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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균열에 산다-214화 (214/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214화

70. 씨앗의 변화(2)

꽃잎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주 작은 모습의 생명체였다.

동화 속에서 자주 볼법한 2쌍의 투명한 요정 날개를 가지고 있었고, 연두색 머리칼과 눈동자를 가진. 아주 귀여운 아기 요정이었다.

아기 요정은 얼굴에 비해 커다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내 손을 발견하고는 활짝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폴짝 내 손 위로 뛰어올랐다.

나는 꽃을 향해 뻗었던 손을 내 쪽으로 되돌렸다.

손 위에 올라간 아기 요정은 나를 보며 환하게 웃으며 입을 벙긋거렸다.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뭔가를 나에게 말하려는 것 같았다.

혹시나 해서 시르엘 쪽을 바라봤다.

"시르엘?"

"죄송해요. 저도 이 요정이 뭐라고 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아쉽게도 그녀 역시 이 아기 요정이 뭐라고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한 발 뒤에서 지켜보던 엘디르와 경비대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들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 손 위의 아기 요정은 계속 방긋방긋 웃음을 지었다.

***

-오물오물.

"퓨우우우······"

"와아..….”

“.......”

“후모……”

퓨이, 티아, 이엘, 모렛까지.

아이들은 눈앞에 아기 요정을 보며 저마다 감탄사를 흘렸다.

아기 요정은 내가 작게 썰어 놓은 젤리와 부드러운 과자를 집어 먹고 있었다.

오동통한 볼에 젤리와 과자를 집어 넣는 모습이 마치 작은 다람쥐를 보는 것 같았다.

아이들 뒤에서 함께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임진혁이 조용히 내게 물었다.

“세진아. 이 요정은 또 어디서 데려온 거냐?"

"왜 저번에 가져온 세계수 씨앗 있잖아요. 거기서 꽃이 피었는데 그 안에서 나왔어요."

“허허허. 동화 속 이야기도 아니고. 꽃에서 태어난 아기 요정이라니.”

그는 살짝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흘렸지만, 아기 요정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따뜻함이 가득했다.

시르엘, 피렌느 역시 이 귀여운 생명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매번 얼음 같은 냉랭한 표정의 엘디르가 훈훈한 표정을 지을 정도였으니.

아기 요정은 내가 가져온 젤리와 과자의 마지막 조각을 입안으로 넣었다.

이 작은 몸에 어떻게 그것들이 다 들어갔는지 미스터리처럼 느껴졌다.

"더 가져다줄까?”

-도리도리.

"이제 배불러?"

-끄덕끄덕.

아기 요정은 만족한 표정으로 자신의 의사를 나타냈다.

'말을 알아들을 수 있구나.'

간단한 질문을 곧잘 이해하는 요정의 모습에 아이들과 지켜보던 사람들의 눈에는 놀라운 감정이 떠올랐다.

나는 원래 세계수 씨앗의 목적을

떠올리며 다시 아기 요정에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생명의 문양'이 어디에 있는지 아니?"

-…… 도리도리.

아기 요정은 내 질문에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약간 실망스러운 반응이었다.

나는 포기하지 않고 재차 질문을 던졌다.

“그럼 '생명의 문양'이 뭔지는 알고 있어?"

-도리도리.

"아.…."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게 이 아기 요정은 '생명의 문양'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뭐지? 세계수의 정령이 했던 말과는 다르잖아?'

세계수의 정령은 나에게 씨앗을 심어주면, 그걸 통해서 이쪽 세상에 있을지 모를 '생명의 문양'을 찾아 볼 수 있다고 했다.

생명의 샘을 되살릴 방법에 대해 실마리도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생명의 문양만이 나에게 남은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남은 시간이 줄어드는 상황 때문에 나도 모르게 초조해졌다.

아기 요정은 이런 내 마음도 모르고, 방실방실 귀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내가 잠시 생각에 빠져있는 동안, 기회를 노리고 있던 티아가 불쑥 질문을 던졌다.

“너는 이름이 뭐니?"

-...... 도리도리.

“혹시 이름이 없는 거야?"

-끄덕끄덕.

아기 요정이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에 티아는 손뼉을 짝! 하고 치더니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우리 이 요정한테 이름을 지어주자. 세진, 그래도 괜찮지?"

“어…… 그렇게 해.”

갑자기 허락을 구하는 티아의 물음에 나는 약간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허락이 떨어지자 아이들은 신나서 아기 요정의 이름을 짓기 시작했다.

엘프들과 임진혁도 이름 짓기에 관심이 생겼는지 각자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

"위니야!"

-뽀로로롱!

티아의 부름에 아기 요정이 두 쌍의 날개를 흔들며 날아왔다.

자신의 손 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아기 요정을 보며 티아는 기쁨의 웃음을 터뜨렸다.

"꺄하하. 잘했어. 위니야!"

-방긋!

아기 요정은 티아의 칭찬에 미소를 지었다.

많은 이들의 머리를 맞댄 결과.

아기 요정의 이름은 '위니'로 정해졌다.

엘프어로 '아기'라는 뜻의 의미였다.

부르기도 좋고, 뜻도 딱 알맞았다.

반대 의견 없이 '위니'가 아기 요정의 이름으로 정해졌다.

아이들이 몇 번 '위니'라고 불러주자, 똑똑한 아기 요정은 금방 이름을 알아듣기 시작했다.

"위니야!"

-뽀로로롱!

이번에는 이엘의 부름에 위니가 날아올랐다.

어깨에 내려앉아 장난스럽게 볼을 콕콕 찌르는 행동에 이엘도 웃음을 터뜨렸다.

"퓨이! 퓨이!"

“후모!"

어떻게 알아듣는 것인지는 알수 없지만, 퓨이와 모렛의 부름에도 위니는 차례로 둘에게 날아가 애교를 부렸다.

둘은 아기 요정의 애교에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면 아이들이 위니와 놀아주는 게 아니라, 위니가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들과 위니의 즐거운 모습에 잠시 초조해졌던 마음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래. 너무 초조하게 생각하지 말자.'

마음을 비우고 옆을 바라보니 엘프들이 부러운 눈빛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들도 위니의 이름을 부르며 놀고 싶은 눈빛이었다. 심지어 엘디르마저……

시르엘과 엘디르는 내 시선을 느끼고는 당황한 듯 말을 내뱉었다.

“저, 저는 이제 아이들 간식을 준비하러 갈게요."

“크흠. 경비대원들에게 이상이 없는지 확인해 보고 오겠습니다.”

두 사람이 부끄러움을 느끼고 떠나가는 와중에.

피렌느는 주변 눈치 따위는 보지 않고 아이들과 합류해 위니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위니야. 이리로 와봐!"

-뽀로로롱!

그녀는 부름에 답해 날아온 아기 요정을 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나와 임진혁은 그녀의 모습에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튼, 귀여운 위니 덕분에 웃음이 끊이지 않던 통나무 집 주변에는 조금씩 어둠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아이들 그리고 피렌느와 신나게 놀던 위니는 주변이 어두워지자 비실거리기 시작했다.

"위니야. 괜찮아?"

위니는 내 부름에 약간 힘겹게 내 손 위로 날아왔다.

너무 신나게 놀아서 힘이 빠진 거라면 괜찮겠지만, 혹시 어디가 아픈 게 아닌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혹시 어디 아프니?”

-도리도리.

“그럼?”

아기 요정은 대답 대신에 눈을 비비며 크게 하품을 했다.

“잠이 오는 거야?"

-끄덕끄덕.

“그럼 침대에 데려다줄게."

잠이 오는 모습에 침대로 데려가려 하자 위니가 다시 한번 고개를 저었다.

"응? 침대는 안 되는 거야?"

-끄덕끄덕.

위니는 입을 벙긋거리며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무언가 나에게 전하려 했다.

앙증맞은 행동이었지만, 이해하기는 어려운 위니의 설명에 골머리를 썩이고 있을 때, 옆에서 지켜보던 시르엘이 입을 열었다.

“혹시 아까 그 꽃으로 데려다 달라는 말이 아닐까요?"

-끄덕끄덕.

시르엘의 말에 위니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 내가 맞춘거야?"

-뽀로로롱.

위니는 정답을 맞힌 시르엘의 어깨에 내려앉아 그녀의 볼에 몸을 비볐다.

그녀는 위니의 애교에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알았어. 그럼 꽃으로 데려다줄게."

나는 다시 위니를 손 위에 올리고 집을 나설 준비를 했다.

"위니 벌써 가는 거야?"

“아빠. 위니도 여기서 같이 자면 안 돼요?"

“퓨이. 퓨이."

“후모.”

아이들은 위니가 떠나려 하자 모두 아쉬운 표정을 했다.

나는 그런 아이들을 달래며 위니의 사정을 설명했다.

“오늘은 너무 많이 놀아서 위니가 피곤하대. 내일 또 데려올 테니까 조금만 참자. 알았지?"

내 설득에 아이들은 아쉽지만 어쩔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위니도 그런 아이들의 마음을 아는 듯 내 손 위에서 작은 손을 흔들었다.

아이들과 작별인사를 나눈 뒤, 나는 곧바로 균열 입구를 통해 현실 세계의 집으로 향했다.

집에는 언제나처럼 3명의 경비대원이 세계수의 씨앗, 아니, 이제는 꽃을 지켜보고 있었다.

경비대원들은 나와 위니의 등장에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세진 님."

"위니가 피곤했는지 다시 꽃으로 데려다 달라고 그래서.”

“이 아기 요정의 이름이 위니입니까? 정말 귀여운 이름이네요.”

아기 요정은 경비대원의 칭찬을 알아들었는지 웃으며 작은 손을 흔들어 고마움을 표했다.

귀여운 위니의 행동에 경비대원들의 얼굴은 순식간에 무장 해제가 돼버렸다.

나는 위니에게 눈을 떼지 못하는 경비대원들과 함께 마당으로 향했다.

위니는 꽃이 눈앞에 보이자 날개를 움직여 가볍게 날아올랐다.

-뽀로로롱!

쏙!

꽃잎 사이에 쏙 들어간 위니는 입을 벙긋거리며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마 작별 인사를 보내는 것 같았다.

나와 경비대원도 따라 손을 흔들었다.

위니는 한 번 미소를 짓고는 꽃잎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꽃봉오리는 위니를 감싸듯 오므라들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처음 아침에 봤던 것처럼 완전히 꽃봉오리를 닫아버렸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마음 한구석이 허한 기분이었다.

아까 아쉬워하던 아이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저는 이만 다시 가볼게요. 내일 아침까지 위니 잘 지켜주세요.”

“물론이죠. 목숨을 걸고 지키겠습니다."

오늘따라 더 의욕을 불태우는 경비 대원들을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그 뒤로 위니는 평범하게 우리들의 일상에 녹아들었다.

아침에 꽃에서 나와 우리와 함께 지내다가, 해가 질 때쯤 꽃으로 되돌아가는 일상을 반복했다.

'생명의 문양'에 대해서는 아직 어떠한 단서도 찾지 못했지만, 괜히 초조한 마음에 위니를 불안하게 만들까 봐, 애써 질문을 참았다.

오늘도 아침이 되자 평소처럼 위니를 데리러 갔다.

집에 도착하자 평소와는 다르게 경비대원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약간 이상함을 느끼고 집 밖으로 나서자, 마당에 모여있는 경비대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서 모두 뭐 하세요?"

"아! 세진 님 오셨군요.”

“네, 모두 집 안에 안 계셔서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전부 마당에 계셨네요. 무슨 일 있나요?"

“다름이 아니라. 위니가 좀 이상해서요."

"네? 위니가요?"

위니가 이상하다는 말에 나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경비대원은 대답 대신에 말없이 어디론가 시선을 보냈다.

그의 시선 끝에는 이미 꽃봉오리에서 나온 아기 요정이 있었다.

위니는 마당 담벼락 위에 서서 어딘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위니? 거기서 뭐 해?"

-......

내 부름에 위니는 나를 바라보더니, 휙 날아와 내 어깨에 올라탔다.

그리고 내 옷을 잡아당기며 손짓을 하기 시작했다.

"뭐야? 갑자기 왜 그래 위니야."

평소와는 다른 행동에 내가 당황한 기색을 드러냈지만, 위니는 그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잠시 위니의 행동을 살피다가 질문을 던졌다.

"위니야. 혹시 밖에 나가고 싶은거야?"

-끄덕끄덕.

위니는 그제야 말이 통했다는 듯, 행동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밖에 나가고 싶다고?'

평소에는 바깥세상에 관심도 없었는데, 갑자기 밖으로 나가겠다며 떼를 쓰는 위니의 행동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혹시?'

"위니야. 혹시 '생명의 문양'에 관련된 일이야?"

-끄덕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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