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균열에 산다 210화
69. 그곳에서는(1)
- 끼이이이익!!
우렁찬 새의 울음소리와 함께 전에 봤던 새 한 마리가 마당에 착지했다.
새가 땅에 발을 딛자 등에서 넬모란 장로가 훌쩍 내려왔다.
"오랜만입니다. 넬모란 장로님."
“허허. 잘 지내고 있었나?"
“제 능력을 사용하면 좀 더 편하게 오실 수 있는데.”
“괜찮네. 이렇게 날아오는 게 나는 편해.”
그는 내 인사를 반갑게 받아주며 미소를 지었다.
내 옆에 있던 시르엘과 엘디르도 그에게 인사를 전했다.
“먼 길 오시느라 피곤하실 텐데.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죠."
“내가 피곤할 게 뭐가 있겠나. 이 녀석이 고생을 한 거지."
넬모란 장로가 새의 깃털을 쓰다듬어주자, 녀석은 기분이 좋은 듯 날개를 퍼덕거렸다.
“내가 부를 때까지 잠시 쉬고 있어라.”
-삐익!
커다란 새는 울음소리로 대답을 하고, 훌쩍 날아올라 숲 너머로 날아갔다.
새가 떠나가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나는 넬모란 장로와 함께 집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안녕!"
이엘과 티아는 이미 얼굴을 익힌 사이라 편안히 넬모란 장로에게 인사를 건넸고, 그도 작게 미소 지으며 인사를 받아줬다.
"퓨이! 퓨이!"
-뀨우……
퓨이는 그래도 한 번 만났던 것을 기억하는지 친근하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세이는 그런 퓨이 뒤에 숨어 약간 경계하듯 눈동자를 굴렸다.
"오오. 나를 기억하는구나. 너희들도 잘 있었느냐? 저번에 같이 엘프 마을에 갔으면 좋았을 텐데."
그는 이엘, 티아와 인사를 나눌 때 보다 더 기쁜 듯 반응했다.
내가 그 모습을 묘하게 바라보자, 시르엘이 슬쩍 다가와 속삭였다.
“원래 넬모란 장로님이 신기한 동물들을 좀 좋아하세요. 마을의 규칙상 데려와 키우지는 못해도, 마을 근처에서 꽤 많은 동물을 돌보시거든요."
“아…...”
나는 그제야 넬모란 장로의 행동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런 우리들의 반응은 상관없다는 듯, 퓨이와 세이를 반짝이는 눈으로 이리저리 살피고 있었다.
***
한동안 퓨이와 세이에게 정신을 빼앗겼던 넬모란 장로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부엌 테이블에 앉았다.
테이블에는 네모란 장로, 시르엘, 나까지 자리했고, 엘디르 경비대장은 우리를 호위하듯 옆에 서 있었다.
“흠흠. 잠시 내가 정신이 팔렸었구먼. 미안하네."
"아뇨. 괜찮습니다."
그는 사과하면서도 슬쩍슬쩍 아이들이 놀고 있는 거실 쪽에 눈길을 줬다.
시르엘의 말대로 정말 관심이 높아 보였다.
넬모란 장로는 가져온 가방을 열더니, 여러 가지 것들을 테이블 위에 꺼내놨다.
생각보다 많은 양에 깜짝 놀라며 물었다.
"이게 다 뭐죠?"
“마을에서 가져온 선물이라네. 이건 루나르엘 님이 보내신 선물이고. 여기 있는 것은 마을 사람들이 보낸 것들이라네.”
루나르엘은 그렇다 쳐도, 마을 사람들이 보낸 선물도 만만치 않게 많고 귀해 보였다.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넬모란 장로는 씁쓸한 표정을 했다.
“이 선물들은 대부분 여기서 일하고 있는 엘프들의 가족이 보낸 거라네. 지난 일에 대한 사과의 의미도 있고, 또 잘 봐달라는 뜻도 있는 거겠지."
"흐음.”
아무래도 여기서 일하는 엘프들의 관리 권한을 내가 가지고 있다 보니, 걱정된 가족들이 보내는 뇌물인 듯했다.
사실을 알고 나니 테이블 위에 수북이 쌓인 선물들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쩝. 장로님. 다음에는 이런 선물들은 안 받을 테니까. 웬만하면 거절해 주세요."
“알겠네. 다음에 찾아 올때는 그렇게 하겠네."
다행히 넬모란 장로도 내 심정을
이해했는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이곳에 온 엘프들은 문제없이 잘 해내고 있는가?"
“네. 딱히 문제 될 만한 일은 없었고, 모두 열심히 일해주고 있어요. 솔직히 너무 열심히 일해서 부담스러울 정도입니다."
"허허, 그런가?"
내 대답을 들은 장로는 슬쩍 엘디르 경비대장 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세진 님 말대로 큰 문제 없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렇군.”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좀 더 많은 일을 시켜도 괜찮을 것 같은데. 세진 님의 마음이 너무 너그럽다 보니, 죗값을 치르는 의의가 사라질까 봐 조금 염려가 됩니다."
엘디르의 발언에 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엘디르 경비대장님.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그건 제가 너그러워서 그런 게 아니에요. 원래 이곳에는 정해진 노동 시간이 있단 말입니다.”
“그건 저번에 들어서 알고 있지만. 제 개인적인 의견을 말씀드린 겁니다. 혹시 기분이 나쁘셨다면 사죄드리겠습니다."
“쩝.”
그가 정중하게 고개까지 숙였고. 나는 할 말이 없어져 입맛을 다셔야 했다.
“그들에 대한 권한은 자네가 가지고 있으니, 자네 마음대로 해도 된다네. 그럼 이쪽 일은 잘 이뤄지고 있는 것 같고……”
넬모란 장로는 조금 더 진지해진
얼굴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세계수의 씨앗은 어떻게 됐는지
알려줄 수 있겠나?"
"씨앗은 잘 심어뒀어요. 아직 별다른 반응은 없지만 매일 시르엘 님과 함께 살펴보는 중이에요."
“저를 포함한 모든 경비대원이 돌아가며 씨앗을 지키고 있습니다. 안전은 문제없습니다."
"그렇군, 마을에서도 말이 많았지만, 우리는 자네가 잘 해낼 거라고 믿고 있네. 꼭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구먼."
그의 신뢰가 득한 눈빛에 나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그럼 내가 해야 할 중요한 이야기는 다 끝난 것 같네. 혹시 궁금한 점이나, 마을에 전해야 할 이야기가 있는가?"
"아! 하나 의논 드리고 싶은 일이 있는데."
"뭔가?"
“지금 일하고 있는 엘프들에 관한
일인데요. 그게……”
***
넬모란 장로는 이곳에 온 엘프들의 상황을 확인하고, 잠시 이곳에 머무르며 느긋한 시간을 보냈다.
여기서 쉬는 동안에는 대부분 퓨이와 세이 곁에서 시간을 보냈고, 떠나가면서도 두 아이와 헤어짐을 많이 아쉬워했다.
다음에 또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넬모란 장로가 떠나가고.
그 시간에 딱 맞춘 듯 오연우가 찾아왔다.
엘프 마을에서 돌아온 뒤로 연락은 자주 했지만, 다시 얼굴을 보는 것은 꽤 오랜만이었다.
“엘프 마을에서 찍은 사진, 영상들을 작업하느라 조금 바빴거든요. 워낙 좋은 사진들이 많아서. 그리고 이것 받으세요.”
오연우는 나에게 액자 하나를 건네 줬다.
그 액자에는 나와 이엘, 그리고 루나르엘과 시르엘이 함께 찍은 사진이 들어 있었다.
옆에서 액자 속 사진을 확인한 이엘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오연우는 기대감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엘, 어때? 사진 잘 나왔지?"
“네. 고맙습니다. 연우 삼촌!"
“흐흐. 그래그래.”
기뻐하며 삼촌이라 부르는 이엘의 모습에 오연우는 칠칠맞지 못한 웃음을 흘렸다.
이엘은 나에게서 액자를 받아 쪼르르 시르엘에게 달려갔다.
그녀도 액자 속 사진이 마음에 드는지 환한 미소를 지었다.
“형, 그것보다. 제가 저번에 부탁드린 건 어떻게 됐어요? 오늘 그 장로님 다녀가신 거 아니에요?"
“안 그래도, 그 말 하려고 했어."
"어떻게 됐어요? 허락받으셨어요? 아니면 안 된대요?"
숨이 넘어갈 것처럼 질문을 던지는 오연우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장로님께 허락은 받았어.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상관없다더라."
"와아! 그럼 저번에 제가 말했던 거 해도 되는 거죠?"
“그래, 그렇게 하자."
"으흐흐."
오연우는 곧바로 노트북을 꺼내 행복한 표정으로 뭔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열정
하나만큼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집으로 들어온 피렌느는 신난 오연우의 표정을 보고 내게 질문했다.
“세진 님, 연우 님은 뭐가 그렇게 신나신 거예요?”
“저번에 이야기했던 거, 드디어 넬모란 장로님께 허락을 받았거든요."
“아! 그럼 우리도 할 수 있는 거예요?"
“네. 이제 원하시면 언제든지 할 수 있어요."
"꺄아아! 이엘! 티아 공주님! 저도 이제 출현할 수 있데요!"
피렌느는 기쁨에 소리를 지르며 아이들에게로 뛰어갔다.
오늘 넬모란 장로에게 허락을 받은 내용은 바로 엘프들의 방송 출현에 관한 것이었다.
그에게 너튜브와 방송에 관한 원리를 설명하는 것이 조금 힘들었지만, 대충 이해한 그는 생각보다 쉽게 허락을 해줬다.
-자네에게 도움이 될만한 일이라면, 굳이 허락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자네가 원하는 대로 하게.
-그리고 경비대원이나 다른 엘프들도 원한다면 방송에 출연해도 상관없다네.
오연우는 엘프 마을에 다녀왔을 때부터, 엘프들이 출현하는 방송을 계획해 왔고, 피렌느 역시 계속 출현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피렌느의 소란스러움에 밀려 시르엘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약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휴, 저렇게 좋을까요?"
"하하. 계속하고 싶다고 했었으니까요. 그런데 시르엘 님은 괜찮으시겠어요?"
“솔직히 저는 조금 걱정스럽네요."
엘프들의 첫 방송 출현에는 피렌느와 함께 시르엘도 출현할 계획이었다.
그녀가 출현하게 된 계기는 피렌느와는 조금 달랐다.
피렌느가 단순히 자신의 호기심과 흥미 때문에 참가하게 된 것이라면, 시르엘은 스스로 엘프 마을의 대표로서 의무감을 가지고 이 계획에 참여하게 됐다.
“세진 님이 하시는 일에 폐를 끼치는 게 아닌지 모르겠네요.”
“절대 그럴 일은 없을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솔직히 말해서 아무 말 없이 화면에 나오기만 해도, 좋으면 좋았지 나빠질 일은 없을 것 같았다.
“형, 저 바로 내일 방송으로 공지 올릴게요."
"그렇게 빨리?"
“최근에 라이브 방송 안 하셨잖아요. 기다리는 분들도 많은데 빨리빨리 해야죠."
"하아. 그래 네가 알아서 해라."
"헤헤. 그럼 바로 올립니다.”
***
균숙자네 퓨이 채널 게시판에는 아주 오랜만에 공지글이 올라왔다.
제목은 [긴급 라이브 방송 공지!]
- '균숙자네 퓨이' 채널을 사랑해 주시는 구독자 여러분들 안녕하세요. 연우 PD입니다.
-오랜만에 라이브 방송 공지로 돌아왔습니다. 방송은 내일 오후 3시 입니다.
-라이브 방송을 오랫동안 기다리셨던 분들이 많았을 텐데요. 많이 기다리셨던 만큼 특별한 분들을 모셨습니다.
-처음 방송에 등장할 게스트의 정체는 서프라이즈를 위해 비밀로 남겨두고요. 최근에 균숙자님과 함께 여행을 다녀왔던 곳의 사진 몇장 올려두겠습니다.
- 방송 많이 시청해 주세요. 지금까지 연우 PD였습니다.
긴급 라이브 방송 공지에는 금방 많은 사람의 댓글이 달렸다.
-드디어 라이브 방송! 당연히 본방사수하겠습니다.
-라이브 방송 좀 자주 해줘요.
-게으른 연우 PD는 각성하라!! 각성하라!!
-으악! 내일 약속 잡아놨는데 ㅜㅜ
그리고 몇몇 사람들은 공지글에 함께 올려둔 사진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와아! 여기 어디냐? 한국은 아닌 것 같은데. 경치 끝내주네.
-진짜 사진이 아니라 그림 같다.
-어? 근데 세 번째 사진에 나온 사람 귀가 이상한데?
-그렇네, 몸 크기를 보아하니 이엘은 아닌 것 같고. 설마……?
-사진 속의 저 사람이 설마 비밀게스트??!!
-연우 PD 나쁜 놈이 이렇게 궁금하게 해놓고 하루를 기다리라고?
오랜만에 등장하는 새로운 게스트에 사람들의 궁금증과 예상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내일 계획된 방송에 대한 기대감도 같이 커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