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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균열에 산다-166화 (166/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166화

56. 또 다른 시작(2)

나와 스승님의 시선이 퓨이에게 몰려들고.

퓨이는 그저 관심을 받는 게 좋은 듯 방긋 웃으며 울음소리를 냈다.

“정말 저 슬라임이 문제를 풀었다고 하는 것이냐?”

“네. 정말이에요.”

“…….”

스승님은 내 확언에도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퓨이를 내려다봤다.

하긴…….

직접 눈으로 본 나도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기 힘든데, 잠시 자리를 비웠던 스승님이 아무런 의심 없이 믿는 게 더 이상한 상황이었다.

“퓨이…….”

분위기가 조금 이상하게 흐르자 퓨이가 슬쩍 펜을 놓으면서 나와 스승님의 눈치를 봤다.

스승님은 그런 퓨이의 모습을 지켜보더니, 종이에 아까 수식과 비슷한 수식을 다시 적어 앞으로 내밀었다.

퓨이는 자신의 앞으로 내밀어지는 종이를 보더니 조금 망설이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퓨이?”

이 수식을 풀어도 되는지 내게 허락을 맡으려는 듯한 행동이었다. 방금 이상해진 분위기 때문에 약간 조심스러워진 것 같았다.

“괜찮아. 퓨이야. 한번 풀어봐.”

“퓨이.”

내 허락이 떨어지자 퓨이는 다시 꼬리를 움직여 펜을 잡더니 능숙하게 수식을 풀이해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의심으로 가득했던 스승님의 표정은 점점 경악으로 변해 갔고, 두 번째로 이 장면을 보는 내 표정 역시 비슷했다.

“퓨이!”

수식을 완벽하게 풀어낸 퓨이가 이번에도

-나 잘했어요?

라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봤다.

“으, 응. 잘했어. 퓨이야.”

“퓨우우우.”

내가 칭찬과 함께 손으로 쓰다듬어 주자 퓨이는 뿌듯한 표정으로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냈다.

“…….”

한편, 퓨이의 풀이를 다시 확인한 스승님은 멍한 표정으로 나와 퓨이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리고 잠시 후.

스승님은 다시 종이에 수식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좀 더 복잡하고 난해한 수식이었다.

어려운 수식이 다시 한번 퓨이 앞으로 내밀어졌고.

퓨이는 조금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윽고 수식의 풀이를 술술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스승님은 계속 수식을 적어내면 퓨이는 막힘없이 수식을 냈다.

늙은 마법사와 귀여운 슬라임 사이에 복잡한 수식이 계속 오가고.

스승님이 적어내는 수식이 점점 어려워지더니.

결국은 퓨이가 풀 수 없는 수준의 수식까지 나오고 나서야 스승님은 행동을 멈췄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허탈함과 의미 모를 웃음이 뒤섞인 탄성이 터져 나왔다.

“허허…… 내 마법사 인생을 전부 되돌아봐도 이런 경우는 처음 보는구나.”

“대단한 거겠죠?”

“대단하냐고? 방금 저 슬라임에게 준 수식은 학파에서 내려오는 일종의 후계자 자질 시험과 같다. 물론 이 수식을 풀어내는 능력 말고도 다른 종합적인 능력을 확인해 봐야 하지만, 후계자를 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 시험 중에 하나지.”

“근데 저는 이 시험 안 봤는데요?”

“너는 애초에 평범한 방식으로 제자가 된 경우가 아니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기초적인 수식도 아직 이해 못 하는 네게 이런 복잡한 수식을 줘서 괴롭힐 이유가 있겠느냐?”

“…….”

담담한 표정으로 제자에게 묵직한 팩트를 던지는 스승님.

뭔가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딱히 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물어야 했다.

“그런데 이 슬라임은 이 자질 시험에서 완벽한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뛰어난 자질을 선보였다. 평범한 마법 학파에서는 이 정도 자질의 인재라면 절을 하면서 데려가려 할 거다.”

스승님의 입에서 나온 극찬에 나는 복잡미묘한 눈으로 퓨이를 바라봤다.

이러면 안 되지만.

나보다 훨씬 뛰어난 자질을 가진 퓨이가 조금 질투 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자식이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은 것처럼 뿌듯한 기분도 들었다.

“퓨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퓨이.

그래도 이 귀여운 표정을 보고 있으니, 결국에는 입가에 진한 미소가 지어졌다.

“대단하네. 우리 퓨이 크면 엄청 대단한 마법사가 되겠네.”

“퓨이! 퓨이!”

퓨이는 내 말에 몸을 들썩거리며 좋아했다.

스승님도 나와 퓨이의 모습을 지켜보다 결국에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 * *

퓨이의 놀라운 적성을 발견한 뒤.

스승님의 가르침을 받는 제자가 한 명 더 늘어났다.

귀여운 슬라임도 내 옆에 앉아 마법 수업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퓨이는 마법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 성실히 스승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다.

수식 계산에서 보여준 엄청난 능력만큼은 아니지만, 다른 마법사의 자질에서도 평균 이상의 능력을 보여줘 우리를 또 놀랍게 했다.

그리고 나는 수식 계산 쪽에서는 처참한 수준을 보여줬어도, 다행스럽게도 다른 쪽에서는 꽤 괜찮은 수준의 자질을 보여줘 스승님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했다.

사실상 스승님의 또 다른 제자가 된 퓨이.

내가 농담이 섞어 이 부분에 대해 질문을 던졌는데.

“스승님. 저희 학파는 1인 전승 학파 아닙니까?”

“그렇지.”

“근데 이렇게 제자를 두 명 두셔도 되는 겁니까?”

“퓨이는 1인이 아니지 않으냐? 정확히는 1인 1슬라임이지. 그러니 아무 문제 없다.”

“뭔가 이치에 맞는 것 같으면서도, 굉장히 옹색한 변명이네요.”

“…….”

스승님의 평소 이미지와 다르게 굉장히 대충 변명하고 넘어갔다.

뭐. 나로서는 전혀 나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도 깊게 생각하지 않고 대충 넘어갔다.

나와 퓨이는 성실하게 스승님의 가르침을 받았고, 아주 조금씩 마법사로서 자질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런 스승님과의 마법 전수 시간 외에도, 함께 많은 정성과 노력을 기울이는 시간이 있었는데.

바로 골렘에 관한 연구였다.

정확히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스승님은 제자를 육성하는 것만큼 골렘 연구에도 굉장한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오전과 이른 오후 시간에는 나와 퓨이에게 마법을 가르치고, 잠들기 전까지 남는 모든 시간을 골렘 연구를 위해 투자했다.

나 역시 이 골렘 연구에 흥미가 있어서 스승님의 가르침이 끝난 후에도 남아서 함께 연구하기도 했다.

마법 쪽에서는 완전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라 일방적으로 스승님께 배우는 상황이지만.

골렘 연구 쪽에서는 약간 상황이 달랐다.

일평생 마법에 바쳐온 스승님이라도 골렘 연구에 관해서는 거의 미지의 영역을 개척해 온 경우여서.

마법과 비교하자면 상대적으로 골렘에 대해서는 지식과 경험이 많지는 않았다.

반면에 나는 마법과는 달리 아르키트 회로에 대한 이해와 최근에 거대 골렘을 상대하면서 쌓았던 경험으로, 골렘에 대해서는 꽤 지식 수준이 높은 편이었다.

이런 상황이 겹쳐 골렘 연구에서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아니라, 마치 공동 연구자처럼 골렘에 관한 연구를 함께해 나갔다.

마법에서는 평범함을 벗어나지 못하는 자질을 보여줬어도.

골렘 연구에서는 스승님도 쉽게 생각해 내지 못하는 부분을 내가 쉽게 발견해 내면서, 스승님을 놀라게 했다.

“허어. 너는 마법사로서 자질은 평범해도 마도 공학자의 자질은 오히려 나보다 더 뛰어나구나.”

“흠흠. 감사합니다.”

“정말 운명의 신의 생각은 알 수 없구나. 그토록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던 연구가, 우연히 받아들인 제자를 통해 도움을 받게 될 줄이야.”

스승님은 절묘한 인연의 이어짐에 감탄을 했다.

그렇게 나와 퓨이, 그리고 스승님까지 마법 공부와 골렘 연구에 매진한 결과.

야주 약간의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 * *

“자. 배운 대로만 하면 된다. 평소에 가르쳐줬던 수식과 마력의 흐름만 잘 생각하면 무리 없이 할 수 있을 거다.”

평소처럼 집 안이 아니라 바깥으로 나온 나와 퓨이는 긴장한 표정으로 스승님의 격려를 들었다.

“후우우.”

“퓨우우.”

나와 퓨이 둘 다 깊은 심호흡을 내뱉은 다음, 천천히 눈을 감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스승님이 알려줬던 마법 수식을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하면서 마력의 흐름을 느끼기 시작했다.

수식 계산과 마력 통제.

마법사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자, 마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과정이었다.

아직은 어색하게 느껴지는 과정이었지만, 스승님의 정성스러운 가르침과 노력을 통해 어느 정도 숙달된 상태였다.

처음 배울 때만 해도 내 머리가 어지러워질 정도로 어렵게 느껴지던 수식을.

이제는 어설프게라도 머릿속에서 꾸역꾸역 풀어내고 있었다.

수식 계산을 끝낸 나는 안정화된 마력의 흐름을 끌어당겨 마법을 발동시켰다.

힘찬 마력의 흐름이 팔을 타고 손을 향하는 것을 느낌과 동시에.

-화륵!

손끝에는 조그마한 불꽃이 치솟았다.

스승님이 시범으로 보여줬던 불꽃보다는 많이 불안정하고 작은 불꽃이지만 상관없었다.

아티팩트나 아르키트 회로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내 힘으로 만들어 낸 불꽃이었다.

“해냈다!”

나는 작고 불안정한 불꽃을 바라보며 기쁨의 탄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뒤따라 퓨이의 꼬리 앞쪽에서도 불길이 솟아 나왔다.

-화르르륵!!

내 불꽃보다 더 크고 안정적인 불꽃이었다.

“퓨이!”

퓨이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만들어 낸 불꽃을 바라보며 기쁨의 울음소리를 냈다.

스승님은 이런 나와 퓨이를 대견한 듯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했다. 이제 완벽하게 입문의 단계에 들어섰구나.”

“감사합니다. 스승님.”

나는 활짝 웃으며 스승님께 고개를 숙였고.

“퓨이!”

“어이쿠. 허허허.”

퓨이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대로 스승님에게 뛰어들었다.

스승님은 어색하게 퓨이를 받아들면서도 내심 기쁜 듯 웃음을 터뜨렸다.

나와 퓨이가 처음으로 마법에 성공해 입문 단계에 들어섰던 그 날.

나와 스승님의 노력 끝에 골렘 연구에도 첫 진전이라고 할 만한 성과가 생겨났다.

-우우우웅.

“오오! 스승님. 드디어 성공했어요.”

“흠. 아직 완벽히 안정화가 된 것이 아니니. 좀 더 기다려 보아라.”

일정한 흐름에 따라 진득한 마력의 파동을 뿜어내는 구슬.

아직 원시적인 수준에 불과했지만, 처음으로 작은 크기의 골렘 핵의 제작에 성공한 것이다.

복잡한 마력의 흐름을 제어하며 마정석을 안정시키는 작업을 수십 번의 도전 끝에 해냈다.

이제 이 골렘 핵에 움직임을 통제하는 회로와 부품을 연결해 주면 지금 당장에라도 움직이는 골렘을 만들 수 있는 상태였다.

-후우웅!

“아…… 꺼졌다.”

“후우. 이 정도 마정석으로는 여기까지가 한계인가?”

마력의 파동을 뿜어내던 골렘 핵은 얼마 가지 않아 빛을 잃어버렸다.

워낙 작고 낮은 품질의 마정석이었기 때문에 겨우 몇 분의 시동에도 모든 마력을 소모해버린 것.

스승님은 방금 관찰한 내용을 자세히 메모한 뒤에.

남아있는 마정석을 확인하면서 걱정스럽게 중얼거렸다.

“흐음. 연구를 계속하려면 좀 더 뛰어난 품질의 마정석이 더 필요한데. 이걸 어디서 구한다…….”

스승님은 아무래도 앞으로 연구에 계속 사용될 마정석이 고민되는지, 축하할만한 성과를 얻었음에도 쉽게 기뻐하지 못했다.

이런 그의 걱정을 확인한 나는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스승님. 마정석은 걱정하지 마세요.”

“그게 무슨 말이냐? 어디 숨겨놓은 마정석이라도 있느냐?”

“흐흐. 숨겨놓은 마정석은 없지만, 숨겨놓은 광산은 하나 있죠.”

“……?”

스승님은 자신만만한 내 태도에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나는 앞으로의 계획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눈을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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