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균열에 산다 164화
55. 놀이동산에서(3)
경호팀에게 붙잡힌 남자도 나를 보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아, 안녕하세요?”
“아. 예. 안녕하세요.”
나와 경호팀에 둘러싸인 남자가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자, 이혜린은 물론 남자를 붙잡은 경호팀도 당황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아시는 분이셨습니까?”
“오빠. 아는 사람이야?”
“어. 그게…….”
질문에 나는 시원하게 대답해 주지 못하고 말을 더듬거렸다.
실제로 눈앞의 남자와의 관계는 굉장히 애매했기 때문이다.
남자는 내가 난처해하는 모습을 보이자, 나에게 고개를 푹 숙이며 절절한 목소리로 사죄했다.
“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단장님.”
“……예?”
“단장님?”
나를 향한 남자의 행동 때문에 상황은 더 혼란스러워졌다.
* * *
시간이 흘러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고, 경호팀에게 구속되어 있었던 남자는 일단 풀려날 수 있었다.
경호팀 사람들은 지인인 줄 몰랐다며 나와 남자에게 사죄했는데, 나는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오히려 내가 나서서 괜찮다고 말하며 오늘 열심히 일행을 지켜주셔서 감사하다고 일일이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일단 사건은 정리되는 분위기로 흘러갔고.
경호팀 인원이 다시 정해진 위치로 돌아가자, 나와 이혜린 그리고 붙잡혔던 남자만 남게 되었다.
조금은 어색했지만, 상황을 정확히 하기 위해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민초현 씨라고 하셨죠?”
“네. 맞습니다. 단장님.”
경호팀에게 붙잡혔던 남자의 정체는
예전에 티아의 권능으로 도움을 주었던 공주님의 열혈 추종자. 바로 민티단의 민초현이었다.
그때 도움을 힘을 빌려줬던 것을 제외하고 별다른 교류가 없었기 때문에, 서로의 이름도 방금 알게 된 상황이었다.
“경호팀 말대로라면 오늘 계속 저희를 따라다니셨다고.”
“죄송합니다. 단장님. 공주님을 한번 뵙고 싶은 마음에 그만…….”
“아니. 너무 그렇게 고개를 안 숙이셔도 되는데.”
마치 엄청난 죄를 저지른 사람처럼.
내 말이 끝날 때마다 슬픈 표정으로 사죄와 함께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 오히려 내가 더 난감해지는 상황이었다.
“근데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따라오신 거예요?”
“그냥 느낌으로 따라왔습니다.”
“예? 느낌으로 따라오셨다고요?”
“네.”
이어지는 민초현의 설명은 이러했다.
처음 아이들이 바깥세상에 발을 내디뎠을 때.
열혈 추종자였던 민초현은 본능적으로 티아가 이쪽 세상에 들어섰음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이전에 도움을 받고 제대로 감사 인사를 전하지 못해 너무 아쉬웠다며.
그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 자신의 본능적인 느낌을 따라, 이곳 놀이동산까지 따라온 것이라고 말했다.
조금은 믿기 힘든 이야기였지만.
민초현의 진지한 표정과 일단 앞뒤 상황은 어느 정도 들어맞는 것 같아서 달리 태클을 걸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이혜린이 대뜸 민초현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
“왜 오빠를 단장님이라고 부르시는 거죠?”
“당연히 여기 계신 이분께서 자랑스러운 우리 민티단을 이끄시는 단장님이시기 때문이죠.”
“민티단?”
“하하. 민티단은 민트 초코와 아라스티아 공주님을 숭배하기 위한 단체로…….”
이혜린이 민티단에 대해 궁금증을 표하자 민초현은 돌연 신난 표정으로 변해 이것저것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갑자기 시작된 민초현의 본격적인 설명에.
질문을 던진 이혜린은 어쩔 수 없이 그의 설명을 들어야 했고, 나는 옆에서 왠지 모를 창피함을 느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갑자기 드는 의문에 그의 말을 끊고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해서 지금의 민티단이 탄생…….”
“잠깐만요. 근데 왜 저를 단장님이라고 부르시는 거죠? 이야기를 들어보면 초현 씨가 민티단을 만드신 건데.”
“아. 그건 아닙니다. 저도 처음에는 제가 단장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 거로 생각했지만. 애초에 그 자리는 처음부터 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게 무슨……?”
“저의 역할은 더 많은 단원을 모으고, 단원들을 관리하는 것이 제 역할일 뿐. 단장의 자리는 따로 주인이 계셨던 거죠.”
그는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를 향해 그의 손등을 앞으로 내보였다.
-우우웅.
민초현의 손등에는 민트색 빛을 내면서 특이한 문양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주변에는 민트 향이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아. 좋은 향이네요.”
“…….”
이혜린은 상쾌한 느낌의 민트 향을 맡으며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는데.
반면에 나는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의 손등 위의 문양에 반응하듯 내 손등에도 그와 닮은 문양이 빛을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우웅.
“엇. 오빠도 손등에.”
“보셨죠? 저보다 훨씬 더 강한 빛과 민트향을 내고 계시지 않습니까? 역시 단장님이십니다.”
“아…… 예. 그렇네요.”
마치 대단한 것이라도 본 듯이 호들갑을 떠는 민초현의 모습에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셋이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뒤쪽에서 우리를 발견한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여기 있다.”
“티아?”
“왜 이렇게 안 와? 전부 기다리고 있는데.”
티아는 나와 이혜린이 빨리 오지 않아 볼을 부풀리며 불만을 표했다.
“여기 있는 줄은 어떻게 알고?”
“그냥 익숙한 기운이 느껴지길래 여기까지 와봤어.”
아무래도 이 손등의 문양이 내뿜는 기운 때문에 티아가 우리의 위치를 알고 찾아온 듯했다.
한편.
티아를 발견한 민초현은.
“티, 티아 공주님?!”
“어? 오랜만이네. 안녕!”
“다시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티아 공주님.”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는 티아와는 달리, 민초현은 굉장히 공손한 태도로 그녀를 영접했다.
“여기에는 무슨 일이야?”
“저번에 공주님과 단장님께 도움을 받고 제대로 인사를 드리지 못한 것 같아서. 직접 찾아뵙고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어서 따라왔습니다.”
“음음. 아주 바람직한 자세야. 칭찬할 만해.”
“감사합니다. 공주님.”
그의 이야기를 들은 티아는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고, 민초현은 더없이 환한 표정을 지으며 기뻐했다.
“저번에 제가 위험에 처했을 때, 도움을 주셔서 정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 도움이 없었다면 정말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 일어났을 겁니다.”
“위험에 빠진 백성을 돕는 것은 아르키트 왕가의 공주로서 당연한 임무. 나에 대한 감사한 마음은 앞으로 민티단의 영광을 위해 오롯이 사용하도록.”
“공주님!!”
오랜만에 공주님 모드로 변한 티아의 위엄있는 모습에, 민초현은 정말로 눈물이라도 흘릴 것 같이 감명받은 표정을 했다.
“앞으로 단장님과 함께 열심히 공주님을 보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죠? 단장님?”
“아…… 예.”
무한한 신뢰를 담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민초현의 모습에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티아는 이 모습을 보고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 * *
공주님과 감격의 상봉을 가진 민초현은
티아가 함께 놀이동산을 즐기자고 권유했지만, 오늘 다른 일행에게도 민폐를 끼친 것 같아서 너무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거절했다.
그래도 내 연락처를 받아 가면서 굉장히 싱글벙글한 표정과 함께
-다음에는 정식으로 약속을 잡고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씩씩한 목소리로 다음을 기약하며 떠나갔다.
일단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아 연락처를 주기는 했는데, 왠지 굉장히 귀찮은 일에 휘말릴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떨떠름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이혜린과 티아를 데리고 일행에 합류한 우리는 다시 축제 이벤트를 즐기기 시작했다.
축제 행렬 뒤에 이어진 요정과 나쁜 괴물들이 출연하는 연극도 즐기고, 요정과 기념사진도 찍었다.
그 뒤에는 축제 기간에 파는 예쁜 기념품들도 구경했다.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날이 조금씩 어두워졌고, 그에 맞춰서 놀이동산 시설에는 화려한 조명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축제에 맞춰서 세워진 여러 가지 기념물들이 화려한 조명을 받아 또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저희 놀이공원에서 나가기 전에 사진이나 좀 더 찍죠.”
“그래요. 저기 조명 너무 예쁜데 사진만 좀 더 찍고 가요.”
사진기를 든 오연우의 말에 아주머니가 동조했고, 일행은 사진을 찍기 좋은 장소를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화려한 조명과 축제 기념물들이 서 있는 장소를 찾은 일행은 신나게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고모. 같이 사진 찍어요.”
“나도 같이 찍을래!”
“퓨이!”
“후모!”
“하하. 혜린이가 엄청 인기 있네.”
아이들의 인기를 한 몸에 독차지한 이혜린은 일해야 한다며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2명, 3명부터 단체 사진까지 엄청나게 찍어댄 뒤에 오연우는 겨우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연우야. 너는 몇 장 안 나왔는데 괜찮아?”
“괜찮아요. 형. 단체 사진에는 다 나왔잖아요. 그리고 저는 너무 즐겁게 사진을 많이 찍으면 여자 친구가 질투해서 안 돼요.”
“그러냐?”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오연우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오빠. 잠시 부탁이 있는데.”
“뭔데?”
“그게…….”
이혜린은 조금 민망한 표정으로 내게 귓속말로 뭔가를 전했다.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부탁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난 또 뭐라고. 당연히 괜찮지. 오시라고 해.”
“정말 괜찮아?”
“그럼. 오늘 하루 고생하셨는데. 그 정도는 당연히 해드려야지.”
시원한 내 대답에 이혜린은 밝은 표정과 함께 인이어 무전기로 무전을 보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양복을 입은 건장한 남성이 쭈뼛쭈뼛 일행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는 먼저 나서서 경호팀 남성을 맞이해 주었다.
“어서 오세요.”
“네. 부탁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임진혁 못지않게 강한 인상을 가진 남자는 민망한 표정을 하며 내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얘들아. 여기 있는 이분이랑 나중에 오실 분들이 오늘 우리가 놀 수 있게 고생해주신 분들이거든? 그러니까 감사하다고 인사드리고 같이 사진 한 장씩 찍어드리자. 알았지?”
내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 아이들은 곧바로 경호팀 남성에게 쪼르르 달려가 저마다 인사를 전했다.
“감사해요. 경호팀 아저씨.”
“고마워. 오늘 너무 즐거웠어.”
“퓨이! 퓨이!”
“후모!”
아이들의 귀여운 인사에 온종일 주위를 신경 쓰느라 지쳐있던 남자의 표정이 스르륵 녹아내렸다.
그리고 아까 일행이 사진을 찍었던 자리에 아이들과 함께 서서 사진 촬영을 했다.
양쪽에는 티아와 이엘이, 품에는 퓨이와 모렛을 안아 든 남자의 표정에는 행복한 감정이 철철 흘러넘쳤다.
길지 않은 사진 촬영이 끝나고.
경호팀 남자는 두툼한 손으로 내 손을 붙잡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뇨. 오히려 제가 더 고맙죠. 오늘 덕분에 안전하게 즐겁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아이들 안전에 이상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렇게 경호팀 남성은 아이들과의 사진이 담긴 휴대폰을 소중하게 챙기고, 사명감 넘치는 표정으로 떠나갔다.
그 뒤로도 로테이션 식으로 오늘 고생한 경호팀과 아이들의 사진 촬영이 이어졌다.
아이들과 사진을 찍은 경호팀 모두 행복한 미소와 함께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렇게 경호팀과의 사진 촬영도 끝나고.
우리는 약간의 아쉬움을 남기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차량에 올라탔다.
오늘 하루 정말 신나게 놀았는지 아이들은 차가 출발하자마자 잠들어버렸고, 다른 사람들도 한 명씩 잠에 곯아떨어졌다.
내 왼쪽에는 이엘이 내 품에 안기듯 잠들어 있었고, 오른쪽에는 이혜린이 억지로 잠을 참기 위해 사투 중이었다.
“혜린아. 너도 좀 쉬어.”
“아냐. 괜찮아.”
그녀는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조금씩 고개가 숙어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어깨에 기대 곤히 잠이 들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그녀의 잠든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아련한 기분이 들었다.
일행의 숨소리만 울려 퍼지는 차 안.
나는 오늘 놀이동산에서 즐거웠던 시간을 떠올리며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