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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균열에 산다-178화 (178/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178화

59. 길드의 첫걸음(4)

길드원들은 산 중턱 옆쪽으로 이어진 구불구불한 오르막길을 따라 산꼭대기로 향했다.

제각각 설렘, 기대, 걱정, 긴장을 담은 표정으로 묵묵히 오르막길을 올랐다.

조금씩 산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뭔가 타는 듯한 매캐한 냄새와 후덥지근한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길드원들은 본능적으로 전투가 코 앞으로 다가왔음을 깨닫고 각자의 장비와 무기들을 다시 부여잡았다.

돌거북, 회색 와이번과 전투를 치렀던 곳이 발아래 멀찍이 보일 만큼 높은 산봉우리에 도달했을 때.

우리는 소문으로만 들었던 드레이크 (Drake)를 직접 눈으로 목격할 수 있었다.

-그르르릉. 그르르릉.

마치 둥지처럼 돌벽을 감싸고 있는 가운데에 몸과 꼬리를 웅크리고 있는 거대한 녀석.

확실히 용과 매우 흡사한 겉모습을 한 드레이크는 눈을 감고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뱉었다.

김유미는 그 모습을 신기한 듯 바 라보며 말했다.

“......자는 거죠?"

“자는 게 아니에요. 여기서는 보이지 않지만, 안쪽에는 알을 품고 있을 거예요.”

"알이요?"

“드레이크를 처치하고 운이 좋아 온전한 알을 구할 수 있으면 비싸게 팔 수 있을 거예요. 꽤 진귀한 요리 재료거든요.”

서율희의 자세한 설명에 모르고 있던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은 중요하지 않은 지식을 이야기하던 그녀는 뒤이어 매우 중요한 드레이크 공략법에 대해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한 번만 더 강조할게요. 드레이크를 절대 하늘로 날게 해서는 안 돼요."

세세한 주의사항이 있었지만.

그녀가 가장 강조한 것은 딱 하나.

'절대 드레이크를 하늘로 날게 하지 마라.' 였다.

아까 회색 와이번들과 마찬가지로

드레이크 역시 땅에 발을 딛고 싸웠을 때는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거기다 녀석은 알을 지키고 있다는 약점도 가지고 있어서 섣불리 하늘로 날아오르지 않는다.

대신 한 번 하늘로 날아오르면 압도적인 위치의 유리함을 가지고 엄청난 화력을 뿜어내기 때문에 순식간에 전황을 뒤집을 수도 있다.

그래서 공격 포인트는 당연하게 녀석의 한쪽 날개로 집중된다.

한쪽 날개만 무력화시켜도 날아오르지 못할뿐더러 지상에서의 공격력도 무뎌지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게 된다.

“모두 준비되셨죠?"

서율희의 물음에 길드원들은 침착한 눈빛으로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길드원들의 반응을 살핀 서율희 는 내 쪽으로 얼굴을 돌려 시선을 보냈다.

나는 그녀의 신호를 받아 천천히 골렘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쿵. 쿵. 쿵.

무거운 골렘의 발걸음 소리가 드레이크 둥지에 울려 퍼지고,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던 드레이크는 이미 우리의 존재를 눈치채고 있었다는 듯, 아주 침착하게 몸을 일으켰다.

몸을 일으키자 똬리를 틀고 있을 때는 몰랐던 거대한 몸집이 드러났고.

그와 동시에 드레이크의 몸체 아래에는 서율희가 말했던 대로 품고 있던 녀석의 알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알을 발견한 아저씨는 약간 꺼림칙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쩝. 괴수이긴 하지만, 괜히 가만히 있는 애 엄마를 건드리는 것 같아서

찝찝하네."

"그러게요."

“집중하세요!"

아저씨의 말에 대꾸한 김유미까지, 둘 다 서율희의 따끔한 불호령을 들었고 일행들 사이에는 다시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그르르릉!

드레이크는 다가오는 우리와 골렘을 바라보며 위협적인 울음소리를 흘렸다.

마치 더 다가오면 공격을 하겠다는 경고를 보내는 듯했다.

하지만 조금씩 다가오는 우리의 움직임이 멈추지 않자, 녀석은 맹렬하게 돌격해 오기 시작했다.

-크와아아앙!

-콰앙!

녀석의 맹렬한 돌격이 골렘으로 향하면서 엄청난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

균열 내내 어떠한 공격에도 굳건한 모습을 보여주던 골렘은 드레이크의 돌격에 크게 휘청거리며 겨우 균형을 잡아냈다.

그리고 뒤에 이어지는 녀석의 날카로운 발톱 공격은 단단한 골렘의 몸체에 눈에 띌 정도로 손상을 입히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녀석의 공격이 훨씬 위력적이야.'

나는 겨우 버티고 있는 골렘의 모습을 보며 내심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바위산 둥지 균열을 C등급 균열로 분류하지만.

드레이크를 사냥하기 위해서는 최소 B등급 급의 전력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시작부터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모두 오른쪽 날개 부분을 노리세요!"

골렘이 잠시 드레이크의 움직임을 가로막는 사이. 길드원들은 모든 화력을 녀석의 날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매직 미사일

-파앗! 콰지지직.

나는 왼쪽 팔의 컨트롤러를 이용해 골렘을 조종하면서, 오른쪽 팔의 아티팩트를 발동해 화력을 지원했다.

-그르릉!

드레이크는 본인의 약점을 잘 알고 있는지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면서 우리의 공격을 피하려 했다.

"아니. 덩치도 산만 한 녀석이 왜 이렇게 민첩해!"

녀석의 움직임에 화살이 빗나가면서 뒤쪽에서 아윤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누구 하나 대답 해줄 여유는 없었다.

나는 점점 너덜너덜해지는 골렘을 이끌어 최대한 드레이크의 움직임을 막으려 노력했고.

그 덕분인지 드레이크의 날갯죽지에도 상처가 쌓여나갔다.

-으르르.

위험을 느낀 드레이크는 민첩하게 뒤로 물러서며 두 날개를 크게 퍼덕이기 시작했다.

둥지에는 날개가 일으키는 바람으로 순간 돌풍이 불어닥쳤다.

"녀석이 하늘로 날아오르려 해요."

“그렇게는 안 되지!"

강한 돌풍을 일으키며 드레이크의 몸체가 떠오르려 하는 순간. 아주머니의 등 뒤로 다시 바람의 정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휘이이이잉!!

소환된 바람의 정령은 아까보다 더 강력한 것 같은 바람을 일으키며 드레이크의 비행을 방해했다.

바람의 힘을 받지 못한 드레이크는 그대로 지상으로 곤두박질쳤다.

-크헝!

-쿵!

불안정하게 바닥에 착지한 녀석은 생각보다 큰 피해는 입지 않았는지 곧바로 몸을 일으켰고.

녀석의 날카로운 이빨 사이에서 뜨거운 수증기와 매캐한 냄새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브레스 공격이에요. 모두 아티팩트 최대로 발동시켜요!"

-콰아아아아앗!!

다급한 서율희의 외침이 끝나기가 무섭게 드레이크의 입에서는 뜨거운 용의 숨결이 쏟아져나왔고, 바위산 둥지 안에는 순식간에 펄펄 끓는듯 한 열기로 가득하였다.

나는 최대 출력으로 아티팩트를 발동시키며 뜨거운 열기를 막아냈다.

방어막을 해제했을 때, 주변은 아직도 숨을 쉬기 힘들 정도의 후끈한 열기로 일렁였다.

-아이스 필드!

-촤자자자작!

아티팩트를 발동시키자 내 주변으로 냉기가 퍼져나가면서 주변의 열기를 식혀나갔다.

어느 정도 시야가 확보되자마자 빠르게 사람들을 둘러봤다. 다행히 브레스 공격에 모두 적절히 대처한 것 같아 보였다.

-후우우욱. 후우우욱.

순식간에 엄청난 열기를 내뿜은 녀석은 기력을 많이 사용했는지 숨을 헐떡였다.

잠시 무방비가 된 녀석의 상태를 놓치지 않고 우리는 다시 날갯죽지에 화력을 집중시켰다.

"흐읍!"

“쿠모!”

임진혁과 검사 모렛이 과감하게 몸을 던져 녀석의 날갯죽지에 강한 일격을 날렸다.

그 공격을 마지막으로.

-크아아앙!

녀석은 한쪽 날개가 꺾이면서 커다란 울음소리를 냈다.

하지만 아까의 울음소리와는 다르게 처절하고 어딘가 구슬픈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쿵. 쿵. 쿵. 꽈아앙!

이제 날렵하게 움직일 수 없는 드레이크는 한쪽 날개를 축 늘어뜨린 채 골렘의 무지막지한 주먹과 길드원들의 공격을 받아내야 했고.

아무리 질긴 가죽을 가졌다고 해도 무한정 그 공격을 버틸 수 없었다.

-끄어어어.

털썩!

결국, 드레이크는 온몸에 상처를 입은 채 바닥에 몸을 맡겨야만 했다.

“헉…… 헉…… 끝났다. 우리가 드레이크를 잡았어!"

앞줄에서 녀석의 공격을 피하느라 체력을 전부 소모한 아저씨가 약간 힘이 빠진 외침을 질렀다.

그 외침과 동시에 모든 마력을 쏟아낸  김유미가 가장 먼저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고, 다른 인원들도 승리의 기쁨보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 역시 긴장을 풀지않고, 온몸을 적셔버린 땀을 닦아내며 바닥에 누워 있는 드레이크를 끝까지 주시했다.

'후우. 확실히 위험했다. 골렘이 없 었다면 절대 시도해볼 수 없는 녀석이었어.'

드레이크의 날카로운 발톱 공격으로 너덜너덜해진 골렘을 바라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결국에는 해냈네요.”

서율희는 약간 멍한 표정으로 드레 이크의 시체를 바라보며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가능성은 크다며 확언했던 그녀였지만, 실제로 드레이크의 시체를 보고 있으니 쉽사리 믿기 힘든 모양이었다.

“그러게요. 정말 해냈네요. 근데 율희씨."

"......?"

“이 녀석은 이제 어떻게 하죠?"

"......"

우리는 덩그러니 남아 있는 거대한 드레이크의 사체를 바라보며 막연한 표정을 지었다.

****

-우우우웅!

오늘 입장했던 균열 입구에서 나와 길드원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하나같이 엄청난 피곤함에 찌든 모습이었다.

가장 먼저 신지아가 달려와 우리의 모습을 살피며 인사를 건넸다.

“고생하셨어요. 모두들.”

"기다리고 계셨네요?"

“네. 근데 생각보다 늦게 나오셨네요. 거기다 모두 표정이 안 좋으신 데. 무슨 일 있었나요?"

'무슨 일은 없었죠. 그냥 드레이크의 시체가 더럽게 컸을 뿐.'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고개 를 흔들며 말했다.

"그냥 좀 피곤해서 그래요."

"......?"

그녀가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아침에 우리를 배웅해 줬던 관리 센터 직원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의 표정에는 티가 날 정도로 짜증이 섞여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균열핵 확인해 볼 수 있겠습니까?"

"여기 있습니다.”

나는 피곤한 표정으로 직원에게 획득한 균열핵을 확인받았다. 그는 균열핵을 받아 확인을 끝마치고 돌려 줬다.

"확인 끝났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근데 생각보다 좀 늦으셨네요. 드레이크를 잡지 않고 곧바로 균열핵을 제거하셨으면 좀 더 일찍 나오실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주 힘드셨나 보네요."

그는 예상했던 시간보다 훨씬 늦게 나온 우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살짝 빈정거리듯 말했다.

보통은 센터의 직원은 길드장에게 이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는데, 아무래도 내가 신생 길드의 길드장이다 보니 굉장히 무례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우리가 드레이크를 잡았을 거라고는 생각 못 한 직원의 반응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잡았습니다."

“네?”

“드레이크를 잡고 해체를 하느라 시간이 좀 오래 걸렸습니다."

“푸하하하. 드레이크를 잡으셨다고요?"

직원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에 나는 물론이고 원래도 좋지 않았던 길드원들의 표정이 더욱 일그러졌다.

"늦게 나오셔서 창피하다고 거짓말을

하시면 안 되죠."

"......"

“이제 막 처음으로 균열에 들어간 길드가 어떻게 드레이크를 잡습니까?"

이제는 따지는 말투로 내게 말하는 직원의 모습.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저씨가 이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뭔가를 땅에 콱! 박아넣었다.

직원은 깜짝 놀라며 뒷걸음질을 쳤다.

"어엇? 뭡니까?”

“직접 봐."

아저씨의 과격한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인상을 팍 찡그렸던 직원은 땅에 박혀 있는 길고 커다란 무언가를 발견하고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헉?!!”

아저씨는 그런 직원의 모습을 대충 흘겨보고는 다시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 뒷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아직도 놀란 표정으로 땅의 박혀 있는 물체를 바라보는 직원.

“정말로 드레이크의 발톱? 어떻게 신생 길드가 드레이크를……”

현실을 부정하는 직원을 바라보며 나는 귀찮다는 감정을 듬뿍 담아 직원에게 말했다.

“이제 믿으시겠습니까?"

"앗…… 아. 예. 고생 많으셨습니다.”

직원은 아까보다 훨씬 공손해진 표정으로 다시 한번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는 아까의 행동이 굉장히 마음에 걸리는지 뭐가 마려운 강아지 같은 표정으로 내 주변을 맴돌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드레이크를 해체하느라 개고생했던 시간을 조금이나마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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