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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균열에 산다-203화 (203/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203화

67. 엘프 마을 그리고 세계수(2)

루나르엘은 처음 보는 신기한 과일들과 달콤한 향기가 나는 음료를 가져다주면서 말했다.

“손님이 많이 오실 줄 알았으면 좀 더 준비해 놓을 걸 그랬어요. 대접할 게 별로 없어서 민망하네요."

"아뇨. 이렇게 대접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내가 대표로 감사 인사를 전하자 루나르엘은 은은한 미소를 짓더니,

내 옆쪽에 있는 이엘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엘, 너도 많이 먹으렴."

"감사합니다."

이엘의 어색한 대답에도 그녀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집 구경에 정신이 팔려있던 티아는 신기한 과일들을 발견하고 새롭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거 먹어도 돼?”

“네. 마음껏 드세요."

"고마워. 잘 먹을게."

루나르엘에게 짧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는 과일들을 하나씩 집어 먹기 시작했다.

"으음. 세진! 이거 엄청 맛있어. 이엘. 너도 빨리 먹어."

티아는 겁도 없이 처음 보는 과일들을 덥석 집어 먹더니 그 맛에 감탄하며 나와 이엘을 부추겼다.

눈치를 보던 오연우는 슬쩍 과일과 음료를 맛보더니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와아. 이거 진짜 맛있는데요? 진혁이 형도 한번 드셔보세요.”

과일의 맛에 감탄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하자 머뭇거리고 있던 사람들까지 조심스럽게 과일에 손을 뻗었다.

나는 복숭아와 생김새가 비슷한 노란색 과일을 하나 베어 물었다.

"으음!"

과육을 베어 물자마자 청량음료를 마신 것처럼 상쾌한 기분이 입안 가득 퍼져나갔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쫄깃한 느낌의 과육은 씹으면 씹을수록 달콤한 맛이 흘러나왔다.

신기한 맛과 식감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손에 든 과일을 순식간에 전부 먹어버렸다.

나머지 일행들도 과일 맛이 마음에

들었는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리가 신비한 맛에 빠져 정신없이 과일을 집어 먹었고 금세 가져온 과일들을 비워냈다.

루나르엘은 깨끗이 사라진 과일들을 보고 입가를 가리고 작게 웃었다.

“입맛에 맞으셨나 보네요. 정말 다행이에요."

"아…… 네. 정말 맛있었습니다.”

나는 집주인을 앞에 두고 너무 먹는 것에 집중했던 것 같아, 멋쩍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 대답을 끝으로 방 안에는 잠시 어색한 침묵이 맴돌았다.

엘프어를 할 줄 모르는 임진혁과 오연우는 당연히 입을 열지 않았고, 티아도 딱히 이야기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시르엘 역시 조용히 침묵을 유지했다.

한편 루나르엘은 계속 이엘의 눈치를 보고 있었는데,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엘이 너무 긴장한 듯한 모습을 보이니 섣불리 말을 걸지 못하는 듯 보였다.

그 모습이 약간 안쓰럽게 느껴져 내가 먼저 침묵을 깨고 말을 꺼냈 다.

"저…… 루나르엘 님. 혹시 저희가 무슨 일로 엘프 마을에 초대됐는지 알 수 있을까요?"

내 질문에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다.

"확정된 건 아니지만 세계수가 있는 곳에 세진 님을 데려갈 생각이에요.”

"저를요?"

“네. 세계수에서 세진 님을 모셔오라는 말을 전해 들었거든요. 물론 아직 장로회의 허락이 필요하긴 하지만."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옆에 있던 시르엘이 설명을 덧붙였다.

"세계수에 접근하려면 마을 사람이라도 장로회의 허락이 필요해요. 근데 세진 님은 외부인이라서 장로회에서도 고민 중일 거예요."

그때 가만히 듣고 있던 티아가 불쑥 말을 꺼냈다.

"왜 막는 거야? 세계수가 데려오라고 했으면, 그냥 데려다주면 되는 거 아냐?"

“물론 그렇게 간단한 일이면 좋겠지만, 저희 엘프들에게는 역사적으로 안 좋은 선례가 있어서, 외부인을 쉽게 세계수로 들여보내지 않으려 해요."

시르엘의 친절한 설명에 티아는 뭔가 불만인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더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나도 석연치 않은 부분에 대해서 굳이 더 캐묻지는 않았다.

초대받은 입장에서 그들의 내부 사정까지 참견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드문드문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는 와중에, 누군가 루나르엘의 집으로 찾아왔다.

시르엘이 나가 찾아온 엘프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더니, 루나르엘에게 다가가 뭔가를 조용히 속삭였다.

"죄송해요. 일이 생겨서 나가봐야 할 것 같은데.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 주실래요?"

“네. 알겠습니다."

루나르엘과 시르엘은 편하게 있으라는 말을 남겨두고, 찾아온 엘프와 함께 집을 나섰다.

급하게 집을 떠난 둘을 보며 임진혁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인데 우리만 남겨두고 급 하게 가는 거야?"

“저도 잘 몰라요. 그냥 급한 일이 생겼다고, 편하게 기다리고 있으라는데요."

"흐음."

그는 약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티아와 오연우는 금방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통해 엘프 마을을 구경했다.

심심해진 나도 이엘과 함께 창문 쪽으로 다가갔다.

루나르엘의 집이 마을 높은 곳에 있다 보니, 창문을 통해서 엘프 마을의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 찰칵! 찰칵!

오연우는 신비한 엘프 마을의 풍경에 취해 쉴 새 없이 카메라를 움직였다.

“연우야. 너무 막 찍어대는 거 아냐?"

"형. 이런 데 언제 와보겠어요. 한 번 왔을 때 제대로 남겨놔야죠. 그리고 이것도 보세요."

그가 보여준 카메라 화면에는 아까

넬모란 장로와 칼도르가 싸우는 모습이 동영상으로 촬영돼 있었다.

나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오연우를 바라봤다.

“너는 언제 이런 걸 찍고 있었냐?"

“흐흐. 이거 제대로 찍힌 것 같죠?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영화의 한 장면이라고 생각할걸요."

그의 말대로 확실히 영상 속 넬모란 장로와 칼도로, 그리고 엘프 마을의 풍경은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특히 마지막에 루나르엘의 등장은 더욱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형, 나중에 엘프들이 한 말 번역 좀 해주실래요? 번역만 해서 올려도 너튜브에 조회수 천만은 나올 것 같은데."

“너도 참 여러 가지 의미로 대단하다.”

나는 오연우의 열정에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루나르엘과 시르엘이 떠난 지 꽤 시간이 흐르고.

창문을 통해 엘프 마을을 구경하는 것도 질려, 기다림에 지쳐갈 때쯤.

-똑. 똑. 똑.

누군가 찾아왔다.

루나르엘과 시르엘이었다면 집 문을 두드리지도 않았을 텐데, 갑작스러운 방문자에 우리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세진이 형. 어떻게 해요?"

"으음. 집주인도 아닌데 문 열어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와중에 문 건너편에서 방문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혹시 세진 님 안 계십니까? 루나르엘 님이 보내서 찾아왔습니다.

내 이름을 부르며 찾는 목소리에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문 쪽으 로 향했다.

문을 열자 남자 엘프 한 명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세진 님 되십니까?"

“네. 접니다만."

"루나르엘 님이 세진 님을 찾으십니다. 함께 가주시죠."

엘프와 잠시 대화를 나누고 있자, 기다림에 지친 일행이 내 뒤쪽으로 다가왔다.

“세진아. 무슨 일이래?"

“저도 잘은 모르겠는데. 루나르엘 님이 부른다고. 자기를 따라와 달라는데요?"

“그럼 나도 같이 가자."

"형. 저도 갈래요."

"나도!"

임진혁을 시작으로 말없이 내 팔을 붙잡는 이엘까지.

모두 나를 따라나서려 하자 남자 엘프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만. 나머지 분들은 이 곳에 계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나 출입할 수 없는 곳이라."

남자 엘프의 말에서 대충 의도를 파악한 임진혁은 어림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세진아. 허튼수작 부리지 말고. 무슨 일이 있어도 따라간다고 전해줘라.”

임진혁이 은근히 험악한 기세를 끌어올리며 경고하자, 대충 분위기를

파악한 남자 엘프는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대신 끝까지 함께 하실 수는 없을 겁니다.”

일단 우리는 남자 엘프를 따라 길을 나섰다.

그는 우리를 이끌고 마을 중심부 쪽으로 향했다.

사람이 많은 도심처럼 북적거리지는 않아도, 마을에 사는 꽤 많은 엘프가 우리를 주시했다.

정확히는 시골 마을에 찾아온 외국인을 보는 듯한 반응이었다.

어린 엘프들은 가까이서 우리를 구경하기 위해 슬금슬금 다가왔고, 어른들은 그런 어린 엘프들을 단속하며 우리를 힐끔거렸다.

그중에는 아까 오연우에게 칼을 들이밀었던 경비대원도 보였다.

"아! 잠깐만요."

오연우는 그 경비대원 발견하고는 일행을 빠져나가 그에게로 다가갔다.

우리는 물론이고 안내하던 남자 엘프도 당황하는 사이 오연우는 어느 새 그 경비대원 앞에 섰다.

칼을 꺼내 들지는 않았지만,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는 경비대원에게 오연우는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그에게 전해줬다.

종이처럼 보이는 뭔가를 전해 받은 엘프는 환하게 미소를 짓더니 오연우와 친근하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서로 손까지 흔들며 헤어진 오연우는 다시 일행에 합류했다.

“뭐야? 무슨 짓을 하고 온 거야?"

“딴건 아니고. 아까 찍은 사진을 휴대용 프린터로 뽑아놨었거든요. 그래서 선물로 전해줬어요. 엄청나게 좋아하던데요."

오연우가 신난 표정으로 웃고 있을 때.

우리를 안내하던 남자 엘프가 내게 말을 건넸다.

"세진 님. 가능하면 다른 분들이 무리에서 빠져나가는 행동은 자제해 달라고 전해주시겠습니까?"

"죄송합니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남자 엘프의 주의를 받은 일행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마을 중심부를 빠져나와 우리가 도착한 곳은 높은 곳에 위치한 나무 건물이 있는 곳이었다.

아기자기한 다른 마을의 건물들과는 다르게 꽤 규모가 큰 건물이었다.

나무 건물 앞에는 경비대원들이 삼엄하게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우리를 안내한 남자 엘프는 잠시 그 경비대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여기입니다. 이곳은 저도 함부로 출입할 수 없으니, 세진 님만 입장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나만 들어가야 한다는 말에 임진혁이 다시 험악한 기세를 내뿜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입구를 지키고 있던 엘프들 역시 흉흉한 기세를 내보이며 임진혁을 노려봤다.

아무래도 억지로 들어가려 했다가는 무력 충돌이 일어날 것으로 보였다.

"형. 저 혼자 다녀올게요."

"괜찮겠어?"

“저도 한 수는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연우랑 아이들 부탁할게요."

임진혁은 내 부탁에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줬다.

나는 불안한 표정의 이엘을 잠시 달래준 뒤, 홀로 커다란 건물 입구로 입장했다.

기다리고 있던 경비대원의 도움을 받아 입구로 들어가자.

안쪽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럽게 외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전세진 님?"

“네. 제가 전세진입니다."

"따라오시죠."

또 다른 남자 엘프의 안내를 받아 커다란 방 문 앞에 도착했다.

문 너머로 아까 들렸던 소란스러운 외침이 생생하게 들려왔다.

남자 엘프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리자.

문 너머에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잦아들었다.

문이 열리고 내가 안쪽으로 들어서자 커다란 방 안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둥근 원 모양의 거대한 탁자에 많은 엘프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고, 그중에는 익숙한 엘프들의 모습이 보였다.

우리를 데려왔던 넬모란 장로부터,

첫인상이 좋지 않은 칼도르.

나머지 자리에도 나이가 꽤 많아 보이는 엘프들로 가득했다.

루나르엘도 그 중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 옆에는 시르엘이 서 있었다.

모든 엘프의 시선이 나에게로 집중되자 약간 뻘쭘한 기분을 느끼고 있는 와중에.

자리에 앉아 있던 누군가가 나직하게 말을 꺼냈다.

“저 인간이 세계수의 부름을 받았다는 인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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