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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균열에 산다-180화 (180/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180화

60. 예상치 못한 결과(1)

“어휴. 많기도 해라. 이걸 어떻게 다 직접 작업했는지 모르겠네.”

"그러게요."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질린 표정을 짓는 아저씨의 말에 내가 맞장구쳤다.

그리고 옆에 있는 임진혁은 묵묵하게 작업을 계속해 나갔다.

마치 산을 이루듯 쌓여 있는 드레이크의 부산물들.

돌거북이나 회색 와이번의 부산물들은 이미 전부 팔려나갔고, 드레이크의 부산물들만 고스란히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아저씨는 다시 드레이크 가죽의 핏자국을 닦아내는 작업에 집중하며 내게 질문을 던졌다.

“부길드장은 이거 언제 다 판매할 계획이라고 하더냐?"

“글쎄요. 최대한 이슈를 끌 수 있을 때까지 보관할 생각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도 동의했고요.”

"쩝. 안 그래도 나한테도 드레이크 부산물을 팔아볼 생각 없냐고 엄청나게 연락 오는데. 귀찮아 죽겠다."

"하하. 저도 그래요.”

이미 아르킨 길드가 드레이크를 잡았다는 사실은 여러 기사와 방송을 통해 확실히 인정을 받았고.

생각보다 뜨거운 관심에 부산물 판매를 늦추고 있었다.

아직 길드에 사람이 부족해서 많은 일을 동시에 처리할 수 없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일단 부산물 판매에 대해서는 천천히 진행하기로 했다.

"으어. 대충 끝났네. 진혁아, 세진아. 대충 끝났으면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

“저는 이것만 끝내면 되니까, 먼저 세진이랑 나가 있으세요."

“그러냐? 그럼 먼저 나가볼게.”

“빨리 나오세요. 형. 저는 아이들 좀 챙기러 가볼게요."

"알았다."

마지막 하나만 끝내겠다는 임진혁을 놔두고, 나와 아저씨는 먼저 부산물이 쌓여 있는 곳을 빠져나왔다.

“아아, 오늘도 드레이크 꼬리 고기나 구워먹을까?"

"또요? 아저씨는 질리지도 않으세요?"

“질리기는. 대충 구워도 느껴지는 그 쫄깃쫄깃하고 고소한 맛이 얼마나 일품인데."

드레이크 꼬리 고기 찬양을 시작한 아저씨를 보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드레이크의 가죽, 발톱, 이빨같은 가공 재료도 굉장히 희귀하고 귀중했지만, 싱싱한 드레이크 고기도 그에 못지않게 굉장히 귀한 재료였다.

특히 꼬리, 날개, 목 부분의 고기가 미식가들 사이에서 굉장한 인기였는데, 이미 웬만한 부위의 고기들은 다 팔려나갔다.

고기를 팔기 전에 길드원들을 위해서 맛있는 부분의 고기들을 약간씩 남겨 나눠줬는데. 아저씨는 그 덕분에 드레이크 꼬리 고기에 빠져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마당을 지나가는데 한쪽에 모여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얘들아! 점심 먹어야지."

내가 소리를 높여 부르자 아이들이 쪼르르 내 쪽으로 달려왔다.

“세진. 저것 좀 봐. 엄청 신기해."

"퓨이! 퓨이!"

가장 먼저 내 곁으로 달려온 티아와 퓨이가 호들갑을 떨면서, 내 팔과 다리를 잡아당겼다.

약간 뒤늦게 도착한 이엘과 모렛도 약간 흥분한 기색이었다.

"응? 뭔데."

“빨리 와봐."

나는 아이들의 고사리 같은 손에 이끌려 어디론 가로 이끌려갔다.

“나는 먼저 들어가서 씻고 있을게.”

“네. 저도 금방 아이들이랑 갈게요.”

먼저 집으로 향하는 아저씨를 뒤로 하고 나와 아이들이 도착한 곳은 예전에 드레이크 고기들을 잠시 보관하던 장소였다.

고기는 거의 다 팔리거나 길드원들의 냉장고로 옮겨갔기 때문에 텅텅 비어 있었고, 아직 팔리지 않은 부산물 딱 하나만 남아 있었다.

바로 커다란 드레이크의 알.

우리가 평소에 볼 수 있는 달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크기.

표면에는 회색 바탕에 붉은색과 주황색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원래는 고기를 판매하면서 같이 팔려나갔어야 했는데, 중간에 거래 과정에서 혼선이 생겨 판매에 실패하고 아직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드레이크의 알 역시 다른 고기 부위에 비교될 정도로 귀한 음식 재료로 사용되는 부산물로 유명했다.

특별할 것도 없어 보이는 드레이크의 알 앞으로 나를 데려온 아이들을 바라봤다.

“얘들아. 알이 왜?"

"잠시만 기다려봐. 퓨이야. 아까 그거 다시 해봐.”

"퓨이!"

티아의 말에 퓨이가 꼬리를 들고 잠시 집중을 하더니. 꼬리 앞에 커다란 불덩이가 생겨났다.

퓨이가 마법을 시전하는 모습은 이미 여러 번 봐왔기 때문에 놀랄만 한 일은 아니었지만, 진짜 놀라운 일은 그다음에 일어났다.

-우웅.

-화륵. 프스스

퓨이가 만들어낸 불덩이가 드레이크의 알에 가까이 가져다 놓자, 미세한 반응이 일어남과 동시에 뜨거운 기운이 알로 빨려 들어갔다.

"어?"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현상에 나는 의문과 놀라움이 뒤섞인 짧은 말을 내뱉었다.

"어때? 신기하지? 신기하지?"

티아는 신이 나서 내 옆에서 질문을 던졌고, 다른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로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도 이처럼 마법을 시전해 보았다.

잠시 후.

퓨이와 마찬가지로 내 앞에도 불덩이가 생겨나고.

-화륵!

나는 조심스럽게 그 불덩이를 드레이크의 알 쪽으로 가져가 보았다.

- 우웅.

-화륵. 프스스

이번에도 미세한 반응과 함께 불덩이의 뜨거운 기운이 알의 표면을 통해 빨려 들어갔다.

직접 해보니 확실히 알에서 어떤 반응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뭐지?'

단순히 신기해하는 아이들과는 달리.

나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머릿 속으로 강한 의문이 떠올랐다.

“아직 안 들어갔어?"

등 뒤에서 들려오는 임진혁의 목소리에 나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아. 이제 들어가려고요. 얘들아. 일단 점심 먹으러 가자."

"알았어."

“네, 아빠.”

“후모."

아이들은 내 말에 저마다 대답을 하며 나를 따라나서는데.

퓨이만 혼자 덩그러니 남아서 눈앞의 알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퓨이야? 무슨 일 있어?"

“퓨이. 퓨이."

퓨이는 뭔가 망설이더니 고개를 흔들고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나를 따라나섰다.

꽤 이상한 행동이었지만 금방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돌아간 퓨이를 보며 금방 마음속에서 잊어버렸다.

***

아주머니가 준비해 준 맛있는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와 아저씨, 임진혁은 식탁에 앉아 여유롭게 엘프 차를 즐겼다.

거실에는 아주머니가 금방 뒷정리를 끝내고 아이들과 어울려 놀아주고 있었는데.

퓨이만 혼자 떨어져 거실의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아까 드레이크 알이 있던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발견한 나는 다시 한번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저씨에게 말을 꺼냈다.

“아저씨. 근데 드레이크 알 있잖아요.”

"응. 알이 왜?"

"혹시 거기서 부화하기도 하나요?"

“드레이크 알에서? 내가 알기로는 그런 일은 없을걸. 아마 그게 가능했으면 벌써 드레이크를 부화시킨 사람이 있겠지."

아저씨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찝찝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고, 내 표정을 살핀 임진혁이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왜? 무슨 일 있어?"

"아뇨. 그런 건 아닌데…… 괜찮아요. 별일 아닌 것 같으니까."

나는 얼버무리면서 드레이크 알에 대해서는 더는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

어느덧 달이 떠오른 저녁.

조금 늦은 시간에 서율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일단 다음 균열 배정은 조금 미루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생각보다 사람들의 반응이 길게 이어지네요.

“네. 저도 그게 좋을 것 같네요."

아무래도 계속 과도한 관심이 이어지다 보니, 길드원 모두 알게 모르게 부담스러워하는 상황이었다.

본연의 일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리고 길드 직원 공고를 올렸어요. 일이 갑자기 많아져서 계획했던 것보다 일찍 사람을 뽑아야 할 것 같아요. 아마 조만간 길드에 나오셔 서 면접에 참여하셔야 할 거예요.

“으음. 율희 씨가 일을 다 처리하시는 것 같아서 뭔가 죄송하네요.”

- 지금은 길드의 안정화가 먼저니까 괜찮아요. 대신 세진 씨도 조금씩 배우셔야 해요. 언제까지 부길드장인 제가 임의로 길드를 운영할 수는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열심히 해볼게요."

-후훗. 당연히 그렇게 하셔야죠. 빡빡하게 가르쳐드릴 거니까 마음 단단히 잡으셔야 할걸요?

서율희는 진심 반 농담 반 섞인 말을 건네며 웃음을 지었다.

-아. 그리고 드레이크의 알. 다시 판매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조만간 구매하겠다는 사람으로부터 직접 방문하겠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흐음. 그런가요?"

내 어정쩡한 반응에 서율희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드레이크 알에 뭔가 문제가 있나요?

"아뇨. 그건 아니고."

-......?

"괜찮습니다. 나중에 또 알려주실 일 있으면 연락해 주세요.

-알았어요. 그러면 저는 이만 들어가 볼게요. 좋은 밤 되세요.

“네. 율희 씨도 수고하셨어요.”

서율희와의 통화를 종료하고 나는 2층의 내 방으로 올라갔다.

나는 최대한 조용히 문의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철컥. 스륵.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침대에는 아이들이 벌써 자리를 잡고 잠들어 있었다.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아이들을 하나씩 살펴본 뒤, 나는 천천히 이불을 들어 올리고 몸을 집어넣었다.

마지막으로 침대 옆 테이블의 조명을 끄고

눈을 감았다.

방안에 울리는 아이들의 규칙적인

숨소리를 자장가 삼아, 꿈속 세상으로 조금씩 의식을 가라앉혔다.

***

-......!

“.......”

-흔들. 흔들.

깊게 잠들어 있던 나에게 뭔가 이상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몸이 흔들리는 기분에 반사적으로 눈을 떴다.

"으음?"

"퓨이! 퓨이!"

"으으으, 퓨이야? 무슨 일이야?"

잠을 깨게 된 원인을 발견하고 아직 잠겨 있는 목소리로 퓨이에게 물었다.

"퓨이! 퓨이!"

다급함이 느껴지는 퓨이의 목소리에 나는 일단 몸을 일으켰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침대 옆 조명을 켜고 다른 아이들을 살펴봤는데, 다행히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긴 것 같지는 않았다.

일단 안도함과 동시에 다시 의문이 떠올라 퓨이를 바라보았다.

"퓨이!"

퓨이는 침대에서 뛰어내려 창문 쪽으로 다가가 꼬리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꼬리를 따라 시선이 향한 곳에는 드레이크 알이 있는 곳이었다.

계속 보채는 퓨이의 성화에 못이겨, 일단 퓨이를 품에 안고 침대를 벗어났다.

잠옷 바람으로 집 현관문을 나서

드레이크의 알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드레이크의 알은 마지막으로 봤을 때와 전혀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다.

“퓨이. 퓨이."

하지만 퓨이는 뭔가 불안하고 다급해 보이는 모습으로 알의 주변을 맴돌았다.

나는 퓨이의 모습에 이상함을 느끼면서, 아무 생각 없이 알의 표면에 손을 가져다 댔다.

-......!

"으음.”

알의 표면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진동.

그리고 그 진동을 통해서 뭔가 애처롭고 쓸쓸한 감정이 느껴졌다.

갑작스럽게 밀려오는 감정의 파도에 내가 당황하고 있는 사이, 퓨이는 아까 전처럼 마법으로 불덩이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화륵!

-우웅.

드레이크의 알은 열기에 반응하듯 진동했고, 퓨이가 만들어내는 불덩이를 흡수했다.

퓨이는 계속 불덩이를 만들어냈지만, 알에서 느껴지는 애처로운 감정은 점점 심해져 갔다.

“퓨우우. 퓨우우....…"

“퓨이야. 너무 무리하면 안 돼.”

"퓨이..…."

계속 불덩이를 만들어내느라 탈진한 퓨이를 말렸다.

퓨이는 힘겹게 숨을 몰아쉬면서도, 드레이크 알에서 시선이 떨어질 줄 몰랐다.

"잠시만 기다려 봐. 절대 무리하면 안 돼."

"퓨이."

나는 잠시 퓨이를 내버려 두고 집으로 뛰어들어갔다.

집 안에서 아티팩트를 챙겨 빠르게 되돌아왔다.

그리고 곧바로 드레이크의 알을 향해 아티팩트를 발동시켰다.

- 파이어월

-화르르륵!

퓨이가 만들어낸 불덩이보다 훨씬 강력한 열기가 순식간에 드레이크의 알을 감쌌다.

'이거 알이 익어버리는 거 아냐?'

조금 걱정스러운 생각이 들려는 순간, 드레이크의 알은 엄청난 열기를 순식간에 흡수해 버렸다.

"허어."

"퓨이! 퓨이!"

내가 허탈해하는 사이 퓨이가 내 다리를 잡아당기며 계속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나는 퓨이의 요청에 따라 계속 아티팩트를 발동시켰다.

-화르르륵! 화르르륵!

-우우웅!

아티팩트에 장착된 마정석의 마력을 거의 다 사용했을 때쯤, 알에서는 조금 더 강력한 진동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찌지직.

"어...... 어엇?!"

"퓨이!"

커다란 드레이크 알 표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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