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균열에 산다-217화 (217/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217화

71. 태백산 미궁(1)

과거 태백산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던 위치를 중심으로 생겨난 미궁. 사람들은 이 미궁을 태백산 미궁이라 불렀다.

요즘에야 거의 모든 균열을 빈틈없이 제거해 미궁으로 전환되는 경우가 없지만 과거에는 흔한 D등급, C등급도 제대로 처리 못 해 미궁이 돼버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 태백산 미궁도 그 시절에 생겨난 미궁이다.

몇 번 미궁 제거 시도가 있었던 거로 알고 있는데, 큰 피해만 남기고 모두 실패했었다.

'설마 여기가 태백산 미궁일 줄이야.'

나도 균열 제거 일을 하는 각성자로서 태백산 미궁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위니의 안내만으로 도착한 곳이 미궁이었다는 게 나를 난감하게 만들었다.

내가 당황하고 있는 사이, 내 상의

주머니에서 위니가 얼굴을 쏙 내밀었다.

-......?

위니는 통제구역 쪽으로 손짓을 하며 왜 안 들어가는지 궁금한 표정을 했다.

소위는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위니를 바라봤다.

"오오. 정령입니까? 굉장히 귀엽네요.”

“아…… 네. 맞습니다."

귀여운 위니가 마음에 들었는지 딱딱했던 소위의 표정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그가 손을 흔들자 위니도 따라 손을 흔들었다.

소위가 잠시 위니와 시간을 보내는 동안, 아까 내 명함을 가져갔던 상병이 휴대폰을 가지고 나타났다.

"소대장님."

“죄송합니다. 잠시만 통화 좀 하겠습니다."

소위는 나에게 양해를 구하고 상병이 건넨 휴대폰을 받아들었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휴대폰 너머의 상대와 대화를 이어나가더니.

"길드장님."

"......?"

“받아보시면 됩니다."

통화를 하던 휴대폰을 나에게 건넸다.

어리둥절했지만 일단 그가 건네는

휴대폰을 받아 귓가에 가져갔다.

휴대폰에서는 익숙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세진 씨? 세진 씨 맞죠?

"아. 율희 씨?"

-네. 저에요. 도대체 태백산 미궁에는 왜 가신 거예요? 갑자기 연락이 와서 깜짝 놀랐다고요.

"죄송합니다."

평소보다 약간 톤이 높아진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그녀가 정말로 당황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도 방금 통화한 소대장분이랑 이야기 잘해뒀으니까. 별일 없을 거예요.

“고마워요. 율희 씨.”

- 지금은 길게 통화 못 하니까. 나중에 길드에서 제대로 설명해 주셔야 해요. 다시 소대장님 바꿔주세요.

그녀가 말한 대로 다시 휴대폰을 소위에게 건넸다.

휴대폰을 건네받은 잠시 대화를 나누고 그는 서율희와 통화를 종료했다.

“죄송합니다. 정확한 신분을 파악하기 위해서 길드 쪽으로 연락을 좀 드려봤습니다.”

“그렇군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굉장히 의심스러웠습니다. 길드장이신데 태백산 미궁인 줄도 모르고 오셨다고 하시고, 거기다 차량으로 무작정 통제구역 쪽으로 접근하셔서……”

“.…..”

나는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소위도 내 심정을 아는지 더 이상의 설명은 하지 않았다.

“아무튼, 신원은 확실히 확인됐으니 보내드리겠습니다. 원칙적으로는 차량에 탑승하신 분들의 신원도 확인해야 하는데. 그냥 보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소대장님."

“혹시 이곳 통제구역에 볼일이 있으시면, 미리 허가를 구하고 오셔야 합니다. 다음에 또 허가 없이 통제 구역에 접근하시면 굉장히 곤란해지실 겁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이제 곧 날이 어두워집니다. 그 전에 얼른 돌아가십시오."

나는 소위와 인사를 나누고 차량 운전석에 올라탔다.

차를 반대 방향으로 돌려 왔던 길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

위니는 멀어지는 통제구역 쪽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군인과 거리가 멀어지자, 그동안 말을 아끼고 있던 시르엘이 입을 열었다.

“세진 님. 방금 저 사람들이 가로막은 곳에 생명의 문양이 있는 거죠?"

“네. 그런 것 같아요.”

"혹시 저희 때문에 못 들어가신 건가요?"

"아뇨. 그건 아니에요. 단지 준비가 좀 필요한 곳인데. 이런 곳에 생명의 문양이 있을 줄 모르고 찾아온 거라……”

굳은 얼굴을 한 엘디르도 한마디

끼어들었다.

"정확히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아마 엘디르의 추측이 맞을 거예요. 그렇게 유쾌하거나 기분 좋은 장소는 절대 아니니까."

“이대로 돌아가시는 겁니까?"

“네, 일단은요. 하지만 다시 이곳에 돌아올 겁니다.”

나는 불길한 기운으로 가득했던 태백산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집을 향해 차를 운전했다.

****

태백산 통제구역에 다녀온 다음 날.

나는 아침 일찍 길드로 출근했다.

정확히는 서율희에 의해 소환되었다는 말이 좀 더 정확했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 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도대체 거기는 왜 가신 거예요? 통제구역에 허가도 없이 함부로 접근하면 길드 쪽에도 피해가 있을 수 있단 말이에요."

나는 교무실에 끌려온 학생처럼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확실히 어제 있었던 일은 내 실수였기 때문에.

다행히 서율희는 금방 찌푸린 얼굴을 펴고 좀 더 부드러워진 말투로 말을 이어나갔다.

“일단 무슨 말이 든 이야기해 보세요. 세진 씨가 쓸데없이 그런 일을 벌이지는 않았을 테고, 분명 뭔가 꼭 필요한 이유가 있었겠죠?"

"조금 긴 이야기가 될 텐데. 괜찮으세요?"

"오전에는 일이 별로 없으니. 괜찮아요. 대신 사실대로 전부 이야기해 주세요."

나는 길드에 출근할 때부터 결심했던 대로 서율희에게 모든 이야기를 설명해 줬다.

그녀의 도움이 가장 절실한 상황이었기에, 모든 사실을 밝히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이엘과 생명의 샘. 그리고 엘프와 세계수 이야기까지.

최대한 짧고 간략하게 설명하려 노력했지만, 모든 이야기를 설명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생명의 문양을 찾기 위해 태백산으로 향한 이야기를 끝으로, 거의 1시간에 걸친 긴 설명을 끝냈다.

쉬지 않고 내 이야기를 들은 서율희는 잠시 뭔가를 골똘히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결국에는 '생명의 문양'을 찾기 위해 태백산 통제구역으로 가신 거네요?"

“그렇죠.”

“그리고 그 '생명의 문양'을 빨리 찾지 못하면 세계수의 생명은 물론이고 이엘도……”

“......”

그녀는 차마 꺼낼 수 없는 말을 삼키며 입을 꾹 다물었다.

나도 고개를 살짝 흔들며 끔찍한 상상을 털어냈다.

나와 서율희 사이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왠지 모를 긴장감으로 입안이 바짝 말라 들었다.

뭔가를 계속 고민하던 그녀는 불쑥 입을 열어 비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태백산 미궁...... 도전하려고 하시는 거죠?"

“......”

나는 질문에 고민하지 않고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마음속으로 대답을 결정했던 질문이었기에 고민은 필요치 않았다.

위니에게 몇 번이고 그곳에 정말로 '생명의 문양'이 있는지 확인했고, 유일한 실마리일지도 모르는 위니가 확신했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게 유일한 희망이었다.

“율희 씨. 저에게는 선택권이 없습니다.”

“하아아……”

서율희는 처음에 내쉬었던 한숨보다 더 깊고,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세진 씨. 태백산 미궁에 대해 아직 정확한 정보를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B등급 최상, 혹은 A등급이라고 규정하고 있어요."

“저도 어느 정도 찾아봐서 알고 있습니다."

“지금 아르킨 길드가 점점 규모를 늘리고 있지만, 이제 B등급에 발을 걸친 정도예요.”

“......”

“사실상 우리의 힘만으로 이겨내기에는 불가능한 곳이에요."

아르킨 길드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지만, 태백산 미궁은 이미 수많은 길드가 패배의 쓴맛을 맛봤던 곳. 이제 겨우 신입이라는 인식을 벗어 난 아르킨 길드에게는 너무 가혹한 난관임이 틀림없었다.

“만약 세진 씨가 이 길드의 전력만 가지고서 미궁에 도전하려 하신다면, 저는 무조건 반대에요."

서율희는 이견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아주 냉정한 표정으로 딱 잘라 말했다.

나도 그녀의 이런 반응은 예상해서

놀라거나,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생각과 주장이 정론이라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럼 율희 씨가 생각하기에 필요한 전력은 어느 정도로 예상하시는 거죠?"

“그건 정보가 부족해서……”

“이미 다 생각하신 거 알고 있어요. 율희 씨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서율희는 움찔하는 표정을 지었다.

내 흔들림 없는 눈빛을 읽은 그녀는 체념한 표정으로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일단 기본적으로 B등급 균열을 무리없이 클리어할 전력이어야 해요.

단일 된 지휘체계 아래 어느 정도 합이 맞춰져야겠죠. 이건 정말 최소한의 필요 조건이에요."

"그게 끝이에요?"

“당연히 아니죠. 참여한 인원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의 장비를 둘러야겠죠. 이전에 미래 그룹을 통해 지원 받았던 아티팩트도 물론 필요하고요. 거기다 세진 씨의 골렘도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요.”

"흐음......”

전부 쉽지 않은 조건들이다.

B등급 균열을 무난히 클리어할 수 있는 전력이라면, 이 나라에서 거의 최상급 전력이라 봐야 했다.

거기다 단일 지휘체계라면 사실상 거대 길드를 제외하면 나올 수 없는 구조였다.

또한 그 정도 전력에 장비, 아티팩트를 최상급으로 맞춘다면, 우리 길드의 수준으로는 절대 불가능했다.

아마 거대 길드가 나선다고 해도

부담스러운 상황.

“거기에 가장 큰 문제는 태백산 미궁의 불확실성이에요. 너무 정보가 없어서 그만한 전력을 꾸리기도 힘들지만, 지원하는 사람도 많이 없을 거예요. 솔직히 제가 전에 몸담았던 오성 길드도 쉽지 않은 일이에요."

“..…..”

“세진 씨, 안타까운 일이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해요. 저도 마음이 아프지만, 그렇다고 불확실한 일에 많은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잡을 수 없어요."

나는 다시 그녀에게 말을 꺼냈다.

“만약에 진혁이형 정도의 실력을 가진 전투 전력이 있다면요?”

“....…네?"

“거기에 서미정 아주머니 정도의 정령을 부릴 수 있는 전력이 포함된다면……”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40명. 그 정도의 실력을 갖춘 40 명이 포함된다면, 전력의 최소 조건은 만족하는 건가요?"

“......”

“대답해 주세요. 가능성이 있나요?”

내 질문에 잠시 고민을 하던 서율희는 잠시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물론 얼마나 합이 잘 맞춰져 있는지, 또 얼마나 전투 경험이 있는지가 중요하겠지만……”

"......?"

“전력으로만 따진다면 충분히 가능성은 있어요."

나는 그녀의 어두웠던 표정을 조금이나마 지워냈다.

그나마 가능성이 조금 엿보인 기분이었다.

“세진 씨. 그만한 실력을 갖춘 인원을 데려오실 수 있나요?"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최대한

노력해야죠."

나는 어제 엘디르와 나눴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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