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균열에 산다 201화
66. 세계수에서 온 초대(3)
내가 엘프 마을로 가겠다는 결정을 내리자, 넬모란 장로와 시르엘은 크게 흡족해했고.
내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이엘 역시 내 결정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내가 결정을 내리면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곧바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엘프어를 알아듣지 못해 뒤늦게 내 결정을 알게 된 임진혁.
그는 내가 엘프 마을로 간다는 말을 듣자마자 무조건 자신도 함께 따라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곳에 무슨 생각으로 혼자 가려는 거야?"
"으음. 여차하면 균열 능력으로 도망치면 되니까…...”
“그래도 안 돼. 이엘도 함께 가는 거라며? 무조건 나도 따라갈 거니까, 저 엘프한테도 그렇게 전해.”
그는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른다며 무조건 따라나서겠다 선언했다.
위험할지 모른다고 말하면서도 나와 이엘을 지키려는 임진혁의 마음이 든든하게 느껴졌다.
"넬모란 장로님. 다른 일행을 마을에 함께 데려가도 괜찮겠습니까?"
"흐음."
그는 턱을 쓰다듬으며 잠시 고민하더니, 생각보다 쉽게 다른 일행의 동행을 수락해 줬다.
“그렇게 하게. 일행이 좀 더 늘어난다고 해서, 내 원래 임무가 실패하는 것도 아니니.”
“감사합니다. 장로님."
“감사 인사는 됐네. 손님을 초대하는 입장인데 당연히 어렵게만 굴 수 없지."
넬모란 장로는 별일 아니라는 듯 허허롭게 웃었다.
임진혁에게 엘프 마을까지 동행해도 된다고 전하니, 그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 세진, 이엘, 이렇게 세 명이 가는 건가?"
"잠깐!"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거실 쪽에서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 튀어나왔다.
“저도! 저도 갈래요."
"나도 갈 거야!"
다급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오연우와 티아였다.
나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오연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연우야. 너 우리가 어디 가는지는 알고 그러는 거야?"
"당연하죠. 형이 엘프 마을에 초대 받아 가는 거잖아요. 그 세계수인가 뭔가 때문에."
생각보다 상황을 자세히 알고 있는 오연우를 보며, 나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헐? 그건 어떻게 알아들었냐?"
"헤헤. 내가 해석해 줬어."
"아.…..”
해맑게 웃고 있는 티아의 모습을 보면서 뒤늦게 그녀가 엘프어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형, 제발! 저도 엘프 마을 구경해 보고 싶어요."
"세진, 나도 엘프 마을 가보고 싶어."
간절한 눈동자로 나에게 매달리는
오연우와 티아.
"끄응......"
내가 난처한 표정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넬모란 장로가 가볍게 말을 걸었다.
“일행이 좀 늘어나더라도 상관없네.”
"괜찮겠습니까?"
“한둘 늘어난다고 설마 큰일이 벌어지겠나. 그리고 엘프 마을에 방문하는 것이 흔치 않은 기회기도 하니까.”
"세진 들었지? 우리도 데려가도 된대.”
넬모란 장로가 저렇게까지 이야기 하는데, 더 이상 티아와 오연우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할 수 없었다.
"하아. 알았어. 너희도 함께 가자."
"아싸!"
“이엘이랑 같이 엘프 마을에 간다! 꺄하하하!"
어렵게 내 허락이 떨어지자.
오연우는 신난 표정으로 촬영 장비들을 챙겼고, 티아는 신나게 웃으며 이엘의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이엘도 티아와 함께 엘프 마을에 가는 것이 기쁜지 활짝 미소를 지었다.
기뻐하는 아이들과 신난 오연우의 모습에 넬모란 장로와 시르엘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고, 나는 약간 불안한 마음이 앞섰다.
***
나와 임진혁, 오연우. 그리고 티아와 이엘.
엘프 마을로 가게 된 5명은 각자 짧게 여행 준비를 시작했다.
함께 가지 못하게 된 퓨이와 모렛, 세이는 떠날 준비를 하는 우리를 보면서 굉장히 아쉬워했다.
아이들을 다 함께 데려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임진혁의 말대로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는 곳에 아이들 모두를 데려 가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웠다.
나는 미리 연락을 보내 통나무집에 도착한 아주머니와 아저씨에게 남은 아이들을 부탁했다.
“퓨이야. 나 없는 동안 세이 잘 돌봐주고. 마정석은 맨날 두는 위치에 넉넉하게 담아놨으니까. 평소처럼 사용하면 돼. 알았지?"
"퓨이!"
퓨이는 아쉬워하는 기색을 숨기면서, 꽤 의젓하게 내 말에 대답했다. 든든한 퓨이의 모습에 나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모렛. 너는 나 없다고 맥주 너무 많이 마시지 말고, 특히 아저씨 꼬드김에 넘어가면 절대 안 된다. 무조건 아주머니 말씀만 들어야 해. 알았지?"
“후모. 후모.”
모렛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대답했지만, 내심 불안해져 아주머니에게 잘 부탁한다는 눈빛을 보냈다.
“크흠. 내가 꼬드기긴 뭘 꼬드긴다고……”
“내가 잘 감시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 세진아."
중간에 아저씨의 볼멘 목소리는 상냥한 아주머니의 말에 금방 묻혀버렸다.
나는 마지막으로 세이를 바라봤다.
-뀨우우. 뀨우.
이 눈치 빠른 녀석은 내가 떠난다는 사실을 알아챘는지, 평소보다 더 진한 애교를 부리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녀석……”
약간의 슬픔이 느껴지는 녀석의 애교에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세이야. 퓨이랑 아주머니 말 잘 듣고 있어. 금방 다녀올 테니까."
- 삐이익!
걱정이 담긴 내 당부에 세이는 힘찬 울음소리를 냈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을 한 명씩 쓰다듬어 주고, 아저씨와 아주머니와의 마지막 인사를 끝으로 집 밖으로 나섰다.
"빨리 와요! 세진 님."
"세진! 빨리!"
떠나는 일행들 중 가장 신이 난 피렌느와 티아가 나를 재촉했다.
엘프 중에서는 시르엘과 피렌느만 우리와 함께 엘프 마을로 떠나기로 했다.
나머지 엘프들은 여기서 기다리며 약초밭을 돌봐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제 출발해도 되겠나?”
넬모란 장로는 일행을 둘러보며 질문을 던졌고 각자의 짐을 챙긴 일행들을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휘이이익!
넬모란 장로가 입으로 휘파람 소리를 내자, 아까 봤던 거대한 새들이 하늘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 장로님?"
"왜 그러는가?"
“설마 이 새를 타고 가는 건가요?"
"허허, 당연하지. 이게 가장 빠르게 마을로 되돌아가는 방법일세."
“.…...”
- 삐이이익!
눈앞의 새는 마치 자신만 믿으라는 듯, 울음소리와 함께 날개를 힘차게 퍼덕였다.
일단 시르엘과 피렌느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 아무렇지 않은듯했고, 티아와 이엘은 오히려 신난 표정으로 새의 등에 올라탔다.
"와! 엄청 푹신푹신하다. 그리고 따뜻해."
"정말이네요."
둘은 마치 놀이동산에서 놀이기구를 탄 것처럼 신나 보였다.
임진혁은 약간 긴장한 표정이었지만, 넬모란 장로의 도움을 받아 새에 올라탔다.
남은 것은 나와 오연우 뿐.
오연우는 반쯤 죽어버린 표정으로 거대한 새를 하염없이 쳐다볼 뿐이었다.
“뭐 하는 건가? 어서 오르지 않고?"
넬모란 장로는 꿈쩍도 하지 않는 우리 둘을 보며 재촉하기 시작했다.
-꿀꺽.
나는 침을 크게 한번 삼키고 오연우보다 먼저 새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올라가면 깃털을 강하게 붙잡고 있으면 된다네.”
넬모란 장로의 말이 끝나자마자, 내 몸은 알 수 없는 기운에 휩쓸려 허공에 붕 떠올랐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새 등에 안착한 뒤였다.
"으으으......”
오연우는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새 쪽으로 다가왔고. 넬모란 장로의 도움으로 새의 등에 올라타고 난 뒤에는, 마치 혼이 빠져나간 듯한 표정을 지었다.
마지막으로 넬모란 장로가 올라타자, 우리를 태운 세 마리의 새들이 각자 날갯짓을 하기 시작했다.
"잘 다녀와!"
"퓨이!"
“후모! 후모!"
- 삐이이익!
아저씨와 아주머니, 아이들의 인사가 날개가 일으키는 바람 소리에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곧이어 붕 떠오르는 느낌과 함께 주변의 풍경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휘이이익!!
"우어어어어억!!"
오연우의 처절한 비명이 날카로운 바람 소리에 묻힐 때쯤.
세 마리의 새는 통나무집과 호수가
아주 작게 보일 정도로 높은 하늘 위로 올라갔다.
엄청난 속도에 감탄하는 사이.
세 마리의 새는 나란히 구름 위까지 도달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분명 아주 빠른 속도로 나아가고 있는데, 새의 등 위에는 아주 잔잔하고 편안한 바람만 흐르고 있었다.
"어?"
내가 이상함을 느끼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자, 넬모란 장로는 입꼬리를 올리며 내게 설명했다.
“내가 정령의 힘으로 바람을 조절하고 있으니 안심하게 그냥 편안하게 있으면 된다네.”
“아…… 그렇군요.”
생각보다 훨씬 편안한 비행에 나는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다른 새 등위에 있는 나머지 일행들도 모두 편안한 모습으로 비행을 즐기고 있었다.
물론 오연우는 아직도 반쯤 정신이 나간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나도 긴장을 풀고 좀 더 편안한 상태로 주변 풍경을 감상하기 시작 했다.
구름 아래에 풍경은 한참 동안 숲과 산맥만 계속되다가, 어느 순간 초원이 나타났고, 곧이어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간간이 보이기 시작했다.
너무 멀어서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마을에는 영화 속에서나 볼법한 아주 옛날 양식의 건물들이 가득했다.
점처럼 보이는 마을과 훨씬 큰 규모의 도시도 몇 개 지나고 산맥과 초원, 숲을 수없이 지나갔다.
풍경을 구경하는 것도 점점 지겨워
졌을 때쯤. 넬모란 장로의 입이 열렸다.
"세진, 앞을 보게나."
“네?”
"저기 멀리 보이는 거대한 나무가
세계수라네."
“아…...”
아주 멀리서 커다란 나무가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분명 멀리 있는데도 그 신비한 기운이 이곳까지 전달되는 기분이었다.
“이제 곧 마을에 도착하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꽤 지겨웠나 보군.”
“처음에는 하늘의 풍경이 꽤 신기했는데 지금은 좀 지겨워지던 참이었거든요."
“허허. 나는 잘 모르지만, 외부인에게 엘프 마을은 꽤 진귀한 구경거리라고 하니, 조금만 참게."
넬모란 장로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하늘 높이 날던 세 마리의 새는 점점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빽빽한 숲 사이로 엘프 마을의 모습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거대한 몸집의 새는 빽빽한 나무들을 능숙하게 피하더니, 널찍한 공터에 부드럽게 안착했다.
"도착했네."
넬모란 장로는 도착을 알리는 말과 함께 훌쩍 새 위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친절하게 일행들을 하나씩
새의 등 위에서 내려주었다.
모든 일행이 땅에 발을 내렸을 때.
"수고했다. 어서 쉬도록 해라."
- 끼이이이익!
넬모란 장로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세 마리의 새들은 힘찬 울음소리와 함께 하늘로 날아올랐다.
"고마워! 나중에 보자!"
"안녕!"
- 끼이이이익!
이엘과 티아가 크게 작별 인사를 하자 새들도 이에 화답하듯 길게 울음소리를 냈다.
일행이 멀어지는 새를 바라보는 사이.
주변 숲에서 많은 인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손님을 데려왔네. 모습을 드러내게나."
아무도 보이지 않는 숲에 넬모란 장로가 말을 걸자, 수많은 엘프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활과 검으로 무장한 엘프들은 경계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우리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중 대표로 보이는 엘프가 나무에서 훌쩍 뛰어내려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날카로운 인상에 차가운 눈빛을 가진 남자 엘프였다.
"넬모란 장로님께 인사드립니다."
“오랜만일세 경비대장, 수고가 많네.”
“이분들 모두 마을의 손님인 겁니까?"
“그렇다네.”
“장로회의 허락이 떨어진 겁니까?"
“허허. 그건 이야기가 좀 길어질 것 같은데."
"......"
경비대장이라 불린 엘프는 잠시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우리를 향해 예를 갖추며
인사를 전했다.
“엘프 마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