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균열에 산다-211화 (211/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211화

69. 그곳에서는(2)

라이브 방송 당일 날.

오랜만의 방송에 기분이 좋아진 오연우는 콧노래를 부르며 장비를 세팅했고, 피렌느는 그런 그의 옆에 붙어서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세이도 처음 보는 방송 장비들이 신기한지, 하나씩 툭, 툭 건드리다가 오연우에게 혼나고 내 품으로 도망 왔다.

이미 방송에 익숙해진 아이들과는 다르게.

방송 장비들을 신비하게 바라보는 사람은, 아니, 엘프는 더 있었다.

“세진 님. 이것들 모두 방송에 필요한 장비들입니까?"

“그렇죠.”

“이 장비들을 이용하면 아무리 멀리 있어도, 우리가 움직이고 말하는 모습을 다른 존재가 관찰한다는 겁니까?"

“네. 정확해요."

"흐음..….”

엘디르는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는 방송 장비들을 살피며 깊은 생각에 잠겨 들었다.

“형. 준비 다 끝났으니까. 방송 시간 10분 전이 되면 바로 시작할게요."

"알았어. 시르엘 님, 피렌느 님. 5 분 뒤에 방송 시작할 건데, 저쪽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알겠습니다. 세진 님."

"빨리 불러주셔야 해요."

나는 근처에서 기웃거리던 엘디르에게 물었다.

"엘디르 님? 엘디르 님도 방송에 출연하실래요?"

“아닙니다. 저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가까이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아…… 네. 그렇게 하세요.”

그가 어떤 상황을 대비하려는지는 알 수 없었다.

매우 진지한 눈빛이라 더는 물어보지 않고 그가 하고 싶은 대로 뒀다.

"그럼 시작할게요."

오연우가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카메라를 통해 우리의 모습이 화면에 나타났고, 하나둘씩 사람들이 방송에 입장하기 시작했다.

-하이!

-본방사수하려고 1시간 전부터 대기했습니다.

-안녕하세요.

-ㅎㅇㅎㅇ

-오오, 방송 알람 뜨자마자 헐레벌떡 달려왔어요.

“안녕하세요. 모두 오랜만이네요."

내가 인사를 하자 옆에 있는 아이들도 따라 인사를 했다.

채팅창에는 반갑다는 글과 너무 오랜만에 와서 속상하다는 글이 많이 올라왔다.

“죄송합니다. 최근에 연우 PD랑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다녀온다고․ 조금 바빴습니다.”

-어디로 여행 다녀오셨는데요? 사진 보여주세요!

-국내? 해외?

-아아. 어제 공지글에 올라와 있던 사진, 여행하실 때 찍으신 거죠?

사람들은 금방 여행에 관심을 드러내며 질문세례를 쏟아냈다.

이제 방송 진행에 경력이 생긴 나는 여유롭게 웃으며 시청자들의 관심을 이끌었다.

“그럼 본격적인 방송 시작하기 전에, 여행하면서 찍었던 사진 좀 같이 볼까요?"

-사진 좋아요. 빨리 보여주세요.

오연우는 방송 화면과 사운드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이쪽으로 합류해 노트북으로 화면에 사진을 한 장씩 띄워줬다.

첫 번째 사진은 아주 빽빽한 숲에서 아이들과 임진혁, 내 모습이 찍힌 사진이었다.

-아니, 균숙자님이 그렇게 좋은 숲에 사시면서, 여행을 또 숲으로 가셨네.

-나무의 모습을 보니 국내는 아닌 것 같고. 뭐지?

처음 숲속에서 사진을 본 시청자들은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다.

아무래도 우리 방송에 숲이 많이 등장하다 보니 그런 것 같았다.

하지만 두 번째 사진부터는 조금씩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두 번째로 화면에 나타난 사진은 엘프 마을에서 첫 번째 식사 장면이었다.

신비하게 생긴 과일들과 특이한 음료수가 시청자들의 눈을 이끌었다.

티아는 화면 속 사진을 보더니 활짝 웃으며 말했다.

“저 빨간색 과일 엄청 맛있었어. 그리고 저 조그만 노란색 열매도 맛있었고."

“맞아요. 저도 저 노란색 열매가 제일 맛있었어요. 과일 속이 쫀득한 젤리를 먹는 것처럼 말랑하고 달콤해요.”

오연우도 티아의 말에 동의하며 그 때의 맛을 떠올리듯 군침을 흘렸다.

-뭐야? 이거는 무슨 과일이야?

-진짜 완전 처음 보는 과일인데. 도대체 어디로 여행을 다녀오신 거야?

-저 노란색 열매. 나도 먹어보고 싶다.

사람들의 관심과 궁금증이 점점 커지는 가운데.

세 번째 사진이 공개되었다.

그리고 채팅창은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아니, 이건 그냥 영화의 한 장면을 가져왔다. 이게 진짜라고?

-몰래 카메라임?

-우리 속은 거야. 이런 곳이 어딨어.

-연우 PD 그동안 일 제대로 안하고 가짜로 여행 다녀온 사진 만든 거지?

화면에 공개된 것은 엘프 마을의 전경을 담은 사진이었다.

커다란 크고 작은 집들이, 마치 나무와 하나인 것처럼 어우러져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채팅창의 말처럼 정말 영화의 한 장면 같아 보이는 사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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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궁금해 미쳐버릴 것 같으니까. 어디로 여행 다녀왔는지 시원하게 이야기 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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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에 마을 진짜야? 진짜?

사람들의 관심과 궁금증이 최대로

올랐을 때.

나는 오연우에게 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오연우는 기대감 가득한 표정으로 오늘의 비밀 게스트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자, 자. 모두 진정들 하세요. 방금 보셨던 사진들은 이제 등장하실 분들과 관련이 있는 사진이었습니다. 조금 감이 잡히시나요?"

-전혀 모르겠는데.

-어디 숲속에서 요정이라도 데리고 왔나?

나와 오연우가 신호를 보내자, 시르엘과 피렌느가 화면 안으로 들어 왔다.

두 명의 아름다운 엘프가 모습을 드러내자, 마치 조명을 더 밝힌 것처럼 주변이 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

-??

−??

그리고 채팅창에는 현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시청자들의 물음표가 도배되기 시작했다.

“저희가 이번에 여행을 다녀온 엘프 마을에서 오신 두 분. 시르엘 님 과 피렌느 님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두 분, 간단하게 인사해 주세요.”

먼저 시르엘이 떠듬거리는 한국어로 자신의 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시르엘이라고 합니다. 만나…… 서? 반갑습니다.”

어색하게 한국어를 하는 시르엘을 보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예전에 이엘의 모습이 떠올랐다.

“안녕하세요. 저는 피렌느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직 한국어에 많이 어색한 시르엘과 달리, 이쪽 문화에 워낙 관심이 많아 배움이 빨랐던 피렌느는 상대적으로 유창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뭐야? 뭐야? 진짜 엘프야?

-아니, 방장은 도대체 어디서 이런 분들을 모시고 오는 거야.

-으아아! 엘프 마을이라니! 엘프 마을에 다녀왔다니! 부러워!!

-화면에 아름다운 엘프가 셋……균숙자 당신은 도대체……

사람들의 폭발적인 반응에 채팅창은 읽기도 힘들 정도로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참고로 시르엘 님은 이엘 어머니의 여동생으로 이엘에게는 이모가 되시는 분입니다."

이엘은 자신과 시르엘을 소개하는 내 말을 듣고, 이엘에게 다가가 슬쩍 안겼다.

약간 긴장했던 시르엘은 이엘의 애교에 작은 미소를 지었다.

-와아. 어쩐지 닮은 것 같더라니.

-엘프는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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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균숙자님은 이엘의 아빠니까. 시르엘 님은 관계상 처제네요. 혹시 처제라고 부르세요?

약간 엉뚱하면서도 날카로운 질문에 나는 당황하면서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물론 관계상으로만 따지면 그렇긴 한데. 아시다시피 복잡한 사정으로 그런 호칭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 대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채팅창에는 한 가지 이야기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균숙자 형님! 처제를 저에게 주십시오.

-형님! 제가 처제분을 행복하게

해드리겠습니다.

-형님!

채팅창의 형님 타령은 다음 질문이

나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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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엘프 마을에 다녀오셨습니까? 거기에는 어떤 계기로 가신 거죠?

“네. 정말로 다녀왔습니다. 여기 연우 PD랑 이엘, 티아도 함께 다녀왔습니다. 엘프 마을에는 이엘의 할머 니도 계셔서, 한번 만나뵐 겸해서 방문했습니다.”

내가 대답을 하는 사이, 오연우는 재빠르게 3명의 엘프가 함께 찍은 사진을 화면에 올렸다.

- ???

-이엘과 시르엘말고 남은 저분이

할머니라고?

-29살인 나보다 젊어 보이는데.

-ㅎㄷㄷ 진짜 역대 최강 동안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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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분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데요?

루나르엘의 나이를 묻자 고개를 갸웃했다.

나도 그녀의 나이는 모르고 있었는데, 살짝 궁금증이 생겨 시르엘과 피렌느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혹시 루나르엘 님 연세가 어떻게 되는지 아시나요?"

-오오, 방장 엘프어 유창한 것 보소, 멋져!

-나도 엘프어 배우면 저런 아름다운 엘프를 만날 수 있을까?

내 질문에 피렌느가 먼저 대답했다.

“으음. 정확하지는 않은데. 얼마 전에 500세를 넘기신 거로 알고 있어요."

"......."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연세에 잠시 정신이 멍해졌다.

-방장 왜 고장났어. 몇 살이시라는데?

-못 알아들은 거 아님? ㅋㅋ

잠시 후, 나는 정신을 차리고 피렌느에게 들은 이야기를 시청자에게 전해줬다.

"어. 그러니까 사진 속에 나오시는 이엘의 할머니 연세가 500세를 좀 넘기셨답니다."

-ㅎㄷㄷ

-50세도 아니고 500세?

-500살인데 나보다 탱탱한 피부 실화냐? 이건 사기다, 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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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 이엘의 할머니는 조선의 제11대 국왕. 중종이 통치하던 시절에 태어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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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살 누님 고우시네.

루나르엘의 충격적인 나이가 밝혀지자.

사람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시르엘과 피렌느에게로 향했다.

-그럼 지금 나와계신 두 분은……?

-100살은 안 넘으셨겠지?

두 엘프의 나이를 궁금해 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났다.

나는 시르엘과 피렌느에게 나이를 밝혀도 되는지 물어본 다음, 시청자들에게 그들의 나이를 공개했다.

“시르엘 님은 121살이시고, 피렌느 님은 79살이십니다."

-할머니? 아니, 증조할머니?

-허허허허.

루나르엘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이번에도 사람들은 적잖은 충격을 받은 듯했다.

채팅창에 올라오는 반응들을 실시간으로 시르엘과 피렌느에게 전해주자 시르엘은 크게 당황했고, 피렌느는 살짝 화를 내며 항변했다.

“세진 님. 인간의 나이로 따지면

그렇지만, 엘프들의 나이로 따지면 굉장히 젊은 편이라고요. 절대 할머니가 아니라고 설명해 주세요.”

“.…...”

시르엘도 그녀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녀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사람들에게 전해주었다.

다행히 할머니라는 호칭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외모였기에 채팅창의 할머니 타령은 금방 수그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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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엘프는 남자가 없나요?

왜 여자 엘프만 잔뜩 만나고 오셨어요? 균숙자님의 사심이 반영된 건가요?

ㅋㅋㅋㅋㅋ

-날카로운 지적 오졌다.

-사실은 방장 사심 방송이었자나.

사람들의 반응이 내가 사심을 채웠다는 쪽으로 흐르자, 억울했던 나는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하아.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내가 화면에서 사라지자 채팅창은 기대감으로 부풀어 올랐다.

-어어? 설마? 두근두근!

잠시 후,  나는 엘디르와 함께 화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나왔다!!

-꺄아아악! 엘프 오빠!

-질문 누가 했냐? 진짜 잘했어 ㅜㅜ

-아아. 이 잘생긴 생명체는 뭐야.

화면에 약간은 차가운 인상이지만, 연예인 뺨치는 외모의 엘프가 등장하자 다시 한번 채팅창이 불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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