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균열에 산다 237화
76. 뜻밖의 초대(4)
잠시나마 인사를 나누고, 선물도 전해 받고, 사진도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최대한 짧게 진행하려 했는데도 인원이 50명이나 되다 보니, 시간이 꽤 많이 흘러버렸다.
그래도 마지막 분까지 아이들과 짧게나마 즐거운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자. 그럼 이제 바로 엘프 마을로
모시겠습니다."
“저를 따라오세요!"
이번에는 피렌느와 시르엘이 앞장을 섰다.
초대받은 사람들은 천천히 두 엘프를 따라 다시 숲길을 걷기 시작했다.
전해 받은 선물들은 엘프 경비대원들에게 맡겨두고 나도 아이들을 이끌고 행렬에 합류했다.
처음에 약간 어색했던 분위기가 사라져서 초대받은 사람들은 자유롭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눈치만 보던 주변 엘프들에게 조심스럽게 대화를 시도하거나, 나와 아이들에게도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시르엘과 엘디르도 간간이 초대받은 사람들과 말을 주고받았지만.
아무래도 가장 사람들과 활발히 대화를 나누고 있는 엘프는 역시 피렌느였다.
“마을에는 몇 분이나 살고 계시는 가요?"
"60명이 조금 넘게 살고 있어요. 마을을 세운 지 얼마 안 되었거든요.”
“원래 여기에 살고 계시는 게 아니었나요?"
“네.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엘프 마을에서 왔어요."
사람들의 질문에 피렌느는 하나하나 친절히 대답을 해줬다.
"균숙자님이랑 엘프분들은 어떤 관계에요?"
"으음…… 저희에게는 은혜를 베푼 분이시죠. 거기다 지금은 새로운 마을의 장로님이기도 하시고요.”
"에엑! 장로님이요?"
내가 엘프 마을의 장로라는 사실에
질문했던 사람은 물론, 주변 사람들까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앗! 이건 비밀로 해야 했나?"
피렌느가 뒤늦게 아차 하는 표정으로 입을 가렸지만, 이미 말은 쏟아져버린 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대단한 일은 아니고. 엘프 분들이 이곳에 정착할 수 있도록 몇 가지 도움을 준 것뿐입니다."
"그러면 여기 계신 엘프분들은 균숙자님의 명령을 따르는 건가요?"
“명령을 따른다기보다는 협조를 구하는 거죠. 딱히 장로라는 직책이 강제적으로 뭔가를 시킬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최대한 별거 아니라는 말투로 설명 했는데도. 사람들은 감탄하는 표정으로 계속 나를 응시했다.
사람들의 과도한 관심에 불편한 상황이 계속됐는데, 다행히도 기다리던 엘프 마을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여러분! 저기가 엘프 마을이에요.”
마을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외침에
사람들의 눈동자에는 신비로운 엘프
마을의 풍경이 비치기 시작했다.
"와아!"
"너무 예쁘다!”
“저기 작은 건물들이 다 집이야?"
사람들이 엘프 마을을 구경하는 사이, 기다리고 있는 마을의 엘프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엘프 마을에 어서 오세요."
“이쪽으로 오세요.”
엘프들은 마을 중앙에 미리 준비해 둔 자리로 사람들을 이끌었다.
약간은 어눌한 한국어지만 친절한
엘프들의 태도에 사람들은 신기하면서도 기쁜 표정을 지었다.
50명의 사람이 모두 자리에 앉자, 엘프들은 미리 준비해뒀던 음식을 꺼내오기 시작했다.
세계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엘프들의 요리가 하나씩 눈앞에 공개되자, 사람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그 요리들을 하나씩 살피기 시작했다.
"오오. 이게 엘프들이 먹는 음식!"
"냄새 좋다."
“이건 뭐지? 처음 보는 과일인데."
처음 보는 재료로 만들어진 요리에
호기심을 느끼는 사람도 있었고, 벌써 맛있는 냄새에 취해 입맛을 다시는 사람도 있었다.
준비된 수저를 만지작거리며 나에게 무언의 압박을 보내는 사람들.
나는 그들의 뜻을 이해하고 입을 열고 목소리를 높였다.
"맛있는 음식을 눈앞에 두고 많은 이야기는 않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마을에 방문한다는 사실을 듣고, 마을의 엘프분들이 정성껏 준비한 음식이니. 맛보시기 전에 감사 인사 한마디씩만 부탁드리겠습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사람들은 주위에 엘프들을 향해 감사 인사를 전하기 시작했다.
“준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너무 맛있을 것 같네요.”
사람들의 감사 인사에 엘프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식기 전에 얼른 드세요."
내 말을 끝으로 사람들은 재빨리 수저를 들고 음식을 맛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수저를 움직이던 사람들이 점차 빠르게 손을 움직였고, 준비된 음식들은 빠르게 사라져갔다.
다행히도 젊은 사람은 물론, 연배가 약간 있는 손님들도 음식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
'다행히 노력이 헛되지 않았나 보네.'
이번에 사람들을 대접하기 위해.
엘프들은 꽤 오랫동안 노력을 해왔다.
약간의 현지화?
엘프들의 특별한 재료와 요리법을 사용하면서, 우리에게 익숙한 조미료와 다른 재료들을 같이 곁들이며 독특하면서도 친근한 맛이 나도록
연구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엘프 요리가 완성되었다.
이 연구 과정에서 꽤 많은 공헌을 한 아주머니는.
나중에 전통 엘프 요리 전문점을 준비해도 성공할 것 같다며 욕심을 내보이기까지 했다.
음식 그릇을 연달아 비워내며 배를 채운 사람들은 모두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여기 차 드세요."
"헛! 이것은 혹시 엘프차?"
“네. 맞아요. 얼마 전에 이 마을에서 직접 만든 엘프차에요."
"오오! 드디어 엘프차를 직접 맛보다니. 그것도 엘프 마을에서!"
한때 많은 이들을 열광시켰던 엘프 차를 대접받으며, 사람들은 황홀한 표정으로 찻잔을 받아들었다.
“이 공기 좋은 곳에서, 맛있는 음식에, 이렇게 향이 좋은 엘프차까지. 정말 회사 휴가 내고 온 보람이 있네요."
"하하. 무릉도원이 따로 없어.”
성공적인 식사 시간을 끝내고, 우리는 바로 다음 일정을 진행해 나갔다.
****
4개의 조로 적절히 인원을 나눈 뒤.
조마다 돌아가면서 마을에 준비해 둔 체험 이벤트를 진행했다.
첫 번째로 준비한 체험 이벤트는 엘프 마을의 집 안 내부를 직접 둘러보고, 엘프들의 문화와 전통에 관해 이야기를 해주는 이벤트였다.
이 이벤트를 준비한 주인공은 바로
루나르엘.
“모두 반가워요. 제 이름은 루나르엘이라고 해요.”
사람들을 맞이하는 신비로운 그녀의 분위기에 사람들은 모두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그런 사람들에 반응에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차분하게 준비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정말로 할머니가 옛날이야기를 말해주는 같은 분위기에 사람들은 금방 그녀의 이야기에 빨려 들어갔다.
“저기. 루나르엘 님!"
“네.”
“정말로 이엘의 할머니세요?"
“맞아요. 밖에서 만나신 시르엘이 제 딸이랍니다.”
“허어..….”
도저히 손녀를 둔 할머니라고 볼 수 없는 아름다움에 사람들은 모두 할 말을 잃어버렸다.
두 번째로 준비한 이벤트는 피렌느가 준비한 엘프어 체험 이벤트였다. 간단한 인사와 몇 가지 짧은 대화를 배워볼 수 있었다.
가장 열심히 수업을 들은 참가자에게는 마을에서 직접 만든 회복제와 특이한 과일을 선물로 전해줬다.
팬레터를 선물로 가져왔던 여고생이 손을 번쩍 들고 질문을 던졌다.
“피렌느 님! '나는 너를 사랑해' 엘프어로 뭐라고 하나요?"
“으음. ‘Ni Meyath Le!'라고 하죠.”
피렌느의 대답을 들은 그녀는 그대로 엘디르에게 쪼르르 다가가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Ni Meyath Le!"
"......."
갑작스러운 여고생의 고백에 엘디르는 잠시 뚱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부드럽게 속삭였다.
"Ni Meyath Le."
"아아……”
생각지도 못한 엘디르의 반응에 여고생은 감격한 표정으로 눈물을 글썽였고, 지켜보던 몇몇 여자들은 현기증이 온 것처럼 몸을 비틀거렸다.
세 번째로 준비된 이벤트는 시르엘 과 이엘이 함께 준비한, 직접 엘프 차를 만들어 보는 체험이었다.
원래 엘프차는 엘프의 손길이 닿아야 만들 수 있다는 설명과 함께, 그 과정을 가까이 구경하고 체험도 해 보는 이벤트였다.
오늘 이벤트를 위해 열심히 준비한 이엘의 똑 부러지는 설명을 들으며, 사람들은 모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체험이 끝난 뒤에는 미리 만들어 포장해둔 엘프차를 선물 받을 수 있었고, 사람들은 다시 한번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마지막 이벤트는 모렛과 임진혁, 그리고 몇몇 엘프들이 준비한 엘프주 시음회였다.
“후모! 후모!"
이곳에서 모렛이 직접 만들어 숙성한 엘프주 뿐만 아니라, 세계수를 지키는 엘프 마을에서 어렵게 구한 100년 된 엘프주도 맛보는 이벤트를 가졌다.
“으음. 너무 독하지도 않고, 맛도 부드러워서 좋다.”
“아까 음식에 곁들어 먹었어도 괜찮았을 텐데."
"으으, 나 나중에 직접 운전해서 돌아가야 하는데……”
옆에서 눈치를 보던 여고생이 간절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저 조금만 마셔보면 안 되죠?"
“당연히 안 되죠.”
"우우......."
나는 엄격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고, 여고생은 실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시음회 이벤트가 끝난 뒤에는 엘프 차와 마찬가지로, 예쁜 병에 담긴 엘프주를 모두에게 기념으로 한 병씩 선물했다.
엘프주의 맛에 홀딱 반한 몇몇 사람들이 돈을 내고 추가로 구입할 수 없냐고 사정했지만, 안타깝게도 남아 있는 양이 많지 않아 거절해야만 했다.
이렇게 준비된 4개의 이벤트를 진행하다 보니 어느새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임을 깨닫고 아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아. 조금만 더 있었으면 좋을 텐데.”
“다음에 또 올 수 있을까요?"
“나도 이런 곳에서 살아봤으면..….”
아쉬움을 드러내는 사람들을 보며, 마을의 엘프들도 함께 아쉬운 표정을 했다.
"또 놀러 오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손을 흔들며 약간 어색한 한국어로 다시 놀러 오라고 말하는 엘프들.
사람들은 그 모습에 아쉬움을 숨기고 같이 손을 흔들어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다음에 또 놀러 올게요."
"엘디르 오빠! 저 잊으면 안 돼요.”
마지막 인사를 끝으로 사람들은 엘프 마을을 떠나 원래의 세상으로 되돌아갔다.
그렇게 뜻밖의 일로 이루어졌던 엘프 마을로의 초대는 성공적으로 끝을 맺었다.
****
엘프 마을 방문 이벤트가 끝나고, 인터넷에는 속속들이 인증 사진과 함께 후기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정말 영화 속에 들어온 것 같이 환상적인 시간이었어요.
-처음 엘프들을 봤을 때, 너무 예쁘고 잘 생겨서 쉽게 말 걸기 힘들었는데. 전부 다 너무 착하고 친절하더라. 다음에 또 만날 수 있었으면……
-아. 그때 먹었던 엘프 음식들이 아른아른 떠오른다. 진짜 엘프 음식 전문점 생기면 바로 찾아갈 것 같다. 오늘은 선물 받은 엘프주로 이 아쉬움을 달래야겠다.
-엘디르 오빠 존잘! 완전 연예인 보는 줄 알았음.
마을에서 대접받았던 엘프 요리와 선물 받은 엘프차, 엘프주가 계속 인터넷에 올라오자.
사람들의 관심은 계속해서 뜨거워졌다.
-딴 건 모르겠고. 엘프주 한번 맛 봤으면.
- 나는 저 요리들 한번 먹어보고 싶다. 정말로 엘프 요리 전문점 안 생기나?
-내 친구가 저기 다녀와서 받아온 엘프주 좀 맛봤는데, 진짜 신세계임.
엘프가 새로운 문화에 영향을 받은 것처럼.
이곳의 사람들도 점점 엘프의 문화에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