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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균열에 산다-177화 (177/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177화

59. 길드의 첫걸음(3)

아주머니의 활약에 힘입어 우리는 두둑하게 회색 와이번의 부산물과 이이템을 챙겼다.

특히 값이 많이 나가는 날개 가죽을 많이 챙길 수 있어서 굉장히 수확이 좋았다.

그리고.

“이제는 안 어지러워? 물 좀 줄까?"

“어머. 왜 그래요. 주변에서 본다고요."

"어헛. 누가 뭐라고 그런다고. 어서 물좀 마셔."

“아이참.”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다시 관계를 회복해 평소보다 더 낯간지러운 장면을 연출하는 중이었다.

회색 와이번들의 핏자국과 시체 한 가운데서 핑크빛 분위기를 연출하는 두 사람을 보면서.

나는 길드장으로서 관계를 회복해

기뻐해야 할지 자제를 시켜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이 들었다.

다행히 아윤과 선우가 눈치껏 두 사람을 말리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평소와 같은 분위기로 돌아갔다.

휴식과 회색 와이번의 정리를 끝낸 일행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묘한 흥분감과 긴장감으로 길드원들의 표정이 경직되어 있었는데, 균열의 중반부쯤을 지나니 확실히 모두 여유를 찾은 느낌이었다.

서율희는 길드의 첫 균열이다 보니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라고 했었는데.

이제는 길드원 모두 기대 이상으로 제 역할을 해내는 모습을 보니, 길드장으로서 별로 한 것도 없는데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회색 와이번과 전투 이후에도 일행은 여유를 가진 와중에도 빈틈없이 전투를 수행했다.

그러는 중에도 새로 받은 아티팩트를 시험해 본다든가, 골렘과 합을 맞춰보는 등, 여러 가지 시도를 해 보며 가능성을 확인했다.

일행은 균열의 중반부를 넘어 어느덧 끝을 얼마 남기지 않은 곳까지 도달했다.

바위산 중턱에 있는 자그마한 동굴 안에 균열핵을 제거하면, 길드의 첫 번째 균열은 완벽하게 클리어된다.

멀리서 보이는 바위산 중턱을 바라보며 일행은 벌써 빙글 웃음을 짓고 있었다.

생각보다 어려운 난이도의 균열이라 모두들 내심 걱정을 했을 텐데, 모든 게 순조롭게 풀려나가니 당연히 기분이 좋을 수밖에.

나 역시 기분 좋게 돌길을 걷고 있는데.

조금 심각한 표정의 서율희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에게 다가가 조용히 말을 걸었다.

“율희 씨? 무슨 문제 있어요?"

"아뇨. 문제가 있는 건 아닌데..….”

"그럼?"

“오늘 균열이 너무 잘 풀리니까 욕심이 생기네요.”

서율희는 말을 끝마침과 동시에 바위산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녀의 눈동자는 마지막 목표인 바위산 중턱이 아니라 정상 쪽으로 향해 있었다.

나는 그녀의 생각을 눈치채고 살짝 얼굴을

굳혔다.

“율희 씨. 설마 정상으로 가보실

생각이세요?"

“...... 가능성을 생각해 보고 있었어요.”

"흐으음.”

온통 회색빛 바위로 가득한 이곳. 여기가 그냥 '바위산 균열'이 아니라 '바위산 둥지 균열' 이라고 부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저 꼭대기에는 이곳 바위산 전체를 둥지 삼아 숨을 죽이고 있는 존재가 있기 때문.

바로 바위산 드레이크(Drake).

와이번이 용을 닮았지만 좀 더 야수에 가깝게 생긴 괴수라면, 드레이크는 정말 소설 속에서나 볼법한 용의 모습에 아주 흡사한 괴수였다.

소설 속에 용이 으레 강하게 묘사되듯이.

용과 아주 흡사한 모습을 가진 이 녀석은 와이번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함을 자랑했다.

이 드레이크가 바위산 둥지 균열의 보스 몬스터라고 할 수 있는데.

특이하게도 이 녀석은 균열이 위치한 바위산 중턱과는 전혀 동떨어진 산꼭대기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 덕분에 균열을 클리어하러 들어오는 사람들은 굳이 드레이크와 전투를 할 필요 없이, 곧장 바위산 중턱 동굴로 향하면 바로 균열을 클리어할 수 있었다.

물론 앞서 우리와 전투를 벌였던 돌거북과 와이번들도 쉽지 않은 존재지만.

꼭대기에서 웅크리고 있는 드레이크에 비한다면 확실히 애교 수준에 불과했다.

이런 연유로.

당연히 우리의 계획도 드레이크와의 전투는 배제하고 균열핵을 제거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잡았다.

그런데 지금 서율희는 그 드레이크를 노려볼 생각을 하는 것이다.

“어렵지 않을까요?"

내가 조심스럽게 운을 떼자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성공할 확률은 꽤 높다고 생각해요.”

“끄응. 출발하기 전에는 이런 말씀

한마디도 안 하셨잖아요."

“그렇죠. 그때는 가능성 희박하다고 생각했으니까."

"......."

"지금은 달라요.”

"......?"

“세진 씨가 소환한 골렘. 그리고 생각보다 뛰어났던 서미정 아주머니의 실력. 이 두 가지 변수 때문에 상황이 많이 변했어요."

무지막지한 힘을 자랑했던 골렘 그리고 아주머니의 엄청난 정령 마법 위력.

오늘 균열에서 가장 큰 활약을 했던 두 존재가 서율희의 생각을 흔들어 놓은 것 같았다.

그녀는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손을 들어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냥 제가 오성 길드의 조장이었으면 이런 계획은 고려하지도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부길드장으로서 눈앞에 놓인 큰 기회를 무시할 수만은 없네요."

나는 무거운 침묵으로 서율희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태도를 보였다.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 이건 길드에게 다가온 큰 기회였다.

바위산 둥지 균열.

확실히 처음 균열을 배당받는 길드에게 까다로운 난이도다. 하지만 그렇다고 엄청 힘든 난이도는 아니었다.

그 말 그대로 까다로운 정도. 클리어해 내기만 한다면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상황. 거기 다 우리는 꽤 상태가 좋은 부산물도 많이 얻었으니 조금 더 좋은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나쁘지 않다.

이 말은 뒤집어 말하면 좋지도 않다는 뜻.

보기에 따라서는 충분하다고 느낄 수도, 뭔가 부족하다고 느낄 수도 있는 평가.

서율희는 우리에게 내려질 이 평가를 뒤집어 버리려 하고 있었다.

바로 드레이크를 공략함으로써.

하지만 달콤한 성공에는 그에 걸맞은 위험이 따르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

“일단 공략법은 꽤 철저하게 조사했어요. 세진 씨도 보셨죠?"

“네. 당연히 봤죠.”

서율희는 균열에 들어오기 전, 돌거북이나 회색 와이번뿐만 아니라 드레이크에 대한 공략법도 조사해 나를 포함한 길드원에게 배포해 줬다.

물론 드레이크에 대한 조사는 진짜 공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준비한 경우였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균열에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미리 준비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

“근데 그것만 가지고 괜찮을까요?"

"......"

내 물음에 서율희는 확실히 대답하지 못했다.

아주 당연한 반응이었다.

흔히 인터넷에서 말하는 '연애를 글로 배웠어요.'와 비슷한 '드레이크 공략을 글로 배웠어요.' 인 상황.

아무리 공략법을 숙지했다고 해도 절대 쉽지 않은 목표였다.

고민을 거듭하던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무튼, 저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결정은 세진 씨. 길드장님이 직접 하세요."

"예?"

"뭘 그렇게 놀라요. 당연히 최종 결정은 길드장님이 하는 거죠.”

"......"

서율희는 가장 어려운 일은 나에게 덜렁 맡겨놓고, 더는 고민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시간이 지나.

길드원 전원 무사히 목표했던 바위산 중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모두 역사적인 길드의 첫 클리어를 앞에 두고 신난 표정을 했다.

한편.

나는 중턱에 올라오는 내내 찡그린 표정으로 끙끙대다가, 마지막에서야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여러분! 잠시 할 말이 있습니다.”

내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길드원들의 시선이 전부 나에게로 향했다.

나름대로 마음을 굳게 먹었는데도. 일행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상황이 되자 쉽게 말을 꺼내기 힘들었다.

잠시 내가 망설이는 사이 가까이 다가온 대훈 아저씨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귓가에 속삭였다.

“길드장은 너다. 그리고 여기 있는 모두 널 따르겠다고 약속한 사람들이야. 확실히 네 의견을 말해."

"......!"

아저씨는 이미 내가 뭘 고민하고 있었는지 짐작이라도 한 것처럼, 나직하게 조언을 남기고 내 어깨를 두드리며 다시 멀어졌다.

아저씨의 조언 덕분이었을까.

갈팡질팡하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으며 마음이 든든해졌다.

“일단 우리는 예정했던 대로 목표했던 곳까지 무사히 도달했습니다. 처음으로 호흡을 맞추는 균열이었는데 생각이상으로 잘 해주셔서 정말 좋았던 것 같습니다."

칭찬으로 시작하는 내 발언에 사람들의 분위기가 잠시 훈훈해졌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은 그 분위기를 다시 급반전시키기에 충분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이 정도로는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계획에는 없었지만. 저는 길드장으로서 산꼭대기에 있는 드레이크를 공략해 볼 것을 여러분에게 건의하고 싶습니다."

“......!"

내가 드레이크 공략을 건의하자 길드원들은 저마다 제각각의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깜짝 놀라기도 하고, 우려 섞인 표정을 짓기도 하고, 담담하게 내 발언을 받아넘기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모두 진지한 얼굴로 고민에 빠져들었다.

“모두 생각한 것이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말씀해주세요."

나는 최대한 담담한 표정으로 길드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불안한 표정의 김유미가 슬금슬금 손을 들어 올렸다.

"저기..….”

“네. 유미 씨.”

“가능성은 있는 건가요? 너무 무리한 도전 아닐까요?"

그녀는 아까 내가 했던 비슷한 질문을 던졌고, 이번에도 서율희가 나서서 대답했다.

“가능성은 충분해요. 제가 미리 전해드린 공략법만 제대로 숙지하고 있다면 큰 무리 없이 드레이크를 공략해낼 수 있을 거예요."

확신에 찬 서율희의 대답에 김유미는 약간은 불안한 표정을 지우며 손을 내렸다.

김유미의 질문을 끝으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이런 침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아주머니가 본인 특유의 낭랑한 목소리로 크게 말했다.

"나는 찬성!"

아주머니의 찬성 의견에 굳어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변했다.

“오늘 저 고철 로봇에 비하면 약간 활약이 부족했던 것 같단 말이지. 저 꼭대기에서 이 길드의 에이스가 누구인지 확실히 가려줄 거야."

갑자기 골렘을 상대로 에이스 욕심을 내는 아주머니의 엉뚱한 모습에 일행의 입가에는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졌고.

굳어있던 분위기가 살짝 풀렸다. 뒤이어 아저씨도 말을 이었다.

“나도 찬성, 확실히 욕심나긴 해. 첫 도전에서 드레이크를 잡은 길드! 꽤 멋지지 않아?"

그의 은근한 질문에 몇몇은 마음이

동하는지 차례로 찬성 의견에 합류했다.

"그럼 나도 찬성!"

“나도……”

정씨 남매가 가장 먼저 찬성 의견에 합류했고, 임진혁은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간단히 의견을 전했다.

마지막까지 고민을 거듭하는 윤동현과 김유미.

그중 윤동현이 먼저 결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그 모습을 본 김유미는 살짝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따라 고개를 끄덕였다.

“쿠모! 쿠모!”

마지막으로 모렛 병사들이 용맹한 울음소리로 투지를 불태웠다.

그 순간.

길드의 마지막 목표는 균열의 클리어가 아니라 꼭대기에서 웅크리고 있는 드레이크로 확정되는 순간이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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