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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균열에 산다-230화 (230/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230화

74. 새로운 엘프마을(4)

테오른 장로, 루나르엘과 집 밖으로 나서니

마당에는 호숫가에 머무는 모든 엘프가 모여 있었다.

우리가 현관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내자, 마당에 모여 있던 모든 엘프는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장로님을 뵙습니다."

“장로님을 뵙습니다.”

그중에는 어제 만났던 오르트와 니르웬.

오늘 새벽에 잠시 인사를 나눴던 데로윈도 자리하고 있었다.

테오른 장로가 가볍게 손을 내젓자, 엘프들은 예를 표하는 것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테오른 장로를 바라보는 엘프들의 눈동자에는 갖가지 감정들이 뒤섞여 있었다.

기대감, 불안감, 의구심, 반가움, 두려움.

반면 테오른 장로는 호수처럼 잔잔한 눈동자로 엘프들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하나하나 응시했다.

그러더니 그는 돌연 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렇게 다양한 표정을 지을 수 있었는데, 마을에 있을 때는 전혀 몰랐어, 루나르엘 님, 안 그렇습니까?"

테오른 장로의 물음에 루나르엘도 입을 살짝 가리며 웃음 지었다.

“그렇네요. 마을에서는 전혀 볼 수 없던 모습들인데."

“이럴 줄 알았으면 빨리 밖으로 나갈 걸 그랬습니다.”

"..….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

그는 아주 잠시 허탈한 표정을 짓더니, 금세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제 이곳에서 분쟁이 있었다고 들었다. 그 문제에 대해 누가 대표로 나와서 나와 대화를 나눠보겠느냐?”

-웅성웅성.

-웅성웅성.

그의 물음에 엘프들 사이에서는 잠시 웅성거림이 일어났고.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르트와 니르웬이 공손하게 앞으로 나섰다.

“장로님을 뵙습니다. 오르트라고 합니다."

“장로님을 뵙습니다. 니르웬입니다.”

앞으로 나선 두 명의 엘프를 살핀 오르트는 슬쩍 나와 엘디르 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우리는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였고, 그는 다시 두 엘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어제의 이야기는 여기 있는 세진과 시르엘에게 전해 들었다. 일을 도와준 대가를 받은 일로 분쟁이 생겼다지?"

테오른 장로의 물음에 오르트가 먼저 나섰다.

“네. 맞습니다. 원래 마을의 규칙대로라면 당연히 장로님들의 결정을 따라야 옳은 일입니다."

“이 일은 그것과는 다른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세진 님이 각자의 몫으로 전해준 것입니다."

“몇 번을 말하지만, 마을의 외부인인 세진 님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당연히 마을의 규칙대로……”

“이곳에 머무는 엘프들은 세진 님의 말을 따라야 한다고 장로회에서 정했습니다. 당연히 이 문제에도 세진 님은 무관하지…….”

"그만!"

"......"

"......"

다시 논쟁이 격렬해지자, 테오른 장로는 단호하게 소리쳐 그들의 싸움을 중지시켰다.

두 명의 엘프는 잠시 입을 다물었지만, 눈빛에서는 한 치에 물러섬도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테오른 장로는 두 명의 엘프뿐만 아니라, 마당에 모여 있는 모든 엘프를 살펴본 뒤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둘의 이야기는 잘 들었다. 장로회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오르트의 의견은 틀리지 않았다. 마을의 오랜 규칙대로라면 당연한 일이지."

순간 두 엘프의 표정이 극명하게 갈렸다.

"하지만 니르웬의 주장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이곳에 있는 엘프들을 관리할 권한은 장로회의 이름으로 세진에게 주었으니."

뜻을 이해하기 힘든 모호한 말에

오르트와 니르웬의 표정이 묘하게 변해갔다.

뒤에서 지켜보던 다른 엘프들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희들은 모르겠지만, 장로회와 마을의 엘프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이미 많은 걱정을 하고 있었다. 단순히 규칙의 문제가 아니라 마을의 미래가 달린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테오른 장로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하지만 우리는 그 답을 찾아내지 못했다. 마을을 대표해 이끌어야 할 장로로서 부끄러운 일이지."

“아닙니다. 장로님."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자책하는 말에 듣고 있던 엘프들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부정했다.

오르트와 니르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오늘 여기 있는 세진이 직접 장로회를 찾아와 이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의 말을 들어 보니. 분명 마을의 외부인이지만, 얼마나 너희를 걱정하고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나를 향한 그의 칭찬에 마당의 모든 엘프의 시선이 내 얼굴로 모여들었다.

의외라는 표정부터, 호의, 기대, 기쁨으로 가득한 표정까지.

엘프들의 감정이 그대로 전해오는 것 같아, 나는 부담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이런 내 모습에 루나르엘과 테오른 장로는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장로회는 여기 있는 세진에게 이 문제를 맡기기로 했다. 지금부터 세진이 하는 이야기는 모두 장로회의 뜻과 다름이 없으니, 모두 그에 걸맞은 예를 취하도록 해라.”

말을 끝마친 테오른 장로는 나에게 자리를 비켜주듯 뒤로 물러났다.

살짝 얼떨떨한 표정으로 앞으로 나서는데,

“세진 님을 뵙습니다.”

“세진 님을 뵙습니다.”

엘프들은 평소보다 훨씬 공손한 태도로 나에게 예를 표했다.

과하게 느껴지는 엘프의 반응에 당황스러웠지만,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이야기를 시작했다.

“으음. 테오른 장로님이 너무 과하게 칭찬을 해주셨는데, 정말로 별거 아니에요. 혼자 고민하다가 몇 가지 생각난 것을 말씀드렸던 것뿐이에요. 이게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오늘 장로회에서 했던 이야기를 엘프들 앞에서 천천히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복잡하지 않았다.

엘프들 개개인에게 주어지는 보수는 그대로 유지하되, 일정 부분은 엘프 마을로 전해준다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물론 엘프 마을에 공짜로 보수를 전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전투를 위해 파견된 분들이 많다 보니까. 아직 모자란 부분이 많더라고요. 가장 기본적인 집을 짓는 일부터, 요리라던가, 사소한 일들도요."

이곳에 새로운 엘프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있었지만, 아직 모자란 부분이 많았다.

그 부분을 채우기 위해 엘프 마을의 사람들을 초청하듯 이곳으로 데려올 생각이었다.

“엘프 마을을 완전하게 이곳으로

옮겨오겠다는 건 아니에요. 엘프 마을의 좋은 전통과 문화를 가져오면서, 이곳 나름대로 규칙을 만들어 나갈 거예요. 물론 처음에 그 규칙들은 많은 부분 장로님들의 도움을 받을거고요."

내가 원하는 것은 이곳에 새로운 엘프 마을을 만드는 것.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이곳뿐만 아니라, 세계수를 지키는 엘프 마을도 새롭게 변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 모든 것이 한순간에 이루어질 수는 없어도,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진행된다면 언젠가는 내가 말한 것처럼 변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테오른 장로는 해결책을 찾는다고 말했지만, 내가 말한 것은 해결책이라 볼 수는 없었다.

그저 멀리 방향성만 던져준 것에 불과했다.

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아마 많은 시행착오가 있어야겠지만.

'뭐. 엘프들은 오래 사니까, 아마도 천천히 해도 되겠지.'

나는 스스로 낙관적인 결론을 내리며 자기합리화를 했다.

“이게 제 생각인데……. 어떨까요?”

기대감 반, 불안함 반을 담아.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엘프들에게 마지막 물음을 던졌다.

내심 열화와 같은 환호성을 기대했는데, 안타깝게도 그런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

모두 미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엘프들의 불안한 반응에 나는 테오른 장로와 루나르엘에게 도움의 눈빛을 보냈지만.

그들은 그저 조용히 미소만 지을 뿐. 마치 알아서 하라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에이씨. 나도 몰라!'

나는 순간 욱하는 감정과 함께 충동적으로 소리쳤다.

“뭘 그렇게 멍하니 보고만 있어요?

내 말대로 할거예요, 안 할 거예 요?"

"......"

"......"

갑작스러운 내 외침에 멍한 표정을 짓는 엘프들.

민망함에 살짝 얼굴이 붉어지려고 할 때, 마당에는 다시 한번 엘프들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따르겠습니다. 세진 님."

“따르겠습니다.”

오르트와 니르웬은 물론, 엘디르도

최대한 공경한 태도로 내 말에 대답했다.

엘프들의 대답에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나의 주도 아래에 균열 속 호숫가에는 작지 않은 변화가 찾아왔다.

먼저 모든 엘프가 정당하게 일한 보수를 받을 수 있었고, 얼마든지 개인적으로 그 보수를 사용할 수 있었다.

대신 그 사용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장로회의 규칙이 생겨났다.

너무 위험한 물건이나, 숲에 피해를 줄 수 있는 물건들은 당연히 금지되었고.

아직 엘프들의 문화에서 허용되기 힘든 제품들도 제한되었다.

대부분 엘프가 장로회의 결정에 수긍했지만.

엘프 중에서 가장 활발히 현대문물을 받아들였던 피렌느는 난데없는 규제에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엘프 마을로 향하는 문을 열어, 좀 더 활발한 교류를 이어나갔다.

엘프 마을 쪽에서도 많은 물건과 엘프들이 넘어오고, 우리 쪽에서도 많은 것들이 넘어갔다.

그렇게 교류를 조금씩 이어나가는 사이, 호숫가에는 어느덧 새로운 엘프 마을의 모습이 형태를 잡아나갔다.

세계수를 지키는 엘프 마을에서도 점차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며, 아주 조금씩 폐쇄적이었던 분위기를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교류의 목적으로 매주 한 명의 엘프 장로가 돌아가며 호숫가의 엘프 마을을 방문해서 지내게 되었다.

처음에는 부정적인 태도의 장로들이 꽤 많았으나, 직접 이곳을 경험하고 나서는 대부분 장로가 긍정적 으로 생각을 바꿔나갔다.

중간에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해 피곤한 일들도 많았고.

무슨 일로 이렇게 바쁘냐며 서율희에게 구박도 받았지만.

나름 보람차게 엘프 마을의 일을 해나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새로운 엘프 마을이 안정화가 될 때쯤.

기분이 좋으면서도 난감한 소식이 이곳에 도착했다.

“세진 님! 장로회에서 세진 님을 새로운

마을의 장로로 임명하겠대요."

“네?!”

시르엘의 들뜬 목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이것 보세요. 정식으로 장로회에서 내려온 문서에요."

"으음...….”

나는 그녀가 건넨 종이를 받아들며 침음성을 흘렸다.

종이에는 나를 새로운 마을의 장로로 임명하겠다는 내용과 수많은 장로의 서명이 적혀 있었다.

종이를 읽어내려간 나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허어. 진짜로 엘프 마을의 촌장이

되겠네. 애초에 장로라는 말이 나한테는 안 어울리지 않나?'

대부분 엘프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상황에 받게 된 장로라는 직책.

그 어감이 그보다 더 어색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내가 난감해하는 사이. 아주 드물게 신난 표정을 한 시르엘이 이 소식을 이곳저곳 전하기 시작했고, 주변에는 이 소식을 듣고 몰려든 사람들로 가득해졌다.

"와아아! 세진 님이 장로님이라니!”

“축하드립니다. 세진 님이라면 잘 해내실 수 있을 겁니다."

마냥 신난 표정을 짓는 피렌느와

정중하게 축하 인사를 건네는 엘디르.

"음음. 세진이라면 당연히 그래야지."

“그럼 아빠가 이제 높은 사람이 된 거예요?"

"퓨우우우."

“후모! 후모!"

거기다 눈을 반짝이며 나를 올려다 보는 아이들까지.

이 난감한 상황에 어찌할 줄 모르고 있는데, 내가 들고 있던 종이를 살펴본 피렌느가 외쳤다.

“어? 세진 님이 새로운 마을의 이름도 정하실 수 있다는데요."

그녀의 말에 다시 한번 주변이 떠들썩해졌다.

“새로운 마을 건설에 큰 공헌을 한

세진 님의 이름을 따서, 세진 마을이 어떨까요?"

"으으으, 제발 그것만은......"

"티아 마을! 티아 마을로 하자!"

"퓨이! 퓨이!"

“후모! 후모!”

“아빠. 저는.…..”

한동안 내 주변에는 각자가 생각한

마을 이름들이 끊이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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