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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균열에 산다-199화 (199/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199화

66. 세계수에서 온 초대(1)

맥주로 엘프들이 기절하고 난 후 며칠이 지났다.

그때 엘프들은 큰 실수를 저질렀다며 나에게 굉장히 미안해했고, 나는 몇 번이고 괜찮다며 손을 내저어야 했다.

솔직히 엘프가 실수했다기보다는 너무 텐션을 끌어올린 아저씨의 잘못이 더 컸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그 일이 있고 난 이후로 알게 모르게 거리감이 줄어든 기분이 들었다.

숙취에 너부러져 있는 모습은 엘프의 환상은 깨뜨렸을지 몰라도, 굉장히 친근감을 들게 했던 것 같다.

엘프를 약간 불편해하던 임진혁도, 그날 이후로는 엄청 자연스럽게 엘프들을 대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술자리 였다.

아무튼.

그 술자리를 계기로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우리 가족과 엘프는 좀 더 가까워 질 수 있었다.

***

평범한 오후.

오늘도 평상시처럼 각자의 할 일을 찾아서 해나가고 있었다.

나는 오전에 길드 건물에 들려 길드장으로 확인해야 할 일들을 처리했다. 대부분 서율희가 완벽하게 정리해놔서 확인만 하면 되지만, 길드장으로서 최대한 꼼꼼히 서류를 확인했다.

일을 처리하는 도중 서율희와 김유미는 함께 지내고 있는 엘프들에게 관심을 보였다.

이번 주말에 놀러 가도 되겠냐는 제안에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후 일찍 길드 일을 끝내고 집으 로 돌아가니.

전혀 예상하지 못하게 친해진 두 사람이 거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와아. 이건 뭐할 때 쓰는 물건인가요?"

"이거요? 이건 휴대용 조명인데, 자! 보세요."

-파앗!

“아앗! 어둠을 밝히는 물건이네요. 엄청 환하다."

“이건 촬영할 때 밝기를 조절하는 장비입니다."

오연우는 자신의 방송 장비를 하나씩 설명해 주고 있었고, 피렌느는 특유의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방송 장비를 살피는 중이었다.

어찌 보면 둘 다 평소의 모습 그대로라고 할 수 있었지만.

서로 엘프어와 한국어로 이야기를 나누는데도 의사소통이 되는 것 같다는 점이 굉장히 기묘했다.

"아빠!"

"퓨이!"

- 뀨우우.

“그래. 잘 놀고 있었어? 티아랑 모렛은?"

"진혁 아저씨랑 맥주 만들러 갔어요.”

"티아도?"

“네.”

내가 마중 나온 아이들을 한 번씩 쓰다듬어주고 있을 때, 뒤이어 시르엘도 모습을 드러냈다.

"오셨어요?"

“네. 다른 엘프 분들은 안 보이네요?"

“몇 명은 맥주 만드는 곳에 갔고......"

"엘프분들도요?"

엘프도 맥주를 만드는 창고에 있다는 말에 깜짝 놀라 되물었다.

"예. 며칠 전부터 맥주 만드는 데 관심을 보여서. 같이 함께해도 괜찮냐는 제안에 제가 허락했어요.”

"쩝..…."

맥주 사건 때 엘프들이 안 좋은 모습을 보이긴 했어도, 맥주 맛은 꽤 마음에 들었나 보다.

엘프들이 함께 맥주를 만들고 있다는 말에 약간 걱정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떤 맥주가 만들어질지 기대가 됐다.

“그리고 나머지는 잠시 경계 밖으로 나갔어요. 마을에서 연락이 오는 날이라. 아마 저녁쯤에는 돌아올 거예요."

내가 시르엘과 이야기를 나누며 거실 쪽으로 향하자, 뒤늦게 나를 발견한 오연우와 피렌느가 인사를 건넸다.

"형. 왔어요?"

"수고하셨어요. 세진 님."

분명 둘은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이일 텐데, 굉장히 친근해 보이는 모습에 약간 얼떨떨할 정도였다.

“너는 언제 그렇게 피렌느 님이랑 친해진 거야?"

"하하, 피렌느 님이 방송 장비에 관심이 많으시더라고요. 이것저것 설명해드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르엘과 아이들이 함께 방으로 들어가고.

거실에는 나와 오연우, 피렌느만 남게 되었다.

"형. 다음 방송에는 피렌느 님을

출현시키는 게 어떨까요?"

"피렌느 님을?”

“네. 제가 우리 채널의 영상들을

보여드리니까. 방송에 굉장히 관심이 많으신 것 같더라고요.”

"흐음."

오연우의 제안에 내가 잠시 고민을 하는 사이.

한국어로 나눈 대화라 정확히 알아 듣지는 못했지만, 자신이 언급됐다는 사실을 인지한 피렌느가 끼어들었다.

“세진 님. 혹시 저도 이렇게 신기

한 기계에 나올 수 있나요?"

“촬영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이분 설명으로는 이 신기한 기계들을 이용하면, 이렇게 움직이는 그림으로 남길 수 있다고 했거든요.”

“가능하긴 한데……”

“그럼 저도 해주시면 안 될까요? 꼭 체험해 보고 싶거든요. 부탁드릴게요. 세진 님.”

한 명은 촬영하고 싶어 하고, 나머지 한 명은 출현하고 싶어 하니. 완벽한 만남이 아닐까 싶었다.

“단순히 촬영만 하는 거라면 상관 없습니다. 지금 당장에라도 체험할 수 있어요."

“와아앗! 감사합니다."

내가 긍정적으로 답변하자 피렌느는 잔뜩 신난 표정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피렌느의 기뻐하는 행동에 오연우가 궁금함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형, 무슨 대화를 나누신 거예요?

우리 채널 영상에 출연하시겠대요?"

“일단 촬영을 체험해 보고 싶으시대.”

“오오. 좋네요. 말이 안 통해서 촬영해도

괜찮을지 망설이고 있었는데.”

“대신 방송에 출연하거나 채널에 영상을 올리는 건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거야."

단순히 촬영만 해서 보여주는 정도는 상관없어도.

그 영상을 너튜브 채널에 올리거나, 방송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피렌느에게 너튜브와 방송이 어떤 원리로 이루어지는지 충분한 설명이 필요했다.

지금 당장은 피렌느에게 그 원리를 설명하고 이해시키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오연우도 이런 일이 자주 있다 보니, 곧바로 내 의도를 파악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금 당장 촬영부터 시작해 볼까요?"

그는 신난 표정으로 이것저것 방송을 세팅하기 시작했다.

방송할 때 사용하는 카메라도 설치하고, 아까 보여줬던 휴대용 조명, 마이크도 능숙하게 위치시켰다.

"형. 끝났으니까. 피렌느 님한테 준비됐다고 전해줘요."

나는 오연우의 부탁대로 피렌느에게 말을 전했다.

“피렌느 님. 촬영 준비 끝났대요."

"아. 그런가요?"

“그냥 하고 싶은 말을 아무렇게나 해보세요."

그녀는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카메 라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세계수 마을에서 온 엘프, 피렌느라고 해요. 나이는 79살이고, 약초 채집을 잘해요. 그리고…….”

한동안 자기소개에 가까운 피렌느의 이야기가 이어지다가, 몇 분 뒤에 이야기는 끝을 맺었다.

“이제 더 할 말이 없는데, 이렇게 하면 되는 건가요?"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동안, 오연우는 촬영한 영상을 노트북으로 전송해서, 화면에 방금 촬영한 영상을 재생시켰다.

- 안녕하세요. 저는 세계수 마을에서 온…….

노트북 화면에 자신의 모습이 나오자 피렌느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와아! 정말로 금방 제 모습이 이 기계에 담기네요. 이건 도대체 무슨 원리인가요?"

“저도 정확한 원리는 몰라서……”

"아아. 확실히 이렇게 대단한 마법 물품이라면, 엄청난 마법사가 만든 거겠죠?"

노트북과 방송 장비들을 보면서 마법 물품이라 오해하는 피렌느.

뭐라고 설명해 오해를 풀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 끼이이이익!!

뭔가 엄청난 울음소리가 집 밖에서 들려왔다.

나와 오연우가 깜짝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사이, 피렌느가 빠르게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녀의 행동에 우리가 당황하는 동안.

아이들과 함께 있던 시르엘이 급하게 방에서 나오더니, 역시 피렌느와

마찬가지로 집 밖으로 향했다.

- 끼이이이익!!

두 번째 울음소리가 들려오자 나와 오연우도 시르엘과 피렌느를 따라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니.

이미 마당에는 맥주를 만들던 임진 혁과 엘프, 방금 집에서 나선 시르엘과 피렌느가 모두 함께였고.

그들은 하나같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올려다본 하늘에는 새 세 마리가 우리의 머리 위를 배회하고 있었다.

내가 멍하니 하늘을 나는 새를 구경하고 있을 때, 시르엘이 급하게 말을 걸었다.

“세진 님, 마을에서 우리를 찾아온 것 같아요."

"예? 그…… 세계수를 지키는 마을이요?"

“네. 맞아요. 세진 님. 저분들이 이 곳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실 수 있을까요? 부탁드릴게요."

"으음......"

내가 선뜻 부탁을 수락하지 못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자, 시르엘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번처럼 불편한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 맹세할게요."

확신에 찬 그녀의 모습에 나는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나는 능력을 사용해 균열의 경계를 풀었고, 경계가 사라지자 하늘을 날던 새들은 빙글빙글 돌면서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새들과 조금씩 가까워지자 그들의 엄청난 크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와아...... 엄청 크다.”

오연우의 중얼거림처럼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들은 정말 엄청나게 컸다.

거대한 날개를 펼치고 있으니 세

마리만으로도 하늘을 뒤덮는 느낌이었다.

-휘이이익! 쿵!

세 마리 중 한 마리가 마당에 엄청난 바람을 일으키며 지면에 발을 내렸다.

나머지 두 마리는 앞마당에 자리가 부족해 뒷마당에 내려앉았다.

가까이서 본 새는 거대한 덩치에 새하얀 깃털에 붉은색 무늬를 가지고 있었고, 약간 신비한 분위기를 뽐냈다.

나와 임진혁, 오연우가 새의 신비한 분위기에 취해 있을 때, 새의 등 쪽에서 누군가 훌쩍 뛰어내렸다.

새가 워낙 크다 보니 꽤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듯 보였다.

정체불명의 누군가 모습을 드러내자 시르엘을 포함한 모든 엘프가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오셨습니까. 장로님."

회색 머리칼에 약간 주름진 얼굴.

인간으로 치면 50대 정도로 보이는 엘프였다.

그는 가볍게 손을 들어 엘프들의 인사를 받아준 뒤, 곧장 우리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갑자기 찾아뵙게 돼서 죄송합니다. 혹시 누가 이곳의 주인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그는 누가 주인인지 공손하게 물었고, 임진혁과 오연우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내 쪽으로 향했다.

중년의 엘프는 그 눈길을 알아보고 나를 향해 다시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세계수를 지키는 마을의 장로, 넬모란이라고 합니다."

“아...... 예. 전세진이라고 합니다.”

나는 일단 얼떨결에 같이 고개를 숙이고 이름을 밝혔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와중, 시르엘이 내 마음을 대변하듯 질문을 던졌다.

"넬모란 장로님. 여기까지는 무슨 일로……"

“시르엘. 카셀르에게 이야기는 전해 들었다. 아르엘의 일은 안타깝게 됐구나."

“.......”

“그건 이미 지나간 일. 남아 있는 우리는 주어진 사명을 계속해 나가야 해."

그는 시르엘에게 대답을 마친 뒤, 나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세진 님. 아마 시르엘에게 대충 사정을 들으셨을 거라 생각됩니다."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카셀르와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서도 전해 들었습니다. 마을을 대표하는 장로로서 먼저 사죄를 드리겠습니다."

그는 다시 한번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나는 살짝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괜찮습니다. 시르엘 님에게도 사과를 받았고, 이미 지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신다면 정말로 다행입니다."

내 대답에 그는 살짝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세진 님. 갑자기 찾아와 죄송하지만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

“저와 함께 세계수가 있는 곳으로

가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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