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균열에 산다-189화 (189/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189화

63. 불안한 변화(1)

첫 번째 팬 미팅을 무사히 마치고 나와 가족들에게는 평온한 일상이 이어졌다.

성공적이다 못해 환상적이라고 평가받은 팬 미팅 때문에 많은 너튜브 구독자들을 안달나게 했다.

수많은 추가 이벤트 요청이 이어졌으나, 집으로 초대하는 이벤트나 2차 팬 미팅은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다.

조금 더 많은 사람이 아이들과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만들려고 생각 중인데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충분한 공간의 장소를 빌리는 문제나, 행사를 진행하기 위한 직원, 불미스러운 사고를 막기 위한 경호 인력까지.

준비해야 할 일들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대신 너튜브에 소홀했던 기간이 길었던 만큼 최근에는 오연우와 함께 열심히 영상을 찍어 올려서 그나마 구독자들의 아쉬운 마음을 달래줬다.

약간은 불안하던 길드도 자리를 잡아 내부적인 문제는 거의 다 해결했다.

숱한 화제를 이끌었던 바위산 둥지 균열 뒤에 약간의 공백기가 있었는 데, 그 뒤로 조용히 배정받은 균열을 클리어하면서 경험을 쌓아 나가는 중이었다.

****

한편 통나무집에서는.

- 삐이익! 삐이익!

"세진! 세이가 또 장난감을 물어뜯었어. 혼내줘!”

“후모! 후모!”

세이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많은 성장이 있었다.

한때는 나와 퓨이가 없으면 어디서든 불안에 벌벌 떨던 녀석이었는데, 이제는 집 안에서만큼은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정말 아기 같았던 작은 모습에서, 몸집도 약간 커지고 이빨도 날카로워지면서 괴수의 모습에 가까워졌다.

다행히도 어렸을 때부터 우리의 손에 길러져서 그런지 아직 흉포하거나 공격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엄청난 말썽꾸러기로 변했다. 온 집안을 들쑤시고 돌아다니면서 넘치는 호기심을 행동으로 옮겼고. 그 결과 수많은 피해자가 생겨났다.

"티아야. 일단 진정하고. 아직 어린 드레이크잖아."

"으으, 그치만. 저번에도 내가 좋아하던 인형이랑 장난감을 다 물어뜯어 놨단 말이야."

"후모! 후모!"

티아는 속상한 표정을 지으며 세이의 잘못을 지적했다. 모렛도 당한 게 많은지 옆에서 같이 흥분한 상태였다.

나는 둘을 다독이다가 세이가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 영악한 녀석은 자신이 혼날 분위기라는 것을 눈치채고, 어느새 퓨이의 뒤에 숨어 있었다.

“퓨이, 퓨이."

-뀨우우. 뀨우.

세이에게는 유독 마음이 약한 퓨이는 강하게 잘못을 꾸짖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세이에게 다가갔다.

“세이! 너 또 장난감 물어뜯어 놨어?"

-뀨우우. 뀨웃?

녀석은 내 다리에 몸을 비비적거리며 일부러 귀여운 애교를 부렸다. 평소 같았으면 귀여운 녀석의 애교에 홀딱 넘어갔겠지만 지금은 마음을 굳게 먹어야 했다.

"쓰읍. 또 애교로 넘어가려고! 저번에 장난감 물어뜯었을 때 내가 하지 말라고 했었지!"

애교를 부렸음에도 내가 큰 목소리로 호통을 치자, 세이는 깜짝 놀라며 나와 거리를 벌렸다.

- 끼잉. 끼잉.

평소에 모든 것을 다 챙겨주고 아껴주던 내가 혼내는 상황이 불안한 지. 퓨이 쪽을 바라보며 앓는듯한 울음소리를 냈다.

하지만 퓨이도 이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었기에. 녀석의 애처로운 눈길을 외면했다.

“세이, 정말로 또 이러면 집 밖으로 쫓아낼 거야!"

- 끼이잉. 끼잉.

세이는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들은 것인지, 아니면 혼나는 분위기라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울 것 같은 눈을 하고 고개를 푹 수그린 채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녀석의 애처로운 모습에 아직 아기나 다름없는 세이에게 너무 과도하게 화를 낸 것이 아닌가? 걱정도 잠시 들었다.

알에서 태어난 기간으로 따지면 아직 1살도 되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나는 더욱 마음을 다잡으며 안타까운 마음은 잠시 접어뒀다.

눈으로만 봐서는 귀엽고 연약한 새끼 드레이크지만, 그 안에는 바위산 정상을 차지하고 있던 흉포한 드레이크의 피가 흐르고 있다.

만약 녀석의 멋대로인 성격을 지금

제어해주지 못한다면.

더 자랐을 때, 장난감을 물어뜯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사고를 칠 지도 몰랐다.

세이를 계속 이곳에 가족으로 있게 하려면 내가 중심을 잡아주는 수 밖에는 없었다.

"잘못했지? 그럼 얼른 티아랑 모렛 한테 가서 사과해."

세이는 내 말을 곧잘 알아들었는지. 티아와 모렛이 있는 곳으로 아장아장 걸어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울음소리를 냈다.

- 뀨우우. 뀨우우우.

녀석의 귀여운 사과에 티아와 모렛은 조금은 화가 풀렸는지 흥분한 기색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세이에게 다가가 쓰다듬어 주면서 어른스럽게 말했다.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 알았지?"

"후모!"

-그르르릉.

세이는 기분 좋게 그르렁거리는 울음소리를 냈고, 티아와 모렛도 덩달아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다시 사이가 좋아진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사건이 잘 해결된 것 같아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다시 사이가 좋아진 아이들과 퓨이까지 합류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나는 혼자서 세이가 만들어 놓은 난장판을 정리해 나갔다.

세이의 이빨에 물어뜯겨진 장난감 과 인형을 챙기는 와중에 눈에 들어오는 인형 하나.

'응? 이건 이엘이 아끼던 인형인데.’

평소 이엘이 곧잘 품에 안고 다니던 인형을 발견하고, 고개를 들어 이엘의 모습을 눈으로 쫓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소파 구석에서 무릎을 팔로 감싸고 얼굴을 숙이고 있는 이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이엘이 평소 아끼던 인형이 망가져 상심했다고 생각해서, 최대한 부드럽고 상냥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이엘, 괜찮아? 세이가 장난을 심 하게 쳐서 속상했지?"

"......"

“세이도 이제 반성하고 사과했으니까. 너무 속상해하지 말고...... 이엘?"

자상한 위로의 말을 건네다가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 나는, 이엘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바짝 다가섰다.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이엘의 고개를 들어 올리자. 창백하게 변해버린 얼굴이 드러났다.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을 느낌과 동시에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이엘! 괜찮아? 어디 아픈 거야?"

"......"

이엘은 내 말에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저 창백해진 얼굴과 함께 가쁜 숨을 힘겹게 내쉴 뿐이었다.

나는 안쓰러운 마음에 이엘의 가녀린 몸을 꽉 끌어안았다.

“아빠…….”

반쯤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내 품에 안기자 애처로운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그래, 이엘. 아빠 여기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나는 이엘을 안심시키기 위해 말했지만, 숨길 수 없는 초조함이 그대로 묻어났다.

"형! 진혁이 형!"

나는 큰 목소리로 방에서 쉬고 있던 임진혁을 불러냈다.

내 다급한 감정이 전해졌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리둥절한 표정의 임진혁이 거실로 나왔다.

"무슨 일이야?"

“형, 이엘이 많이 아픈 것 같아."

“뭐?”

임진혁도 창백한 이엘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걱정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상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열이 나는 것도 아니고, 의식은 아직 있는 것 같은데."

“응급차를 불러야겠지?"

“내가 부를 테니까. 너는 계속 상태를 살피고 있어, 최대한 숨쉬기 편한 자세로 만들어 주고."

구급차를 부르기 위해 임진혁이 잠시 떠나고,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아이들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세진, 이엘이 아픈 거야?"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 티아뿐만 아니라.

퓨이, 모렛, 세이까지도 걱정스럽게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으응, 이엘이 조금 아픈가 봐,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 금방 괜찮아질 거야."

금방 괜찮아질 거라는, 확신보다는 바람에 가까운 말을 하면서 아이들을 안심시켰다.

'일반 병원에서 이엘을 치료할 수 있을까? 그래도 인간의 피가 어느 정도 섞여 있다고 했으니 괜찮겠지?'

이엘을 일반 병원으로 데려가도 될 지 고민하면서, 초조한 마음으로 상태를 살피고 있을 때.

-살랑!

가벼운 바람이 내 귓가를 간질였다.

뭔가를 알아챈 나는 번쩍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잠시 고민을 하다가 벌떡 일어섰다.

마침 휴대폰으로 구급차를 부른 임진혁이 다시 거실로 나오고 있었다.

“형, 저 잠시 어디 다녀올게요.”

"어?! 지금? 이엘은 어쩌고?"

“이엘 때문에 그래요. 지금 당장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앞뒤 설명은 없이 다급하게 가봐야 할 것 같다는 내 말에 임진혁은 복잡한 표정을 했다.

“금방 돌아올 거지?"

“네. 최대한 빨리 돌아올게요. 그때까지 이엘과 아이들을 부탁할게요."

"알았어.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할게.”

"고마워요, 형!"

나는 고맙다는 짧은 말을 남기고, 곧장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전속력으로 마당을 벗어난 나는 호숫가를 따라 지금은 비어 있는 아르엘의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익숙한 숲길을 달려 순식간에 나무 정령이 있는 곳까지 도달했다.

"헉..… 헉..…."

-왔느냐?

"이엘이…… 이엘이 아파요……

도와주세요."

나는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와중에도 힘겹게 도와달라는 말을 내뱉었다.

나무 정령은 이엘이 아프다는 이야기에도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다 알고 있었다는 듯 담담했다.

-이엘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헉…… 그럼 도와주셔야죠!"

-미안하지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겨우 현 상태를 유지하고 있을 뿐.

"그게 무슨?!"

답답한 마음에 내가 버럭 소리를 지르는 와중에.

-뿌드드드득.

-파파팍!

나무 정령 아래에서 나무뿌리가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땅이 갈라지더니, 바닥에 익숙한 통로가 생겨났다. 이전에 아르엘과 함께 들어갔던 생 명의 샘으로 향하는 통로였다.

“여기는......”

-이엘이 아픈 원인을 직접 확인해 보아라. 그리고 어쩌면 네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나무 정령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에게는 망설이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나는 거침없이 바닥의 통로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전과 비슷하면서도 뭔가 묘하게 달라진 느낌을 받으면서, 계속 통로를 따라 걸으니 멀지 않은 곳에서 샘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전에 왔을 때만 해도 샘이라고 부르기 힘든 물웅덩이였는데. 지금은 물웅덩이라고 부를 수도 없이 작아져 있었다.

아주 작은 새가 겨우 목을 축일 수 있을 정도의 샘물만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나무 정령님,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왜 생명의 샘이……"

-아르엘 님이 자신의 생명을 써가면서까지 유지하던 샘물이었는데. 이제는 유지하기 힘든 상황이다.

나무 정령의 설명에 나는 온몸이 떨릴 정도로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아르엘은 왜 생명을 써가면서까지 이 샘을 유지하려 했을까?

"설마……"

-네가 생각하는 게 맞다. 아르엘 님이 이 호숫가에 결계를 만들고, 무리하게 생명의 샘을 유지하려 했던 이유는 딱 하나. 바로 이엘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럼 이엘은....…”

-이 샘이 전부 마르게되면, 이엘 역시……

나무 정령의 잔인한 말에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외쳤다.

“어떻게...… 어떻게 하면 이 샘을 되살릴 수 있죠? 무슨 방법이 있을 거 아니에요?"

-모른다. 나는 그저 정령의 힘으로 이 샘을 지키고 유지했을 뿐. 샘을 되살리는 방법은 모른다.

절망적인 나무 정령의 대답에 나는 표정을 구기며 발악하듯 다시 물었다.

“그럼 이제 방법이 없다는 말이에요?"

-그것도 모른다. 하지만……

"......?"

-너라면 뭔가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무 정령의 말에 나는 멍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제가 방법을?”

-그래. 아르엘 님은 믿고 계셨다. 네가 이엘을 살려낼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일 거라고.

나는 순간 아르엘과 마지막으로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이엘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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