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균열에 산다-186화 (186/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186화

62. 첫 번째 팬 미팅(1)

오전 8시 45분.

나와 오연우는 약속 시간인 오전 9시에 맞춰 장소로 향했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지 않는 작은 공원 입구.

예전에 내가 균열 입구로 하루에 몇 번씩 들락날락하던 그 공원.

그곳에는 열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어색하게 시간을 확인하기도 하고, 옆 사람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가 공원 쪽으로 다가서자.

그 사람들은 우리를 알아보고 환하게 웃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균숙자님. 연우 PD 님.”

한 명씩 인사를 나누는데 마치 나를 연예인을 보는 것처럼, 모두가 신기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데.

조금은 민망했다.

내가 민망해하는 사이, 오연우는 원래 약간 뻔뻔한 성격을 이용해 사람들의 그런 반응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잠시 인원확인 좀 할게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약간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 바람에……”

우리는 초대를 받아 모인 사람들을 상대로 인원 체크와 본인 확인에 들어갔다.

사전에 보냈던 메시지와 너튜브 계정을 확인하고, 신분증으로 간단하게 신원을 확인했다.

"으헛. 죄송합니다. 제가 휴대폰 어플에 익숙지 않아서."

"괜찮습니다. 천천히 하세요."

낚시 장비를 가득 챙긴 40대 중년 남성이 휴대폰 어플 때문에 허둥거려서 소요된 것을 제외하면.

모든 사람의 신원 확인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금방 끝났다.

대부분 20대에서 30대 초반이었고. 가장 어린 여고생이 한 명, 아까 휴대폰 어플에 당황하던 40대 남자가 가장 나이가 많았다.

나는 초대받은 11명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번거로운 일에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바로 이동하겠습니다.”

이동하겠다는 말에 가장 어린 여고생이 손을 번쩍 들더니 질문을 던졌다.

“지금 당장 그 숲에 있는 곳으로 가는 건가요?"

“네.”

"아! 어떡해!"

질문을 던졌던 여고생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얼굴을 붉히고 발을 동동 구르며 어찌할 줄 몰랐다.

나는 순수해 보이는 모습에 살짝 미소를 짓다가 먼저 걸음을 옮겼다. 내가 앞장서고 오연우가 일행이 흩어지지 않게 가장 뒤쪽에서 따라갔 다.

이른 아침이라 사람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 공원 안쪽, 가장 후미진 곳으로 향하자 사람들은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표정은 잠시 후 놀라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변했다.

“입구를 열 테니 너무 놀라지 마세요.”

- 우우우웅!

"우와아아."

“이게 균열 입구? 나 균열에는 처음 들어가 봐!”

내가 생성한 균열 입구를 보고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

나는 매우 안전하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간단하게 안내를 했다.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 제가 입구를 통과하면 차례로 한 분씩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모두 입구를 다 통과한 뒤에 다시 출발할 거니까 천천히 따라오세요."

내가 먼저 균열 입구를 통과하자.

뒤에 사람들도 한 명씩 입구를 통과해 전혀 다른 공간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와 일행들이 균열 입구를 통해 모습을 드러낸 곳은 숲속 가운데 있는 공터.

처음으로 균열 입구를 통과한 남자는 자연스럽게 숨을 깊게 들이쉬더니, 편안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하아아. 공기 정말 좋네요."

“그렇죠? 아무래도 이쪽에서 계속 생활하다 보면 도시의 공기는 너무 탁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정말 그렇겠네요. 잠깐 숨을 쉬었을 뿐인데도 폐가 정화되는 기분이에요."

남자뿐만 아니라 차례로 넘어온 사람들 모두 신선한 숲속 공기를 맛본 뒤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11명의 인원과 오연우까지 숲속 공터에 도착하자, 나는 균열 입구를 닫고 다시 일행을 이끌고 어디론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숲이 신기한지, 나를 따라 걸으면서도 계속 주변을 둘러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일행이 10분쯤 걸었을 때.

숲을 빠져나온 우리는 커다란 통나무집을 발견할 수 있었다.

"와아! 영상에서 봤던 그 집!"

흥분한 감정이 여실히 드러나는 발랄한 목소리.

등 뒤에서 들려와 얼굴을 확인하지는 못했는데, 목소리를 들어보니 아까 질문을 던졌던 여고생인 듯했다.

완만한 내리막길을 따라 집 앞마당에 도착했다.

우리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마당에서는 귀여운 소란스러움이 일어났다.

"도착했다!"

"퓨이! 퓨이!"

“후모!"

아이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부산을 떨기 시작했다.

일행이 완전히 마당 안쪽으로 들어서자, 아이들은 준비한 대로 가지런히 서서 손님들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안녕!"

"퓨이!"

“후모!"

그러더니 임진혁과 아주머니가 미리 준비해둔 시원한 음료수를, 직접 하나씩 옮겨 손님들에게 전달하기 시작했다.

“이거 드세요. 저기 계신 아주머니가 직접 만드신 음료수에요."

“응. 고마워. 이엘."

"헤헤. 아니에요."

아까 처음으로 균열 입구를 통과했던 남자는 이엘이 건네주는 음료수를 받고 환한 미소를 지었고, 이엘은 쑥스러운 듯 웃었다.

"퓨이!"

"꺄아앗! 이거 나 주는 거지? 퓨이야. 정말 고마워!"

"퓨이! 퓨이!"

초대받은 인원들은 영상 속에서만 보던 귀여운 아이들이 직접 음료수 를 건네주니, 모두 행복한 미소와 함께 아이들을 바라봤다.

***

아이들에게 음료수를 대접받은 뒤. 11명의 초대받은 손님들은 마당에 미리 준비해 둔 3개의 큰 나무 테이블에 나눠 앉았다.

그 사이사이에는 아이들도 함께 자리해 사람들의 입가에는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테이블 위에는 아주머니와 임진혁이 준비한 간단한 간식들이 올라갈 때쯤, 오연우가 사람들 앞으로 나서 입을 열었다.

"자! 저희가 준비한 일정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오늘 초대받아 오신 손님 중에서 따로 선물을 준비하신 분들이 계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먼저 준비하신 선물을 소개하고 전달하는 시간을 먼저 가질게요."

그의 진행에 따라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은 발랄한 분위기의 아까 그 여고생이었다.

사람들 앞으로 나선 그녀는 당당한 태도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최수아라고 하구요. 제가 준비한 것은 대단한 선물은 아니고, 직접 그린 그림을 몇 장 가지고 왔습니다."

그녀는 가방 속에서 귀여운 느낌의 액자로 장식된 그림 몇 장을 꺼냈다.

그림 속에는 귀여운 아이들과 굉장히 과하게 미화된 내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퓨우우...…”

“정말 잘 그렸다!"

가장 먼저 그림을 구경한 퓨이와 티아가 감탄을 터뜨렸다.

계속 당당하던 최수아는 아이들의 칭찬에 약간 쑥스러운 듯 볼을 긁적거렸다.

함께 그림을 구경하던 오연우가 팔꿈치로 슬쩍 나를 치면서 속삭였다.

"형. 형은 너무 미화된 거 아니에요?"

“.…..”

마치 잘생긴 아이돌 그룹처럼 묘사된 내 모습을 보며,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최지아 다음으로 나선 사람은 뿔테 안경에 약간 덥수룩한 머리를 한 20대 중반의 남자였는데, 눈 밑으로 내려온 다크서클이 굉장히 초췌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김진호라고 합니다. 저도 대단한 선물을 준비한 건 아니고. 평소에 취미로 만들고 있던 클레이 인형을 만들어 와봤습니다."

그는 단단해 보이는 보관함을 열더니, 그곳에서 작게 만들어진 인형을 하나씩 꺼내놨다.

퓨이부터 시작해서, 티아, 이엘, 모렛까지.

아이들의 세세한 부분까지 정성 들여 만들어진 클레이 인형이었다.

높은 퀄리티에 선물의 주인공인 아이들뿐만 아니라, 손님들도 감탄을 내뱉을 정도였다.

특히.

“후모, 후모.”

"으응?"

“후모!"

모렛은 눈을 반짝이며 진호에게 착 달라붙어 계속 말을 걸고 있었다.

아마도 모렛은 이 클레이 인형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해 보였다.

“정말 귀여운 인형. 고맙습니다. 진호씨."

"하하. 며칠 밤을 새운 보람이 있네요."

아이들과 사람들의 뜨거운 반응에 김진호의 초췌한 얼굴에는 진한 미소가 걸렸다.

다음으로 사람들 앞에 나선 사람은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이었는데, 굉장히 세련된 느낌의 패션 감각이 돋보이는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모 패션 브랜드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서예림이라고 해요. 저는 평소에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직접 제작한 옷을 몇 개 가지고 와봤는데, 혹시 지금 직접 입혀볼 수 있을까요?"

그녀는 나와 오연우에게 강렬한 눈빛을 보냈다.

집념을 넘어서 집착이 느껴지는 시선이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다가가 직접 의중을 물어봤다.

“얘들아. 저분이 준비한 옷. 지금 한번 입어볼래?"

“응, 난 입어볼래!"

가장 먼저 티아가 관심을 보이며 옷을 입어보겠다고 했고, 이엘은 약간 눈치를 보더니 작개 고개를 끄덕였다.

"퓨이!"

“후모!”

퓨이와 모렛 역시 신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퓨이랑 모렛에게도 옷을 만들어 줄 수 있나?'

일단 아이들의 허락이 떨어지자.

서예림은 가지고 온 옷들을 챙겨,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아 아이들과 함께 집 안으로 향했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불쑥!

집 현관문을 조금 열고 서예림이 고개를 약간 내밀면서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집 안으로 들어가기 전보다 훨씬 밝아져 있었다.

"다 끝났어요. 이제 나갈게요!”

문이 완전히 열리고, 아까와 완전히 달라진 아이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와아아……”

“하하하하.”

누군가는 감탄을 내뱉었고, 또 누군가는 시원한 웃음을 터뜨렸다.

티아는 세련된 느낌의 검은색 드레스, 검은색 모자에 선글라스까지 끼고 있었는데. 평소에 귀여운 느낌이 아니라 약간 도도한 공주님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이엘의 경우 평소 하늘거리는 원피스 차림이 아닌 화려한 색감의 한쪽 어깨가 살짝 드러난 오프숄더 원피스에다가.

귀엽게 묶은 포니테일, 블링블링한 느낌의 장신구까지.

마치 인기 많은 여자 아이돌을 느낌이 났다.

평소와 180도 달라진 티아와 이엘의 모습을 보며 잠시 멍해져 있다 가, 시선을 돌려 퓨이와 모렛을 보고는 빵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퓨이는 맞춤 제작이라도 했는지,

딱 맞는 레게머리 가발에 화려한 색깔의 안경을 끼고 있었고.

모렛은 수북한 털들을 빨간색 리본을 묶어 정리하고, 목에는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둘 다 엉뚱하면서도 묘하게 어울리는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세진, 이 옷 어때?"

"잘 어울려, 공주님 같아."

"헤헤.”

내 칭찬에 티아는 도도한 옷차림과는 다르게 귀엽게 웃음을 지었다.

이엘은 평소와 다른 옷차림이라 약간 부끄러운지 쭈뼛쭈뼛 내게 다가왔고, 나는 티아와 마찬가지로 이엘에게도 칭찬을 해줬다.

“이엘도 잘 어울려. TV에서 나오는 예쁜 여자 아이돌 같아."

"으응…… 고마워요. 아빠."

이엘은 내 칭찬에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푹 숙였다.

"퓨이! 퓨이!"

“후모! 후모!”

그 뒤로 다가온 퓨이와 모렛.

개성 넘치는 두 패션 스타의 모습에 나와 오연우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하. 너희들도 잘 어울려.”

“그래. 평소에도 그렇게 다녀도 되겠는데?"

"퓨이. 퓨이."

"후모!"

둘은 사람들의 반응이 마음에 드는 지 우쭐하는 반응을 보였고.

그 덕분에 사람들은 다시 한번 웃음을 터뜨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