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균열에 산다 176화
59. 길드의 첫걸음(2)
균열 입구를 지나 발 디딘 곳은, 많은 암석으로 뒤덮인 공간이었다. 주변은 온통 특유의 회색빛으로 가득했다.
흔히 바위산 둥지 균열이라 불리는 이곳은 여러 종의 괴수들이 등장하는 꽤 난이도가 있는 균열이었다.
일단 균열로 입장을 끝낸 길드원들은 무기와 장비들을 착용한 상태로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모든 길드원이 무사히 입구를 통과했음을 확인한 뒤, 나는 병사 모렛들을 소환했다.
- 파아앗!
“쿠모!!”
빛과 함께 나타난 병사 모렛들.
그들은 검사 모렛을 필두로 내게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경례 자세를 취해 보였다.
나도 경례 자세를 하고 손을 내리자 그들도 편한 자세로 되돌아갔다.
"오랜만이네! 친구들."
"안녕, 얘들아."
아저씨와 김유미가 반가운 듯 인사를 했고, 병사 모렛들도 손을 흔들며 그들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소환된 병사 모렛들까지 확인한 서율희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세진 씨, 이제 출발할까요?"
"잠시만요."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짓는 서율희를 뒤로하고, 왼손에 착용한 컨트롤러에 의식을 집중했다.
그러자 잠시 후.
병사 모렛들이 등장했을 때보다 더 큰 빛과 진동음이 공간을 울리기 시작했다. 모든 길드원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그 진동음의 발원지를 바라 보고 있을 때.
거대한 크기의 골렘이 모습을 드러냈다.
“컥! 이거 골렘 아니야?"
“길드장님 이거 길드장님이 소환하신 겁니까?"
아윤의 놀라는 목소리와 윤동현의 떨리는 목소리가 동시에 내 귓가를 울렸다.
일단 나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신경쓰지 않고 골렘 컨트롤러에 집중했다.
골렘은 내 지시에 따라 천천히 다리를 움직이거나, 양팔을 휘둘렀다. 내가 골렘을 컨트롤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길드원 그리고 병사 모렛들까지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움직임 테스트를 마친 나는 웃으며
길드원들에게 말했다.
“다행히 처음 소환해 본 건데. 움직임에
이상이 없네요. 오늘은 이 골렘도 전투에 합류시킬 생각입니다.”
골렘의 깜짝 등장에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서율희가 다시 입을 열었다.
“길드장님."
“네?”
“이렇게 혼자 준비해 오신 게 있으면 미리
언질이라도 좀 해주시죠. 준비하는 저로서는 혼란스러워지니까요.”
“아…… 미안해요.”
약간 싸늘함마저 느껴지는 그녀의 조언에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고
다시 원래의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이 골렘을 어떻게 사용하실 것인지 설명 좀 해주시죠."
***
깜짝 등장한 골렘 덕분에 잠시 소란이 있었지만, 우리는 금방 다시 전열을 정비해 원래의 계획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쿵. 쿵. 쿵.
가장 앞장서서 일행을 이끄는 거대한 골렘.
길드원들은 아직도 골렘의 모습이 믿기 힘든지, 눈앞에서 걸음을 옮기는 금속 덩어리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는 중이었다.
돌길을 따라 걷던 중.
-꾸어어억.
-끅. 끄억. 끄억
균열에 들어온 뒤 처음으로 괴상한 울음소리를 내는 괴수와 마주했다.
괴수는 마치 거대한 거북이를 연상케 하는 겉모습을 가지고 있었는데.
다른 점이라면 등껍질에는 날카로운 돌들이 솟아나 있었고, 입에서는 매캐한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돌거북이에요. 공략법은 다 숙지하고 계시죠?"
서율희의 물음에 나를 포함한 모든 길드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돌거북이라는 녀석은 겉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엄청난 방어력을 가지고 있었고, 껍질에 숨어 힘을 비축하다가 입으로 용암과 같은 뜨 거운 분비물을 내뿜으며 공격하는 괴수.
돌거북이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이 거북이처럼 느릿느릿한 움직임이 단점이지만, 무지막지한 강도의 등껍질과 위력적인 분비물 공격이 꽤 껄끄러운 존재였다.
“율희 씨. 골렘으로 먼저 공격해봐도 될까요?"
"알았어요. 그럼 골렘의 공격으로 주의를 끄는 사이, 나머지 인원이 한 마리씩 처리하는 거로 하죠."
서율희는 금방 수정된 작전을 길드원들에게 전달했고, 그녀의 작전에 따라 나는 골렘을 움직여 가장 가까이에 있는 돌거북에게 향했다.
-쿵. 쿵. 쿵.
-꾸어억!
골렘의 둔중한 움직임에 경계심이 잔뜩 섞인 울음소리를 내는 돌거북. 나는 컨트롤러를 이용해 골렘의 한 쪽 팔을 크게 휘둘러 돌거북에게 주먹 공격을 시도했다.
아주 간결한 동작이었지만, 몇 번이고 연습한 끝에 완성한 동작이었다.
- 부우웅!
골렘의 주먹이 무거운 바람 소리를 내며 돌거북에게 쇄도하고.
-꽈아앙!
-콰직!
-끄어어어억!
제대로 적중한 골렘의 주먹은 돌거북의 등껍질을 그대로 박살 내 버렸다.
돌거북은 처참한 모습으로 그 자리에서 바로 절명.
“.…..”
“.…..”
“어…...”
골렘에 공격에 맞춰 후속 공격을 준비하던 길드원들은 멍한 표정으로 압도적인 골렘의 공격을 바라봤다.
-꾸억! 꾸억!
-부글부글!
동료 돌거북이 당하자 흥분한 돌거북들.
녀석들은 입에서 엄청난 열기의 분비물을 모아 한꺼번에 골렘을 향해 쏟아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골렘의 표면에는 그을음 자국만 남았을 뿐 어떠한 유의미한 피해도 주지 못했다.
강한 방어력과 무시무시한 분비물 공격이 장점이었던 돌거북인데, 두 가지 장점
모두 통하지 않는 골렘에게는 그저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는 샌드백에 불과했다.
-꽈앙! 꽈앙! 꽈앙!
-꾸어어어억!
골렘의 주먹이 휘둘러질 때마다 돌거북들은 처절한 비명을 쏟아냈고, 어느덧 전장에는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돌거북들의 사체들과 그 중심에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골렘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일행들이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는 와중에 선우가 입을 열었다.
“……형. 도대체 뭘 만들어서 오신 거예요?"
“.…..”
나도 생각보다 압도적인 골렘의 위력에 볼을 긁적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괜히 스승님이 평생에 걸쳐 연구한 게 아니었구나……'
***
미친듯한 골렘의 활약에 꽤 성가신 상대로 유명한 돌거북들은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갔다.
골렘의 활약이 너무 뛰어난 나머지
서율희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세진 씨. 세진 씨는 골렘이랑 같이 전투에서 빠지세요."
"예?"
“그렇게 한 방에 다 죽여버리면, 나머지 길드원들이 합을 맞춰볼 기회가 없어져 버리잖아요. 골렘 데리고 뒤로 빠져요."
“네……”
물론 균열의 클리어도 중요했지만. 그녀의 말대로 길드원끼리 처음으로 합을 맞춰보는 자리에 골렘의 존재감이 너무 압도적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골렘을 이끌고 뒷줄로 빠졌다.
그 뒤로는 서율희의 지휘 아래, 길드원들은 준비해 온 공략법대로 남아 있는 돌거북들을 상대했다.
길드원들은 길드의 첫 데뷔전이라 그런지 모두 열정적으로 가진바 실력을 뽐냈고, 골렘만큼은 아니지만 까다로운 돌거북들을 능숙하게 처리해 나갔다.
나와 골렘은 쓸쓸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전투가 끝난 뒤, 골렘을 움직여 남아 있는 돌거북의 부산물들과 아이템을 옮기는 작업을 맡게 되었다.
내가 소환한 균열에 부산물과 아이템을 옮기는 골렘의 모습을 보니 약간 처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골렘의 처량한 모습과는 반대로 길드원들은 분위기를 타서 승승장구하며 균열을 돌파하는 중이었다.
안정적으로 균열의 깊은 곳으로 진입해 나가는 도중에 또 다른 괴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들의 등장과 함께 아주 날카로운 울음소리와 날개를 퍼덕거리는 소리가 하늘을 가득 메웠다.
- 삐이이익!
“회색 와이번이다!"
돌산의 가파른 계곡에 둥지를 만들고 서식하는 녀석들.
용과 비슷한 모습에 날카로운 발톱과 질긴 가죽을 자랑하는 괴수였다.
이 회색 와이번의 공격 방식은.
- 삐이이익!
-휘이익! 퍽!
하늘 높은 곳을 맴돌며 돌산에서 가져온 무거운 암석들을 머리 위로 떨어뜨리는 방식.
중력의 힘을 받아 포탄처럼 떨어지는 암석 공격은 잘못 맞으면 치명상으로 이어질 만큼 위협적이었다.
서율희는 촉수를 소환해 떨어지는 암석을 쳐내면서 일행에게 소리쳤다.
“흩어지면 안 돼요. 너무 멀리 떨어지면 녀석들에게 집중 공격을 받을 거예요."
나도 골렘을 움직여 하늘에서 떨어지는 암석들을 쳐내며 일행을 보호하려 했다.
-부우웅!
-삐이익!
골렘의 팔을 움직여 접근하는 녀석들에게 반격을 해보려 했지만, 느릿느릿한 골렘의 공격을 맞추기에는 회색 와이번은 너무 날쌘 움직임을 보였다.
느릿한 돌거북에게 엄청난 위력을 보여준 것과는 달리, 빠른 속도를 가진 회색 와이번에게는 속수무책이었다.
바람의 정령을 다루는 선우가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나와 김유미, 아윤까지 원거리 공격으로 회색 와이번들을 하늘에서 떨어뜨리려 노력했다.
근접 공격을 주로 하는 임진혁, 대훈 아저씨, 윤동현은 골렘과 비슷하게 대응을 하기 힘든 상황. 그때.
조용히 집중하고 있던 아주머니의 몸 주변에서 강력한 정령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휘이이잉!!
아주머니의 등 뒤에 모습을 드러낸 바람의 정령은 사방으로 엄청난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 삐이익?!
- 삐이이익!!
자유롭게 바람을 타고 하늘을 누비던 녀석들은 마치 그물에 걸린 것처럼 허공에서 버둥거렸다.
수십 마리의 회색 와이번들은 아주머니가 만들어낸 돌풍을 견디지 못하고 하나둘씩 땅으로 떨어졌다.
-털썩.
-삐이익..….
회색 와이번들은 그나마 있는 힘껏 날개를 퍼덕거려 지면에 정면충돌하는 사태는 피했지만, 적잖은 충격을 받아 다시 하늘로 날아오르지 못했다.
날지 못하는 녀석들은 그저 조금 질긴 가죽과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평범한 괴수에 지나지 않았고.
산전수전 다 겪은 길드원들에게는 손쉬운 먹잇감일 뿐이었다.
그 뒤로는 이어진 일방적인 전투.
"회색 와이번 날개 가죽은 비싸니까 머리 위주로 공격해요!"
상황이 워낙 싱거워지다 보니, 서율희는 날개 가죽을 보존하라는 지시까지 내리게 됐다.
그 덕분인지 우리는 전투가 끝난 뒤에 꽤 훌륭한 품질의 와이번 날개 가죽을 대량으로 얻을 수 있었다.
전투가 끝나고.
일행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이번 전투의 큰 활약을 펼친 아주머니에게로 향했다.
"엄마. 진짜 대단해!"
“호호호. 그러니?”
흥분한 기색이 가득한 선우의 외침에 아주머니는 살짝 쑥스러운 듯 입을 가리고 웃어 보였다.
서율희도 아주머니의 실력에 매우 놀랐는지, 무덤덤한 표정에 큰 변화를 보이며 감탄했다.
“네. 정말 대단했어요. 아주머니 덕분에 위험한 상황을 쉽게 넘길 수 있었어요. 확실히 예전에 대단하다고 들었지만, 이 정도 실력이실 줄이야......"
“어머. 우리 부길드장님께서 칭찬 해 주시니까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길드원 모두가 그녀를 칭송하는 분위기에 딱 한 명.
아저씨만 어색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직도 아저씨와 아주머니 사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는 길드장으로서 내심 마음이 불편해졌다.
일행들에게 둘러싸여 미소를 짓고 있던 아주머니는.
과도한 기운을 사용해 순간 어지러움을 느꼈는지 이마를 잡고 쓰러질 듯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엄마!"
"괜찮으세요?"
그녀의 모습에 주변 사람들이 걱정스러운 질문을 던지는 사이.
"당신! 괜찮아?"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아저씨가 아주머니의 어깨를 붙잡아 부축하며 말했다.
"괜찮아. 조금 어지러운 것뿐이니까.”
"그러게 왜 무리를 하고 그래.”
“오랜만에 전투에 참여하니까 조금 신이 났었나 봐. 미안해 여보.”
아저씨는 아주머니를 책망하듯 말했지만, 말투와 얼굴에서는 걱정하는 감정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그런 모습이 싫지만은 않은지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아저씨의 품에 얼굴을 기댔다.
부부는 주변 사람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두 사람만의 세계로 빠져들었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더니……'
허무함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끼며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