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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균열에 산다-232화 (232/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232화

75. 휴식의 시간(2)

아이들과 보드게임도 하고,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사이.

정씨 아저씨 가족과 나머지 길드원들이 통나무집에 도착했다.

"으하하. 오랜만이다. 얘들아!"

"꺄아아!"

"퓨이! 퓨이!"

마치 악당 같은 대사를 하며 등장한 아저씨는 도망치는 아이들을 하나씩 붙잡으며 끌어안았다.

도망치다 붙잡힌 아이들은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정씨 남매와 길드원들도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며 오랜만에 만남을 반가워했다.

“어서 오세요. 율희 씨.”

“네.”

"......"

"......"

오늘 회의에서 있었던 일이 아직 마음에 걸렸는지, 서율희와 나 사이에는 약간 어색한 기운이 흘렀다.

옆에 있던 김유미도 그 사실을 바로 눈치채고, 서율희를 억지로 이끌어 아이들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방문한 손님들 덕분인지 아이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사라지질 않았다.

조금 전까지는 나에게만 달라붙던 아이들이 순식간에 떠나버리자 약간 서운한 마음도 생겼지만, 오랜만에 집 안에 생겨난 떠들썩한 분위기에 나도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윤동현은 내 쪽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모렛은 어디에 있나요?"

“아마 진혁이 형이랑 같이 또 맥주 창고에 있을 거예요."

“그러면 저도 거기에 가볼게요.”

"조금 있으면 저녁 식사를 할 것 같으니 나중에 시간 맞춰서 돌아오셔야 해요."

“알겠습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모렛, 임진혁과 취미를 공유하는

윤동현은 곧바로 맥주창고로 향했다. 윤동현도 최근에 일이 바빠 취미생활을 즐기지 못했는지, 맥주창고로 향하는 모습에서 설렘이 느껴졌다.

윤동현이 떠나고 남은 사람들은 아주 오랜만에 편안한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최근에 워낙 바빠서 하지 못했던 일상 이야기도 나누고, 일이랑 관련 없는 이야기도 마음껏 주고받았다.

모두가 들뜬 분위기에 취해 표정이 가벼워지는 데 반해, 서율희는 아직도 살짝 굳어 있는 모습이었다.

아직도 업무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은 모습에 내가 살짝 움직였다.

나는 퓨이와 세이 쪽으로 다가가 살짝 말을 걸었다.

"퓨이야. 세이야."

"퓨이?"

-그릉?

속삭이는듯한 내 부름에 둘 다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나는 눈짓으로 서율희를 몰래 가리키며 아이들에게 조심스럽게 지시를 내렸다.

“얘들아. 율희 씨 보이지? 가서 애교 좀 부려줘."

"퓨이! 퓨이!"

똑똑하고 눈치 빠른 퓨이는 곧바로 내 말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세이는 커다란 눈을 껌뻑거리며 나를 빤히 쳐다봤다.

"아오. 이 영악한 녀석. 나중에 네가 좋아하는 마정석 실컷 먹게 해줄 테니까. 빨리 다녀와.”

-그르르르.

“나한테 애교부리지 말고!"

세이는 나에게 붙어 애교를 부리다가 퓨이와 함께 서율희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서율희는 퓨이와, 세이가 동시에 자신 쪽으로 다가오자 깜짝 놀란 눈으로 말했다.

“둘 다 나한테 무슨 일이니?"

"퓨이."

-뀨우우.

그녀의 물음에 퓨이와 세이는 다짜고짜 몸을 들이밀었다.

"어머!"

마치 엄마 품을 찾아 들어가는 아기들처럼, 둘은 그녀의 품 안에 자리를 잡고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퓨우우우."

-그르르릉.

특유의 편안한 울음소리로 내며 행복한 모습을 보이는 퓨이와 세이.

서율희는 갑작스러운 둘의 애교에 살짝 놀란 듯한 모습도 보였지만, 내심 싫지만은 않은 듯. 입가에 미소를 띠고 아이들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어주었다.

옆에 있던 김유미는 서율희의 품에 아이들을 부러운 듯 바라봤다.

다행히 아이들의 애교가 잘 먹혔는지, 서율희의 굳어 있는 표정은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다.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는 사이.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저녁 식사를 할 시간이 되었다.

나는 해가 지기 전에 꽃에 위니를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이들과 모든 사람이 마당에 나와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익숙한 엘프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나를 발견하고 고개를 숙였다.

나는 엘프들의 인사를 받아주며 일

행들에게 물었다.

"어? 밖에서 뭐 하시는 거예요?"

내 물음에 아주머니가 대표로 나서서 대답했다.

"세진아, 방금 엘프 마을에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았단다. 그래서 이렇게 나와 있는 거야."

"예? 이렇게 갑자기 엘프 마을에요?"

“그래, 네가 오면 가려고 기다리고

있었어."

“으음. 그런가요?”

나는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에게 보고하길 좋아하는 엘프들이 갑자기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하지만 이상하다는 생각은 금방 머릿속에서 지워내 버렸다.

오랜만에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는 시간에 복잡한 생각을 더 하고 싶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엘프 마을에 간다는 사실에 들떠 있는 일행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세진 님. 출발해도 되겠습니까?"

“네․ 뭐, 그렇게 하죠.”

“그럼 일행분들과 함께 마을로 모시겠습니다."

우리는 엘프의 안내를 받으며 멀지 않은 엘프 마을로 향하기 시작했다.

이제 곧 엘프 마을을 구경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사람들의 표정은 설렘으로 가득해졌다.

서율희도 이제는 긴장이 완전히 풀렸는지, 자신도 모르게 기대감으로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들뜬 일행들은 천천히 숲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우와……”

엘프 마을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누구의 입에서 흘러나왔는지 모를 감탄사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커다란 나무들과 엘프 특유의 아담한 집이 조화롭게 어울려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했고.

평소와는 다르게 마을 곳곳에는 형형색색 빛을 내뿜는 등이 매달려 있었다.

'세계수를 지키는 마을'보다는 작은 규모지만, 새로운 엘프 마을이

보여주는 분위기 만큼은 뭐랄까.

좀 더 생동감 있고 활기찬 느낌을 더한 것 같았다.

"전세진 장로님을 뵙습니다."

“전세진 장로님을……”

마을의 엘프들은 내가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공손하게 예의를 표했다.

나는 질색하는 표정을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 제발 그런 인사는 좀 그만 두라니까."

내가 이 마을에 장로로 임명된 이후로, 엘프들과 마주칠 때마다 연출되는 모습이었다.

나와 자주 마주치는 시르엘, 피렌느, 엘디르 같은 엘프들은 그나마 편하게 인사를 해줬지만, 다른 엘프들은 만날 때마다 내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공손하게 인사를 해왔다.

특히 오늘은 많은 엘프가 한꺼번에 인사해서 그런지 부담스러운 느낌은 더했다.

한편, 엘프들의 공손한 반응을 직접 목격한 길드 일행들은 놀랍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와 함께 지내는 아이들이나 임진혁에게는 이제 익숙한 일상이지만,

처음 이런 상황을 목격한 길드원들에게는 꽤 충격적인 모습이었나보다.

“허허. 마을의 장로라는 중요한 위치에 있으니, 그만한 예는 당연한 일이지 않겠나?"

"어어? 오르트 장로님? 거기다 넬모란 장로님과 루나르엘 님까지?"

나는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세명의 엘프에 깜짝 놀랐다.

분명 엘프 마을에 있어야 할 엘프들이 이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오늘 균열 입구를 열어드린 적도

없는데‥……”

“내가 두 분을 직접 모시고 왔다네.”

“아아.”

넬모란 장로가 앞으로 나서자 어떻게 된 일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그의 커다란 새들을 타고 이 곳에 방문한 것 같았다.

“저한테 말씀하셨으면 편하게 오셨을 텐데, 갑자기 왜……”

이상한 표정을 짓는 내 모습에 루나르엘이 입을 가리고 웃으며 말했다.

“후훗. 당연히 세진 님을 놀라게

해드리려고 그런 거죠.”

"......?"

내가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계속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뒤에 있던 시르엘과 피렌느가 튀어나와 나를 이끌었다.

“일단 자리에 앉으세요. 세진 님."

“맞아요. 아무 생각 마시고 이쪽으로 오세요."

"어엇!"

나뿐만 아니라 함께 온 일행들도 주변에 몰려든 엘프들에 의해 미리

준비된 자리로 이끌려 갔다.

그곳에는 먹음직스러운 엘프 음식들이 잔뜩 준비돼 있었고, 내 자리 앞에는 커다란 케이크가 놓여 있었다.

“이건 도대체…….”

그냥 평범한 저녁 초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주변을 둘러보자, 시르엘이 활짝 웃으며 설명을 해줬다.

"오늘은 그동안 고생하신 세진 님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어서 마련한 자리에요.”

"케이크 보이시죠? 오늘 세진 님에게 드리려고 오늘 하루 내내 시르엘 님과 계속 만들었어요."

"아, 그래서!"

나는 아까 어색하게 부엌에서 걸어 나오던 시르엘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주머니는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케이크는 전문점에서 만든 것처럼 완전히 깔끔하게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엘프 과일로 멋지게 장식된 정성이 느껴지는 케이크였다.

날 위해서 이렇게 자리를 마련했다는

사실에 약간 찡한 기분이 들었다.

"음식이 식기 전에 얼른 먹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오르트 장로의 말과 함께 초대받은 사람들은 부푼 기대를 안고 식사를 시작했다.

"맛있다. 이건 뭐로 만든 거예요?"

“케이크 정말 맛있어요."

"퓨이! 퓨이!"

처음 엘프 음식을 맛본 사람들은 저마다 감탄사를 내뱉었다.

시르엘과 피렌느가 준비한 케이크도 굉장히 맛있었다.

엘프 마을에서만 구할 수 있는 맛있는 과일들과 달콤하고 부드러운 케이크가 잘 어우러졌다.

아쉽게도 준비된 케이크가 그렇게 크지 않아서 모든 사람이 맛볼 수는 없었고, 나와 아이들 그리고 케이크를 좋아하는 몇 사람만이 맛을 볼 수 있었다.

맛있는 음식들에 취해 정신없이 식 사가 진행되는 사이.

엘프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어디선가 술을 꺼내왔다.

술이 저장된 통을 보아하니 모렛의

창고에서 가져온 술처럼 보였다.

내가 임진혁 쪽을 바라보니, 그는 슬쩍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무래도 임진혁과 모렛도 오늘 이런 자리가 있을 거란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나 보다.

"오옷! 이건 엘프주 맞지?"

귀신같이 술 냄새를 맡은 아저씨는 코를 벌렁거리며 기쁨의 소리를 질렀고, 평소에 술에 관심이 많은 윤동현도 살짝 눈을 반짝였다.

엘프주가 보관된 통을 열자마자 주변에는 그윽한 향기가 퍼져나갔다.

엘프들은 초대받은 사람들을 위해

엘프주를 따라줬다.

처음 엘프주를 맛본 사람들은 그 특유의 깊은 향과 부드러운 맛에 취해 황홀한 미소를 지었다.

목 뒤로 넘어간 뒤에도 입안에 은은하게 남아 있는 향을 즐기며, 나도 기분 좋게 미소를 지었다.

내 잔이 비자 주변에 있던 엘프들은 조금씩 내쪽으로 몰려들었다.

"세진 님. 제가 한 잔 따라드리겠습니다."

“저도 한 잔.…..”

“저도……”

엘프들은 마치 경쟁하듯 나에게 술을 따라주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심지어 오르트 장로와 넬모란 장로, 루나르엘까지 끼어 있어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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