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균열에 산다-175화 (175/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175화

59. 길드의 첫걸음(1)

사람들과 합심해 길드를 만들겠다고 결심한 뒤, 한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길드를 만들기 위해서 많은 일이 있었는데 결국에는 무난하게 다 해결해 냈고,

주변에서 많은 도움을 얻은 결과.

드디어 정식으로 길드의 창립을 허가받을 수 있었다.

한 달이 넘는 시간이 걸린 끝에 얻은 허가증.

그곳에 길드장의 이름으로 새겨진 내 서명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무척 감회가 새로웠다.

한편으로는 이 종이 쪼가리 하나를 얻기 위해서 한 달 내내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고생했던 것을 생각하면, 살짝 허무하다는 감정도 들었다.

그래도 내가 길드장이 되겠다고 선언하기 전. 정대훈 아저씨나 서율희가 미리 조사를 다 끝마치고 준비를 어느 정도 해뒀기 때문에 한 달 정도 시간이 소요된 거지.

만약에 아무런 준비 없이 길드를 세우려 했다면 최소 2, 3달은 걸렸 을 일이라고 한다.

아무튼, 이렇게 복잡한 절차 끝에 정식으로 길드를 만든 우리가 첫 번째로 한 일은.

바로 길드의 이름으로 건물을 사는 일이었다.

아직은 많은 인원이 아닌 작은 규모의 길드지만, 길드원이 늘어났을 때 모두 모일 수 있는 장소도 필요했고.

균열에서 얻은 부산물이나 여러 가지 아이템을 보관하고 관리할 공간도 따로 마련해야 했다.

건물은 아저씨가 후보지를 고르고,

나머지 길드원들의 의견과 생각을 수렴해 최종적으로 결정했다.

구매한 건물은 완공된 지 조금 오래된 건물이었지만.

외관이 깔끔하고 내부 공간도 길드가 사용하기에 적당한 데다가, 위치도 나쁘지 않아서 길드원들의 만장 일치로 결정되었다.

딱 한 명.

“흐흠. 조금 더 괜찮은 건물로 정해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건물을 구매하는 데 물주 역할을 해준 강유환 회장만이 더 비싼 건물을 사지 않은 것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어차피 나중에 갚아야 할 빌린 돈이었고. 길드가 성장한다면 건물은 언제든지 옮길 수 있으니 크게 개의치 않았다.

이렇게 마련된 길드 건물에는 집들이 때 모였던 사람들 그대로 창립 멤버로 합류하게 되었다.

아주머니의 경우 일단은 길드원으로 등록은 해둔 상태였지만 아직 아저씨와 원만하게 이야기가 끝난 상황은 아니었다.

한편 내가 길드를 세웠다는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은.

“세진, 나도 길드에 들어갈래. 길드원 시켜줘!"

"퓨이! 퓨이!"

"아빠! 저도 길드에 들어가면 안 돼요?"

"후모!"

자신들도 길드에 들어가고 싶다며 떼를 썼다.

물론 아이들은 정식으로 길드에 가입할 수 없는 처지였기 때문에 말 그대로 생떼를 부리는 상황.

“자, 여기 길드 가입증이에요. 받아 가세요."

서율희는 재치있게 아이들의 사진으로 길드 가입증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나눠주었고, 아이들은 모두 만족한 표정으로 웃을 수 있었다.

***

쿵, 쿵, 쿵.

3m에 가까운 골렘이 걸음을 움직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안정적인 자세로 멈춰선 골렘은 두 팔을 움직여 주먹을 휘두르기도 했고, 복잡한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내 왼손에 장착된 컨트롤러에 따라 정확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골렘.

처음에는 조종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지금은 꽤 능숙하게 골렘을 다루고 있었다.

“이제는 움직임이 굉장히 자연스러워졌구나. 이 정도면 전투에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겠어."

"퓨이! 퓨이!"

일취월장한 내 조종실력에 스승님과 퓨이가 감탄을 내뱉었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그래, 그래.”

스승님은 대견하다는 듯 나를 바라 보다가 골렘 쪽으로 시선을 돌려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프로토타입의 골렘을 가동하는 데 성공을 거두고, 지금까지 골렘의 세부적인 부분에

약간의 조정과 컨트롤러에 관한 연구만 이뤄질 뿐.

추가로 골렘에 관한 연구는 이어지지 않고 있었다.

스승님은 상대적으로 넉넉해진 시간에 나와 퓨이에게 최대한 많은 마법 지식을 전달하려 노력했다.

말없이 골렘을 바라보던 스승님은 다시 내 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제자야, 그동안 수고했다. 네 덕분에 생각보다 훨씬 일찍 목표를 이뤄 낼 수 있었구나."

“아뇨. 제가 한 일이 뭐가 있다고.

다 스승님이 해낸 일이죠."

"녀석…...”

내가 겸손을 떨며 모든 공을 넘기려 하자, 스승님은 기분이 나쁘지 않은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제자야."

“네, 스승님.”

“미안하지만 나는 다시 한번 더 바깥세상으로 나가야 할 것 같구나.”

"네? 또 나가신다는 말씀이에요?"

계속 함께할 줄 알았던 스승님이 다시 숲을 떠난다는 이야기에 나는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이런 내 반응에 스승님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던 일을 생각보다 일찍 끝내버렸구나. 처음 생각했던 계획과는 조금 달라졌지만, 이제는 정말로 마무리 지을 일만 남았어."

“…….”

그렇게 길지 않은 기간이었어도 이제는 정말 부모님처럼 느껴지는 스승님이 떠난다는 말에 나는 아쉬움을 감추기 힘들었다.

스승님도 그런 내 심정을 이해하는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위로했다.

“그런 표정 짓지 말아라. 이 일만 끝낸다면, 이제는 정말 숲에서 너와 마법을 연구하며 여생을 보낼 테니.”

“언제 떠나실 생각이세요?"

“마음을 먹었으니 지체해서는 안

되겠지. 내일 일찍 길을 나설 생각이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스승님.”

나는 최대한 의연한 태도를 보이며 스승님에게 고개를 숙였고, 스승님도 이런 내 모습에 신뢰 가득한 눈빛으로 보답했다.

“내 거처에 아직 너에게 전하지 못한 마법 이론들과 수식들을 정리해 두었다.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퓨이에게 물어보면 될 거다."

“퓨이."

“아...… 네.”

퓨이는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자연스럽게 반응했고, 나는 퓨이에게 모르는 부분을 물어 보는 상황을 상상하며 머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리스의 저주 치료법' 아니, 너는 '티머시 증후군'이라고 불렀던 그 병의 치료법도 따로 정리해 뒀다. 내가 직접 알려주고 싶었지만, 아직 네 수준이 거기에

미치지 못해서 아쉽구나.”

"죄송합니다. 스승님."

"아니다. 미안한 건 오히려 나다. 원래 약속대로 너에게 직접 치료법을 알려줬어야 했는데, 이렇게 개인적인 문제로 그 약속을 미루게 되었구나.”

오히려 면목 없다는 표정을 하는 스승님의 모습에 내 마음도 덩달아 안 좋아졌다.

분위기가 가라앉는 것을 느낀 나는

일부러 과장된 행동과 웃음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럼 마지막인데, 오늘 저녁은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드시죠? 최대한 맛있는 저녁으로 준비하겠습니다."

“후후. 그렇게 하자꾸나."

"퓨이! 퓨이!"

스승님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셨고, 퓨이도 즐거운지 신난 목소리를 냈다.

그날 저녁.

나는 스승님을 모시고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과 함께 맛있는 저녁을 함께했다.

스승님은 서로 말이 통하지는 않아

어색하지만, 임진혁과도 짧게 작별 인사를 나누고.

아쉬워하는 아이들과도 한 명씩 인사를 나눴다.

오늘 스승님은 거처로 돌아가지 않고 밤늦게까지 나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마련한 잠자리에서 잠이 들었다.

.

.

.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은 이른 새벽.

벌써 준비를 끝마친 스승님이 현관문을 나서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퓨이가 정제한 최상급 마정석이 들어 있는 자루가 들려 있었다.

스승님의 부탁으로 여유분으로 만들어 뒀던 최상급 마정석을 전부 꺼내온 것이었다.

“나올 것 없다. 금방 다녀올 테니 걱정하지 말고 꾸준히 공부하고 있거라."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거......"

“마정석은 벌써 챙겼다만?"

"아뇨. 그게 아니라. 새벽에 스승님이 좋아하시던 것들로 급하게 구해 왔습니다."

스승님이 내가 건넨 가방을 열자, 안에는 새벽에 편의점에서 급하게 구매해 온 인스턴트 음식들로 가득 했다.

스승님은 가방을 둘러보고 살짝 입꼬리를 올리셨다.

“식사 잘 챙겨 드셔야 해요."

"고맙다. 제자야. 그럼 다녀오마."

"몸조심하세요. 스승님."

그렇게 스승님은 나와 짧은 작별인사를 나누고 새벽 숲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

스승님이 떠나고 약간은 허허로운 마음을 달래고 있을 때.

우리 길드의 첫 균열 일정이 배정 되었다.

아직 신생 길드였기 때문에 균열을 배정받기 위해서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길드의 데뷔전을 치를 수 있게 됐다.

드디어 잡힌 첫 일정에 모든 길드원은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균열의 등급은 C등급 2단계.

상대적으로 담담한 표정으로 자료를 수집하던 서율희는 약간 걱정스러운 마음을 드러냈다.

“처음 균열을 배정받은 길드에게 조금 빡빡한 난이도이긴 하네요.”

"그런가요?"

“네. 보통은 첫 배정은 C등급에서 최하 단계를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근데 우리가 배정받은 균열 은 2단계에서도 난이도가 높은 편이에요."

"흐음."

서율희의 말을 들으니 길드장으로서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율희 씨는 혹시 이 배정을 거부하셨으면 하는 거예요?"

“그건 아니에요. 길드의 전력을 따지면 그 정도 균열은 충분히 클리어 할 수 있거든요. 단지……"

"......?"

“...... 죄송해요. 쓸데없는 말을 할 뻔했네요. 일단 배정받은 균열을 클리어하는 데 집중하죠."

그녀는 뭔가를 말하려는 듯하다가 멈추고 다시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나는 찜찜한 마음이 들었지만, 뒤에 밀려드는 길드장으로서 해야 하는 업무에 금방 잊어버리게 됐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대망의 첫 일정 날이 되었다.

균열 앞에 모인 길드 인원은 총 9명.

나와 임진혁.

그리고 과거 오성 길드 인원이었던 세 명.

마지막으로 정씨 가족 네 명.

그렇다.

오늘 들어가는 균열에 기어코 아주머니도 참여하게 된 것.

아저씨는 아직도 아주머니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불만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반면 아주머니는 세상 신난 표정으로 장비를 점검하고 있었다.

능숙하게 장비를 점검하는 아주머니의 모습을 보니, 확실히 오래전에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셨다는 말이 거짓이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신지아를 포함한 미래 그룹

연구소에서도 사람들이 나왔는데, 길드원들에게 아티팩트를 나눠주며 주의사항을 알려주고 있었다.

우리 길드는 정식으로 미래 그룹 연구소와 계약을 맺어 아티팩트를 지원받게 되었으니, 앞으로는 자주 보게 될 광경이었다.

한편 나는 길드장으로서, 관리 센터에서 나온 직원과 오늘 균열에 진입하기 앞서서 여러 가지 절차를 따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처음이다 보니 옆에서 서율희의 도움을 받아서 일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죄송해요. 율희 씨.”

"신경 쓰지 마세요. 당연히 처음이니까 어쩔 수 없는 거예요. 앞으로 하나씩 배워나가면 돼요."

나는 그녀에게 친절하게 점검해야 할 것들과 주의사항을 전해 들으며, 무사히 관리 센터 직원과 균열 입장 전에 절차를 모두 끝낼 수 있었다.

무사히 끝냈다는 안도감에 나는 서율희를 향해 웃으며 감사 인사를 전했고, 그녀도 마주 웃어주며 나를 칭찬해 줬다.

둘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던 그때.

갑자기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통증!

"으윽! 지아 씨?"

“어머. 죄송해요. 아티팩트 점검이 다 끝났다고 말씀드리러 왔거든요. 세.진.씨!"

“아...… 아.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떠나가면서 내게 서늘한 눈빛을 보냈다.

나는 경직된 표정으로 식은땀을 흘렸고, 서율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우우웅!!

무거운 진동음과 함께 균열이 열리고.

"자. 이제 입장하셔도 됩니다.”

센터 직원의 허가와 함께 길드원 전원이 균열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르킨(Arquen) 길드의 역사적인 첫 균열 입장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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