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균열에 산다 187화
62. 첫 번째 팬 미팅 (2)
아이들의 짧은 패션쇼가 끝나고 계속 선물 증정식이 이어졌다.
앞서 먼저 전달한 사람들처럼 직접 만들어 온 선물은 아닐지라도.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작은 인형과 장난감부터, 국내에서는 구하기 힘든 해외에서 사온 과자까지.
초대받은 모든 사람이 각자 준비해 올 수 있는 선물을 최대한 정성 들여 준비해온 것 같았다.
선물을 받을 때마다 아이들의 표정에 행복한 미소가 걸렸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선물 중에는 아이들 선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와 오연우에게 몇몇 분들이 선물을 준비했는데.
남성용 향수, 선글라스, 화장품.
그리고 굉장히 비싸 보이는 명품 넥타이도 있었다.
나와 오연우 것까지 두 개나 준비한 낚시 장비아저씨는 멋쩍게 웃으 며 손사래를
쳤다.
"별로 비싼 것 아닙니다. 평소에 자주 들리던 매장에서 괜찮은 거로 두 개 준비했으니, 너무 부담스러워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잘 사용하겠습니다.”
“저도 잘 쓰겠습니다."
“하하. 그거면 됩니다."
나와 오연우가 감사 인사를 전하자, 낚시꾼 아저씨는 중년 남성 특유의 여유로움을 보여주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생각보다 길었던 선물 전달식이 끝나고.
우리는 초대된 손님을 이끌고 집 안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가면서 앞서 손님들에게 드릴 간식을 준비해 줬던 아주머니와 임진혁이 인사를 나눴다.
따스한 햇볕이 잘 들어와 포근한 집안 분위기에, 실내에서도 느껴지는 숲속의 맑은 공기,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투명한 호수까지.
사람들은 영상 속에서만 보던 집안 실내를 신기한 듯 둘러보며 감탄을 터뜨렸다.
"균숙자님. 혹시 나중에 여기 근처 에 별장 더 지으실 생각 없으십니까? 비용은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하나 지어서 판매해 보시죠?"
"하하. 아직은 생각이 없는데. 나중에 한번 고려해 보겠습니다.”
"나중에 명함 드릴 테니. 꼭 부탁 드리겠습니다."
아까 넥타이를 선물했던 낚시꾼 아저씨는 통나무집과 이곳이 쏙 마음에 들었는지 매우 진지하게 물었고, 나는 일단 웃으며 그의 말을 받아넘겼다.
2층의 세이가 잠들어 있는 내 안방을 제외하고.
거실, 부엌, 아이들 놀이방까지 구경을 마친 사람들은 다시 집 밖으로 나섰다.
집 밖으로 나오니 정대훈 아저씨가 낚시채비를 갖추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저씨의 모습을 보고 손님 중에 그의 정체를 알아본 사람이 있었다.
"아! 저분은 예전에 요리 대결에서 심사위원으로 나오셨던 분 맞죠?"
"하하. 맞습니다. 예전에 낚시꾼 아재로 나왔던 정대훈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알아봐 줘서 기쁜지, 아저씨는 특유의 유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저희는 이제 언덕으로 갈 생각인데. 혹시 대훈 아저씨와 호수에서 낚시를 즐기실 분 계신가요? 참고로 호수는 나중에도 따로 구경할 시간을 드릴 겁니다."
낚시 희망자를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아까 명품 넥타이를 선물해 줬던 남성이 자연스럽게 대훈 아저씨 옆에 섰다.
그러고는 낚시꾼끼리 뭔가 통하는 게 있는지,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어색함 없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 저는 낚시를 해본 적이 없는데, 혹시 참여할 수 있을까요?"
아까 귀여운 클레이 인형을 선물했던 대학생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고 질문했다.
“당연히 됩니다. 어서 오세요. 낚싯대도 여분으로 많이 챙겨왔으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학생 낚시가 처음이라고? 학생은 운이 좋네. 원래 낚시는 이렇게 실력 있는 분께 배워야 하는 거지."
“하하하. 역시 뭘 좀 아시는군요?”
그렇게 살짝 초췌한 얼굴을 하고 있던 대학생은, 죽이 척척 맞는 두 아저씨의 환대를 받으며 그곳으로 향했다.
“후모. 후모.”
"응? 모렛도 낚시하러 가려고?”
“후모!"
모렛은 아까 귀여운 클레이 인형을 직접 만들었다는 대학생이 마음에 드는지, 특이하게 낚시를 하러 가겠다고 나섰다.
"알았어. 대신 아저씨랑 손님들 너무 귀찮게 하면 안 된다?"
"후모! 후모!"
내 허락이 떨어지자 모렛은 신난 표정으로 대학생이 있는 곳으로 뛰어가 옆에 착 달라붙었다.
모렛이 낚시 일행으로 가버리자, 몇몇 손님들은 굉장히 아쉬운 기색을 드러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나중에 또 합류할 거니까. 너무 아쉬워하지 마세요. 그럼 이제 언덕으로 가볼게요.”
낚시하러 떠난 일행을 제외한 나머지 손님과 아이들을 이끌고 언덕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언덕으로 가는 와중에도 초대받은
손님들은 아이들과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기쁜지 연신 미소를 지었다. 티아는 활발하게 돌아다니며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눴고, 이엘은 쑥스러워하면서도 손님들의 질문에 최대한 친절하게 대답하려 노력했다.
퓨이는.
"퓨우우우."
"아아. 내가 퓨이를 안고 있다니."
그냥 손님들 품에 안겨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많은 분에게 굉장히 행복한 시간을 선사했다.
***
-몽․ 몽․ 몽․
-몽. 몽. 몽.
일행이 포근한 햇살이 내리쬐는 언덕에 도착하자, 작은 슬라임 친구들이 마중을 나왔다.
많은 외부인의 등장에 혹시 겁을 먹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녀석들은 약간의 경계심도 없이 자연스럽게 일행에게 다가왔다.
-몽.몽.몽.
그림을 선물했던 여고생 최수아는
자신에게 다가온 작은 슬라임 한 마리를 보고 눈동자를 빛냈다.
“이 슬라임들 만져봐도 돼요?"
“네. 그리고 준비한 간식이 있는데. 이걸 녀석들한테 주면 엄청나게 좋아할 거예요."
나는 미리 준비한 가방에서 알사탕을 꺼내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몽. 몽. 몽.
-몽. 몽. 몽.
작은 슬라임들은 벌써 사탕 냄새를 맡고 적극적으로 몸을 들썩거리며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사람들이 선뜻 슬라임에게 손을 대지 못하고 있을 때.
최수아가 먼저 조심스럽게 작은 슬라임을 손바닥에 올리고 알사탕 하나를 건넸다.
-몽. 몽. 몽.
알사탕을 받은 녀석은 기분이 좋은 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기분이 편안해지는 향기가 뿜어져 나왔다.
“아아…… 향기 좋다.”
“이 녀석들은 기분이 좋으면 이렇게 향기를 내뿜거든요. 다른 분들도 한번 해보세요."
용기를 얻은 일행 모두가 작은 슬라임 한 마리씩을 손바닥 위에 올려 두고 알사탕을 전해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언덕에는 슬라임들이 내뿜는 기분 좋은 향기로 가득해졌다.
푹신한 잔디밭 위에 아무렇게나 자리를 잡고.
따스한 햇볕, 가끔 불어오는 포근한 바람, 주변에 가득한 귀여운 슬라임들과 기분 좋은 향기까지.
마치 무릉도원에 온 듯한 기분.
사람들은 해가 머리 위로 올라갈 때까지 저마다 편안한 분위기를 즐기며 시간을 보냈고.
오연우는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어줬다.
나는 챙겨온 가방에서 아주머니가 미리 준비해준 점심을 꺼냈다.
예쁘게 만들어진 샌드위치와 음료수로 점심을 해결하고, 나는 떠나야 할 시간임을 알렸다.
"벌써요? 조금만 더 있다가 가면 안 돼요?"
“아아…… 정말 마약 같은 곳이네요. 언제 또 올 수 있을지."
일행은 쉽게 슬라임들을 놓아주지 못하고 진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30분 정도를 더 언덕에서 머물렀지만, 결국에는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얘들아. 안녕. 다음에 또 보자."
"건강하게 잘 지내!"
-몽. 몽. 몽.
-몽. 몽. 몽.
일행은 작은 슬라임들에게 작별인사를 남기고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 했다. 몇몇은 헤어짐이 너무 아쉬운지 눈물을 글썽일 정도였다.
나는 언덕 내리막길을 따라 일행을 호숫가로 이끌었다.
빽빽한 숲길을 벗어나 눈앞에 맑고 거대한 호수가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은 눈동자를 크게 뜨면서 감탄했다.
보기만 해도 호수의 청량함이 느껴져 마음이 시원해지는 기분에, 일행은 아까의
아쉬움을 조금 씻어내는 듯했다.
밑바닥까지 보일 것 같은 맑은 호숫물에 손을 담가보기도 하고, 적당한 돌멩이를 찾아 아이들과 물수제비 놀이를 하기도 했다.
-포포포포포퐁!
“와앗! 퓨이 대단하다."
"퓨이!"
퓨이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압도적인 물수제비 실력을 뽐내며 사람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기도 했다.
일행은 천천히 호숫가를 따라 걷다가 아까 헤어졌던 낚시 일행과 만날 수 있었다.
“아저씨. 많이 좀 잡으셨어요?"
"벌써 왔냐? 좀 더 있다 오지."
“점심은 드시고 낚시하는 거예요?"
"허헛? 점심시간이 벌써 지났나.”
낚시에 정신이 팔려 점심도 챙기지 않고 있는 아저씨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가방에서 남은 샌드위치를 꺼내 낚싯꾼 일행에게 건넸다.
“후모. 후모!”
"감사합니다."
모렛과 대학생 김진호는 배가 고팠는지 허겁지겁 샌드위치를 받아먹었다.
한편, 두 명의 낚시꾼 아저씨들은 낚시에 정신이 팔려 샌드위치를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중이었다.
나는 두 명의 아저씨는 내버려 두고, 김진호와 모렛을 챙겨 다시 집으로 향했다.
집에 가까워지자 익숙한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삐이이익! 삐이익!
바로 안방 침대에서 잠을 자고 있던 세이의 울음소리였다.
오전 내내 잠을 자다가 배가 고파서 일어난 것 같았다.
"어? 이 울음소리 저번 라이브 방송때 들었던 소리 아닌가?"
“진짜 그 소리네.”
“잘은 모르겠는데. 왠지 아기 목소리인 것 같아요.”
사람들은 모두 라이브 방송 때 들려왔던 울음소리를 떠올리며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다급하게 퓨이를 품에 안고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죄송합니다. 급한 일 때문에 퓨이랑 먼저 가보겠습니다. 여기 있는 연우 PD가 나머지 안내를 해줄 겁니다. 연우야 부탁 좀 할게.”
나는 오연우가 대답할 새도 없이 일방적으로 일행을 부탁하고 집으로 뛰어갔다.
집에 도착해서 안방으로 뛰어 올라가니 아주머니와 임진혁이 울고 있는 세이를 두고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삐이익! 삐익!
세이는 나와 퓨이를 발견하자마자
재빠르게 달려와 품에 안겼다.
그리고 녀석은 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품 안에서도 계속 울음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나는 잠시 퓨이에게 세이를 맡겨두고 아주머니와 임진혁에게 먼저 사과를 건넸다.
"죄송해요. 세이가 생각보다 일찍
일어났네요."
"아냐. 미안할 것까지야. 근데 나랑 진혁이 둘이서 어떻게든 달래보려고 했는데. 너랑 퓨이 없으니까 안 되겠더라."
아주머니는 약간 허탈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임진혁도 비슷한 표정을 했다.
나는 서둘러 최상급 마정석 하나를 퓨이에게 건넸고.
퓨이는 자연스럽게 그 마정석을 입 안에 넣더니, 온몸으로 따스한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퓨이가 내뿜는 강렬하고 따스한 기운이 느껴지자, 세이는 겨우 만족했는지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멈췄다.
그리고 퓨이의 품에 안겨 행복한 표정으로 고롱거리기 시작했다.
-그르릉. 그릉.
아주머니와 임진혁은 그런 퓨이와 세이의 모습을 보면서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새끼 드레이크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세이야."
-뀨웃?
“나랑 퓨이 잠시 내려가 봐야 할 것 같은데. 여기 잠시 혼자 있으면 안 될까?"
-삐익! 삐익!
세이는 내 말을 알아들은 것인지 다시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냈다.
그리고 애처로운 눈동자와 함께 퓨이 품속으로 꼬옥 안겨들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쩝.‥…”
-똑. 똑․ 똑.
“형. 안 내려 오실 거예요? 밑에서 손님들 기다리는데."
그때 손님들을 이끌던 오연우가 안방 문을 두드리며 내게 말을 걸었다.
잠시 고민을 하던 나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오연우에게 대답했다.
“금방 내려갈게. 조금만 더 기다려줘.”
"알았어요."
오연우가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고.
나는 잠시 퓨이와 세이를 내려다보다가 둘을 한꺼번에 안아 들었다.
“둘 다 데리고 나갈 거니?"
“어쩔 수 없죠. 온종일 울게 내버려 둘 수는 없으니까.”
-뀨우우. 뀨우.
이 영악한 새끼 드레이크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졌다는 걸 알았는지, 이번에는 내 품에 안겨 애교를 떨었다.
"하핫. 이 녀석 봐라."
속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기분이 나쁘기보다는 오히려 살짝 기분이 좋아짐을 느끼면서.
퓨이와 세이를 안고 안방을 나와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