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균열에 산다 215화
70. 씨앗의 변화(3)
나는 일단 위니에게 조금 더 자세한 질문을 던졌다.
“그럼 생명의 문양이 어디 있는지
알아낸 거야?"
-......
위니는 내 질문에 잠시 생각을 하더니, 해맑은 표정과 함께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손가락 끝이 향한 곳 에는 평범한 거리의 풍경만 보일 뿐이었다.
"그러니까. 이쪽에 생명의 문양이 있다는 거지?"
-끄덕끄덕.
내가 정확히 알아들었는지, 위니는 활짝 미소를 지으며 다시 내 옷을 잡아당겼다. 지금이라도 당장 손가 락이 가리킨 방향으로 날아갈 것만 같아 보였다.
"잠깐 잠깐만 위니야."
-......?
내가 말리는 모습을 보이자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기 요정.
그 모습이 절로 미소가 지어질 정도로 굉장히 귀여웠다.
“지금 당장 나갈 수는 없어. 일단 집에 돌아가서 준비를 좀 하고 다시 나오자. 알았지?"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달래는 말투로 설명했고, 위니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알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더 떼를 쓰지 않고 내 말을 알아 듣는 모습이 대견해서 손으로 살짝 위니를 쓰다듬어줬다.
“그래. 우리 위니 착하네."
-방긋.
아기 요정은 내 칭찬이 기분 좋은지 방긋 미소를 지었다.
****
“저도 갈래요. 저도 데려가주세요."
“나도! 나도 갈래."
"퓨이! 퓨이!"
“아빠, 저도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끄으응."
서로 자신을 데려가 달라며 달라붙는 아이들과 피렌느. 나는 그 사이에 끼어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방금 위니와 나눴던 이야기를 전해주고.
생명의 문양을 찾기 위해 나갈 거라 말했더니, 순식간에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
“흠흠.”
"......"
피렌느와는 다르게 아이들처럼 떼를
쓰지는 않았지만, 시르엘과 엘디르 역시 따라 나서고 싶은 기색이었다.
-뀨우. 뀨우우.
심지어 세이마저 눈을 반짝이며 내 다리에 머리를 비비적거렸다.
그나마 임진혁과 모렛은 별로 외출에 관심이 없는지, 한발 물러서 여유롭게 이 상황을 지켜봤다.
"잠깐 잠깐만! 모두 진정해 봐.”
나는 일단 목소리를 높여 아이들과 피렌느를 진정시켰다. 다행히 모두들 내 말에 따라 순간 조용해졌다.
“일단 이건 놀러 가는 게 아니야. 중요한 일 때문에 나가는 거야. 그러니까 떼를 쓰면 안 돼. 알았지?"
아이들은 오랜만의 신나는 외출을 기대했지만, 선을 긋는 내 말에 모두 움찔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실망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안타까워도 어쩔 수 없었다.
“다음에 꼭 같이 놀러 갈 수 있도록 할 테니까. 오늘은 참아. 알았지?"
나는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시무룩한 아이들을 달래줬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일단 시르엘은 저랑 같이 가주세요."
"그래도 되나요?"
"네. 혹시 시르엘의 능력이 필요할 지도 모르니까요."
"아! 감사합니다. 세진 님.”
시르엘이 외출 인원에 포함되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엘디르가 불쑥 나섰다.
"세진 님, 가시는 길에 혹시 위험한 일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경비대장으로서 저도 함께하고 싶습니다."
"흐으음.”
엘디르는 자신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솔직히 저쪽 세상에서 그의 힘이 필요할 정도로 위험한 일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런 이유에서 일행을 선택하자면.
왠지 문제를 일으킬 것 같은 엘디르보다는, 임진혁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내 속마음이었다.
임진혁은 이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의외의 말을 꺼냈다.
“같이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그냥 데려가지그래?"
"괜찮을까요?"
"나가기 전에 주의사항만 잘 전달하면 괜찮겠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실력으로는 나와 큰 차이는 없을 거야."
"그 정도예요?"
엘디르의 실력을 엄청 높게 평가하는 임진혁의 말에 내가 놀라며 되묻자, 그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에 둘이서 자주 대련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꽤 신뢰가 가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집에서 애들 봐줄 사람은 한 명 정도 남아야 하잖아. 시르엘 님은 나가실 것 같고. 피렌느 님은...… 뭐...…”
"그렇긴 하죠."
피렌느가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아이들과 함께 놔두기에는 불안한 느낌이 들긴 했다.
“아니! 제가 뭐 어때서요!"
"아. 들으셨어요?"
“저도 이제 그 정도는 알아들어요."
한국어 실력이 일취월장한 피렌느가 나와 임진혁의 대화를 듣고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저도 아이들 잘 돌볼 수 있다고요.”
"흐음. 얼마 전에 아이들이랑 같이
저 몰래 게임 결제하다가 걸리셨죠?”
“……"
피렌느는 최근에 노트북으로 게임을 하며 아이들과 놀다가 호기심에 유료 결제를 하다가, 나한테 걸려서 한번 혼난 적이 있었다.
그것 외에도 피렌느는 너무 호기심이 강해서 이것저것 자잘한 사고를 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그녀에게 아이들을 맡기는 일은 좀 피하고 싶었다.
내가 전에 있었던 사건을 언급하며
팩트를 들이밀자 피렌느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나는 조용해진 피렌느를 놔두고 엘디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럼 엘디르도 함께 가는 거로 하죠."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세진 님.”
"잠깐! 세진 님. 저도 데려가 줘요. 제발요. 앞으로 사고 안 치고, 일도 열심히 할게요. 네?”
피렌느가 너무 애절한 표정으로 부탁을 하자 살짝 마음이 약해졌다.
자잘한 사고를 좀 치기는 했어도.
최근에 엘프들에게 월급을 지급하면서 생기는 귀찮은 일들을 피렌느가 정말 많이 도와줬다.
공로와 과실을 따지자면 공로 쪽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평소에 누구보다도 바깥세상에 호기심을 드러냈던 그녀였기에, 더욱 그 부탁이 애절하게 느껴졌다.
"하아. 알았어요. 그럼 피렌느도 나갈 준비 해요."
"꺄아아! 고맙습니다. 세진 님. 사랑해요!"
넘치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두 팔을 벌려 달려드는 피렌느.
나는 그녀를 억지로 밀어내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
바깥세상으로 외출을 하기 위해, 세 명의 엘프는 엘프 특유의 의상이 아니라 평범한 의상이 필요했다.
다행히 시르엘과 피레느는 미리 구매해 둔 의상이 있어서 문제가 없었 고, 따로 옷을 산 적이 없었던 엘디르는 나와 임진혁에게 옷을 빌려야 했다.
체형은 호리호리한데 워낙 팔다리가 모델처럼 길쭉해서 내 옷은 맞지 않았다. 약간 헐렁하지만 사이즈가 큰 임진혁의 옷을 입어야 했다.
또 눈에 띄는 큰 귀는 챙이 넓은 모자로 가려야 했다.
귀를 가리고 굉장히 수수한 옷차림을 입혔는데도, 엘프 특유의 분위기는 숨길 수 없었다.
“세진 님. 어때요? 이상하지는 않나요?"
"괜찮아요. 모두 다 잘 어울려요."
마지막으로 엘디르의 검을 천으로 꽁꽁 싸매면서.
절대 주변 사람들에게 허락 없이 함부로 검을 꺼내거나, 겨누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만약에 갑자기 누군가 습격해 온다면 어떻게 합니까?"
“그런 일은 없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허락할 때까지는 절대 검을 꺼내 드시면 안 돼요."
"알겠습니다."
그는 약간 불만스러운 얼굴을 하면서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를 끝낸 우리는 아이들과 임진혁의 배웅을 받으며 바깥세상으로 향했다.
균열 입구를 통과해 주택에 도착하자, 세계수 씨앗을 지키던 경비대원들이 놀라는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나를 제외한 엘프들의 의상을 보고 놀란듯 했다.
중요한 일 때문에 바깥세상으로 외출할 거라고 이야기해 줬더니, 경비 대원들은 약간 부러운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경비대원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으며 집을 빠져나와, 일행은 대문 앞에 주차돼있는 차 앞에 도착했다.
서율희가 길드의 이름으로 마련해 준 출퇴근 차량이었다.
피렌느는 자동차를 알아보고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거 그거 맞죠? 막 빠르게 움직이는 탈 것!"
“맞아요. 일단 타세요."
나는 피렌느가 더 이상한 소리를 하기 전에, 이리저리 차를 둘러보는 세 명의 엘프를 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위니를 조심스럽게 상의 주머니에 안착시키고 운전석에 올라탔다.
조수석에는 엘디르, 뒷자석에 시르엘과 피렌느가 자리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안전벨트를 매는 법까지 알려준 뒤, 출발하기 전 위니에게 말을 걸었다.
"위니야. 어디로 가면 돼?"
-......
위니는 주머니에서 얼굴을 쏙 내밀고, 아까와 같은 방향으로 손가락을 뻗었다. 정확히 어디를 가리키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위니가 알려준 방향으로 차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우웅!
부드럽게 차량이 출발하자 뒷좌석에서 피렌느의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앗! 시르엘 님. 움직이는 것 보세요. 정말 신기하죠?"
“정말 신기하네요. 어떻게 움직이는 걸까요?"
뒷자리에 둘은 부드럽게 움직이는 자동차와 창문 밖 경치를 구경하며 연신 감탄했다.
조수석에 탄 엘디르는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천으로 둘러싼 검을 꽉 끌어안고 있었다.
엘프들의 반응을 보고 있으니. 마치 예전에 아이들을 처음 데리고 나왔을 때가 떠올라 슬며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위니가 가리킨 방향을 따라 계속 움직이다 보니. 주택가를 벗어나 도심지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높은 건물들과 수많은 사람.
평생 평온하고 조용한 숲에서 살았던 엘프들에게 도심의 풍경은 정말로 새로운 충격이었다.
창밖을 계속 구경하던 피렌느가 무언가를 발견하고 외쳤다.
“저기! 티아 공주님이 말했던 아이스크림 가게 맞죠?"
아이스크림 가게라는 말에 주머니 속 위니의 얼굴이 휙 돌아갔다. 아이스크림은 위니가 정말 좋아하는 간식 중 하나였다.
-......
위니는 내 옷을 잡아당기며 피렌느가 말한 아이스크림 가게를 가리키기 시작했다.
열심히 입을 벙긋거리는 위니의 모습에 나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위니. 아이스크림 가게는 나중에 가면 안 될까? 우리는 지금 중요한 일이 있는데."
-......
내가 아이스크림 가게를 지나치려 하자, 위니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시르엘과 피렌느도 약간 기대하고 있었는지 덩달아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순식간에 축 처져 버린 분위기에 당황한 나는 슬쩍 차의 속도를 늦추며 물었다.
"그럼. 잠시 들렀다 갈까?"
-......
위니는 내 물음에 금세 환한 표정을 짓더니,뾰로롱 날아올라 내 뺨을 꼭 끌어안았다. 작은 아기 요정의 애교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차량을 아이스크림 가게
쪽으로 운전해 나갔다.
근처에 주차할 공간을 찾아 차를 멈추고, 엘프들이 안전벨트를 풀지 못해 한차례 소란을 벌인 뒤.
나는 일행을 이끌고 아이스크림 가게 입구로 향했다.
"어서 오세요."
"어서 오세요."
우리는 각각 남자, 여자 직원의 인사를 받으며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인사를 마친 두 직원은 우리의 모습, 정확히는 내 뒤를 따르는 엘프들의 모습을 보고 멍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뽀로로롱!
내 주머니에서 날아오르는 위니의 모습을 보고, 천천히 입을 벌렸다.
나는 왠지 익숙하게 느껴지는 두 직원의 반응을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