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균열에 산다-174화 (174/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174화

58. 만들다(4)

사람들에게 길드장 자리를 부탁받은 지 며칠이 지났다.

길드를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과정이 꽤 복잡했다.

일단 아무런 경력이 없으면 당연히 길드 설립을 허가해 주지 않는다.

거기다 자본력 또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아야 허가를 받을 확률이 높았다.

뭐……

자본은 강유환 회장님이 우리 뒤에 있는 한 문제 될 사항이 전혀 아니었지만. 어쨌든.

거기다 복잡하고 잡다한 제출 서류들을 이것저것 준비하는 일 역시 쉽지 않았다.

몰래 계획을 준비하던 사람들은 아주 단단히 준비해 놓고 있었는지, 길드를 만드는 일은 차근차근 진행됐다.

딱 한 가지 걸리는 문제가 있었는데.

부길드장은 길드장을 정할 때와는 달리 의견 불일치가 좀 생겨났다.

바로 정대훈 아저씨와 서율희가 동시에 후보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단순 경력만 놓고 보자면 서율희가 부길드장에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나이는 상대적으로 어려도 균열에서 전투를 지휘한 경험도 풍부하고, 오성 길드라는 거대 길드에서 조장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해 낸 전적까지.

경험으로 따지면 대훈 아저씨도 밀릴 수준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나이에서 오는 짬을 무시할 수 없었다.

거기다 나도 나이가 어린 편이다 보니 부길드장 정도는 조금 연륜이 있는 사람이 맡는 게 좋지 않겠냐는 의견이 사람들에게 꽤 설득력이 있게 다가왔다.

하지만 대훈 아저씨는 서율희가 부길드장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라 주장했다.

“부길드장은 서율희 조장이 맡는게 맞아."

"왜요?"

“나이 때문에 조금 무시를 받을 순 있어도 어차피 실력으로 말하는 바닥이야. 거기다 길드장이 너라서 내가 부길드장이면 안 돼.”

"......??"

“너는 성격이 너무 물러터져서 뒤에서 따끔하게 이야기해 줄 사람이 필요해. 그런 면에서는 서율희 조장이 나보다 훨씬 똑 부러지게 해낼 것 같으니까."

“.......”

나는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저씨가 거절하면서 내놓은 의견은 사람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고, 부길드장 자리는 자연스럽게 서율희가 맡게 되었다.

약간의 잡음이 있었던 부길드장 선정이 끝난 뒤.

이제 정말 마지막으로 남은 일은 바로 길드의 이름을 정하는 일이었다.

어찌 보면 가장 간단할 것 같은 일이 생각보다 우리의 골머리를 앓게 했다.

길드에 소속될 사람들은 저마다 생각하는 이름을 이야기하며 의견을 나눴으나, 딱히 확 와닿는 느낌의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아르킨(Arquen) 어때?"

그때 티아가 불쑥 끼어들며 의견을 냈다.

“아르킨?"

“응. 우리 왕국의 언어로 명예로운 사람들을 뜻하는 단어야. 한때 왕실 기사단의 이름으로 쓰이기도 했어."

“으음. 괜찮은데?”

"그러게. 뜻도 나쁘지 않고."

"괜찮지? 헤헤."

티아는 자신의 의견이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끌어내자 뿌듯한 표정으로 웃음을 지었다.

사람들과 충분히 의견을 나눈 끝에.

새롭게 만들어질 길드의 이름은 아르킨 (Arquen)으로 결정됐다.

* * *

길드의 설립에 필요한 모든 절차를

마무리하고 이제는 최종 허가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또 다른 문제가 생겨났다.

정확히는 길드의 문제라기보다는 정씨 가족에게 일어난 문제였다.

“안 돼. 절대 안 돼!"

"왜! 이제 정말 괜찮다니까? 병원에서도 몇 번이고 정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잖아.”

“어찌 됐건 안 돼! 이건 생각해 볼 가치도 없는 문제야."

아저씨는 평소에 유쾌한 모습과는 다르게 아주머니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반면에 아주머니는 그런 아저씨의 모습이 너무 답답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평소에 정말 금슬이 좋은 두 사람이 이렇게 언성을 높여가며 싸우는 모습은 나에게는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자식인 아윤과 선우 역시 이런 상황이 익숙하지 않은 듯 멀리 떨어져 눈치만 보고 있었다.

“세진아. 네가 말 좀 해봐.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야?"

“어...... 저, 저요?"

아저씨는 갑자기 멀리 있던 나를 불러냈다.

“그래. 이제 네가 길드장이잖아. 우리 집사람에게 따끔하게 안 된다고 말 좀 해줘."

“으음. 그게….. 저기."

내가 당황해서 말을 더듬는 사이,

이번에는 아주머니가 나에게 호소하듯 말했다.

"세진아. 너는 괜찮다고 생각하지? 그렇지? 분명 괜찮다고 그랬잖아."

“그렇긴 한데요. 그게……"

나는 부부 사이에 끼여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격렬한 부부 싸움이 일어나게 된 이유는 조금 전에 있었던 아주머니의 돌발 선언 때문이었다.

정씨 가족은 평소처럼 우리 집에 놀러 와 아이들과 놀아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주머니가 결심한 듯한 표정으로 선언하듯 우리에게 말했다.

"세진아. 나도 길드에 들어갈게. 나 받아줄 거지?"

"예? 길드에요?"

“그래."

“그러니까…… 으음. 길드의 사무직 쪽으로 말씀하시는 거죠?"

"아니. 당연히 나도 현장에 나가야지."

"......"

"뭐어! 지금 당신 뭐라고 그랬어?"

이렇게 시작된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다툼은 끝날 줄을 모르고 이어지고 있었다.

나도 아주머니가 과거에, 그러니까 티머시 증후군에 걸리기 전에, 각성한 능력으로 균열 전투에 참여했던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나에게는 아주머니가 각성자보다는 주부의 이미지가 더 가깝게 느껴져서, 개인적으로는 이번 돌발 선언이 더 충격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세진아. 분명 네 스승님이 그 치료약을 먹으면 완벽하게 치료된다고 했지?"

“네. 그리고…..."

나는 잠시 아저씨의 눈치를 보다가 말을 이어나갔다.

“워낙 귀중한 재료가 들어간 치료약이라 개인에 따라서는 더 뛰어난 능력을 얻을 수도 있다고 하셨죠."

“봐. 나는 이제 완전 괜찮아졌다니까. 오히려 예전보다 더 힘이 넘치는 느낌이야."

“그걸 어떻게 안다고. 당신 그렇게 고생했던 거 벌써 잊었어?"

"안 잊었어. 그리고 나만 고생했어? 당신이랑 애들도 같이 고생했잖아.”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그게 왜 안 중요해!"

점점 격해지는 싸움에 내가 나서서 말려야 하나 고민하는 와중에.

“이익. 그래 마음대로 해!"

-콰앙!

아저씨가 분을 참지 못하고 크게 소리치며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눈치를 보던 아윤은 슬쩍 아저씨를 따라나섰고, 선우는 아주머니에게 다가갔다.

"엄마, 괜찮아?"

“어휴…… 정말 내가 속상해서.”

평소에 보여주던 활기찬 모습의 아주머니는 온데간데없고,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얼굴을 붉혔다.

나는 옆에서 티슈를 가져와 아주머니에게 건넸다.

“고마워."

"......"

“미안해. 추한 모습 보여줘서."

“아뇨,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나는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정말 괜찮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아주머니에게는 큰 위로가 되지 못한 듯 보였다.

아주머니가 받아든 티슈로 눈물을

찍어내고 있을 때.

"퓨이?"

“후모?"

"......"

"......"

2층 계단에서 임진혁과 함께 아이들이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아이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아주머니는 크게 당황하며, 눈물을 재빨리 닦아내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어머. 얘들아 내려왔니? 아줌마랑

아저씨가 너무 시끄러웠지?"

아주머니는 일부러 쾌활한 척 연기를 했지만.

아이들은 그렇게 눈치가 없는 존재가 아니었다.

계단을 타고 쪼르르 내려온 아이들은 모두 아주머니에게 달라붙었다.

"퓨우우우."

“후모.”

퓨이와 모렛은 착 달라붙어 아주머니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애교를 부렸다.

“아줌마. 괜찮아요?"

"눈이 빨개."

이엘은 울상인 표정으로 올려다보며 걱정했고, 티아는 공중에 떠올라 작고 부드러운 손으로 아주머니의 부은 눈가를 매만졌다.

"아냐. 아줌마는 괜찮아."

그래도 아이들의 위로는 효과가 있었는지, 아주머니는 아까와 같은 경직된 미소가 아니라 한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나는 아주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아직 길드가 만들어지지도 않았는데, 처음으로 생긴 길드의 문제에 가슴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

스승님이 머무는 거처 뒤쪽 공터.

그곳에는 신지아에게 전해 받은 많은 골렘 부품들과 회로들이 널려 있었고.

나와 스승님은 그곳에서 골렘의 부품을 매만지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흐음. 그래서 길드를 만들었다고?"

“네. 그렇게 됐어요."

스승님은 새로운 길드를 만들고, 내가 길드장이 되었다는 소식에 꽤 흥미를 보였다.

“앞으로 무척 바빠지겠구나."

"죄송합니다."

“허허. 아니다. 너에게도 원래 생활이 있으니. 너무 많은 시간을 뺏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그래도 아직은 길드가 만들어지기

전이니까, 그전까지는 최대한 시간을 내볼게요."

“그래. 그렇게 하자꾸나."

길드를 만드는 복잡한 절차를 거치는 중에도, 나는 스승님과의 마법 수업과 골렘 연구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밤잠을 줄여가면서도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이제 더 열심히 해야 해. 앞으로 길드장이 되려면 더욱더.'

스스로 길드장에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 부족함을 채울 수 있도록 더욱 많은 것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이 골렘을 완성하는 일이다.

아직 길드에 많은 인원이 함께하고 있지 않은데.

만약 이 골렘을 완성하고 실전에 사용할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린다면, 길드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 나와 스승님은 첫 프로토타입의 골렘을 거의 완성의 단계에 가깝게 진행하고 있었다.

모든 부품의 개별적인 테스트와 안정성 시험은 끝낸 상태였고, 정확한 방법으로 조립하고 마지막 골렘의 핵을 장착시키는 과정만 남은 상태였다.

준비한 부품들을 찬찬히 둘러보던 스승님은 담담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제자야."

“네. 스승님.”

“내일 진행할 예정이다. 준비하도록 하자."

"...…알겠습니다."

그리고 스승님은 드디어 마지막 단계를 시행할 준비를 지시했다.

***

결전의 날.

나는 새벽 일찍부터 몸을 깨끗하게 씻고 스승님의 거처로 향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스승님 역시 먼저 일찍 일어나 마지막으로 부품들을 점검하고 있었다.

나도 자연스럽게 스승님을 따라 신중한 마음가짐으로 마지막 점검에 함께했다.

조금씩 해가 산맥 위로 떠오를 때쯤.

나와 스승님은 본격적인 골렘의 조립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꽤 무거운 부품들은 스승님이 마법으로 운반했고, 내가 가까이 붙어서 세부적인 조립을 시도했다.

그렇게 두 사제는 점심도 거른 채, 골렘의 부품과 내부 회로에 모든 신경을 쏟은 채 조립을 이어나갔다. 어느덧 높게 떠 있던 해가 기울어 지기 시작하고.

발밑의 그림자가 점점 길어질 때쯤에 우리는 모든 부품 조립을 끝낼 수 있었다.

나는 스승님에게 가장 중요한 부품, 골렘의 핵을 떨리는 손으로 받아 들었다.

그리고 사다리를 타고 골렘의 가슴 부분까지 올라섰다.

가슴 내부에 복잡하게 연결된 회로 중앙.

텅 비어있는 공간에 아주 조심스럽게 골렘의 핵을 끼워 넣었다.

“스승님. 끝났어요."

“그래. 이제 시험만 남아 있구나.”

스승님은 아티팩트와 비슷하게 생긴 골렘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장치를

손에 들고 수염을 파르르 떨었다.

잠시 침묵을 유지하던 스승님은 눈을 감고 컨트롤 장치에 정신을 집중했다.

스승님의 마력에 반응에 컨트롤 장치에 불빛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극․ 그그극!

골렘 쪽에서 기계 마찰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집중하고 있는 스승님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흥분되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그극. 그으응!

조금은 불안하지만 천천히. 그리고

웅장하게.

거대한 크기의 골렘이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완벽하게 골렘이 몸을 일으켰을 때.

스승님의 환희에 찬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드, 드디어......"

“스승님, 성공했어요!"

[골렘 제작에 성공해 내셨습니다.]

['골렘 제작 이론서' 습득에 성공하셨습니다.]

[이제 골렘에 문양의 힘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눈앞으로 많은 알람이 떠올랐지만. 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스승님에게 달려갔다.

스승님과 나는 그간의 힘들었던 노력을 한꺼번에 보상받는 기쁨을 함께하면서.

서로를 격하게 부둥켜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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