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균열에 산다 212화
69. 그곳에서는(3)
계속 옆에서 지켜보던 엘디르는 별다른 거부감 없이 화면 안으로 들어왔다.
화면의 자신의 모습이 비치자 약간 신기해하더니, 그 뒤로는 계속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다.
“지금 많은 분이 엘디르 님의 등장에 환호하고 있는데, 간단하게 자기 소개 좀 해주세요."
그는 내 부탁에 간단한 자기소개를 이어나갔다.
“엘프 마을에서 경비대장 일을 수행하는 엘디르라고 합니다. 지금은 세진 님을 돕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목소리도 너무 멋져.
-근데 남자가 봐도 잘생기긴 했다. 무슨 배우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줄․
-ㅎㄷㄷ 경비대장이래.
간단한 자기소개였는데도 남자를 제외한 여자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엘디르 님 나이는 어떻게 되시죠? 이상형은?
-다른 경비대원들도 함께 오셨나요?
-혹시 애인 있으신가요?
나는 채팅창에 수많은 질문 중에서 대답할
만한 것을 몇 개 골라 엘디르에게 물었다.
대답하기 곤란하거나, 너무 개인적인 질문은 답하지 않아도 된다고 미리 말해줬는데, 그는 거침없이 모든 질문에 대답해 나갔다.
“나이는 102살이고, 이상형은 없습니다.”
“다른 경비대원들도 여기 있습니다. 총 10명이 마을에서 중요한 임무를 부여받아 이곳에 왔습니다."
"애인은 없습니다.”
시원시원한 엘디르의 답에 사람들의 반응은 점점 뜨거워졌다.
-102살…… 80살 차이지만 사랑이 있으면 극복할 수 있어!
-10 명이나 엘프가 더 있다고? 균숙자님 엘프 마을을 세우려고 하시나.
-저 얼굴에 애인이 없다니. 설마 저게 엘프 평균 외모 수준인 건가?
[kim0714 ₩5,000 후원]
-방금 방송 들어왔는데. 너무 잘생긴 사람이 있어서 잘못 들어온 줄......
[mingming2 ₩10,000 후원]
-연우 PD님, 엘디르 님이 등장한 이후로 이상하게 연우 PD님이 오징어로 보이는데 방송 상태 한번 점검 해 주세요.
−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
“아…… mingming2 님. 방송은 정상적으로 송출되고 있고요. 계속 화면이 이상하면 본인이 눈을 제대로 뜨고 있는지 확인해 보세요."
-오징어가 말을 한다 ㅋㅋㅋㅋㅋ
-근데 연우 PD도 어디서 꿀리지 않는 외모인데, 그냥 오징어로 만들어 버리네. 미친!
-나도 방송보다가 오빠방에서 오징어가 걸어나와서 깜짝 놀람.ㅋㅋㅋ
[민영 ₩5,000 후원]
-근데 정확히 무슨 일 때문에 이렇게 많은 엘프가 거기 온 건가요? 정말로 엘프 마을이라도 짓고 있나요?
무슨 일로 이곳에 왔냐는 질문에,
엘디르는 이번에도 거침없이 사실을 이야기했다.
“저희는 마을에 큰 죄를 저지르고 강제노역을 해야 하는 15명의 엘프를, 세진 님 아래에서 감시하고 관리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약간은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그의 대답.
강제노역을 하는 15명의 엘프에 대해. 처음에는 숨길 생각도 해봤지만, 일단은 밝히기로 했다.
대신 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숨기고, 강제노역이라는 표현을 조금 순화해 시청자들에게 전달했다.
“여기에 경비대원들을 제외하고 15명 정도의 엘프들이 제 약초밭 일을 도와주고 있고요. 엘디르 님과 경비대원분들은 그 엘프들을 지키면서 겸사겸사 약초밭 일도 도와주고 있습니다."
15명의 엘프가 더 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놀란 반응을 보였다.
-헉! 15명이나 더 있다고. 그 정도면 진짜 엘프 마을이네.
-저렇게 잘생기고, 아름다우신 분들이 20명 넘게 밭일을 하고 있다고?
-그곳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균숙자님. 집으로 초대하는 팬 미팅 추가 계획 없으십니까? 제발……
사실 많은 엘프가 이곳에 머물면서, 이미 내 통나무집 주변 숲에는 엘프 마을과 비슷한 형태의 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30명이 넘는 인원이 모이다 보니 굉장히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현상이었다.
'그럼 내가 이곳 마을의 촌장 같은 건가?'
촌장이라는 표현이 좀 어색하면서도 꽤 그럴듯했다.
-엘프들이 일하는 모습 한 번만 보여주면 안 돼요?
-너무 궁금한데. 한 번만 보여줘.
-이대로 야방 가즈아!!!
많은 엘프가 실제로 일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요청이 끊임없이 들어왔다.
“형, 어떻게 하죠?"
"으음. 야외 방송 가능한가?"
“세팅하는 건 얼마 안 걸려요.”
“그럼 준비해 보자."
우리 너튜브 채널 최초로 이뤄지는 야외 라이브 방송.
오연우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 아까 방송에 나왔던 인원 그대로 집 밖으로 나섰다.
집 앞마당에서 옆길로 돌아 뒤쪽으로 향했다.
오전에 이미 약초밭 일을 모두 끝내놨기 때문에 엘프들은 이곳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바로 엘프 차를 만드는 작업이었다.
엘프들은 작업장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미리 말려둔 약초를 잘게 자르고, 정성스럽게 가루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화면에 이 모습이 그대로 방송을 타자, 사람들은 지금까지 한 이야기가 모두 사실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와…… 진짜 엘프들이 일을 하고 있네.
-옆에 무기를 차고 있는 엘프들이 경비대원인가 봐. 경비대 옷차림 멋있다.
-엘프 차를 저렇게 만드는구나. 하긴 저렇게 정성스럽게 만들어야 하니 구하기 어려울 수밖에.
일하던 엘프들과 이곳을 지키고 있던 경비대원들은 나를 발견했는지,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내게 인사를 보냈다.
나는 최대한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신경을 쓰지 말라는 동작을 취했고.
그들은 다시 각자의 일을 시작했다.
-방금 뭐야? 전부 균숙자한테 인사한 거 아냐? 꽤 정중한 태도던데.
-이거 엘프들이 외국인 노동자였던 거임?
-균숙자님, 혹시 엘프들의 약점을 잡고 억지로 일 시키고 있는 거 아니죠?
-그 뉴스에서 자주 등장한다던 악덕 사장이 혹시?!
사람들은 장난 반, 의심 반으로 나를 악덕 사장으로 몰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사람들의 의혹을 일축했다.
“여러분이 말씀하시는 그런 거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세요."
[액귀액귀 ₩1,000원 후원]
-그럼 저 엘프분들에게 정당한 보수를 지급하고 계신 거예요?
"으음. 그건......"
-악덕 사장이다! 악덕 사장이 여기 있다!!
-설마 진짜였어요?
-ㅎㄷㄷㄷㄷ
[액귀액귀 ₩1,000원 후원]
-충격! 유명 너튜버 부하 직원들에게 무보수 노동시켜 논란.
[지나가는김씨 ₩2,500원 후원]
-엘프 여러분들. 도움이 필요하시면 지금 당장 오른쪽 눈을 두 번 깜빡여 주세요!
[네넴띤 ₩5,000원 후원]
-고용노동부 임금 체불 상담센터
전화번호 1350
뭔가 건수를 잡아냈다고 생각한 시청자들은 신나게 나를 악덕 사장으로 몰아가기 시작했다.
엘프 마을에서부터 복잡한 사건들로 얽혀온 관계라, 방송으로 이 상황을 쉽게 설명하기는 힘들었다.
“일단은 보수 없이 일하고 있지만, 여기에는 다 그만한 사정이 있어서 그런 거고요. 원래 이곳에 올 때부터 일을 도와주기 위해 오신 분들이라……."
-균숙자는 엘프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하라!
-보장하라! 보장하라!
"하아. 안타깝게 됐네요. 엘프 분들의 도움을 받아 엘프차를 꽤 많이 생산해서, 남는 엘프차를 구독자분들에게 선물하려 했었는데.…..”
-......
-......
“이렇게 반대하시는 분들이 많으니. 엘프차 이벤트는 취소해야겠네요."
내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엘프차 이벤트를 취소한다고 말하자. 사람들의 반응은 180도 달라졌다.
-흠흠. 그럴 수도 있지.
-형, 장난인 거 알지? 난 처음부터 믿고 있었다구.
-아! 저 엘프들 일한 지 1달 안 되지 않았나요? 원래 수습 기간에는 무보수로도 일하죠.
-수습 기간에도 시급은 줘야 하는데……
-어허! 원래 돈이 중요한 게 아니죠. 열정이 중요한 겁니다. 열정 페이 모르세요?
[네넴띤 ₩5,000원 후원]
-아이고. 엘프 분들이 즐겁게 일하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습니다. 균숙자님이 아주 잘 대해주셨나 보네요.
[지나가는김씨 ₩1,000원 후원]
-여러분, 아무도 오른쪽 눈을 깜빡이지 않는 거 보셨죠? 균숙자님이 이런 분입니다.
[액귀액귀 ₩1,000원 후원]
-낯선 이들에게 베푸는 친절. 유명 너튜버 엘프들을 보듬은 미담 밝혀져.......
나는 달라진 채팅창의 분위기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 뒤로 우리는 엘프 차를 만드는 과정을 구경하며, 몇 가지 질문과 대답을 끝으로 방송을 종료했다.
"하아. 드디어 끝났네요."
"으음. 아쉽다. 저는 좀 더해도 괜찮은데."
시르엘은 방송이 끝나자 긴장이 풀리며 한숨을 내쉬었고, 반대로 피렌느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엘디르는 평소와 같이 변함없는 표정 그대로였다.
나는 웃으면서 엘프들에게 말했다.
"수고하셨어요.”
“세진 님도 고생하셨어요. 오늘 저희 잘한 건가요?"
“네. 모두 잘해주셨어요. 방송을 보던
시청자들의 반응도 좋아서. 다음에도 꼭 나와달래요.”
내가 시청자들의 반응을 전하자.
피렌느는 물론이고, 약간 방송을 부담스러워 했던 시르엘도 작게 미소를 지었다.
오연우도 오늘 라이브 방송이 마음에 들었는지, 벌써 다음 방송 계획과 엘프들을 출연시킬 만한 영상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나도 오랜만의 성공적인 라이브 방송을 끝낼 수 있어, 뿌듯함과 동시에 후련함을 느꼈다.
***
엘프들이 등장한 라이브 방송은 다시 한번 '균숙자네 퓨이' 채널에 뜨거운 관심을 집중시켰다.
사진으로만 보인 신비한 엘프 마을부터.
연예인 뺨치는 미남, 미녀 엘프들까지.
방송에 나왔던 엘프에 관한 모든 것들이 화제에 올랐다.
거기다 방송이 끝난 직후에 이어진 엘프차 이벤트 때문에 그 후폭풍은 더했다.
-저렇게 예쁘고 멋진 엘프들을 고작 엘프 차 만드는 일에 동원하다니.
-고작 엘프 차라니! 엘프 차가 얼 마나 맛있는데.
-도대체 균숙자는 정체가 뭐야? 무슨 짓을 했길래 엘프들이 저렇게 대가도 없이 도와주는 거지?
-부럽다. 저렇게 엘프를 매일 보기만 해도 저절로 수명이 늘어날 듯.
-ㅇㅈ
이번에도 쉽게 믿을 수 없는 내용에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저번 엘프 차 이벤트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엘프 차가 동시에 풀리면서, 사람들의 의심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오히려 엘프차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내가 더 많은 엘프를 데려오기를 희망하는 사람이 늘어날 정도였다.
거기다 엘프들이 워낙 뜨겁게 떠오르다 보니, 채널을 통해 각종 광고나 협찬이 몰려들기도 했다.
그리고 정말 특이하게도 이번 라이브 방송 때문에 실제로 인터넷 기사가 떴다.
[엘프를 무보수로 부리는 유명 너튜버. 그의 정체는?]
“끄응..…."
인터넷 기사 지원 화력 덕분인지, 나는 이번 방송을 통해 악덕 사장이라는 밈을 얻게 되면서 또 다른 의미로 화제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