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균열에 산다 182화
60. 예상치 못한 결과(3)
-뀨우우.
새끼 드레이크의 사랑스러운 울음 소리.
그 울음소리를 들은 사람들, 특히 여자 길드원들은 심장을 부여잡고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이게 정말로 그 드레이크 알에서
나온 거 맞아요? 너무 귀엽잖아요!"
김유미의 감탄이 뒤섞인 의문에 주변 모든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맹수들도 새끼일 때는 귀엽다고 하지만, 이 녀석도 엄청나구먼. 세진아. 그 커다란 알에서 얘 한 마리만 나온 거냐?"
“네. 그렇죠.”
"쩝. 아쉽구먼. 몇 마리 더 있으면 집에서 키워보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데."
새끼 드레이크가 한 마리라는 내 말에 아저씨는 실망한 기색을 내보였고, 옆에 있던 서율희도 덩달아 실망하는 표정을 지었다.
'예상외로 아저씨도 엄청나게 좋아 하시네?'
새끼 드레이크를 구경하느라 여념 없는 사람들.
숲속 통나무집에는 이 귀여운 생명체 때문에 아르킨 길드의 모든 인원이 모여들었다.
서율희에게 보내준 사진은 길드 단톡방에 올라갔고, 그 사진을 본 길드원들은......
-바위산 둥지 균열을 끝으로 아직 한 번도 안 모였는데, 한번 모여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네. 그럼 평소처럼 세진 오빠네 집에서 모여요.
-아니. 이제 길드 건물이 따로 있는데……
-그게 좋겠네요. 언제 모이는 게 좋을까요?
-다들 시간 괜찮으시면 내일이라도 당장 모이죠?
- 저기요. 집주인의 의견은......?
순식간에 의기투합해 통나무집으로
집결하기로 결정돼 버렸다. 물론 내 의견 따위는 가볍게 무시되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
원래의 목적은 내버려 두고 새끼 드레이크 근처에만 모여 있는 것.
-뀨우? 삐이익! 삐이이익!
새끼 드레이크는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며 큰 눈을 끔뻑거리더니, 별안간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울음소리에서 갓난아기의 그것과 비슷한 느낌을 줬다.
가만히 있던 새끼 드레이크가 울기 시작하자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당황해서 허둥거렸다.
“세진이 형. 이 녀석 어떻게 해요? 갑자기 울기 시작하는데."
“오빠. 어떻게 해봐요!"
임진혁을 제외한 모든 길드원이 눈빛으로 나에게 무언의 압박을 보냈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저 신기한 녀석과 만난 지 이틀도 채 되지 않은 상황이라서 별로 알고 있는 게 많이 없었다.
딱 하나, 알고 있는 사실은.
"있어 봐. 퓨이가 알아서 다 해줄거야."
"......?"
새끼 드레이크에 관련된 일이라면 퓨이가 다 알아서 해준다는 것.
"퓨이! 퓨이!"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새끼 드레이크 주변에 모여 있던 사람들을 뚫고 퓨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을 본 새끼 드레이크는 울음을 멈추고 퓨이 쪽을 향해 움직였다.
“퓨이."
-뀨우우.
-꼬옥.
새끼 드레이크는 마치 엄마의 품을
찾아가듯 퓨이에게 안겨들었고. 퓨이도 능숙하게 꼬리를 움직여 녀석을 꼬옥 안아줬다.
“어멋! 얘들 좀 봐!!"
이 장면을 목격한 김유미는 옆에 아윤을 붙잡고, 아이들이 놀라지 않도록 작게 비명과 같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서율희는 아주 열심히 일할 때 짓는 표정을 한 채.
휴대폰 카메라를 손에 들고 어떻게든 이 아름다운 장면을 남기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었다.
그나마 새끼 드레이크를 보고 밋밋한 반응을 보였던 임진혁도. 귀여운 두 생명체가 연출하는 장면에 훈훈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르르릉. 그르르릉.
퓨이의 품에 안겨 기분 좋은 울음 소리를 내는 새끼 드레이크.
미숙아처럼 알에서 태어나 생명이 위급했던 이 녀석.
나와 퓨이가 밤을 새워가며 녀석을 살펴준 덕분에 다행히 위급한 상황을 넘길 수 있었다.
그 덕분인지 녀석은 부모를 따르는 것처럼 나와 퓨이를 따라다녔다.
주변에 퓨이나 내가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불안한 듯 주변을 기웃거리고, 화장실에만 들어가도 문 앞에 서성거리며 재촉의 울음소리를 냈다.
마치 예전에 아르엘을 떠나보내고 크게 불안한 모습을 보였던 이엘을 보는 것 같아 안쓰러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뿐만 아니라 퓨이도 굉장히 잘 따른다는 점.
특히 퓨이는, 어떤 이유에서 그런 행동을 하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새끼 드레이크를 정말 제 자식처럼 아끼고 섬세하게 보살폈다.
녀석의 불안한 울음소리가 들리면 어디에 있든 가장 먼저 뛰어와서 달래줬고, 잠들어 있을 때도 항상 그 주변에 있으면서 상태를 살폈다.
아직 퓨이는 내가 많이 보살펴야 하는 아이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덧 이렇게 성숙해져 서 자기보다 연약한 존재를 챙기는 모습을 보니.
정말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내 도움은 필요 없는 것 같아서 서운한 마음도 생겨났다.
아직 아이를 가져보지는 못했지만.
나중에 내가 낳은 자식이 훌쩍 자라서 독립해 나간다면 아마 이런 기분이 들지 않을까 싶었다.
-고롱…… 고롱…...
퓨이의 품에 안겨 있던 새끼 드레이크는 어느덧 잠이 들어 있었다. 아직 완전히 자라지 못한 채로 태어나서 그런지, 녀석은 눈을 뜨고 움직이는 시간보다는 아직 잠들어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길드 사람들은 잠들어 있는 새끼 드레이크를 귀엽게 바라보면서, 더는 깨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아쉬움에 안타까워했다.
나는 퓨이와 새끼 드레이크를 동시에 품에 안아 좀 더 편히 쉴 수 있는 안방 침대에 옮겨다 줬다.
김유미나 아윤이가 자는 모습을 더 구경하고 싶다며 칭얼거렸지만, 다행히 아주머니가 눈을 한번 크게 치켜뜨니 금방 잠잠해졌다.
화제의 중심이었던 새끼 드레이크가 사라지니.
드디어 길드원들은 제대로 원래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움직였다.
물론 새끼 드레이크를 구경하고 있을 때보다 눈에 띄게 의욕이 줄어든 사람이 몇몇 있었지만......
길드장으로서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바위산 둥지 균열 클리어 이후로 이렇게 모이는 건 처음이죠? 조금 늦었지만 다들 어떻게 지내셨어요?"
나는 일단 분위기도 풀어볼 겸, 가벼운 일상적인 질문부터 던져보았다.
내 질문에 가장 먼저 반응한 사람은 김유미였다.
“어휴. 말도 마세요. 쉬는 동안 연락이 엄청 많이 와서 죽는 줄 알았어요."
"......?"
"전에 있던 오성 길드에 아는 사람들이 계속 연락하더라고요. 혹시 길드에 들어갈 수 있게 추천해 줄수 없겠냐고. 부조장…… 아니, 동현 오빠도 그렇죠?”
그녀가 윤동현을 딱 지적해 말하자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그는 살짝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저도 그렇죠. 뭐. 아무래도 신생 길드에서 드레이크를 잡았다는 업적은 충분히 주목할 만한 사실이니까요. 추천해달라는 부탁뿐만 아니라 드레이크를 공략하는 비법이 따로 있는지 묻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상황이 비슷한 지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이야기에 동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쪽 생활이 짧아서 인맥이 넓지 않은 임진혁이나 나 정도밖에 없는 듯했다.
가만히 상황을 살피던 아저씨가 지나가는 말투로 툭 질문을 던졌다.
"세진아, 우리가 추천하면 혹시 추가로 길드에 영입할 생각은 있느냐?"
다른 길드원들 역시 궁금했지만,
말을 꺼내기 어려웠던 질문을 아저씨가 총대를 멨다.
아무래도 내 대답 여하에 따라서 앞으로의 길드 운영 방침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조금은 신중하게 고민을 했다.
“지금 당장은 추가 영입은 하지 않을 생각이에요. 아직 길드의 기초가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크기를 키우자니 불안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또 지금은 워낙 많은 관심을 받다 보니 잡음도 많이 생길 것 같아서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내가 미리 생각해 두었던 바를 담담하게 길드원들에게 설명했다.
길드원들도 내 의견에 동의하는지 딱히 반론을 제시하거나 토를 달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이어질 때.
지금까지 뭔가를 고민하는 듯 가만히 있던 서율희가 조용히 손을 들어 발언권을 얻었다.
“네. 율희 씨. 할말 있으세요?”
“아직 정해지지 않은 중요한 사안이 있는데. 많은 사람이 모인 이 자리에서 이야기했으면 좋겠어요."
아르킨 길드의 길드장은 나지만.
지금 내부적인 사무 작업이나, 외부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에 가장 많은 관여를 하는 것은 서율희였다.
부길드장이지만 지금 길드가 유지되고 있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그녀.
“네, 말씀해 주세요."
“제가 하려는 말은……”
가장 길드의 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서율희가 중요한 사안을 이야기하려 하자, 모든 사람이 긴장한 표정으로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서율희는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직 저 새끼 드레이크의 이름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거예요."
"......."
순간 나는 잘못 들었나 싶어 멍한 표정을 지었다.
반면 다른 길드원들은 고민을 담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동조했다.
“흐음. 그렇네. 언제까지 새끼 드레이크라고 부를 수도 없으니까.”
"으으음. 뭐가 좋을까."
"아무래도 귀여운 이름이 좋겠죠?"
"나중에 컸을 때 너무 귀여운 이름이면 좀 그렇지 않을까요?"
아저씨를 시작으로 김유미, 아윤, 선우 남매까지 진지하게 이름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스러운 상황에 어찌할 줄을 몰라 입을 벙긋거렸다.
한편.
이 상황을 불러일으킨 서율희는 진지한 표정으로 이름을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아니. 이분은 뭐든지 다 완벽하게 하다가, 귀여운 것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네.'
예전에 서율희가 처음 퓨이를 만났을 때를 떠올리며 혀를 찼다.
이런 내 생각과는 전혀 상관없이 길드원들은 드레이크의 이름을 짓는 내용으로 활기찬 토론을 이어나갔다.
"하얀색이니까. 흰둥이 어때요?"
"에엑? 너무 대충 지은 것 같아요.”
“율희 언니. 그건 좀……”
서율희는 오랜 고민 끝에 말한 ‘흰둥이' 라는 이름이 금방 사람들에게 거절당하자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다.
'근데 내가 봐도 흰둥이는 좀 아닌 것 같긴 해.'
서율희의 뒤를 이어 아저씨도 자신이 생각한 이름을 이야기 했다.
“바둑이 어때? 바둑이."
“아빠, 강아지 이름 지어요?"
"왜? 친근하고 좋잖아. 바둑아, 바둑아."
“차라리 그럴 바에는 차라리 용용이가 더 좋겠네요.”
"어? 용용이도 괜찮은데?"
몇몇 길드원들이 괴멸적인 네이밍 센스를 발휘하고 있을 때.
티아가 아이들과 함께 난입해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기 시작했다.
“용삐. 용삐라고 하는 게 어때?"
“용삐?"
“응. 삐익, 삐익 하고 울잖아. 그래서 용삐."
“후모! 후모!”
“저도 용삐가 좋은 것 같아요. 아빠.”
아이들은 눈치 빠르게 가장 결정권자에 가까운 나에게 다가와 '용삐’ 라는 이름을 주장했다.
"아니, 그것보다는 바둑이가……"
“아빠, 바둑이는 절대 안 돼!"
"흰둥이는…...”
“용삐! 용삐!”
점점 혼돈으로 빠져드는 길드원 모임을 바라보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 괜히 길드장 한다고 했나?'
나 혼자 고독한 좌절감을 맛보고 있을 때.
-툭. 툭.
“......!”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임진혁이 다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두드려 줬고, 나는 그나마 위안을 찾았다는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세진아."
"형‥…."
"이름으로 '뀨잉'이 어떠냐?"
"......"
나는 다시 한번 정말로 고독한 좌절감에 빠져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