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균열에 산다 224화
73. B등급 균열(1)
원래라면 아르킨 길드는 아직은 C 등급 균열을 더 배정받아야 할 상황이었다.
길드의 인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에 추가적인 모집과 육성 없이는 B등급을 배정받기 어려웠다.
길드장인 나, 부길드장 서율희. 임진혁과 김유미, 윤동현. 그러고 정씨 가족 4명 모두를 포 함해 9명밖에 되질 않는다.
9명이면 C등급 균열을 공략하기에도 절대 많은 인원수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아르킨 길드은 상위 C등급 균열까지 무리 없이 제거에 성공 해 나갔고, 그때마다 언론이나 업계 에서는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인터넷에서는 이런 우리 길드를 보고 '소수 정예로 이루어진 길드'라는 평가가 주를 이루었고, 그로 인해 길드원 공고 모집을 올리지 않아도 꾸준히 지원자가 있을 정도였다.
-길드 첫 균열 도전에서 드레이크를 공략한 길드.
-9명으로 모든 C등급 균열이 커버 가능한 길드.
-미래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과 지지를 받는 길드.
보통 다른 신생 길드들은 비슷한 시기에 겨우 뉴비 딱지를 뗐다면. 아르킨 길드는 첫 균열에서 뉴비 딱지를 떼버리고, 지금은 각성자들 사이에서 확고한 인상을 심어주는 중이었는데.
아르킨 길드와 관련된 충격적인 인터넷 기사가 공개됐다.
-아르킨 길드, B등급 균열에 도전할 예정 [단독]
-다른 길드와 협력 없이 단독으로 균열에 도전하는 것으로 확인, 길드 인원은 아직 9명으로 파악되는 중.
-균열 관리 기관에서도 아르킨 길드가 B등급 균열을 배정받은 사실을 시인. 자세한 정보 공개는 거부한 것으로……
-업계의 전문가들 대부분 성공 여부에 대해 매우 절망적인 견해 내놔. 공략은 어려울 것으로 예상.
아르킨 길드가 B등급 균열에 도전한다는 기사가 뜨자마자, 인터넷에서는 순식간에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이거 진짜냐? 9명이 B등급 균열에 도전?
-진짜 길드장은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건지. 사실상 자살하러 들어가는 거 아니냐?
-ㅋㅋㅋㅋ 나 원래 거기 지원했었는데, 안 들어가길 잘한 듯.
-안 들어가기는 개뿔. 못 들어간 거겠지.
-애초에 균열 관리 센터에서 균열을 배정해 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저러다 공략 못 하고 터지면 누가 책임질 거야.
-이 정도면 아마 보험용으로 돈 받았을걸? 도대체 얼마나 돈을 받았길래 허가를 내준 거야.
기사를 본 대부분의 반응은 놀랍다기보다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대다수를 이루었다.
더 나아가서 아르킨 길드의 B등급 배정을 취소해야 한다는 주장도 속속들이 튀어나왔다.
인터넷의 부정적인 여론에 균열 관리 센터에서는 허겁지겁 입장을 발표했다.
행정적으로 문제가 없고, 만약 피해가 일어난다면 아르킨 길드가 충분히 보상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이런 입장 발표에도 거센 여론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소위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하나, 둘 부정적인 견해를 내놓으면서 상황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여론은 엄청난 의견대립과 논쟁으로 불타올랐지만.
아르킨 길드에서 이런 상황에 대해, 어떠한 인터뷰나 입장 발표를 하지 않아 더욱 논란에 불을 붙였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
아르킨 길드가 배정받은 B등급 균열 발생 날짜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
"와아…… 저 카메라랑 기자들 좀 봐. 얼마나 몰려온 거야."
"유명한 방송국은 하나씩 다 보이네.”
아윤과 선우는 바글바글 몰려든 취재진을 멀찍이 바라보며 넋이 나간 듯 중얼거렸다.
센터 직원들과 출동한 경찰이 취재진이 우리 쪽으로 가까이 다가올 수 없게 통제하고 있지만, 그들은 당장이라도 직원들을 뚫고 우리에게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밀 기세였다.
“어휴. 율희 씨 말대로 2시간 일찍 도착안 했으면, 저 사람들 때문에 여기에 들어오지도 못했겠어요."
"그러게. 조금 있으면 전투를 하러 갈 사람들에게 이게 무슨 짓인지."
나 역시 질린 표정으로 취재진을 바라봤고, 임진혁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의 말대로 균열에 입장하기 직전에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심리적 안정이 필요한데, 저 사람들에게는 전혀 그런 배려심이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임진혁은 불만스러운 표정만 지을 뿐, 딱히 이런 상황에 신경쓰지 않는 듯 보였지만.
정씨 남매나 김유미, 심지어 윤동현까지도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게 드러났다.
"괜찮아. 괜찮아. 지금은 저 사람들 신경 쓰지 말고. 나중에 공략에 성공하고 나와서 무슨 인터뷰를 할지 고민이나 해두라고."
“어머. 이렇게 카메라가 많이 몰려들 줄 알았으면 조금 더 화장을 진하게 하고 올 걸 그랬네.”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역시 연장자답게 가벼운 농담과 격려로 길드원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아……
아주머니는 아윤에게 화장품을 찾는 걸 보니 농담이 아니었나 보다.
아무튼, 두 사람 덕분에 길드원들은 살짝 긴장을 풀 수 있었다.
균열이 열리는 시간보다 몇 시간 먼저 도착해 있었기 때문에 더는 장비를 점검할 것도 없었는데, 마지막으로 끝까지 장비를 점검한 서율희가 일행 쪽으로 다가왔고,
그와 동시에 균열 관리 센터에서 파견된 직원 3명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센터 직원들은 하나같이 표정이 좋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생각보다 격렬했던 여론의 반응에 조금 고생을 한 것으로 보였다.
가장 높은 연배로 보이는 센터 직원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나이나 분위기를 봐서 꽤 높은 직책을 가진 듯했다.
“전세진 길드장님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균열 관리 센터에서 현장 파견 인원을 관리하는 김인종 부장이라고 합니다."
딱딱한 인사를 주고받은 김인종 부장은 다른 쓸데없는 말을 전부 생략하고 바로 본론을 꺼내 들었다.
“전세진 길드장님. 지금이라도 해당 균열을 포기하실 생각 없으십니까? 만약 지금이라도 아르킨 길드에서 균열을 포기해 주신다면 곧바로 다른 길드를 투입해 드리겠습니다.”
그는 다짜고짜 균열 입장을 포기해 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말이 부탁이지 사실 명령조에 더 가까웠다.
약간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나는 최대한 담담한 표정으로 거부 의사를 드러냈다.
“죄송합니다. 저희는 포기할 생각이 없습니다."
“아마 길드장님도 지금 여론은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굳이 이렇게 무리한 도전을 할 이유도 없지 않습니까?"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희는 포기할 생각이 없습니다. 괜히 전투를 앞둔 사람들 힘 빠지게 만들지 마시고, 조용히 돌아가 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
나는 최대한 공손하게 그의 질문을 맞받아쳤다.
김인종 부장은 볼을 씰룩거리더니 몸을 홱 돌리고 자리를 떠나갔다.
남은 두 명의 직원은 서류를 꺼내 균열 입장 전에 해야 하는 절차를 진행했다.
나는 익숙하게 서류를 확인하고 사인한 뒤 센터 직원에게 건넸다.
평소 같았으면 형식적인 인사라도 해주는데, 센터 직원들은 인사도 없이 서류를 챙겨 떠나갔다.
"쩝. 우리 미움을 받았나 보네요.”
“이런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애초에 허가를 내주지 않았으면 될 일이었죠."
내 중얼거림에 서율희는 냉정하게 대답했다.
그녀의 반응에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확실히 센터 직원으로서는 우리의 무리한 도전이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실패했을 때 비난받는 건 배정을 허가해 준 관리 센터 쪽도 똑같을 테니까.
나는 이 난리인 상황을 지켜보며, 새삼 강유환 미래 그룹 회장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원래라면 아르킨 길드가 절대 배정 받을 수 없는 균열이었는데, 그의 보이지 않는 영향력으로 관리 센터에서 덜컥 허가가 떨어졌다. 정말 마법 같은 일.
아마 취재진과 뒤엉켜 고생하고 있는 센터 직원들도 왜 허가가 떨어졌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멍하니 취재진과 직원들을 바라보다가 훌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일어남과 동시에 뒤쪽에서는 균열이 발생하는 특유의 진동음이 들려왔다.
-우우웅. 우우우웅!
역시 B등급 균열이라 그런지, 지금껏 입장해왔던 균열과는 전혀 다른 압박감이 느껴졌다.
다른 길드원들도 나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지, 평소와는 다른 눈빛으로 균열 입구를 응시했다.
“이제 들어가죠. 준비는 다 끝나셨죠?"
“다시 점검하는 것도 지겨울 정도다. 얼른 들어갔다가 나오자. 생각해 뒀던 인터뷰 내용 잊어버리기 전에.”
아저씨는 특유의 너스레를 떨었고, 길드원들은 작게 미소를 지었다.
모든 준비를 끝낸 길드원들은 관리 센터 직원들의 아주 형식적인 배웅을 받으며 균열 입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
균열에 입장한 우리가 가장 먼저 목격한 것은, 울창한 나무들이 모여 있는 숲이었다.
처음 들어와 본 B등급 균열은, 언뜻 봐서 이전에 경험했던 C등급 균열과는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일행은 기계적으로 주변에 위험요소가 없는지 살피다가, 안전을 확보하고 나서야 다시 긴장을 풀 수 있었다.
나는 일행들과 눈빛을 교환하고 난 뒤, 새로운 동료들을 불러오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 우우우웅!
아까 B등급 균열 입구가 열릴 때와 비슷한 진동음이 울려 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정적인 균열 입구가 생성되었다.
그리고.
-사사사사삭!
-사사사사삭!
엘프만의 독특한 가벼운 발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33명의 엘프들이 균열 입구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각자의 무기들과 장비, 아티팩트까지 풀 장작을 완료한 엘프들은 보기만 해도 든든함이 느껴졌다.
“엘디르, 모두 이상 없죠?"
“네. 모든 대원 전투 준비 이상 없습니다."
내 물음에 엘디르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듬직하게 대답했다.
뒤쪽에 다른 엘프들의 눈빛에도 의욕이 넘쳐 흘렀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엘프들은 전에 연습했던 대로 진형을 짜세요.”
"예!"
서율희가 한국어로 지시했지만, 곧잘 알아들은 엘프들은 각자의 위치로 움직였다.
엘프들의 전력은 4개의 구성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검과 방패를 들고 전열을 담당하는 인원.
활을 주 무기로 화력을 담당하는 인원,
정령 마법을 사용해 화력을 담당하는 인원.
마지막으로 후방에서 보조 정령 마법을 사용하면서, 전투를 지원하는 인원까지.
이렇게 4개의 분류에 따라 엘프들은 각자의 위치를 잡았다.
원래의 아르킨 길드에 소속된 사람들은 나를 중심으로 후방 쪽에 자리를 잡았다.
오늘 B등급 균열의 목적은 전력을 다한다기보다는, 엘프들의 전력 확인과, 서율희의 지시 아래에서 엘프들이 얼마나 조직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지 점검하기 위함이었다.
균열 입구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무리한 도전을 한다고 비난했지만.
우리에게는 이 B등급 균열마저 스쳐 지나갈 관문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태백산 미궁.
서율희는 이 균열에 들어오기 전에 단언했다.
- B등급 균열을 수월하게 클리어하지 못한다면, 태백산 미궁은 절대 공략하지 못할 거에요.
단순히 클리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필요한 것은 완벽한 성공.
나는 복잡한 마음을 뒤로하고, 엘 프들과 함께 울창한 숲속으로 진입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