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균열에 산다-161화 (161/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161화

54. 새로운 능력(3)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빠져나와 다시 차에 올라탄 일행.

운전석에 앉은 아저씨가 뒤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얘들아. 이제 슬슬 배고프지?”

“네엣!”

“후모!”

“퓨이!”

이미 입에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물고 있으면서도, 배가 고프다고 소리치는 아이들.

아저씨는 그 모습마저도 귀여운지 싱긋 웃으며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내가 맛있는 식당으로 예약해놨으니까. 얼른 점심 먹으러 가자.”

미니밴은 다시 부드럽게 나아가기 시작했다.

처음 차가 출발할 때는 한껏 놀라움을 표현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조금 익숙해졌는지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아직 별로 보여준 것도 없는데 벌써 이렇게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급하게라도 새로운 능력을 사용해 아이들을 바깥세상으로 데리고 나온 보람이 느껴졌다.

아저씨가 우리를 데리고 간 식당은 오리 요리를 전문적으로 하는 식당이었다.

꽤 유명한 식당인지 아직 점심보다 조금 이른 시간인데도 식당 내부에는 많은 사람으로 북적거렸다.

우리가 차례로 내부에 들어서자 남자 종업원이 환하게 웃으며 맞이해 주었다.

“어서 오세요. 몇 분이신가요?”

“아. 예약을 미리 해놨는데. 정대훈입니다.”

“잠시만요…… 아. 예약하신 방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남자 종업원은 친절하게 우리를 안내하면서도 힐끔힐끔 아이들을 쳐다봤다.

종업원뿐만 아니라 식당 안에 있는 손님들의 시선도 자연스레 우리에게 향했다.

이엘은 다른 사람의 시선이 아직 부끄러운지 내 손을 꼭 붙잡고 숨듯이 내 뒤에 붙었고, 티아나 모렛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주변을 둘러보느라 바빴다.

종업원과 내 품에 안겨있던 퓨이와 눈이 마주치자.

“퓨이!”

“어…… 어엇?”

퓨이는 특유의 미소와 함께 꼬리를 흔들며 인사를 건넸고, 종업원은 움찔하며 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퓨이?”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가게 안쪽에 마련된 방으로 들어섰다. 방 안에는 아윤과 선우가 미리 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왔다.”

“안녕. 얘들아.”

둘은 밖에서 보는 아이들이 신기한지 평소보다 더 들뜬 모습으로 아이들을 맞아주었다.

대충 자리를 잡고 앉으니 아까 봤던 남자 종업원이 메뉴판을 가지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아저씨는 이미 가게에 음식을 맛본 적이 있는지 대충 메뉴를 훑어보고 자연스럽게 음식을 추천해 줬다.

“일단 한 명당 백숙 하나씩 주문하고, 오리 불고기 대짜로 두 개 주문하면 될 것 같은데. 세진이랑, 진혁이도 괜찮지?”

아저씨의 물음에 나와 임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옆에서 듣고 있던 남자 종업원이 아이들을 슬쩍 바라보며, 조금 난처한 표정으로 아저씨에게 말했다.

“저. 손님. 백숙도 그렇고 오리 불고기도 꽤 양이 많은데 괜찮으실는지?”

“아아. 괜찮습니다. 우리 애들이 좀 많이 잘 먹어서. 부족할지도 모릅니다. 허허.”

“알겠습니다. 그럼 주문하신 대로 곧 가져다드리겠습니다.”

남자 종업원이 메뉴판을 가지고 방을 나서고.

조금 뒤에 이번에는 중년의 여자 종업원이 물수건과 함께 밑반찬을 내왔다.

힐끔힐끔 아이들을 쳐다보던 남자 종업원과는 달리, 여자 종업원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아이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머. 아이들이 정말 귀엽네요. 외국에서 온 건가요?”

“뭐. 비슷합니다. 조금 멀리서 오긴 했어요.”

중년의 여자 종업원은 능숙하게 반찬을 세팅하면서도 아이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여자 종업원의 관심이 조금 부담스러운지 이엘이 내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부끄러워하는 것 좀 봐. 옆에 여자아이는 친척인 건가요?”

“아뇨. 그러니까…… 제 딸입니다.”

“네엣? 아. 죄송합니다.”

내가 살짝 민망해하면서 딸이라고 밝히자 여자 종업원은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였고. 바로 실례라고 생각했는지 사과를 해왔다.

그녀가 왜 그런 식으로 반응을 보였는지 이해하기에 나는 손을 내저으며 괜찮다며 그녀의 사과를 받아주었다.

-꼬옥.

오른쪽 팔을 감싸는 느낌에 시선을 돌리니, 이엘이 살짝 상기된 표정으로 내 팔을 감싸 안고 있었다.

그리고 나랑 눈이 마주치자 배시시 웃음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가슴에서 차오르는 따뜻한 기분을 느끼며, 계속 올라가려 하는 입꼬리를 참으려고 부단히 노력해야 했다.

하지만 이미 여자 종업원을 포함한 나머지 일행 모두가 나와 이엘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 * *

아저씨가 자신만만하게 앞장섰던 것이 이해가 될 정도로, 오리 요리 전부가 맛있었다.

오리 백숙은 담백하고, 구수해서 좋았고. 오리 불고기 역시 적당히 매콤해서 아이들이 부담 없이 먹기 좋았다.

아까 세팅을 해줬던 중년 여자 종업원이 이곳 식당의 사장님 부인이었는데, 아까 실례했다면서 오리 훈제구이를 서비스로 엄청나게 가져다줬다.

서비스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양이 많았는데, 남다른 우리 아이들의 먹성 앞에는 장사 없었다.

나중에 그릇을 정리하러 들어온 종업원이 주문했던 요리는 물론이고 밑반찬까지 깔끔하게 비워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랄 정도였으니.

아저씨가 계산하는 동안, 아까 서비스를 줬던 사모님이 예쁘게 포장된 떡을 가져와서 아이들에게 나눠줬다.

“이렇게까지 안 주셔도 되는데.”

“아휴. 아이들이 너무 귀여워서 주는 거니까. 그냥 받아 가세요.”

아이들은 그렇게 배불리 오리 요리를 먹고도 간식을 받으며 방실방실 웃었다.

“감사합니다.”

“고마워!”

“퓨이!”

“후모!”

“그래. 그래. 나중에 또 와야 한다. 아줌마가 또 서비스 많이 넣어 줄게.”

아이들의 인사에 사모님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을 한 번씩 쓰다듬어줬다.

우리는 가게 밖까지 사모님의 배웅을 받으며 기분 좋게 식당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아윤과 선우까지 합류한 일행이 모두 차에 올라타자, 차 안은 꽉 찬 느낌과 함께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되었다.

조금 어수선하긴 해도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즐거운 분위기가 끊이질 않았다.

“배도 채웠으니. 이번에는 어디로 가볼까? 혹시 가보고 싶은 곳 있어?”

“으으음…….”

아저씨의 물음에 아이들은 고민하는 표정하면서 딱히 대답은 하지 못했다.

사실 어디를 가더라도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래도 웬만하면 좋은 곳으로 데리고 가고 싶었다.

일행이 잠시 고민을 하던 중, 뒷좌석에 앉아있던 선우가 의견을 제시했다.

“남산 타워에 가보는 건 어때요?”

“남산 타워? 남산 타워가 뭐야?”

“산 위에 만들어진 굉장히 높은 탑인데, 거기에 가면 도시의 풍경이 한눈에 다 보여.”

“와아.”

선우의 설명에 아이들은 흥미를 느꼈는지, 눈빛에 기대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좋아. 그러면 바로 남산 타워로 간다!”

* * *

우리는 남산 아래에 있는 케이블카 승강장에 도착해서 남산 타워로 향하는 케이블카에 몸을 실었다.

표를 끊는 과정에서 퓨이와 모렛이 케이블카 직원을 혼란스럽게 만들었지만, 다행히 큰 문제 없이 케이블카를 이용할 수 있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보이는 남산과 주변의 전망에 아이들은 신기한 듯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그중 이엘은 도시 풍경보다는 산의 숲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빠.”

“응?”

“여기에는 숲이 이것밖에 없어요?”

“아마 그럴걸. 산에 오르지 않는 이상 숲은 찾기 힘드니까.”

이런 도심지에서 쉽게 숲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엘은 쉽게 숲에 갈 수 없다는 이야기가 굉장히 충격적으로 들렸는지, 금방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괜찮아. 이엘이 숲으로 돌아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데려다줄 테니까.”

“고마워요. 아빠.”

“그래그래.”

나는 언제든지 숲으로 데려다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이엘을 안심시켜줬다.

들뜬 아이들과 함께 케이블카에서 남산 주변의 풍경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남산 타워 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평일인데도 오늘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남산 타워에는 소풍을 온 가족, 데이트하는 연인, 관광객들로 북적거렸다.

나와 임진혁, 그리고 정씨 가족은 호기심 넘치는 아이들을 잘 챙기며 남산 타워 쪽으로 향했다.

“저기. 저 여자아이 좀 봐. 너무 귀엽다. 외국인인가?”

“뒤에 녹색 머리카락 여자아이도 엄청 예쁘다.”

“어? 저 슬라임. 너튜브에 나온 그 슬라임 아냐?”

“눈동자가 움직이잖아. 인형이 아니네?”

우리는 최대한 시선을 받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귀엽고 독특한 아이들의 모습 덕분에 어느새 많은 사람의 시선을 받기 시작했다.

조금씩 사람이 몰려드는 낌새에 일행은 걸음을 급히 옮겨 목표했던 남산 타워 전망대로 향했다.

아래층에서 표를 끊고 전망대로 올라가니 재미있고 신기한 것들이 많았다.

아기자기한 기념품들을 파는 가게도 있었고, 전망대에서는 사방이 탁 트인 공간에 서울의 전경을 한눈에 둘러볼 수 있었다.

아이들은 서울 시내를 둘러보며 즐겁게 지냈지만, 나머지 일행은 조금 예민하게 주변을 경계해야 했다.

-웅성웅성.

아까 아래층에서도 그랬지만, 독특한 아이들의 모습 때문에 전망대 위에서도 사람들이 금방 몰려들었고.

귀여운 아이들의 모습에 함부로 만지려 하는 사람부터, 무단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도 생겨났다.

“죄송한데 사진은 찍지 말아주세요.”

“내가 내 휴대폰으로 사진 찍는데 무슨 상관이에요.”

“무단으로 사진 찍지 마시죠.”

“아. 예…….”

내가 좋게 말할 때는 불만을 표하던 남자가, 임진혁이 특유의 위압감을 뽐내며 앞으로 나서자 바로 깨갱거리는 강아지처럼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임진혁이 강한 눈빛과 함께 주변을 스윽 둘러보자 사람들은 황급히 눈을 피하기 바빴다.

점점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아이들도 주변 분위기를 눈치를 챘는지 전처럼 활발하게 돌아다니지 못하고, 어색한 표정으로 쭈뼛거리기 시작했다.

“아저씨. 그냥 내려가죠.”

“쩝. 그래야겠다.”

나는 아저씨에게 말을 걸어 아이들을 데리고 황급히 남산 타워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마음껏 남산 타워를 둘러보지 못해 조금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남산 타워를 내려와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는데.

-♩∼♬∼♪

내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확인해 보니 오연우에게서 온 전화였다.

“어. 연우야. 왜?”

-형. 혹시 아이들이랑 같이 남산 타워 가셨어요?

“응? 너 어떻게 알았냐? 지금 내려가는 중이야.”

-아니. 지금 너튜브 커뮤니티 게시판이 남산 타워에서 퓨이를 봤다고 난리던데요.

“헐. 벌써 그렇게까지 소문난 거야.”

-형! 이제 우리가 예전처럼 작은 채널도 아니고. 이제 어디 가서 말하면 꿀릴 정도는 아니에요.

오연우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는 잘 체감하지 못했지만, 오늘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면서 조금이나마 유명 연예인의 기분을 체험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저는 왜 안 불렀어요? 서운하게.

“하하. 미안하다. 너까지 부르면 너무 일행이 많을 것 같아서.”

-그래도 그렇지. 옆에 아저씨도 있죠? 아저씨한테 실망이라고 전해줘요.

아저씨는 휴대폰 너머로 들리는 연우의 실망하는 말에 너털 웃음을 터뜨렸다.

“짜식이 실망하기는. 지금이라도 오면 되지. 연우도 합류하라고 해.”

“그래. 연우야. 너도 일정 없으면 합류할래?”

-흠흠. 이번만 봐드릴게요. 다음은 어디로 가실 생각이신데요?

“음. 아직 못 정했는데. 원래 생각한 것보다 남산 타워에서 빨리 내려와 버려서.”

-그럼. 제가 아이들을 데려가고 싶은 데가 있는데. 거기서 만나실래요?

오연우는 만날 통화로 만날 장소를 전해줬고, 나는 예전 기억을 떠올리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 * *

“형. 여기에요. 사장님. 제 말 맞죠? 진짜로 데려왔죠?”

오연우는 주방 복장을 한 중년 남자 옆에서 호들갑을 떨었고, 중년 남성은 감격한 표정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정말 반갑습니다. 혹시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거는 남자. 그는 처음 너튜브를 시작했을 때.

처음으로 독특한 퓨이의 맛 리뷰를 받아 화제를 모았던 그 닭강정을 만든 사장님이었다.

나는 웃으면서 인사를 건넸다.

“물론 기억하죠. 그때 전화도 하셨잖아요. 사장님.”

“네. 맞습니다.”

사장님은 악수를 나누는 손을 격하게 흔들며 반가움을 표했다.

“혹시 이 친구가?”

“네. 맞습니다.”

“퓨이?”

“반갑다. 퓨이야. 너 때문에 지금도 내가 여기서 장사를 하고 있단다. 정말 고맙다.”

“퓨이! 퓨이!”

사장님은 몇 번이고 퓨이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며 손수 일행 전부를 가게로 이끌었다.

“오늘은 전부 무료입니다. 마음껏 드세요!”

“와아아!!”

사장님은 오늘 하루 동안 닭강정을 무료로 팔겠다고 선언했고,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손님들까지 환호성을 지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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