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균열에 산다 167화
56. 또 다른 시작(3)
어두운 동굴 내부.
동굴 특유의 삭막하고 시간이 멈춘듯한 분위기가 흐르는 곳.
분명 텅 비어 있는 동굴이었지만 직접 들어와 보면 전혀 다른 느낌을 받게 되는 공간.
찬란한 빛을 내며 진한 마력의 기운은 내뿜는 마정석들에 스승님은 입구에 들어설 때부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도대체 이런 곳은 어떻게 찾아낸 것이냐?”
“그냥 운이 좀 좋았습니다.”
스승님은 최상급 마정석 광산을 둘러보며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고, 나는 운이 좋다는 말로 대충 얼버무렸다.
눈으로만 봐서는 믿기 힘들었는지, 스승님은 벽면에 노출되어 있는 마정석을 직접 만져보면서 그 상태를 확인하더니.
“허허. 담겨져 있는 마력의 양이 상당해. 여긴 정말 네가 말했던 대로 최상급 마정석 광산이구나.”
다시 한번 감탄이 섞인 말을 중얼거렸다.
“이 정도면 골렘의 핵을 만드는 데는 충분하겠죠?”
“충분하다마다. 이 정도 마정석이 묻혀 있는 광산이라면 골렘으로 군대를 만들고도 남을 정도다.”
스승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광산 내부를 둘러보다가, 뭔가 다른 문제를 또 떠올린 듯 얼굴을 약간 흐렸다.
“흐음. 생각해 보니 마정석 원석은 충분하겠지만 이걸 또 정제하는 일이 쉽지 않겠구나. 이곳에서는 마정석 원석을 정제할 방법이 없는데…….”
“아. 그것도 걱정하지 마세요. 다 방법이 있거든요.”
“……?”
이번에도 자신만만한 내 모습에 스승님은 의문과 약간의 기대감이 섞인 모습으로 나를 바라봤고.
나는 옆으로 시선을 돌려 퓨이를 바라봤다.
“그렇지?”
“퓨이!”
* * *
골렘의 핵에 사용될 마정석을 획득하기 위해.
우리는 곧바로 마정석 광산 개발에 착수했다.
“후모!”
일전에 광산을 한번 개발했던 경험이 있는 모렛을 필두로 광부들을 불러모았다.
처음으로 불러들인 존재는.
“쿠모!”
“…….”
“…….”
-척!
아주 절도 있는 자세로 나에게 경례를 하는 세 병사 모렛들이었다.
녀석들은 내가 아르키트 왕국의 귀족 직위를 얻은 뒤부터는, 부담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철저하게 경례를 보냈다.
“아. 편하게 해도 괜찮다니까.”
“쿠모! 쿠모!”
병사 모렛들 중 대장 격이라고 할 수 있는 검사 모렛은 절대 그럴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항변했고, 뒤에 있던 두 녀석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녀석들이 보내는 경례를 따라 자세를 취해줬다.
그제야 세 녀석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정자세로 돌아왔다.
뒤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아저씨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오오. 전세진 지휘관님. 휘하 병사들 군기가 살아 있는데요? 안 그러냐 진혁아.”
“후후. 그렇네요.”
임진혁은 아저씨의 장난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두 사람의 모습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일단 두 사람 모두 오늘 광산 일을 도와주러 온 소중한 일꾼들이었기 때문에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후모!”
“쿠모!”
“좋아. 열심히 일해보자!”
일행은 오늘 작업 반장을 맡은 모렛의 파이팅이 넘치는 목소리와 함께 본격적으로 광산 일을 시작했다.
마정석을 캐내는 일보다는 혹시 모를 사고의 위험성을 줄이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안전한 장비 착용과 적절한 작업 속도로 마정석을 캐내기 시작했다.
모렛이 전체적인 작업의 상황을 조율하면서.
병사 모렛들은 직접 곡괭이를 들고 묻혀 있던 마정석을 캐냈고, 나머지 사람들은 캐낸 마정석을 밖으로 가져 나와 분류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처음에는 작업이 익숙하지 않아 제대로 된 마정석보다 부스러기에 가까운 것들이 나오다가, 어느 정도 작업 효율이 붙기 시작하자 꽤 굵직굵직한 마정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세진아.”
“네. 아저씨?”
“그러니까 지금 광산에서 캐내는 것들이 전부 저번에 봤던 최상급 마정석이랑 같다는 말이지?”
“아직 정제는 하지 않아서 완전히 똑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제대로 정제 작업만 끝나면 그렇게 되겠죠.”
“허헐!”
이전에 거대 골렘을 공략하고 얻은 최상급 마정석들과 벌써 비슷한 양의 원석들이 짧은 시간 안에 쌓이고 있었고.
이미 그 가치를 통장에 찍힌 금액을 통해 체험해 본 아저씨는 약간 질린 표정으로 쌓여 있는 마정석 원석을 바라봤다.
“와아…… 세진아. 너는 이제 먹고살 걱정은 없겠다.”
넋을 놓고 감탄을 터뜨리는 아저씨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대답했다.
“어차피 대부분 다 연구용으로 쓰일 것들이라 돈은 별로 안될 거에요.”
“쩝. 그건 좀 아쉽네.”
“큭큭. 그래도 아저씨 일당은 제대로 챙겨드릴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흠흠. 세진아 일당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
일당 이야기에 아저씨가 진지한 표정을 짓자, 나도 덩달아 무슨 일인가 싶어 아저씨의 말을 집중해 들었다.
“소문에 모렛이랑 진혁이가 기가 막힌 수제 맥주를 만들었다고 하던데…….”
“…….”
“아니, 이 녀석들이 맛만 조금 보자고 했는데도 절대 안 내놓더라고. 그래서 말인데 오늘 일 끝나면 어떻게…… 한잔?”
방금 자신의 손으로 엄청난 가치를 지닌 최상급 마정석을 캐냈으면서, 일당으로 수제 맥주를 탐내는 아저씨의 모습을 보며.
이걸 어떤 의미로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어리석다고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한편, 뒤쪽에서 나와 아저씨의 대화를 엿들은 수제 맥주의 주인 모렛이 흥분해 울음소리를 냈다.
“후모! 후모!”
아마 자신의 허락도 없이 수제 맥주 이야기를 꺼내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은 눈치였다.
하지만 이 정도로 포기할 리 없는 아저씨는 오히려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대꾸했다.
“어허. 모렛 작업 반장님. 원래 빡세게 일하고 나면 윗사람이 술도 사주고 그러는 겁니다. 거 알만하신 분이 왜 이러실까.”
“후모. 후모.”
“에이. 이렇게 일이 힘든데. 그냥 맥주로 때우면 안 되죠. 이봐! 친구들. 너희들도 수제 맥주 좋아하지?”
“쿠모! 쿠모!”
“흐흐. 보세요. 작업 반장님. 저 친구들도 저렇게 원하지 않습니까?”
아저씨는 평소와 다르게 약삭빠른 모습으로 병사 모렛들을 끌어와 선동하기 시작했고, 수제 맥주라면 또 사족을 못 쓰는 녀석들은 아저씨의 의도에 따라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최근 모렛의 보물 1호로 떠오른 수제 맥주들.
그 소중한 맥주들이 눈앞의 맥주 귀신들에게 탈탈 털릴 위험에 처하자, 모렛은 내 다리를 붙잡고 눈물까지 글썽거리기 시작했다.
“후모. 후모!”
“끄응. 나한테 뭐라고 해도.”
“후모…….”
낙담하는 모습이 안쓰러워진 나는 고개를 숙여 모렛의 귓가에 뭔가를 속삭였다.
내 속삭임을 들은 모렛은 잠시 뭔가를 고민하더니, 결심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후모!”
“모렛 작업 반장님께서 오늘 작업이 만족스럽다면, 창고에서 맛깔나게 숙성을 마친 수제 맥주를 아낌없이 풀겠답니다.”
“크하! 이거지. 작업은 걱정하지 마십쇼. 그렇지 친구들?”
“쿠모! 쿠모!”
모렛의 결단이 내 입을 통해서 전해지자.
언제 그렇게 의기투합이 됐는지 아저씨와 병사 모렛들은 서로를 끌어안고 덩실덩실 춤을 췄다.
나는 조용히 이 모습을 지켜보던 임진혁에게 다가가 물었다.
“형은 괜찮으세요? 형도 수제 맥주 열심히 만들었는데.”
“나는 상관없어. 그리고 힘들게 일하고, 사람들과 같이 맥주를 마시는 것도 보람찬 일 중에 하나니까.”
저쪽에서 아직도 병사 모렛들과 춤을 추는 아저씨와 비교될 정도로 훨씬 어른스러운 모습의 임진혁.
이 모습을 같이 보고 있자니, 가끔 한심한 눈으로 아저씨를 바라보는 어르신의 심정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가는 기분이었다.
* * *
보상으로 걸린 모렛의 수제 맥주 덕분인지 작업은 순탄하게 이어졌고.
원래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품질도 좋고 많은 양의 마정석 원석을 확보할 수 있었다.
뛰어난 작업의 성과에 아저씨와 병사 모렛들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고.
작업 반장 모렛은 눈물을 머금고 자신의 보물이 잠들어 있는 맥주 창고를 개방할 수밖에 없었다.
깨끗한 호숫물로 만들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원래 손재주가 좋은 모렛의 손맛이 들어갔기 때문일까?
수제 맥주의 맛은 정말 기가 막히게 좋았다.
“와아. 진짜 맛있다. 거짓말이 아니라 맥줏집 오픈해도 되겠는데.”
“그러게요. 모렛. 이거 정말 잘 만들었다.”
“후모. 후모.”
맥주 창고를 개방할 때는 슬픈 표정이었지만 맥주를 맛본 모두의 칭찬 세례가 이어지자, 모렛은 뿌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반 맥주와는 비교할 수 없는 청량한 느낌과 깊은 맛.
빡센 광산일 끝에 얻은 보상이라 그런지 더욱 맛있는 느낌이었다.
맥주 귀신인 아저씨와 병사 모렛들은 환상적인 맥주 맛에 거의 들이붓는 수준으로 맥주를 마셔댔다.
병사 모렛들은 술에 취해 돌아갈 때도 매번 보여주던 정중한 경례 따위는 없이 끌려가듯 사라졌다.
비슷하게 취한 아저씨 역시 선우가 배웅을 나와야 할 정도였고, 다음날 당연히 아주머니한테 엄청나게 혼났다.
“세진아. 너도 적당히 마셔야지.”
“죄송합니다…….”
덩달아 나도 같이 혼났다.
* * *
순조롭게 진행된 마정석 채굴과 동시에 또 고생한 존재가 있었는데.
바로 퓨이였다.
-우물우물.
-씰룩씰룩.
캐낸 마정석 원석을 한입에 머금은 퓨이의 볼이 씰룩거리고.
그렇게 한참을 우물거린 퓨이는 잠시 후 두 개의 덩어리를 바닥에 뱉어냈다.
“퓨우우우.”
-툭!
-툭!
처음으로 튀어나온 것은 찬란한 빛을 내뿜는 완벽하게 정제된 최상급 마정석.
또 하나는 마정석의 정제 과정에서 나온, 마력에 영향을 받아 순수한 마력을 고스란히 담은 광석이었다.
“잘했어. 퓨이야.”
“퓨이. 퓨이.”
마정석을 정제하는 과정에서 힘을 많이 쏟았는지.
퓨이는 내 품에 기대듯 안겨들었고, 나는 퓨이가 편히 쉴 수 있도록 가볍게 안아 들었다.
한편.
이 모습을 지켜보던 스승님은 정제된 마정석과 마력을 담은 광석을 바라보며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단한 능력이구나. 정말 불순물 없이 완벽하게 마정석을 정제해 냈어!”
“이 정도면 충분하겠죠?”
“충분하다마다. 퓨이는 정말 보면 볼수록 대단한 슬라임이구나.”
“퓨우우.”
스승님의 칭찬에 퓨이는 힘없는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연구에 필요한 마정석을 얻은 나와 스승님은 지금껏 쌓아왔던 연구 자료를 통해.
연구용이 아닌 실제로 골렘을 움직일 수 있는 골렘 핵을 만들기 시작했다.
약간의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최상급 마정석의 효과와 끈질긴 연구 끝에.
골렘 균열에서 보았던 일반 골렘 급을 운용할 수 있는 골렘 핵을 개발하는 데 성공해냈다.
가장 큰 산을 넘은 나와 스승님은 크게 기뻐했다.
그리고 그에 멈추지 않고 이 골렘 핵을 사용할 수 있는 골렘 제작 계획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골렘에서 가장 골치 아픈 부분인 골렘 핵을 만드는 데 성공했지만, 진짜로 움직이는 골렘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아직 필요한 것들이 많았다.
정밀하게 계산된 몸체와 내부 부품, 그리고 이것들을 움직이고 핵의 명령에 따라 통제할 수 있는 회로가 필요했다.
나는 골렘의 몸체와 내부 부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 꼭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연락을 취했다.
-세진 씨? 무슨 일이에요?
“오랜만이죠. 지아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