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균열에 산다 188화
62. 첫 번째 팬 미팅 (3)
현관문을 열고 나서자, 마당에서 오연우와 함께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오연우는 내가 나오는 것을 가장 먼저 확인하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형 나오셨…… 으음. 세이도 데리고 나오셨네요.”
-뀨우? 뀨웃!
세이는 난감한 표정을 짓는 오연우와는 상관없이, 내 품 안에서 꼼지락 거리면서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냈다.
자연스럽게 기다리고 있던 다른 사람들에게도 세이의 울음소리가 들렸고, 곧바로 많은 사람의 시선이 내 쪽을 향해 쏟아졌다.
"어? 균숙자님 품에 안고 계신 건 뭐예요?"
“아이, 귀여워라. 새끼 용인가요?
너무 귀엽다."
“아직 덜 자란 괴수인 것 같은데……”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이 집중되자 세이는 불안한 듯 퓨이와 내 품속으로 몸을 숨기려 했다.
나는 불안해하는 세이를 위해 사람들에게 잠시 양해를 구했다.
"죄송한데 아직 어린 녀석이라 낯 을 많이 가리거든요. 지금 너무 불안해하니까 일단 조금 떨어져 주실래요?"
“아앗! 그런 줄도 모르고……"
"죄송합니다."
사람들은 내 말을 듣자마자 신속하게 물러섰다.
주변에서 낯선 존재가 사라지자 떨고 있던 세이가 조금은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나는 조심스럽게 마당의 나무 테이블 위에 퓨이와 세이를 내려다 놓았다.
처음에는 어색한 공간과 낯선 사람들 때문에 경계를 하느라 퓨이 곁에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조금씩 시간이 흐르고.
옆에서 이와 내가 괜찮다는 신호를 계속 보내줬더니, 아주 천천히 경계심을 풀고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퓨이. 퓨이."
-뀨우.
주변에 대한 호기심이 경계심을 앞질렀을 때, 세이는 퓨이의 도움을 받아 조금씩 마당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마당에 흔한 돌멩이도 아주 조심스럽게 만져보거나 냄새를 맡더니.
점점 대담해져서 마당 이곳저곳을
제집처럼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물론 정신없이 뛰어다니다가도 가끔 멈춰서서 퓨이나 내 모습이 보이는지 확인했다.
한편.
새끼 드레이크가 무서워하지 않도록 손님들과 아이들은 허수아비처럼 가만히 있다가, 조금씩 활발하게 마당을 뛰노는 세이의 모습을 보고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던 중에 마당을 신나게 돌아다니던 세이가 처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드러냈다.
-뀨우우?
이엘과 함께 있던 여고생 최수아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옆에 서 있던 이엘은 조심스럽게
몸을 숙여 세이의 몸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르릉. 그르릉.
퓨이나 나만큼은 아니지만, 아이들과도 어느 정도 친밀함을 쌓았던 덕분인지 세이는 이엘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최수아는 그런 이엘을 부럽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언니도 한번 쓰다듬어 보세요."
"나, 나도?! 괜찮을까?"
"네. 착한 아이라서 안 물어요.”
“꿀꺽."
그녀는 이엘의 권유에 침을 한번 크게 삼키고, 조심스럽게 손을 세이에게 뻗었다.
-움찔!
-멈칫!
낯선 사람의 손길이 다가오자 세이는 잠시 움찔거렸고, 최수아도 그에 반응해 손을 멈칫했다.
아주 잠깐의 대치 상황이 이어지고.
다시 최수아의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세이는 손길을 거부하거나 피하지 않았다.
-쓰윽. 쓰윽.
-그르릉. 그르릉.
"어머. 어멋!"
최수아는 생각보다 훨씬 맨들맨들하고 부드러운 세이의 살결을 쓰다듬으며 계속해서 감탄을 토해냈다.
거기다 손을 통해 느껴지는 세이의 그르렁거리는 소리는 묘한 쾌감을 불러일으켰다.
다른 사람들은 마음껏 세이를 쓰다듬고 있는 최수아를 보면서, 엄청나게 부러워하는 표정으로 다리를 움찔거리고 있었다.
-휙!
“아……."
한동안 최수아의 손길을 즐기던 세이는 그녀의 손길이 질렸는지, 아쉬운 목소리를 뒤로하고 훌쩍 그 자리를 떠나버렸다.
그 뒤로 세이는 완전 경계심이 풀려서 이 사람 저 사람 곁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세이가 혹시나 무서워할까 봐 최대한 가만히 있던 사람들은 세이를 직접 만져보기 위해 아주 천천히 세이를 쫓아 움직였다.
마치 그 모습이 느릿느릿한 술래잡기를 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술래를 잡는 데 성공한 사람들은 한동안 세이를 만지는 포상을 얻었다.
사람들의 손길도 받고, 마당을 열심히 돌아다닌 세이.
평소보다 많은 활동량에 금방 피곤해졌는지, 언제나처럼 나와 퓨이의 품으로 돌아왔다.
-뀨우우. 뀨우.
내 품에 안겨 살짝 잠투정을 부리더니, 정말 많이 피곤했는지 아주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새근새근 잠든 세이의 모습은 구경하던 사람들을 저절로 미소짓게 했다.
“저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될까요?"
“네. 대신 인터넷에 올리는 건 좀 자제해 주세요."
내 허락이 떨어지자 사람들은 금방 내 곁으로 모여들어 잠든 세이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세이 덕분에 잠시 마당에서 시간을 보낸 뒤. 잠든 세이를 다시 안방에 놓아두고 다음 일정을 시작했다.
내가 일행을 이끌고 향한 곳은 모렛이 자랑하는 맥주 창고였다.
“후모!"
정대훈 아저씨 때문에 한차례 보관해둔 맥주가 털리는 일이 있었는데, 최근에 다시 새로운 맥주를 만들어 숙성중이었다.
거기다 맥주 창고에는 비싸게 돈을 주고 마련한 대용량 냉장고도 설치됐기 때문에 언제든 시원한 맥주를 제공할 수 있었다.
초대된 손님들이 오기 전, 미리 숙성을 마치고 냉장고에 보관하던 맥주를 꺼내 즉석에서 시음회를 개최했다.
미리 시원하게 얼려진 맥주병을 한 명씩 나눠주고 충분히 맛을 보게 해 줬다.
물론 유일한 미성년자인 여고생 최수아와 아이들은 잠시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했다.
“캬아! 진짜 시원하네. 정말 맥줏집에서 파는 맛이야."
“청량하면서 시원한 맛이 일품이네요."
맥주를 마신 사람들은 모두 극찬을 쏟아냈다.
이 모습을 본 모렛은 아주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으로 일행이 향한 곳은 집 뒷 마당에 따로 마련해 둔 엘프 차 작업장이었다.
엘프 차의 재료가 되는 약초를 말리는 과정과 이엘이 직접 엘프 차를 만드는 작업까지 구경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이엘이 직접 만들고 포장까지 한 엘프 차를 모든 손님에게 선물했다.
"이엘, 고마워!"
"드디어 엘프 차를 먹을 수 있겠네요.”
“아아, 이엘이 직접 만든 엘프 차. 아까워서 어떻게 먹지?!"
정성이 담긴 엘프 차를 소중히 받아드는 사람들을 보며, 이엘은 며칠 동안 고생한 보람을 느끼는 듯 뿌듯 한 미소를 지었다.
****
모렛의 맥주 창고와 이엘의 엘프 차
작업까지 구경이 끝났을 때쯤, 날은 점점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사람들을 이끌고 다시 앞마당으로 돌아오자 익숙한 두 사람이 우리를 반겨줬다.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웰컴!"
바로 유현성 주방장과 콜린 셰프였다.
테이블에는 벌써 식사를 위한 셋팅이 다 끝나있었고, 마당 한쪽에는 어느새 두 요리사가 요리할 수 있는 장비가 준비돼 있었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유명한 두 요리사가 반겨주는 상황에 일행은 얼떨떨하면서도 설레는 표정으로 각자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낚시 삼매경에 빠졌던 두 아저씨도 이미 테이블에 앉아서 우리를 맞이했다.
"딱 맞춰서 오셨네요. 아저씨.”
"아아. 물론이지. 이런 호강하는 자리를 놓칠 수는 없지. 안 그렇습니까?"
"하하. 당연하죠. 낚시도 낚시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죠."
아까부터 죽이 척척 맞는 두 아저씨는 저녁 식사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일행이 테이블에 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두 요리사가 준비한 요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금방 아저씨가 잡아 온 호수 물고기를 이용해.
지난번 요리대결에서 보았던 콜린의 생선살 스테이크와 파스타, 그리고 유현성 주방장의 생선찜과 맑은 탕 요리.
사람들은 생전 처음 맛보는 호수 물고기의 맛에 모두 진한 감탄사를 터뜨렸다.
“어떻게 민물 생선에서 이런 맛이 나오는 거지?"
“저번에 고기와 비교해도 될 정도라는 말이 거짓이 아니네."
“아흐. 먹기가 아까울 정도네."
하지만 오늘의 요리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 치이이익!
- 부글부글!
앞선 요리의 여운이 끝나기도 전에 새로운 요리가 또 등장했다.
바로 드레이크 꼬리 고기를 이용해 만든 스테이크와 꼬리찜이었다.
콜린이 만든 생선살 스테이크도 맛있고 대단했지만, 드레이크 고기 스테이크는 정말 비교하기 힘들 정도의 맛이 느껴졌다.
부드러우면서도 고기의 씹는 맛이 살아있고, 터져 나올 것 같은 육즙의 풍미는 말할 것도 없었다.
아마 가장 비싼 등급의 소고기로 최고의 실력을 갖춘 요리사가 요리해도 이 정도의 맛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의 스테이크였다.
유현성 주방장의 드레이크 꼬리찜도 만만치 않았다.
분명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았을 텐데, 전혀 질기지 않은 부드럽고 쫄깃쫄깃한 식감. 거기다 고기 구석구석까지 베어진 양념까지.
입가에 양념이 묻는 줄도 모르고 뼈를 잡고 뜯게 되는, 정말 마약같이 중독적인 맛이었다.
“하아. 너무 맛있는데, 배가 불러서 더 못 먹겠어."
“내 인생에서 최고로 맛있는 요리였어."
초대받은 사람들은 물론이고.
아이들과 아저씨, 아주머니, 임진혁과 나까지. 정말 맛있게 두 요리사의 요리를 즐겼다.
유현성과 콜린은 성공적인 저녁 식사를 바라보다가 나와 짧은 시선을 교환했다.
-세진 씨. 이 정도면 충분하겠죠?
-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드레이크 고기는 잘 챙겨드리겠습니다.
-땡큐!
내 눈빛을 읽었는지 두 요리사는 흡족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했던 저녁 식사가 끝나고.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 앉아 식사의 여운을 즐겼다.
마지막으로 간단한 디저트까지 즐겼을 때, 주변은 완벽하게 어둠이 찾아온 뒤였다.
점점 이별의 순간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알아챈 사람들은 아쉬운 표정으로 아이들을 찾았다.
“어휴, 퓨이 너무 보고 싶어서 어떻게 하지?"
"퓨이. 퓨이."
"이엘, 나중에 또 만나러 올 테니까. 언니 잊어버리면 안 돼.”
"꼭 기억하고 있을게요. 수아 언니."
“공주님. 민티단 홈페이지에 자주 들러주세요. 거기에 다른 분들도 많이 기다리니까요."
"알았어. 꼭 그렇게 할게.”
“으음. 클레이 인형 만드는 방법은 내 블로그에 글 남기면 좀 더 자세히 알려줄게."
“후모. 후모.”
초대받은 사람들은 아이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면서, 꿈같았던 이 날을 기억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었다.
"자! 개인 사진은 충분히 찍으셨죠? 마지막으로 단체 사진 한 번 찍을게요. 모두 통나무 집을 배경으로 모여주세요.”
초대받은 11명의 사람들과 아이들. 그리고 오늘 많은 도움을 준 아저씨와 아주머니, 임진혁과 두 요리사까지 집 앞으로 모여들었다.
“이제 찍습니다. 모두 웃으세요!"
-찰칵!
모든 사람이 모인 마지막 단체 사진을 끝으로 '균숙자네 퓨이' 채널의 역사적인 첫 팬미팅이 종료됐다.
팬미팅이 끝난 이후.
초대받았던 11명의 사람은 각자 개인적인 후기를 채널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렸다.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부터, 모렛이 직접 만든 맥주, 이엘이 정성스럽게 포장한 엘프 차, 군침 도는 두 요리사의 요리까지 수많은 사진이 게시판에 올라왔다.
후기에 적힌 감상은 제각각 조금씩
달랐지만, 후기 마지막에 적힌 감상은 마치 짠 것처럼 비슷했다.
- 아아. 아이들 만난 지 2일밖에 안 지났는데. 벌써 다시 보고 싶어요. 금단증상 ㅜㅜ
-솔직히 영상으로 볼 때는 과장된 모습이라고 생각했는데, 균숙자님이 사는 곳은 영상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평화롭고 행복한 곳이었습니다. 제가 그곳에 다녀왔다는 사실이 꿈처럼 느껴지네요.
- 하루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귀엽고 착한 아이들과 친절한 균숙자 님을 만나 뵐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응원할 테니 오래오래 영상 많이 찍어주세요.
-이 팬미팅에 당첨된 것을 로또 1등에 비유하던데. 그 이상임. 어쩌면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을지도?
마치 무릉도원에 다녀온 어부의 이야기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행복한 후기에 사람들의 궁금증과 관심은 더욱 들끓어 올랐다.
-두 번째 팬미팅 언제야? 두 번째
내놔요!
-으으. 나도 가고 싶다고. 나도 퓨이 만지고 싶다!!
-두 번째가 있긴 한 건가?
폭발하는 사람들의 관심이 이어지
는 가운데, 균숙자네에서는 또 다른 변화가 생기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