하니,

집 안은 많은 사람의 목소리로 소란스러워졌다.

이런 떠들썩한 분위기 때문인지 고민과 걱정으로 가득했던 마음은 가라앉고, 어느새 평소처럼 웃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 덧 부엌에서는 코를 간질이는 맛있는 냄새가 흘러나왔다.

"자! 음식 준비됐어. 옮기는 것 좀 도와줘!"

아주머니는 오랜만에 실력을 발휘했는지, 부엌에서 끊임없이 준비한 음식들이 쏟아져 나왔다.

가장 아주머니의 음식을 많이 봐왔을 아저씨도 그 양에 감탄하며 중얼거렸다.

"허어. 진짜 상다리를 부술 생각으로 만들었네."

“오랜만에 이렇게 다 모였는데 그냥 지나칠 수 없죠. 애들아 많이 먹어."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

"퓨이!"

"후모! 후모!"

아이들은 맛있는 음식들에 신이 난 표정으로 대답했고, 아주머니는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오랜만에 맛보는 아주머니의 따뜻한 음식에 기대감 넘치는 표정으로 수저를 움직였다.

음식은 언제나처럼 맛있었고.

맛있는 음식만큼이나 즐거운 분위기에서 저녁 식사가 진행되었다.

일상적인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웃고 떠들다 보니.

어느새 음식으로 가득했던 그릇이 비워졌고, 모두 포만감으로 행복한 표정으로 배를 두드렸다.

음식을 준비하느라 고생한 아주머니가 아이들과 잠시 쉬는 사이, 정씨 남매가 저녁 식사의 뒤처리를 자처했다.

나도 도우려 했지만.

"형도 좀 쉬세요."

"오늘 계속 일했잖아요. 저기서 아빠랑 같이 쉬고 계세요."

둘의 배려에 나는 미안한 미소를 지으며 부엌을 빠져나왔다.

거실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즐거운 소리를 뒤로하고 조용히 집 밖으로 나섰다.

이미 어둠이 내려앉아 주변은 어두컴컴했지만, 밤하늘은 밝은 달과 초롱초롱한 별들로 가득했다.

잠시 멍하게 쏟아질 것 같은 밤하늘의 별들을 구경하고 있을 때,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혼자서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냐?"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아저씨와 임진혁이 내 쪽으로 다가와 나란히 섰다.

“그냥 밤하늘 좀 올려다보고 있었어요."

“캬아. 확실히 도시의 밤하늘이랑 달라. 정말 별이 한가득하네."

아저씨의 감탄에 동의하듯 임진혁도 말없이 밤하늘을 응시했다.

그렇게 우리 셋은 잠시 나란히 서서 밤하늘을 구경했다.

침묵을 먼저 깨고 입을 연 사람은 나였다.

“죄송해요. 둘 다. 저 때문에 위험한 일에 휘말리게 돼서."

나는 진지하게 한 말이었는데.

마치 짜기라도 한 듯, 아저씨와 임진혁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겨우 그것 때문에 여기 나와서 괜히 분위기 잡고 있었던 거야? 난 또 전 여자친구한테 연락이라도 왔나 했네.”

“......"

"인마. 우리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야. 진혁아, 안 그렇냐?"

장난스러운 아저씨의 반응에 호응하듯 임진혁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이상한 고민하지 마라. 우리는 이미 하겠다고 마음먹었고. 너는 그런 우리를 잘 이끌기만 하면 되는 거야. 알았어?"

“...…네. 감사합니다. 아저씨."

"감사하긴 뭘."

내 감사 인사에 잠시 머쓱한 표정을 짓던 아저씨는 다시 밤하늘로 시선을 돌리고 감탄사를 터뜨렸다.

"이야. 세진이가 아무것도 모르고 우리 파티에 끼던 게 엊그저께 같은데, 이제는 길드를 이끌고 미궁을 공략하러 가다니.”

“그러게요. 정말 아저씨 파티에 합류했던 게 어제 일 같은데."

나는 처음으로 아저씨 파티와 함께 균열을 클리어하던 때를 회상하며 미소를 지었다.

“에이, 이번 일 끝나면 나는 은퇴나 할까 보다. 너무 오래 이 일을 했어."

"벌써 은퇴요? 은퇴하시면 뭐하시게요?"

"글쎄. 할 일이야 많지. 진혁아. 저번에 술집 하자는 거, 진짜로 같이 안 해볼래?"

"그럴까요?"

“이번 미궁을 성공적으로 공략하면

보너스도 두둑이 떨어질 텐데. 그걸로 진짜 사업 한 번 해보자. 당연히 모렛도 껴서. 세진아 너도 같이할래?”

아저씨는 신이 난 표정으로 임진혁과 나에게 자기가 계획한 사업 방향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뭔가 그럴듯하면서도 허술함이 느껴지는 계획이었지만, 머릿속에 그려 지는 모습은 꽤 나쁘지 않아 보였다.

임진혁도 그렇게 느꼈는지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아저씨의 설명을 경청했다.

꿈과 희망으로 가득한 아저씨의 주류 사업 계획을 들어서인지, 왠지 미궁에 대한 걱정도 스르륵 사라졌다. 그렇게 우리는 하늘의 별빛만큼 빛나는 미래를 꿈꾸며 밤을 지새웠다.

****

아르킨 길드의 태백산 미궁 진입 날짜가 확정되었다.

강유환 회장의 입김 덕분인지, 우리가 원했던 대로 멀지 않은 날짜에 진입 허가가 떨어졌다.

지난번 B등급 균열 허가를 받았을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우리가 태백산 미궁 공략에 도전한다는 사실이 빠르게 언론에 공개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균열관리센터는 물론이고, 태백산 미궁을 경계하는 군 부대에서도 이 사실이 미리 전파되었으니.

빠르게 언론에 알려지는 것은 아주 당연한 순서였다.

아르킨 길드가 태백산 미궁에 도전한다는 사실은 곧바로 여러 언론 매체가 앞다퉈 보도하기 시작했고.

인터넷에는 온종일 이 사실을 가지고 격렬한 논쟁이 오갔다.

대부분 사람이 이 도전에 대해 비관적인 의견을 내놨다.

-갑자기 태백산 미궁? 완전 자살 행위임.

-B등급 균열 클리어한 건 대단하다고 인정하겠는데, 미궁 도전은 완전 선을 넘은 것 같다.

-도대체 허가는 왜 또 내준 거냐? 저번에도 이러더니.

-내버려 둬. 도전하고 죽겠다는데.

하지만 지난번의 충격적인 B등급 균열 클리어를 떠올리며, 희망적인 기대를 품는 사람들도 존재했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도전하는 거 아니겠음? 저번에 B등급 균열을 클리어했을 때도 그랬잖아.

-이번에도 뭔가 있을지도?

-나 친구들이랑 이걸로 내기했는 데, 아르킨 길드가 미궁을 클리어해 낸다는 데 걸었다. 역배 가즈아!

-솔직히 지금 힘들다고 의견 내는 사람 중에 쏠리는 사람 있을걸? 저번처럼 또 클리어해버릴까 봐 ㅋㅋㅋ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

많은 언론사가 아르킨 길드와 대화를 시도하며 문을 두드렸지만, 그 누구도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세상 사람들이 뭐라 이야기하던, 아르킨 길드는 조용하게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묵묵히 준비해 나갔다.

그렇게 날이 갈수록, 수많은 사람의 궁금증과 기대감이 폭발할 듯 부풀어 오르고.

대망의 균열 진입 날이 밝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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