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균열에 산다-163화 (163/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163화

55. 놀이동산에서(2)

아쿠아리움을 빠져나온 일행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곳으로 향했다.

놀이공원 내부는 어디를 가나 사람이 많아서 잠시 쉴 곳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그나마 사람들이 별로 없는 한적한 곳 벤치를 찾아 잠시 앉아서 쉴 수 있었다.

이혜린은 그 와중에도 계속 경호팀과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주변 상황을 체크하고 있었다.

임진혁이 정씨 남매를 이끌고 멀지 않은 카페에서 음료를 사 오는 사이, 나는 오연우와 다음 일정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축제는 오후 3시 시작이라고 그랬지?”

“네. 지금이 아직 오전 11시밖에 안 됐으니까…….”

오연우는 진지한 눈으로 놀이공원 안내 책자를 훑어보며 제안했다.

“지금부터 놀이기구를 타면서 놀다가 점심을 조금 늦게 먹고, 바로 축제 공연을 보러 가는 게 어떨까요?”

“그게 좋겠네. 혜린아 어때?”

“저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오연우의 제안에 나는 물론 이혜린도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은 임진혁과 정씨 남매가 사 온 음료를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한 뒤에 다시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놀이공원 내에는 재미있어 보이는 여러 가지 놀이기구들이 많이 있었지만, 아이들과 모두와 함께 탑승할 수 있는 것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특히 퓨이와 모렛 같은 경우는 제한되는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오연우가 미리 아이들 모두 탈만 한 놀이기구들을 선별해 동선을 짰고, 다른 놀이기구들은 따로 본대와 떨어져 타고 오는 방식으로 즐기기로 했다.

첫 번째로 향한 놀이기구는 꽃 모양의 동그란 기구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놀이기구였다.

딱히 안전띠가 필요 없는 놀이기구라서 부담 없이 아이들과 기구에 올라탔다.

놀이기구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중앙에 있는 원판을 돌리기 시작하자 타고 있던 꽃이 빙그르르 회전하기 시작했다.

“꺄아아!”

“퓨우우!”

아이들은 기구가 돌 때마다 신나게 소리를 질렀다.

나는 너무 어지럽지 않게 중앙의 원판을 조절해줬고,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도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기구 바깥에서는 아이들이 가까이 올 때마다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손을 흔들어줬고, 오연우는 카메라를 들고 아이들의 모습을 찍기 위해 바쁘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두 번째는 말을 타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회전목마였다.

“혜린아. 너도 타볼래?”

“아니. 나는 일 때문에…….”

“고모. 같이 타요.”

“으으음.”

이혜린은 일해야 한다며 회전목마에 오르지 않으려 했지만, 이엘이 손을 잡고 애절한 표정을 짓자 힘없이 회전목마로 끌려갔다.

정씨 가족과 이혜린 그리고 아이들이 회전목마에 올라타고.

나와 임진혁 그리고 오연우는 바깥 울타리에 기대서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회전목마가 천천히 돌기 시작하자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빠!”

이혜린과 함께 말 위에 올라탄 이엘이 내 앞으로 지나가면서 손을 흔들었다.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격하게 몸을 흔드는 바람에 뒤에서 이엘을 잡아주던 이혜린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둘의 모습을 보면서 환하게 미소와 함께 손을 들어줬다.

이렇게 밖에서 손만 흔들어 주는데도 같이 놀이기구를 탄 것처럼 뭔가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예전에는 이렇게 놀이기구 밖에서 즐겁게 손을 흔들어주는 부모님의 심정을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지금에서야 그 부모님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퓨이! 퓨이!”

“여기. 여기야!”

아저씨, 아주머니와 함께 마차에 올라탄 퓨이와 티아.

둘 다 마차 창문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울타리 밖에 서 있는 우리를 불렀다.

임진혁은 어색한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어줬고, 오연우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한 장면, 한 장면 소중하게 사진으로 남겼다.

그 뒤로도 다른 재미있는 놀이기구를 타면서 즐겁게 지내는데.

이엘의 시선이 어딘가에 꽂혀 떨어질 줄 몰랐다.

-으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악!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비명을 내지르게 만드는 놀이기구.

흔히 롤러코스터라고 부르는 그것.

이엘은 눈을 반짝이며 롤러코스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발견한 나는 고개를 숙여 이엘과 눈높이를 맞추고 물었다.

“이엘. 혹시 저거 타보고 싶어?”

-끄덕끄덕.

“저거 많이 무서운 건데 괜찮겠어?”

-끄덕끄덕.

오히려 설레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이엘의 모습에 나는 난감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타고 싶으면 타야지. 이것도 여기 아니면 언제 타보겠어.”

“맞아요. 오빠. 저기 봐요. 이엘이랑 나이가 비슷한 친구들도 많이 타잖아요.”

아저씨와 아윤은 괜찮다는 표정으로 이엘을 지지해 줬다. 다른 사람들도 딱히 문제없다는 표정이었다.

‘쩝. 내가 너무 과보호하는 건가?’

생각과는 다른 주변의 반응에 나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이엘의 손을 잡고 대기 줄로 향했다.

“고모! 고모도 같이 타요.”

“나도?”

“네!”

이혜린이 뭐라고 대답할 시간도 주지 않고, 이엘은 냉큼 그녀의 손을 이끌고 대기 줄로 이끌었다.

“잘 다녀와!”

“퓨이!”

“후모!”

이렇게 세 사람은 일행의 배웅을 받으며 롤러코스터의 올라타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자리도 제일 앞자리로 배정되어.

이엘과 이혜린이 나란히 제일 앞 좌석에 앉게 되었고, 그 뒤에 내가 자리했다.

-심장이 약하시거나, 고소공포증이 있으시거나, 코피를 자주 흘리시는 분들은 될 수 있으면 탑승을 삼가시기 바랍니다.

직원의 주의사항과 안내가 이어지고, 안전장치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롤러코스터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드드드드드.

점점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데.

“와아! 고모 저기 밑에 사람들이 다 보여요.”

“응. 그렇네.

앞자리에 앉은 두 사람은 아직까지도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천천히 상승하던 롤러코스터는 가장 높은 곳에 도달했다.

그리고.

-드드드드. 뚝.

-휘이이익!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악!

“으윽!!”

나는 아플 정도로 얼굴을 때리는 바람을 느끼며 온몸이 구겨지는 압력을 느꼈다.

회전 코스를 따라 느껴지는 원심력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 느려진 속도에 잠시 정신을 차렸을 때.

어느새 열차는 다시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쉴 새 없이 몸을 흔드는 진동과 사방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

처음에는 이엘이 걱정돼서 같이 탄 건데 애석하게도 이엘을 신경 써줄 여력이 없었다.

정신없이 롤러코스터에 휘둘리다 보니 어느새 출발했던 곳에 도착해 있었다.

안전장치가 풀리고 아직도 콩닥거리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일어나는데.

-탁.

-탁.

어느새 먼저 롤러코스터에서 나온 이엘과 이혜린이 동시에 내 손을 잡아주었다.

“으, 응. 고마워.”

그렇게 나는 두 사람의 도움을 받아 롤러코스터에서 내릴 수 있었다.

“너무 재미있었어요. 고모도 그렇죠?”

“응. 재미있었어.”

“…….”

이엘이 살짝 상기된 표정으로 엄청난 만족감을 표했고, 이혜린 역시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나는 힘없이 출구로 걸어 나오며, 아직도 떨려오는 몸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중이었다.

“푸흐흡. 형. 괜찮아요?”

오연우는 내 핼쑥해진 표정을 보자마자 웃음을 터뜨렸고, 괜찮냐는 말과 동시에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정씨 남매 역시 내 모습을 보고 키득거리는 중이었고, 임진혁만 조용히 내 곁으로 다가와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한편.

“이엘. 어땠어? 안 무서웠어?”

“저기 높은 곳에서 휙! 하고 떨어지는데. 너무 빨라서 주변이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것 같았어요.”

“와아…… 대단하다.”

“퓨이.”

“후모! 후모!”

롤러코스터에 타지 못한 아이들은 이엘의 주변에 몰려들어 이것저것 질문을 던졌고.

아주 생생한 무용담을 들으며 감탄을 터뜨리고 있었다.

“오빠. 괜찮아요?”

“응. 괜찮아.”

이혜린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물었고, 나는 힘없이 손을 내저으며 괜찮다고 대답했다.

“아빠. 저 놀이기구 한 번만 더 타면 안 돼요?”

“으응? 한 번 더 타겠다고?”

“네. 너무 재미있어서요. 또 같이 타주실 거죠?”

초롱초롱한 에메랄드 눈동자로 나를 올려보는 이엘의 모습에 나는 등 뒤로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내가 크게 당황하는 사이 구원의 손길을 보내준 사람은 아주머니였다.

“이엘. 이제 점심시간이라 밥 먹으러 가야 할 것 같아. 이 놀이기구는 다음에 또 타러 오자. 알았지?”

“네. 알았어요.”

이엘은 약간 실망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쉽게 수긍했다.

아주머니는 그 모습이 기특했는지 자상하게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 * *

일행은 식당을 찾아가 조금 늦은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솔직히 음식의 양도 적고, 맛도 그저 그런 수준이었지만.

주변에서 느껴지는 즐거운 분위기 덕분에 일행 누구도 불평하지 않고 맛있게 음식을 즐겼다.

식당에서도 아이들 덕분에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시선이 몰려들었지만, 경호팀의 적절한 개입으로 아무 문제 없이 점심 식사를 끝마칠 수 있었다.

일행은 점심 식사를 마치고 느긋하게 축제 행진이 시작되는 곳으로 향했다.

이미 많은 관람객이 축제의 행렬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적당히 사람이 많이 없는 곳에 서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축제의 행렬을 기다렸다.

-삐이익!

-빰바밤, 빠바밤!

시간이 되자 화려한 분장을 한 요정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요정들은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춤도 추면서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만들었다.

큰 마차 행렬이 지나가고, 뒤따르던 요정들이 바구니에 가득 담긴 사탕을 가지고 주변 아이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우리 쪽으로도 요정 분장을 한 여성이 다가와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려 했다.

가장 먼저 티아에게 사탕을 전해줬고,

“고마워!”

“후모! 후모!”

“퓨이!”

그 모습을 본 퓨이와 모렛도 울음소리를 내며 요정의 눈길을 끌었다.

여자 요정은 둘의 모습을 보고 살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프로답게 곧바로 미소를 지으며 사탕을 나눠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엘에게 사탕을 건네는데.

“요정님!”

“네.”

“제 이름은 이엘 이고요, 저도 요정님이랑 같은 요정이에요.”

이엘은 쓰고 있던 모자를 벗으며 엘프의 긴 귀를 드러냈다.

쫑긋거리는 이엘의 귀는 누가 봐도 가짜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요정 분장을 한 여성은 ‘진짜’의 등장에 아까보다 더 당황한 표정을 보였다.

“요정님. 혹시 아르엘이라고 아세요?”

“네?”

“제 엄마인데요. 오래전에 많은 요정이 살던 마을에서 떠나왔데요.”

이엘은 아주 오랜만에 아르엘을 언급했고, 나와 주변 일행 역시 순간 당황스럽게 했다.

“요정님. 다른 요정님들께 엄마는 행복했다고 전해주세요. 그리고 저도 아빠랑 같이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고, 같이 전해주세요. 부탁드릴게요.”

진심어린 이엘의 부탁에 여자 요정은 잠시 흔들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고,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부탁의 의미를 담은 눈짓을 그녀에게 보냈다.

내 눈빛을 받은 그녀는 빠르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이엘에게 대답했다.

“알겠어요. 엄마랑 이엘의 소식은 꼭 제가 사는 마을에 전해드릴게요.”

“고마워요. 요정님!”

“후훗. 이엘도 아빠랑 같이 행복하게 지내세요.”

여자 요정은 이엘의 감사 인사를 받으며 떠나갔고, 나도 살짝 고개를 숙이며 그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녀가 멀리 떠나가자 이엘은 내 다리를 껴안듯 꽉 붙잡았다.

아르엘이 떠난 뒤.

처음으로 담담하게 엄마의 이야기를 꺼낸 이엘의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무척 대견하게 느껴졌다.

나는 다시 이엘에게 다시 모자를 씌워주면서, 기특한 마음을 담아 등을 쓸어주었다.

그렇게 축제 행렬이 끝나갈 때쯤.

이혜린이 뭔가 심각한 표정으로 무전을 주고받더니, 내게 조용히 다가와 귀엣말을 했다.

“오빠. 수상한 사람이 계속 우리 뒤를 쫓다가 지금 경호팀에게 걸렸다는데.”

“뭐?”

“아까 아쿠아리움에서 나왔을 때부터 계속 우리 뒤를 따라다녔데. 근데 경호팀에게 걸리고 나서 이상한 말을 하는 중이라는데.”

“……?”

나는 수상한 사람이 등장했다는 이야기에 잠시 아이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고,

이혜린과 함께 경호팀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계속 우리 주변을 맴돌던 경호팀이 어디선가 본 적 있는 듯한 남자 한 명을 둘러싸고 있었다.

“어. 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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