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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균열에 산다-169화 (169/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169화

57. 데이트 (2)

싱긋 웃으며 다가오는 신지아의 모습에 나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다시 정신을 차렸다.

“아뇨. 저도 금방 왔어요."

“그래요?”

그녀는 다시 한번 웃으며 내 곁에 섰다.

평소보다 조금 화려한 옷차림에 높은 구두.

한 듯, 안 한 듯 자연스러운 느낌에 신경을 많이 썼을 것 같은 화장까지.

확실히 신경을 썼다는 느낌을 주는 신지아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도 이런 내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팔을 툭 치면서 장난스럽게 말을 걸었다.

“그래도 오늘 좀 신경을 써서 나왔네요.”

“네, 시험용 더미가 될 수는 없으니까."

"훗, 잘했어요."

다행히도 신지아는 오늘 내 옷차림이 마음에 들었는지 흡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를 때쯤.

나는 미리 준비해 놓은 일정들을

떠올리며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따로 가고 싶은 곳 있어요?"

"아뇨. 생각해 둔 곳은 없는데."

“그럼, 영화관에 영화나 한 편 같이 보러 갈까요?"

"네. 좋아요."

가장 무난한 데이트 코스인 영화관을 신지아에게 물어보았고, 다행히도 그녀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나란히 걸어 공원을 빠져나와 영화관으로 가기 위해 가까운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정류장에 나란히 그녀와 서 있는데 약간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쩝. 렌트라도 해올 걸 그랬네.’

아무래도 차가 없는 생활을 오랫동안 유지하다 보니 의식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잠깐. 그러고 보니 지아 씨는 차가 있을 텐데?'

신지아는 이미 출퇴근을 위해 차량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지아 씨. 혹시 차량 안 가지고 오셨어요?"

“네. 오늘은 저도 버스 타고 왔어요. 가끔은 이런 것도 좋을 것 같아서요."

"......"

그녀는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지만.

나는 그녀가 나를 배려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와 함께 버스에 올라타면서 이른 시일 내에 차량을 하나 구매해야 겠다고 마음먹었다.

나와 신지아는 버스를 타고 멀리 않은 영화관에 도착했다.

아직 오전 시간이지만 영화관은 주말을 맞아 영화를 보러온 커플들로 붐비고 있었다.

우리는 상영 중인 영화들의 포스터들 앞에 섰다.

“지아 씨. 혹시 보고 싶으신 거 있으세요?"

"으으음.”

그녀는 포스터들을 둘러보며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한편.

나는 이미 오늘 상영 중인 영화에 대해 미리 알아보고 왔기 때문에 어떤 영화들이 상영 중인지 다 아는 상황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꽤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는 로맨스 영화를 마음속으로 생각해 두고 있었는데.

"이게 재미있을 것 같네요. 어때요?"

"어…… 이거요?"

그녀가 선택한 영화는 기계 슈트를 입은 주인공이 나오는 히어로 영화였다.

“네. 이거 멋있을 것 같지 않아요?"

기계 슈트를 입고 늠름하게 서있는 영화 속 주인공을 반짝이는 눈동자로 바라보는 신지아.

나는 난감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기대감 넘치는 그녀의 모습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화를 선택한 우리는 영화 예매를 위해 나란히 줄을 섰다.

평범하지 않은 신지아의 외모 덕분인지 주변에는 그녀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그녀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담담하게 받아넘기고 있었다.

옆에 서 있는 나로서는 이런 시선들이 부담스럽기도 하면서도, 약간 우쭐해지는 기분도 들었다.

대기 줄에서 기다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차례가 되었다.

“영화 예매하실 건가요?"

“10시 30분 영화 지금 예매 가능하죠?"

"네. 가능합니다."

영화관 직원은 힐끔 우리 쪽을 바라보더니.

“커플석으로 해드릴까요?"

"어……”

전혀 예상 못 한 질문에 내가 말을 더듬는 사이, 신지아가 불쑥 나서서 대답했다.

“커플석이 더 편한가요?"

“네. 아무래도 두 분이 같이 보기에는 커플석이 더 편하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죠."

“그럼 커플석으로 주세요."

그녀는 내 쪽을 바라보며 동의를 구하는 눈빛을 보냈고,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영화 예매를 끝내고, 팝콘과 콜라를 사서 영화 상영관으로 향했다.

처음 들어와 본 커플석은 주변을 가리는 칸막이에 의자는 소파처럼 하나로 이어져 있는 형태였다.

나는 조금 더 넓은 좌석을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그렇게 넓지는 않았다.

나와 신지아가 좌석에 나란히 앉자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감에 나도 모르게 긴장감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 영화가 시작되고. 도대체 왜 긴장했나 싶을 정도로, 그녀는 정신없이 영화 속에 빠져들었다.

내가 들고 있는 팝콘을 와작와작 먹으며 기계 슈트 히어로를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에 왠지 모를 허탈함이 느껴졌다.

그 뒤로는 나도 푹신한 의자에 몸을 기대고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를 관람했다.

***

"으으. 주인공 정말 멋졌죠? 나중에 저도 아티팩트를 계속 개발하다 보면 저런 슈트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신지아는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주인공의 멋있는 기계 슈트를 감탄했다.

약간은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 졌고, 이 모습을 본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했다.

“으음. 오랜만에 영화를 봐서 그런지, 제가 너무 흥분했었네요."

"괜찮아요. 저도 정말 재미있게 봤어요.”

나는 그녀가 창피해하지 않도록 일부러 영화 이야기를 더 꺼내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고.

내 이야기에 다시 그녀는 초롱초롱한 눈빛과 함께 맞장구를 쳤다.

정말로 연구소로 돌아가면 영화에서 봤던 히어로 슈트를 만들어 내는 게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열정적인 모습이었다.

“지아 씨. 배 안 고프세요?"

“그러고 보니 벌써 점심시간이네요."

“제가 예약해 둔 식당이 있는데, 괜찮으시다면 거기로 가실래요?”

“그럼 그렇게 해요.”

내가 미리 예약을 해뒀다는 이야기에 그녀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은 그녀의 반응에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짐을 느끼며 그녀를 예약한 식당으로 이끌었다.

내가 신지아를 이끌고 향한 곳은.

바로 콜린의 이탈리아 레스토랑이었다.

그의 레스토랑은 최근의 뜨거운 인기를 입증하듯 이미 많은 사람이 안에서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예약석으로 안내해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콜린은 저번에 봤을 때보다 훨씬 정중한 태도로 나와 신지아를 예약 석으로 이끌었다.

“세진 씨. 혹시 저분 너튜브에 나왔던 그 셰프님 아니세요?"

"맞아요. 지아 씨랑 같이 오고 싶어서 얼마 전에 부탁드려서 예약해 놨어요."

딱 봐도 가장 좋아 보이는 예약석으로 안내받은 우리는 콜린에게 직접 오늘의 추천 메뉴까지 들으며 주문을 할 수 있었고.

줄줄이 나오는 화려한 음식들에 신지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직접 맛을 본 뒤에는 절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정말 맛있네요. 너튜브에서 요리 대회 영상보고 꼭 먹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세진 씨 덕분에 이렇게 직접 먹어보네요."

신지아는 다행히 요리가 마음에 들었는지 행복으로 가득한, 정말 생생한 표정을 보여주었다.

그 모습에 내가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을 때, 콜린이 주방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아름다운 숙녀분께서는 요리가 마음에 드셨는지 모르겠네요.”

“정말 맛있었어요. 콜린 셰프님."

"다행입니다. 이건 제가 직접 만든

딸기잼이 들어간 구운 타르트와 레모네이드입니다."

"어머! 감사합니다.”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타르트와 상큼한 레모네이드가 등장하자 신지아는 다시 행복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콜린은 그 모습을 뿌듯하게 바라보다가 슬쩍 내 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오늘 어땠냐는 듯한 시선을 보내오자, 나는 신지아 몰래 조용히 엄지를 들어 보였다.

그러자 콜린은 장난스러운 미소와 함께 나에게 윙크를 보내고 다시 자리를 비켜주었다.

콜린이 준비해준 디저트까지 만족스럽게 먹은 뒤.

우리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콜린의 레스토랑을 나올 수 있었다.

"와아. 정말 오랜만에 감탄할 정도로 맛있는 음식을 먹은 것 같아요. 고마워요. 세진 씨."

“하하하.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조금 아쉽기도 하네요. 그렇게 유명한 호수 물고기 요리는 맛보지 못 했으니."

그녀의 말대로 오늘 콜린의 레스토랑에는 균열에서 잡은 호수 물고기가 없어서 화제의 그 요리는 맛볼 수 없었다.

나는 아쉬워하는 그녀를 위로했다.

“다음에 또 오면 되죠.”

"흐음. 여기 다시 오려면 세진 씨랑 같이 오는 거 아니면 오기 힘들 것 같은데. 다시 데려와 주실 거예요?”

“네. 꼭 다시 데려와 줄게요."

"헤헤."

내 약속이 마음에 들었는지 신지아는 살짝 미소를 흘리며 내 쪽으로 슬쩍 다가왔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뻐 보여서 올라가는 입꼬리를 참기 위해 무지 애써야 했다.

****

콜린의 레스토랑을 나온 우리는 그 곳에서 멀지 않은, 약간 조용한 카페에 들어섰다.

각자 음료를 시키고 자리에 앉자마자.

신지아는 테이블을 툭툭 건드리며

내게 말했다.

"그럼 말해보세요."

"......?"

“저한테 부탁할 거 있으신 거 아니었어요?"

"아……”

나는 그제야 신지아의 의도를 이해하고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그녀는 앞선 영화와 식사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는지 아주 평온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스승님과 진행 중인 골렘 연구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여유롭게 이야기를 듣던 그녀가 조금씩 관심을 보이기 시작 하더니, 나중에는 가방에서 노트와 펜을 꺼내더니 열정적으로 필기를 하며 집중했다.

"흐음. 그러니까 골렘의 핵이라는

동력부이자 제어 장치는 완성된 상태고, 골렘의 몸체, 그리고 몸체와 동력부를 연결하는 회로가 필요한 상황이네요?"

"네. 맞아요."

그녀는 이야기를 얼마 듣지도 않았는데 곧바로 정확하게 이야기의 핵심을 집어냈다.

그 뒤로도 그녀는 나와 계속 이야기를 나누며 골렘 제작에 대해 깊은 관심을 드러냈다.

"확실히 흥미로운 연구네요. 이런

방식으로 골렘이라는 존재를 직접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도 놀랍고요."

“어떻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그녀는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놓고, 필기한 노트를 들여다보며 대답했다.

“저는 상관없는데. 이 정도 규모의 몸체를 제작하려면 어쩔 수 없이 연구소에 협력이 필요해요."

"연구소의 협력이라…..."

뭔가를 잠시 고민하던 신지아는 담담한 표정으로 결정을 내렸다.

“일단 제가 한번 연구소 쪽에 이야기를 꺼내 볼게요."

"정말이요?"

“흥미로운 연구라서 연구소 쪽에서도 거절하기 힘들 거예요. 중간에 협력하는 과정에서 협의가 좀 필요하겠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보면 되고요.”

생각보다 쉽게 부탁을 들어주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감격한 표정으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고마워요. 지아 씨."

“훗, 그렇게 고마우면 앞으로 저한테 잘해요. 저번처럼 저만 쏙 빼놓고 놀이동산에 놀러 가지 말고.”

“절대 안 그럴게요."

그렇게 골렘에 관한 이야기를 끝낸 우리는 느긋하게 대화를 나누다가 카페를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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