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균열에 산다-171화 (171/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171화

58. 만들다(1)

"......"

"끄응..….”

이전에는 아르엘이 살던 집이지만,

이제는 스승님이 머무는 곳이 된 집 안.

그곳에서는 풀리지 않는 문제로 스승과 제자가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골렘의 핵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냈을 때만 해도, 금방 완전한 골렘을 완성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나머지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완성된 동력부를 골렘의 각 부위와 안정적으로 연결하고 사용자가 효율적으로 통제하도록 만드는 작업.

이것이 생각보다 더 많은 경험과 지식이 있어야 하는 작업이었다.

골렘의 핵을 완성할 때는 약간의 시행착오만 있었을 뿐, 벽에 부딪힌다는 느낌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나와 스승님 모두 거대한 벽에 가로막혀 있는 기분을 느끼는 중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꾸나."

“네. 알겠습니다."

"퓨이?"

“그래. 이제 끝났어."

"퓨이!"

골렘 연구에서는 퓨이가 할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옆에서 조용히 마법서를 읽고 있던 녀석은 냉큼 책을 놓고 나와 스승님 사이로 파고들었다.

연구를 방해하지 않으려 조용히 있었지만 조금은 외로웠나 보다.

혼자 외로웠던 것만큼 나와 스승님에게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고, 스승님은 그런 퓨이의 행동이 싫지 않은지 작게 웃으며 쓰다듬어 줬다.

“아무래도 '골렘 제작 이론서'를 조금 더 연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흐음. 확실히...... 아직 우리가 빼 먹고 있는 부분이 많은 것 같구나.”

내가 '골렘 제작 이론서'를 언급하자 스승님은 한 손으로 수염을 쓸어 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골렘의 핵은 이론서의 도움 없이 쉽게 만들어냈지만, 아무래도 완벽한 골렘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이론서의 완벽한 이해가 필요할 것 같았다.

벌써 어둑어둑해지는 창밖을 바라보며 나는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제자야."

"네, 스승님."

“크흠. 집에 먹을 게 다 떨어졌는데……”

"예? 그걸 벌써 다 드셨어요?"

내가 깜짝 놀라며 되묻자 스승님은 민망한 듯, 빠르게 수염을 쓸어내리며 변명했다.

"많이 안 먹었다. 그저 배가 고플 때마다 하나씩 챙겨 먹었을 뿐이야."

“그거 그렇게 몸에 좋지도 않은데. 너무 많이 드시면 안 돼요."

“괜찮다. 예전에는 이것보다 훨씬 상태가 안 좋은 음식도 많이 먹었어.”

“그런 의미가 아닌데……"

나름의 논리를 펴며 자신의 주장을 꺾지 않는 스승님의 모습에 나는 난감한 표정을 지울 수 없었다.

아르엘의 집으로 스승님이 거처를 옮겼을 때.

멀지 않은 곳이지만 아무래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스승님의 식사를 챙기는 문제가 생겨났다.

스승님은.

- 내가 먹을 식사는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할 필요 없다.

라고 말했지만.

가르침을 받는 제자로서 마냥 모른

체할 수는 없었다.

처음에는 집으로 모셔와 음식을 대접하려 했는데, 번거롭다는 이유로 스승님은 매번 거절하셨다.

어쩔 수 없이 끼니를 거르지 말고 간단하게나마 챙겨 드시라고 인스턴트 식품을 이것저것 챙겨드렸다.

여러 종류의 라면, 즉석밥, 즉석요리 등등.

그런데 이게 문제의 발단이 되어버렸다.

연구를 우선시하는 스승님은 식사 시간도 굉장히 번거롭게 느끼는 와중에, 내가 챙겨준 간편하고 금방 챙겨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 식품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하셨는데.

문제는 그 이후로 스승님이 모든 식사를 인스턴트 식품으로 대체해 버린 것.

“그것만 드시면 안 되고 일반 식사도 하셔야 한다니까요."

“내가 괜찮다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냐. 간편하고, 맛도 좋고, 뒤처리도 편한데. 딱 마법사들을 위한 물건이야. 아마 대륙의 마탑에 내다 팔 수 있으면 돈을 떼돈으로 벌어들일 거다."

오히려 인스턴트 식품을 찬양하는 스승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래도 사부일체(師父一體)라고, 부모님처럼 모시고 싶은 나로서는 인스턴트 식품만 챙겨주기가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챙겨준 반찬 제때 안 먹는다고 잔소리하던 아주머니의 심정이 이랬을까?'

나는 제대로 된 음식을 잘 챙겨 먹지 않는다며 잔소리를 하던 아주머니를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일단 사드릴게요. 대신 집에 자주 식사하러 오셔야 해요? 이엘도 스승님 보고 싶다고 했으니까요."

"알겠다. 약속하마."

"약속하셨어요?"

조금이라도 식사를 챙기려 억지 약속까지 받아내고, 나는 퓨이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그리고."

"......?"

“카레는 매운맛으로 부탁한다. 크흠.”

쑥스러운 표정을 하면서도 자신의 취향을 확고하게 밝히는 스승님의 모습에.

나는 애써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나 왔어!"

"아빠!!"

"세진, 왔어?"

“후모!!”

집 현관문으로 들어서자마자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와 내게 안겨들었다.

나는 신발도 벗지 못하고 먼저 아이들의 포옹 공격을 하나하나 받아 주었다.

평소보다 더 격렬해진 포옹 공격에 당황하고 있을 때, 뒤에서 임진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도 늦었네?”

"죄송해요. 형.”

“아냐, 얼른 들어와. 저녁 준비할 테니까."

내가 미안한 표정을 짓자 임진혁은 괜찮다는 말과 함께 부엌으로 향했다.

“아빠, 저 배고파요."

"어? 아직 밥 안 먹었어?"

“세진, 퓨이랑 같이 먹으려고 모두 기다리고 있었어."

“후모."

이미 저녁때가 지나서 당연히 먼저 식사를 했을 줄 알았는데, 아이들이 나와 퓨이를 기다렸다는 말에 뭉클하면서도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최근에 스승님에게 마법을 배우면서 골렘 제작 연구에 몰두하다 보니 너무 아이들에게 신경을 쓰지 못한 것 같아 조금 마음이 무거워졌다.

임진혁이 차려준 저녁 식사를 아이들과 함께 맛있게 먹고, 뒷정리를 도와준 뒤에 거실로 향했다.

내가 소파에 앉자마자 퓨이를 제외한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나에게 딱 달라붙어서 재잘재잘 오늘 있었던 일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평소에 이런 어리광을 부리는 데에 그 정도가 약한 모렛도 나에게 달라 붙는 것을 보니.

확실히 내가 요즘 아이들에게 신경을 덜 써준 것 같았다.

"퓨이."

퓨이도 슬금슬금 아이들을 따라 내 품으로 다가오자 티아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안 돼! 퓨이는 오늘 종일 세진이랑 같이 있었잖아."

"맞아. 그러니까 퓨이는 아빠를 좀 양보해야 해."

“후모!"

"퓨우우……”

아이들은 퓨이가 나와 온종일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말하며 퓨이의 접근을 차단했다.

퓨이도 아이들의 말에 어느 정도 수긍하는지 약간 풀죽은 모습으로 내 곁에 자리했다.

'하하. 이것 참……'

평소와는 다르게 아이들이 질투하는 모습까지 보이자 약간은 난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고민에 빠져 있는데 임진혁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세진아. 혹시 대훈 아저씨 연락 못 받았어?"

“대훈 아저씨요?"

“응. 아까 너한테 전화했었는데 연결이 안 되는 것 같다던데."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확인해 보니, 임진혁의 말대로 아저씨에게서 온 부재중 통화 기록이 찍혀 있었다.

나는 곧바로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 세진이냐?

“네. 아저씨. 죄송해요. 아까 바빠서 전화를 못 받았어요.

- 어어. 괜찮아, 진혁이한테 들었다. 요즘 엄청 바쁘다며?

“그렇게 바쁜 건 아니고...… 근데 무슨 일이세요?"

-저번에 네가 부탁했던 새집 인테리어 다 끝났다고. 가구들도 다 들여다 놨다.

"아. 정말이요?”

아저씨는 균열 창조 능력으로 새로운 입구를 만들기 위해 구매한 2층 주택의 인테리어가 끝났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아직도 아이들과 대부분의 시간은 통나무집에서 보내고 있지만, 새로 산 집을 언제까지 텅텅 비워놓을 수 없었기에 새로 인테리어와 가구를 구매했다.

원래는 내가 나서서 처리해야 할 일들인데.

최근에 워낙 바쁘다 보니 인테리어 업체를 소개해 주려던 아저씨가 일을 도맡아 끝내게 돼버렸다.

"죄송해요. 아저씨. 제가 더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저 때문에 번거로우셨죠?"

-크하하. 이 정도 가지고 뭘, 신경쓰지 마.

내 죄송스러운 말투에 아저씨는 특유의 유쾌한 웃음을 터뜨리며 대충 받아넘기셨다.

-그것보다. 이번에도 당연히 할거지?

“네? 뭘요?"

-뭐긴 뭐야. 새로 집 장만했으니까 당연히 집들이해야지.

“또요?”

아저씨가 계획에 없던 집들이 이야기를 꺼내자 나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그래도 새로 집을 장만했는데 집들이 해 줘야지. 그리고 요즘에 네가 바빠서 쉬지도 못했다며, 겸사겸사 같이 모이는 김에 하는 거지.

"흐음......”

-듣자 하니까 아이들이랑도 많이 못 논다며, 집들이 핑계로 하루 날 잡아서 쉬어. 어때?

인테리어에 직접 신경을 써준 아저씨의 제안을 무작정 거부하기도 힘들었고.

무엇보다 지금도 눈을 반짝이며 '언제 통화를 끊나.'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밟혔다.

"알았어요. 아저씨, 가까운 날에 집들이 하죠."

-하하. 잘 선택했다.

“대신 저번처럼 너무 본격적으로 안 할거에요. 아주머니도 절대 음식 해오시지 말라고 하세요. 대충 배달 음식 시켜서 먹을 거니까."

- 알았다. 알았어. 집사람한테도 그렇게 전해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럼 나중에 또 연락할게.

벌써 잔뜩 신나 통화를 끊는 아저씨의 목소리에 나는 피식 웃으며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 모습을 본 임진혁이 입을 열었다.

“대훈 아저씨가 뭐래?"

“그 새로 산 주택 인테리어 다 끝났다고, 집들이하자고 하시네요."

“후후. 대훈 아저씨답네."

임진혁은 대충 상황을 다 이해했는지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진! 또 집들이하는 거야?"

“그래. 이번에는 저쪽 세상에 있는 집에서 할 거야."

"와아! 집들이다!"

“후모!"

집들이 이야기에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소파 위를 방방 뛰어다녔다.

아무래도 즐거웠던 저번 집들이를 생각하면서 벌써 신난 모습이었다.

"퓨우우. 퓨이!"

옆에서 조용히 눈치를 보던 퓨이는 아이들이 방심한 틈을 타 순식간에 내 품을 파고들었다.

신나서 돌아다니던 티아는 내 무릎 위에서 만족스러운 표정을 한 퓨이를 발견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앗! 이 너 언제 거기로 간거야.”

"퓨이! 퓨이!"

티아는 내 품 안에서 퓨이를 밀어 내기 위해 달려들었고, 퓨이는 밀리지 않기 위해 나를 붙들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뒤늦게 이엘과 모렛까지 달려들며 내 주위로 난장판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티격태격하는 아이들을 말리느라 진땀을 빼야 했고, 이 모습을 지켜보는 임진혁은 훈훈한 미소와 함께 여유를 즐겼다.

***

전세진과 통화를 마친 정대훈은 바로 메신저 어플을 열어 단톡방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세진이한테 집들이 약속 잡았습니다. 아마 이번 주 안으로 모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오. 잘됐네요.

-드디어 시작되는 겁니까?

정대훈이 글을 올리자마자 단톡방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우르르 답변이 올라왔다.

-근데 세 분도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저는 상관없습니다.

-저도요.

단톡방에는 잠시 글이 올라오지 않다가 비장한 느낌의 글이 올라왔다.

-저도 이미 결심을 했어요.

그 뒤로 단톡방의 사람들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활기차게 이야기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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