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균열에 산다 236화
76. 뜻밖의 초대(3)
엘프 마을로 초대된 사람들이 모이는 집합 장소.
그곳은 이미 많은 사람으로 북적이고 있었다.
모두 설레는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듯, 얼굴에는 엷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집합 장소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발견한 오연우는 탄성을 터뜨렸다.
"오오. 벌써 많이 와 계시네요.”
“우리 한 시간 일찍 나온 거 맞지? 전부 뭐 이렇게 일찍 나오셨대.”
나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시계를 확인하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아무래도 저번과는 다르게 인원이 많다 보니, 조금 일찍 나와 초대받은 사람들을 기다리려고 했는데.
아직 한 시간이 남아 있는데도 집합 장소에는 초대받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와 오연우 옆에 서 있던 아윤과 선우, 정씨 남매가 모여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뭔가 떨리네요.”
“형. 지금 바로 일 시작하면 돼요?"
“그렇게 하자. 이미 많은 분이 와 계셔서 바로 인원 체크해도 되겠어."
저번 팬 미팅 때보다 많은 인원을 초대했기에 나와 오연우만으로는 일손이 부족할 것 같아 정씨 남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나와 오연우, 그리고 정씨 남매는 미리 알려준 절차대로 모여 있는 사람들의 신원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초대받은 사람들의 연령대는 정말로 다양했는데.
저번 팬 미팅이 20, 30대에 몰려 있었다면, 이번에는 10대부터 50대까지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유! 균숙자님. 직접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영상 정말 잘 보고 있습니다."
나보다 높은 연배의 어른스러운 반응부터.
“꺄악! 진짜 균숙자다! 저 사진 한 장만 같이 찍어주시면 안 돼요? 이거 SNS에 올리면 안 되고 갠소해야죠?"
어린 여고생 특유의 하이텐션까지.
갖가지 반응을 만나볼 수 있었다.
나는 진심으로 반가워하는 사람들을 최대한 친절하게 응대하며, 중요한 신원파악 절차를 계속해나갔다.
다행히 모여 있는 모든 분이 적극적으로 신원파악에 도움을 줘서 생각보다 금방 확인 절차를 끝낼 수 있었다.
모여 있는 사람들의 신원확인 절차를 끝내고, 약속 시각 동안 아직 도착하지 않은 인원을 기다리기로 했다.
최대한 사람들의 이탈을 막으며 기다리는 사이, 주변에 몇몇 정체불명의 무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그 존재를 눈치챈 오연우가 내게 슬쩍 귓속말을 해왔다.
“형, 아무래도 기자인 것 같아요."
그의 속삭임에 최대한 느릿느릿하게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피니, 카메라를 들고 이쪽을 동태를 살피는 기자로 추정되는 몇몇 사람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집합 장소는 분명 비밀로 했는데. 어떻게 알고 찾아왔을까요?"
"뭐. 인터넷에서 그렇게 화제가 되기도 했고, 50명이나 되는 사람들에게 알렸으니 새어나갈 만도 하지."
“이거 괜찮을까요? 저 사람들 분위기로 봐서는 아마 억지로라도 따라 오려고 할 것 같은데."
“괜찮아. 적당히 해결될 거야. 우리는 남은 사람들이 일찍 도착하기만을 기다리면 돼.”
"......?"
내가 상대적으로 평온한 모습을 보이자 오연우는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는데.
그 표정은 얼마 지나지 않아 놀라움으로 변했다.
"잠시 이야기 좀 나누시죠."
"어어? 당신들 뭐야?"
“지금 카메라로 뭘 찍고 계시는 건지 확인해 볼 수 있겠습니까?"
"왜, 왜 이래, 이거.”
갑자기 어디선가 튀어나온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주변의 기자들에게 다가섰다.
카메라를 든 기자들은 어떻게든 반항해보려 했지만, 양복을 입은 사람들은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금방 기자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익숙한 모습을 보며 슬쩍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이거 생각보다 훨씬 도움을 많이 받았네.'
그들의 정체는 미래 그룹, 강유환 회장의 명을 받고 나를 도와주러 온 경호팀이었다.
지난번에 놀이동산에 갔을 때도 도움을 줬던 그 사람들이었다.
이번 이벤트에 대해 영상과 공지사항이 올라왔을 때, 먼저 강유환 회장에게 연락이 왔다.
-이런 재미난 이벤트를 하면서, 가장 큰 후원자에게는 연락도 주지 않는구나.
-아니. 회장님은 아르킨 길드를 후원하고 계시는 거잖아요. 이건 제 개인적인 너튜브 채널에서 하는 이벤트고요.
-흐음. 그럼 나도 개인적으로 너튜브 채널에 후원해야겠구먼. 그 ‘도네이션' 인가 뭔가 하는 거로 보내주면 되는 건가?
-......
후원을 해주겠다는 말에서 느껴지는 불길한 기운에 나는 금방 꼬리를 말 수밖에 없었다.
-회장님은 나중에 따로 모실 테니까. 제발 참아주세요.
장난이었는지, 진심이었는지 모를 강유환 회장의 '도네이션'은 일단 막을 수 있었다.
-사람들 모이는 날짜에 경호팀을 보내줄 테니, 그렇게 알고 있어라.
-예?
-딱히 너희들 일을 방해하지는 않을 테니, 그렇게만 알고 있으면 된다.
강유환 회장이 다짜고짜 보낸 경비원들 덕분에 귀찮은 존재들은 확실하게 정리되고 있었다.
약속 시각에 거의 맞춰서.
오늘 초대받은 인원 50 명 전원이 모이게 되었다.
"자. 그럼 이동하겠습니다."
"천천히 따라오시면 돼요."
내가 나서서 이끌고, 정씨 남매와 오연우가 일행이 흩어지지 않도록 뒤에 붙어 사람들을 도와주었다.
50명이라는 적지 않은 사람들의 이동에 주변 사람들의 눈길을 이끌었지만, 경호팀의 노력 덕분에 상대하기 귀찮은 사람들의 추격은 막을 수 있었다.
****
“와아..….”
“여기가 영상 속에서 보던 그 숲이구나."
“공기 엄청 깨끗해. 가슴이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야."
균열 입구를 통해 숲으로 이동한 사람들은 처음 이곳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매번 보여주는 반응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혼탁하고 텁텁한 도시에서 이곳 숲이 있는 곳으로 넘어왔을 때,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맑은 공기였다.
사람들이 코를 움찔거리며 상쾌한 공기를 가슴에 담으려는 동안, 나와 오연우, 정씨 남매는 혹시 흩어진 일행이 있을까 봐 인원 숫자를 확인했다.
인원 확인을 끝냄과 동시에. 숲에서 기다렸다는 듯 손님을 환영하기 위해 엘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안녕하세요.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하셨어요!"
피렌느 특유의 활기 넘치는 목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한곳으로 쏠렸다.
"엘프다!"
"오오오! 진짜 살아 움직이는 엘프야."
"한국말 진짜 잘한다.”
시르엘, 피렌느, 엘디르와 몇 명의 엘프 경비대원들.
많은 숫자의 엘프들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눈을 껌뻑거렸다.
“여기서부터는 저희도 같이 안내해 드릴게요. 천천히 따라와 주세요."
엘프들은 자연스럽게 우리와 합류해 사람들을 숲길로 인도했다.
많은 사람이 동시에 좁은 숲길을 따라가느라 행렬이 길어졌지만, 중간중간에 엘디르와 엘프 경비대원이 사람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호위를 해줬다.
사람들은 가까이서 보는 엘프가 신기한지 눈을 힐끔거리면서도 쉽게 말을 걸지 못했다.
약간 설레면서, 긴장되고,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숲길을 따라 일행이 도착한 곳은 쉴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 넓은 공터였다.
저번 팬미팅 때 집으로 모였던 것과는 달리, 50명이나 되는 인원이 모였기 때문에 넓은 자리가 필요했고.
마당보다 훨씬 넓은 공터에 사람들이 잠시 쉴 수 있도록 자리를 미리 준비해 놓았다.
엘프 마을에 들어가기 전에 이렇게 따로 자리를 마련한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이번에 초대받은 대부분 사람이 물었던 질문.
-퓨이 만날 수 있나요?
-티아 공주님이랑 이엘 볼 수 있겠죠?
-저는 모렛 털을 꼭 쓰다듬어 보고 싶은데..….
엘프 마을에 가는 것도 중요했지만, 대부분 따로 아이들을 만날 시간을 가지고 싶어 했다.
그래서 엘프 마을에 들어가기 전, 이렇게 자리를 따로 마련해 뒀다.
"퓨이! 퓨이!"
“어서 와! 기다리고 있었어!"
"후모! 후모!"
"안녕하세요."
공터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이들이 반가운 인사를 전하자, 사람들의 얼굴에는
자연스럽게 미소가 떠올랐다.
엘프를 만났을 때 보였던 놀랍고 어색하던 표정이 아니라, 반가움과
기쁨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아이들은 오늘을 위해 엘프들과 직접 정성스럽게 만든 화환을 사람들에게 하나씩 전해주었다.
향기로운 꽃내음이 가득한 화환을 건네받은 사람들은 저마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퓨이야. 고마워!"
“이거 직접 만든 거니? 너무 잘 만들었다."
“정말 고마워. 조심히 집에 가져가서 소중히 간직할게."
일종의 짧은 환영 행사를 끝내고, 50명의 사람은 준비된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는 준비된 간식과 음료가 있었다.
다음으로 진행된 것은 팬 미팅 때만큼은 아니지만.
짧게라도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인원이 50명이나 되다 보니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초대된 사람들은 이 짧은 순간마저 행복한지, 누구 하나 미소를 잃어버리는 사람이 없었다.
사진을 찍고 인사를 나누면서 사람들은 미리 준비한 선물들을 아이들과 우리에게 전달했는데.
저번 팬 미팅 때처럼 갖가지 개성 넘치는 선물들이 가득했다.
“어제 직접 만든 쿠키에요. 많이는 준비
못 했는데, 아이들이 꼭 먹어 줬으면 좋겠어요."
“부끄러운 실력으로 아이들 캐릭터 만화를 그려봤어요."
“이거 저희 부모님이 직접 재배하신 과일인데, 제일 좋은 거로만 골라왔어요."
직접 선물을 만든 사람들부터.
“균숙자님. 제가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꼭 한번 방문해 주시죠. 보약이라도 한재 해드리고 싶습니다.”
"여기 저희 남편이 운영하는 식당인데 아이들 데리고 놀러 오세요.”
“헤어샵에서 일하는 디자이너인데……”
오히려 역으로 초대를 하는 사람들까지.
뭔가를 우리에게 해주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각자의 방식으로 표현했다. 가장 특이했던 선물은.
“여기 당첨됐다고 말하니까. 학교친구들이 적어준 팬레터랑 롤링 페이퍼거든요. 대표로 제가 전해드릴게요."
준비한 가방 한가득 친구들의 팬레터와 롤링 페이퍼를 가져온 여고생의 선물이었다.
정말 정성스럽게 준비한 선물에 비해서, 큰 보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짧은 시간이나마 인사를 나누고 아이들과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연배가 좀 있는 손님들은 아이들을 무릎에 앉힌 것만으로도 세상 다 가진 표정으로 행복해했다.
아이들도 그분들의 마음을 느꼈는지, 정말
가까운 친척처럼 친밀한 모습으로 사진을 촬영했다.
젊은 사람들도 아이들과 사진을 찍었지만, 약간의 추가 요청이 있었는데.
“저기…… 균숙자님. 혹시 저분이랑도 사진 찍을 수 있나요?"
"누구?"
"엘디르 오빠랑 같이 좀……"
친구들의 팬레터를 전해줬던 여고생은 부끄러운 표정으로 멀찍이 떨어져 있던 엘디르를 가리켰다.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고 엘디르를 불러 그녀와 나란히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엘디르는 아이들처럼 친밀한 미소를 짓지는 않았지만, 여고생은 그것 만으로도 충분한 듯 정말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저…… 균숙자님. 저도 괜찮을까요?"
“저도……”
여고생의 용감한 행동에 용기를 얻었는지.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엘디르와 사진을 찍길 원하는 사람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엘디르는 아이들 다음으로 많은 사진 촬영에 참여해야 했다.
추가로 시르엘과 피렌느도 몇몇 분들에 요청에 따라 사진을 촬영했다.
"......"
"......"
그 와중에 나와 오연우는 왠지 모를 박탈감에 씁쓸한 기분을 맛봐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