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균열에 산다 226화
73. B등급 균열(3)
아르킨 길드로 인해 세상은 다시 한번 떠들썩해졌다.
모두가 실패할 거라고 예상했는데, 심지어 허가를 내줬던 균열 관리 센터에서도 미리 미궁 진압반을 대기시켜 놓고 있었는데.
정말 모두의 예상을 깨버리고, 아르킨 길드는 당당하게 B등급 균열을 클리어해 버렸다.
그것도 상처 하나 없는 말끔한 모습으로.
소식을 전해 들은 많은 사람이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진짜 깼다고? 9명으로?
-이게 무슨…...
-B등급 균열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어떻게 B등급을 9명이 클리어하냐고!
하지만 아르킨 길드가 B등급 균열을 클리어했다는 증거는 너무나도 셀 수 없이 많았다.
일단 일찍이 몰려든 취재진으로 인해.
아르킨 길드가 균열에 입장하고 나올 때까지의 모든 진행 과정을 많은 취재진이 직접 지켜봤었다.
애초에 조작은 불가능했던 상황.
그것뿐만 아니라.
아르킨 길드가 균열에서 획득한 괴물들의 부산물, 그리고 직접 채취한 약초와 열매들을 공개했다.
일반적으로 쉽게 구할 수 없는 부산물들을, 그것도 엄청나게 많은 양을 한꺼번에 공개하면서 사람들의 의심은 싹 사라졌다.
절대로 클리어할 수 없을 거라고 비아냥댔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부정적인 의견을 내놨던 자칭 전문가들도 모두 침묵을 유지했다.
-ㅋㅋㅋㅋ 절대 클리어할 수 없을 거라고 그렇게 호언장담하더니.
-진짜 이래서 X문가들 말을 들으면 안 된다니까.
-이제는 아르킨 길드가 무슨 행동을 하던, 앞으로는 아무 말도 못 할듯.
아르킨 길드의 활약 덕분에 난감해진 곳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처음에 허가를 내줬던 균열 관리 센터였다.
적당한 실력을 갖췄는지 제대로 파악도 하지 못하고 무작정 허가를 내줬다며, 사람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고.
뒤늦게 다른 대체 길드를 찾는다거나, 당일 미궁 진압반을 미리 배 치하는 등,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듯한 행동을 보여왔다.
그런데 아르킨 길드가 당당하게 균열을 클리어해 버리자. 오히려 관리 센터의 입장이 더더욱 난감해졌다.
균열에 관련된 일에 중심을 잡고 정해진 규칙을 따라 진중한 행동을 보였어야 했는데, 정확한 정보도 파악하지 않고 여론에 휩쓸려 경거망동했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아무래도 안전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균열이다 보니, 많은 사람이 관리 센터 직원들의 대처능력과 내부 사정에 대해 의심을 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르킨 길드의 행보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놨던 사람들과 균열 관리 센터가 엄청난 비난을 받는 중.
반대로 찬양을 받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첫 번째는 당연히 아르킨 길드였다.
아직 신생 길드 딱지를 뗀 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B등급 균열을 단독으로, 그것도 고작 9명이라는 인원을 동원해 완벽하게 클리어해 냈다.
첫 데뷔전으로 드레이크를 공략했을 때의 충격을 아직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데.
아르킨 길드가 또 이런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나가자, 사람들은 열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르킨 길드. 당신들은 도대체……
-앞으로 아르킨 길드 말은 무조건 믿는다.
-그저 빛!
-아! 진짜. 아르킨 길드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 거야? 나도 들어가고 싶다!!!
아르킨 길드는 약간은 남아 있던 신생 길드 이미지를 완전히 지워버림과 동시에, 화제성과 이미지에서 다른 거대 길드들을 압도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다른 길드들 입장에서는 이 상황이 정말 달갑지 않았지만, 어떻게 손쓸 도리가 없었다.
사람들에게 아르킨 길드가 엄청난 주목을 받는 사이, 덩달아 좋은 이미지를 획득한 곳이 있었으니.
바로 미래 그룹의 아티팩트였다.
취재진이 앞다퉈 올리는 기사 사진에는, 아르킨 길드원 누구 하나 빠짐없이 미래 그룹의 아티팩트를 착용한 모습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이거 미래 그룹 아티팩트가 엄청 대단한 거 아니야? 그게 아니고서야 9명이 클리어가 말이 돼?
-아티팩트빨로 클리어했다는 의견은 못 믿겠지만, 솔직히 저 아티팩트가 갖고 싶기는 하다.
-원래 아르킨 길드가 균열에 들어가기 전에 미래 그룹 주식 떡락 중이었는데, 지금 다시 개떡상중.
이런 반응은 단순히 국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해외에서도 아르킨 길드의 활약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고, 동시에 미래 그룹의 아티팩트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해외 쪽에서는 미래 그룹 아티팩트를 구매하기 위해 벌써 물밑작업에 들어간 곳이 있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미래 그룹 아티팩트의 가치는 한도 끝도 없이 치솟기 시작했다.
한 길드의 과감하고 파격적인 행보가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상황에 정작 주인공인 아르킨 길드는 아주 조용하게 일상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구나. 첫 B등급 클리어 축하한다.
"예. 감사합니다.”
핸드폰을 통해 들려오는 강유환 회장의 담백한 축하 인사에 나는 담담하게 반응했다.
-솔직히 조금 놀랐어. 처음 B등급 균열을 들어가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거든.
“당연한 반응이긴 하죠."
-아무튼, 무사히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야.
그의 목소리에서는 조금이나마 대견하다는 감정과 훈훈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강유환 회장은 곧바로 주제를 바꿔 질문을 던졌다.
-그럼 B등급 균열을 클리어했으니, 계획대로 태백산 미궁에 도전할 셈이냐?
“일단은 그렇게 계획하고 있어요.
처음부터 B등급에 도전한 이유도 미궁에 들어갈 자격을 얻기 위해서였으니까요.”
-허허허. 조만간 다시 한번 세상이 시끄러워지겠군.
내 다짐과도 비슷한 대답에 그는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미궁을 준비하는 데 더 필요한 것은 없느냐? 있다면 미리미리 말해 주는 게 좋을 것 같구나.
"지원은 계약을 통해 미리 정해져 있는 것 아니었나요?"
-솔직히 말하면, 이번 B등급 균열에서 보여준 너희들의 활약 덕분에 이미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더 많은 이득을 취했어.
미래 그룹은 이미 물이 들어오는 상황에 발맞춰 열심히 노를 젓고 있었다. 나는 허탈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빡빡하게 계약서 쓸 걸 그랬네요.”
-그러면 열심히 미궁 준비하면서 필요한 것이나 보내거라. 최대한 지원해 줄 테니.
"나중에 지원 못 해준다고 거절이나 하지 마세요."
-큭큭큭. 그럼 나중에 또 연락하마.
강유환 회장은 마지막으로 짧은 인 사를 남기고 통화를 종료했다.
내가 휴대폰을 얼굴에서 내리자 옆에 있던 서율희가 말을 걸었다.
“미래 그룹 회장님과 통화하신 맞죠?"
"네. 맞아요."
“누가 들으면 옆집 할아버지랑 통화하는 줄 알겠네요."
신기한 듯 쳐다보는 그녀의 눈빛에 나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것보다 다른 일은 잘되고 있어요?”
“말도 마세요. 지금 완전 난장판이니까. 업무가 완전히 마비될 지경이에요."
그녀는 가지런한 눈썹을 찡그리며 불만을 토로했다.
지금 아르킨 길드는 B등급 균열을 클리어한 이후로 엄청난 전화와 연락 세례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각종 인터뷰 요청은 기본이고, 가입을 문의하는 사람부터, 다른 길드의 협력 요청까지.
하루에도 수십, 수백 곳이 넘는 곳에서 우리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었다.
“처음 드레이크를 공략했을 때, 그 이상은 없을 거로 생각했는데. 그건 제 착각이었네요.”
“하하하.”
드레이크를 공략했을 때가 더 좋았다는 서율희를 보며, 나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그녀는 나를 살짝 흘겨보며 말했다.
"지금 웃음이 나와요? 저는 장난이
아니라고요."
"......”
"하아, 그것보다 정말로 인터뷰는 다 거절하실 생각이에요? 귀찮더라도 그냥 몇 군데 해주는 게 더 편할 텐데."
“일단은 계속 거절해 줘요. 아직은 엘프들에 대해서 밝힌 생각도 없는데, 그러면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해야 하고 귀찮거든요."
“그럼 어쩔 수 없죠. 그럼 추가 길드원 모집도……?”
“네. 당분간은 없을 거예요. 원래의
목표를 달성하기 전까지는."
단호한 내 대답에 서율희는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의 목표, 태백산 미궁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다른 바쁜 일들이 많았다.
신입 길드원을 뽑아 훈련하고, 전력에 합류시키기에는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았다.
이미 지금의 전력을 다듬어 태백산 미궁에 도전하기로 마음을 굳게 먹은 상태였다.
서율희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럼 신규 가입이나 신입 길드원 모집 문의에 관해서도 계속 원래대로 대응할게요.”
"죄송해요. 일단은 그렇게 해주세요.”
나와 서율희는 앞으로의 계획과 추가로 필요한 것들에 대해 의논하면서 한참 동안 대화를 더 이어나갔다.
****
“안녕하세요. 세진 님."
“세진 님, 오셨군요.”
“식사는 하셨어요?"
"세진 님..….”
길드에서 균열로 돌아온 나는 수많은 엘프의 인사 세례에 쉴 새 없이 고개를 끄덕거려야 했다.
엘프들은 아주 자연스러워진 한국어 실력을 뽐내고 싶은 듯, 멀리서라도 내가 보이면 무조건 달려와 말을 걸었다.
“정말 한국어 실력이 많이 느셨네요. 조금 있으면 한국인이라고 해도 믿겠어요."
약간 과장이 섞인 내 칭찬에 엘프들은 하나같이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기뻐했다.
흡사 연예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가던 도중에 엘디르를 만날 수 있었다.
"돌아오셨군요. 일은 잘 해결되셨습니까?"
“네. 조금 귀찮은 일이긴 했어도. 다 해결하고 왔어요."
"다행입니다."
“혹시 저의 집으로 가는 길이었어요?"
“맞습니다. 시르엘 님을 찾으러 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럼 같이 가죠."
나는 엘디르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집으로 걸어갔다.
놀랍게도 대화는 모두 한국어로 이루어졌다.
사실 피렌느를 제외하고 한국어 실력이 가장 많이 늘어난 엘프는 엘디르였다.
그는 제대로 된 전투를 하기 위해서는 신속한 명령 체계가 중요하다며, 한국어 공부에 강한 열의를 보여왔다.
최근에는 서율희가 내리는 짧은 지시는 물론이고, 나와 일상 대화가 가능해질 정도로 한국어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그의 이런 노력 덕분인지, 전투를
참여하는 엘프들은 대부분 한국어 실력이 빠르게 성장하는 중이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한국어를 사용하는 엘프들의 마을을 떠올리며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엘디르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집에 도착했고, 나와 엘디르는 나란히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 섰다.
-······!
-뽀로로롱!
거의 현관문이 열림과 동시에 모습을 드러낸 아기 요정.
위니는 밝은 미소와 함께 내 어깨로 날아와 애교를 부렸다.
"위니. 잘 놀고 있었어?"
-끄덕끄덕!
초롱초롱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위니의 모습에 나는 손으로 살짝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세진! 왔어?"
"아빠! 오셨어요?"
다음으로는 티아와 이엘이 차례로 내 품에 안겨들었다.
과격한 아이들의 포옹 때문에 어깨에 앉아 있던 위니가 움찔 몸을 떨어야 했다.
티아와 이엘은 내 품에 고개를 묻고 있다가, 얼굴을 빼꼼 내밀어 엘디르에게도 인사했다.
"엘디르 안녕!”
"엘디르님. 안녕하세요."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인사에 엘디르는 드물게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리며 고개를 숙였다.
아이들의 손에 이끌려 집 안으로 들어가는데.
거실에서 뭔가를 고민 중인 피렌느와 시르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두 분 뭐하세요?"
“아…… 세진 님. 오셨어요?"
“네. 그런데 표정이 별로 안 좋으신 것 같은데. 무슨 일 있어요?"
"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