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균열에 산다-183화 (183/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183화

61. 불타오르는 너튜브(1)

작은 접시에 고개를 숙여 우유를 마시는 새끼 드레이크.

-할짝. 할짝. 뀨우!

다행히도 녀석은 우유가 입맛에 맞는지, 혀를 이용해 허겁지겁 우유를 마시면서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냈다.

나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넌지시 물었다.

"세이야. 맛있어?"

-뀨우. 뀨우.

"그래. 많이 먹어라."

세이.

눈앞의 작은 드레이크에게 붙여진 이름.

흰둥이무터 바둑이,용용이,용삐,

뀨잉이까지.

수많은 이름 후보가 거론되었는데.

퓨이가 그 이름을 듣더니.

“퓨! 퓨! 퓨!”

"으으, 화내지 마. 퓨이야."

새끼 드레이크를 감싸 안으며 불같이 화를 냈다.

그런 이름들은 절대 이 녀석에게 줄 수 없다는 강경한 의사 표현.

아무래도 퓨이가 봤을 때는 그 이름들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됐던 모양이었다.

계속 고민을 이어가던 도중.

그냥 새끼 드레이크가 가장 잘 따르는 나와 퓨이의 이름에서 따와 이름을 만들었다.

단순하게 세진의 앞글자와 퓨이의 뒷글자를 빌려 '세이'.

“세이...... 세이…... 괜찮은 것 같은데?"

“그러게요. 부르기도 편할 것 같고. 세이야."

"퓨이! 퓨이!"

길드원이나 아이들, 그리고 퓨이까지 '세이'라는 이름을 마음에 들어 했고.

그렇게 새끼 드레이크의 이름은

'세이'로 결정됐다.

세이라는 이름을 받고 난 뒤.

이 새끼 드레이크는 금방 우리 집 생활에 적응했다.

아이들이나 임진혁과도 조금씩 친해져 스스럼없이 만질 수도 있었고. 아직은 퓨이나 내가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집 밖에서도 들릴 정도로 시끄럽게 울어대지만, 조금씩 그 강도가 약해지고 있었다.

지금은 깨어있는 시간보다 잠들어 있는 시간이 많은데.

조금만 더 자라면 집 안에서는 충분히 혼자 돌아다닐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처음에 세이가 우리 집에 살기 시작했을 때

아무래도 흉포한 괴수의 피를 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많았다.

그래서 처음부터 굉장히 세심하게 녀석을 살폈는데.

며칠 지켜본 결과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솔직히 세이가 그 무지막지한 드레이크의 자식이 맞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이 작고 귀여운 생물체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깨어나면 퓨이나 나에게 다가와 열기를 달라고 보채거나, 조금은 귀찮을 정도로 따라다닌다는 것만 제외하면.

정말 조용하고 얌전한 녀석이었다. 오히려 문제를 일으키는 쪽은 다른 쪽이었는데.

세이가 너무 귀엽다 보니 아이들이나 길드원들도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가 많았다.

아이들 같은 경우에는 세이가 자고 있으면 옆에 다가가 귀찮게 만지작 거린다든가, 인형처럼 데리고 다니려 했는데.

한 번은 이런 행동들 때문에 세이가 크게 울음을 터뜨렸고, 퓨이를 제외한 아이들 모두 정말 오랜만에 제대로 혼나야 했다.

“내가 세이 자고 있으면 건들지 말라고 했지? 너희도 자고 있을 때 누가 계속 괴롭히면 기분이 좋겠어?"

“미안해…….”

“잘못했어요. 아빠."

“후모……”

“세이는 움직이는 인형이 아니야. 거기다 어렵게 태어나서 몸도 약한데, 너희들이 장난치다가 크게 아프면 어쩌려고."

아이들 처지에서는 관심의 표현이고, 좋아하기 때문에 하는 행동이겠지만, 어렵게 겨우 태어난 세이에게는 그런 작은 행동들이 치명적일 수 있었다.

아직 이런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나는 보호자로서 따끔하게 이야기해 줄 필요가 있었다.

“앞으로 내가 한 말을 어기고 세이를 귀찮게 하거나, 못살게 굴면 진짜 혼내줄 거야."

일부러 엄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아이들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깨가 축 처진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없었다.

내가 계속 화난 표정을 유지하는 사이, 눈치 빠른 임진혁이 부드러운 미소로 아이들을 달래주면서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문제를 일으킨 것은 아이들뿐만이 아니었다.

세이를 함께 지켜본 길드원들, 특히 귀여움에 심취한 서율희가 가장 심한 모습을 보였다.

평소에는 어떤 어려운 일이나, 힘든 상황이 생겨나도 흔들리지 않는 뚝심 있는 모습으로 맡은 일 처리를 해나갔는데.

세이를 만난 뒤부터는 약간 해이해지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별일 아닌 길드 일로 집을 방문해 세이를 지켜본다든가, 하루에도 몇 번씩 세이와 퓨이의 사진을 멍하니 바라본다든가.

한마디로 마약에 중독된 것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길드의 전반적인 일 처리를 맡은 그녀가 흔들리자 자연스럽게 길드의 모든 업무가 꼬이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아저씨가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조언했다.

"세진아.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부길드장이 많은 일을 해주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지금 같이 중요한 시기에 이런 모습을 계속 보여주면 길드의 규율이 어떻게 되겠냐?"

"......"

"쩝. 솔직히 나도 이런 일로 부길드장이 흔들릴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네가 확실히 중심을 잡아줘."

"알겠어요. 아저씨."

나는 아저씨의 말대로 그녀를 따로 불러내 쓴소리를 해야만 했다.

“율희 씨. 정말 고생하고 계시는 건 알겠지만, 계속 요즘같이 하신다면 힘들어요."

"죄송해요......"

그녀도 자신의 문제를 이미 잘 알고 있었는지 내 앞에서 고개를 푹 숙였다.

마치 아이들을 혼낼 때와 비슷한 분위기와 반응이 이어지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저도 이러고 싶지 않은데. 퓨이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잘 자제가 안 되는 것 같아요."

"으음......"

솔직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니, 절로 안타까운 표정이 지어졌다.

나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아. 그럼 이렇게 하죠."

"......?"

나는 예전에 퓨이의 사진을 공급해 줬던 것처럼, 지속적으로 그녀에게 세이의 사진을 전해주기로 했다.

거기다 길드의 일만 잘해준다면 세이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자리도 마련해 주겠다며 약속했다.

내 말을 들은 서율희는 눈물까지

글썽거릴 정도로 크게 기뻐했다.

그리고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길드의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

세이도 안정적으로 생활에 적응하고, 길드도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상황.

나는 오랜만에 찾아온 여유로운 상황에 편안한 하루를 즐길 예정이었다.

뚱한 표정으로 옆을 차지하고 있는

한 사람만 없었다면.

“......"

"......"

"너.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

"아. 미안하다니까. 진짜로 바빴다고.”

마치 심술이 난 어린애처럼 입을 툭 내밀고, 원망스러운 눈빛을 보내는 오연우.

나는 난감한 표정으로 변명을 이어 나갔다.

“너도 길드 만들었다는 거 알잖아.

초창기라 엄청나게 일이 많고, 복잡해서. 너튜브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어."

“그렇겠죠. 이제 형은 주목받는 신생 길드의 길드장님이신데. 너튜브 채널 따위가 뭐 중요하겠어요? 어이쿠. 하찮은 편집자 따위가 너무 말을 길게 했네요."

“진짜 미안해. 내가 연락을 너무 안 하긴 했어.”

나는 오연우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계속 말을 걸면서, 새로 생긴 필살기를 사용했다.

"자. 이것 좀 봐봐. 새로 생긴 가족이야. 세이야. 인사해."

-뀨우?

“......”

세이는 투명한 눈동자로 멀뚱멀뚱 오연우를 바라봤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 그런지 약간 경계를 하면서도, 호기심 가득한 모습이었다.

물론 그 모습도 굉장히 귀여웠다. 아마 서율희가 옆에 있었다면 당장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어댔을 만한 장면이었다.

오연우도 관심이 없는 척하면서도

힐끔힐끔 세이를 훔쳐봤다.

"얘가 그 드레이크를 잡고 데려온 아이예요?"

“응. 원래는 알을 가지고 왔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까 부화해 버려서. 정말 귀엽지?"

“흠흠. 귀엽기는 하네요."

뚱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오연우.

결국에는 세이의 귀여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실실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그래도 저 화가 다 풀린 건 아니에요. 형이 바쁘다고 다른 일 하는 동안 제가 얼마나 힘들었는데요."

"알아. 알았으니까. 그만 화 풀어."

내가 바빠서 새로운 영상을 찍지 못하는 동안.

오연우는 미리 찍어뒀던 영상들을 어떻게든 편집해서 계속 채널에 업로드했다.

물론 새로운 컨텐츠는 없고, 예전에 미리 찍어놨던 영상의 재탕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구독자들의 불만은 계속 쌓여나가는 상황.

그 와중에 오연우는 커뮤니티 게시판에 사람들의 비판을 다 받아들이면서 꿋꿋이 채널을 운영했다.

나도 오연우의 그런 수고와 노력을 알기에 미안한 마음이 컸다.

금전적인 면에서는 굳이 너튜브 채널을 유지할 이유가 없을 정도로 수입이 풍족해졌지만, 지금까지 나와 아이들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줬던 오연우를 배신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제는 좀 여유가 생겼으니까 네가 하자는 대로 다 할게.”

"진짜예요?"

“아. 물론이지. 생각해온 콘텐츠 있으면 뭐든지 말해."

정말 뭐든지 해주겠다는 내 반응에

오연우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그러더니 슬쩍 세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세이는 안 돼."

"왜요?"

“최근에 드레이크를 잡은 길드가 우리 밖에 없는데. 이제 막 태어난 세이를 출현시키면 당연히 누구라고

생각하겠어?"

“으음. 그건 그렇겠네요."

-삐이익. 삐익!

세이는 대화 속에서 자신의 이름이

언급되자 관심을 끌고 싶었는지 힘차게 울음소리를 냈다.

나는 싱긋 웃으며 품 안의 세이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줬다.

-그르르릉. 그르릉.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손길을 느끼는 새끼 드레이크.

오연우는 그 모습이 무척 신기했는지 멍하니 바라보다가, 급히 정신을 되찾으며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오케이, 그건 인정할게요."

“뭐. 그것 말고 따로 생각해 온게 있는 거지? 네 성격에 그동안 아무 계획 없이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을 테고.”

“흐흐, 당연하죠.”

오연우는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어. 이걸 정말로 할 생각이야?"

"형도 언젠가는 한번 해볼 생각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렇긴 한데..….”

“거기다 세진 형이 바쁠 때 꾸준히 기다려준 구독자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런 분들을 위해서라도 이 정도 이벤트는 해줘야죠. 안 그래요?”

"흐음."

나는 오연우가 생각해 온 이벤트를

보면서 잠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지금까지 기다려준 구독자분들이나, 지금까지 많은 사랑과 관심을 보내준 분들에게 좋은 보답의 기회가 될 것 같았다.

"좋아. 해보자."

"정말이죠? 형, 정말로 이거 하는 거죠?"

“그래, 너튜브 채널 만든 지도 꽤 됐고, 언젠가는 한번 해보려고 생각도 했으니까.”

"아싸! 그럼 바로 일정 잡고, 자세한 계획도 세워볼게요. 그리고 이번 이벤트 공지는 라이브 방송으로 하는 거 아시죠?"

"하하. 그래. 알았다."

오연우는 완전 신이 난 표정으로 어깨를 들썩거렸다.

그리고 가방 속에서 수첩을 꺼내 곧바로 일정과 계획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뀨우?

“후후. 연우가 아주 기쁜가 봐.”

-뀨우우. 뀨우!

순식간에 표정과 기분이 급변하는 오연우의 모습이 신기한지 세이는

눈을 반짝였다.

나는 그런 세이와 오연우를 바라보며 기분 좋은 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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