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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균열에 산다-160화 (160/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160화

54. 새로운 능력(2)

방 안에 모여들던 신비한 기운은 내 외침과 동시에 환상처럼 휙! 사라져 버렸다.

빈방 안에는 내 외침만이 잠시 공허하게 울려 퍼졌을 뿐, 아무런 변화도 느껴지지 않았다.

‘뭐야? 실패한 건가?’

평범한 작은 방 안에서는 아무리 둘러봐도 이전과 변화를 느낄 수 없었다.

실패했다는 생각에 허무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균열 입구를 여는 행동을 취해 봤다.

-우우우웅!

-파지지직!

“응?”

평소에 균열 입구를 열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조용하고 안정적으로 생성되던 균열 입구가, 굉장히 거칠고 불안정하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나는 곧바로 이상함을 깨닫고 균열 입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불안정하게 흔들리던 균열 입구는 내 의지에 따라 조금씩 안정적으로 변해갔다.

-웅. 웅. 웅.

-스스스슥.

시간이 지나자 균열 입구는 완전한 형상을 보이며 완전하게 안정화된 모습을 보였다.

다른 일반적인 균열 입구와는 달리 뭔가 묵직하고, 더 견고한 느낌을 주는 입구였다.

동시에 눈앞에 알람이 떠올랐다.

[새로운 균열을 창조했습니다.]

[새롭게 만들어진 균열은 곧바로 귀속됩니다.]

[새로운 균열 입구를 열었습니다.]

[관리자의 권한에 따라 균열 입구의 제한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알람이 말하는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잠시 후, 마치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한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어떤 기능을 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었다.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새로운 능력을 깨닫고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띄웠다.

* * *

통나무집은 아침 일찍부터 분주한 움직임으로 가득했다.

평소 같았으면 비몽사몽인 아이들과 그런 아이들을 나와 임진혁이 챙기는 느긋한 하루의 시작이 보통이지만.

오늘은 달랐다.

“세진. 빨리! 빨리!”

“잠깐만. 나 아직 밥 다 못 먹었어.”

평소에는 가장 느리게 식사를 하는 티아.

오늘은 어느새 자신의 식사를 전부 끝내고 옆에서 나를 타박하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 역시 어느새 식사를 다 끝내고 기대감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에 담긴 무언의 압박에 못 이겨, 나는 밥을 입안에 욱여넣기 시작했다.

그렇게 식사 시간이 끝나고.

나와 임진혁이 뒷정리를 하는 동안 아이들은 알아서 씻고, 저마다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식사 정리가 끝났을 때는 이미 아이들은 모든 준비를 끝내놓고 당장에라도 집 밖으로 뛰쳐나갈 기세였다.

“잠깐만. 나랑 형도 씻고 준비해야지.”

“빨리이이!”

“아빠. 빨리요.”

“퓨이! 퓨이!”

“후모!”

아이들은 1분 1초가 아깝다는 태도로 발을 동동 구르며 우리를 재촉했고.

그런 아이들의 귀찮기는커녕 너무 귀엽게 느껴져 나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임진혁 역시 너그러운 웃음을 지으며 준비를 서둘렀다.

아이들의 등쌀에 떠밀리듯 서둘러 준비를 끝마친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집 앞마당으로 나왔다.

“자. 준비 다 끝났지? 어제 이야기한 것처럼 나랑 형은 물론이고 어른들 말 잘 들어야 한다.”

“응!”

“네!”

“퓨이!”

“후모!”

아이들은 환하게 웃으며 내 말에 대답을 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모르는 사람이 말 걸면 절대 따라가면 안 돼. 특히 모렛! 맥주에 홀려서 막 아무나 따라가면 혼낼 거야!”

“후모. 후모.”

모렛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몸을 들썩거렸다.

나는 몇 가지 주의사항을 아이들에게 강조한 뒤, 마지막으로 아이들의 모습을 점검했다.

티아와 이엘에게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약간의 돈과 연락처를 적은 수첩을 넣어 둔 작은 가방을 메게 했다.

“자. 그럼 가볼까?”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새로운 균열 입구가 생겨났고, 아이들의 표정에는 설렘, 흥분, 기대감이 가득 차올랐다.

나와 임진혁은 아이들을 이끌고 균열 입구를 통과하기 시작했다.

입구를 지나자 저번에 내가 새로운 균열을 창조했었던 작은 방의 풍경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분명 통나무집에서도 볼 수 있는 평범한 방의 풍경인데도 아이들은 뭐가 그렇게 신기한지 이곳저곳 만져보고 둘러보기 시작했다.

방안을 나서자 여전히 휑한 집안 내부가 보였다.

새롭게 인테리어과 가구 구입은 천천히 진행할 예정이었다. 일단은 아이들이 중요했으니까.

아이들과 함께 현관문을 나서고.

주변에 보이는 도시의 풍경에 아이들의 눈이 모두 휘둥그레졌다.

너튜브나 TV로 매번 봤을 평범한 풍경인데도, 아이들은 마치 신비한 유적지를 둘러보는 듯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어어. 왔어?”

“얘들아. 안녕!”

현관문을 나서자 집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죄송해요. 조금 늦었죠.”

“아니다. 아이들 챙기려면 그럴 수 있지.”

아주머니는 모두 균열이 아닌, 현실 세계에서 아이들을 본다는 게 신기한지 몇 번이고 쓰다듬고 꼭 껴안으셨다.

“자. 얼른 가자. 오늘 할 일이 많아.”

아저씨는 아이들보다 더 신난 것 같은 얼굴로 앞장을 섰다. 대문 밖에는 커다란 미니밴이 주차되어 있었다.

“아저씨. 이건 어디서 구하셨어요?”

“당연히 렌트해 왔지. 아이들 편하게 태우려면 내 차로는 힘들 것 같아서.”

나는 차를 몰고 마중 나오겠다는 아저씨의 말에, 원래 아저씨 차에 아이들과 대충 끼어서 탈 생각을 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우리를 배려한 아저씨의 모습에 약간 감동이 밀려왔다.

아저씨도 그런 내 표정을 읽었는지 괜히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자. 얼른 타자.”

아저씨가 운전석에 임진혁이 앞 좌석에 앉았고.

나와 아주머니가 아이들을 챙겨 뒷좌석에 앉았다.

아이들은 처음 탑승한 자동차에 신기한 얼굴을 하고, 내부를 둘러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자. 그럼 출발합니다!”

-부릉! 우우우웅.

아저씨는 처음 자동차에 탑승한 아이들을 생각했는지, 아주 천천히 부드럽게 차를 출발시켰다.

“우와아아!”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입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왔고, 마치 슬라이드처럼 휙휙 지나가는 풍경을 초롱초롱한 눈으로 감상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반응에 나를 포함한 어른들의 입에 흐뭇한 미소가 걸린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를 태운 미니밴은 주택가를 빠져나와 좀 더 번화한 거리를 나아가기 시작했다.

거대한 건축물, 거리를 지나다니는 수많은 사람들.

자동차, 신호등, 버스, 가게의 투명한 유리 너머로 보이는 다양한 상품들까지.

이 세계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일상적이고, 평범한 거리의 모습이었지만.

창문 밖으로 이 모습을 구경하는 아이들은 별천지를 경험하고 있었다.

“아빠. 아빠! 저기 엄청 작은 사람이 있어요.”

이엘은 횡단보도 앞에 아기를 안고 있는 한 여성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엄마가 아기를 안고 있는 거야. 조금만 지나면 저 아기도 이엘 만큼 자랄 거야.”

“와아…… 아기는 처음 봤어요.”

숲속에서 아르엘과 동떨어져 살았던 이엘에게는 저 아기의 모습도 굉장히 신기한 듯했다.

“아빠. 그럼 저 사람은 숲에서 아기를 데려온 건가요?”

“으응?”

“엄마가 저도 숲에서 태어났다고 했는데.”

“어…… 그러니까.”

순진무구한 얼굴로 진심으로 궁금한 듯한 모습.

느닷없이 이엘의 입에서 튀어나온 부모를 당황하게 하는 질문 1순위.

-아기는 어떻게 생겨요?

나는 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정보들을 일차적으로 검열하느라 어버버거렸다.

그때, 창밖을 구경하던 티아가 큰소리로 외쳤다.

“와아. 저것 봐!”

티아가 가리킨 곳에는 건물 위에 커다란 광고판에서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엄청나게 큰 TV야.”

“퓨우우우.”

“후모…….”

커다란 건물 광고판 덕분에 이엘의 관심도 창밖으로 향했고, 나는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아주머니는 입을 가리며 작게 웃었고, 나는 민망함에 살짝 얼굴을 붉혀야 했다.

“잠깐만!”

계속 주변을 살피던 티어가 무언가를 발견하고,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며 우리들의 관심을 끌었다.

“저거…… 저거 그거 맞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한 가게를 가리키는 티아.

나는 티아의 손가락 끝이 향하는 가게를 확인하고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응. 맞아. 티아가 아는 그 가게야.”

“세진. 나 저기 가보고 싶어. 제발!”

자신이 알고 있던 가게라는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티아는 나 팔을 잡아당기며 애원하기 시작했다.

“알았어. 그럼 같이 가보자.”

“정말 고마워. 사랑해!”

티아는 얼마나 기쁜지 내 볼에 뽀뽀 세례를 날리며 흘러넘치는 행복을 표현했다.

나는 티아의 뽀뽀 세례를 받으며, 운전하고 있던 아저씨에게 옆쪽에 보이는 가게에 잠시 들르고 싶다고 전했다.

아저씨는 금방 주차할 공간을 찾아 차를 멈췄고, 우리는 티아가 그토록 원하던 장소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바로 아이스크림 가게였다.

* * *

“어서 오세요.”

“어서 오세요.”

우리는 각각 남자, 여자 직원의 인사를 받으며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직원은 우리의 모습을 확인하고 두 가게 직원은 살짝 얼빠진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평범한 어른들과 달리 단번에 눈길을 빼앗는 아이들의 모습 때문이었다.

아이스크림이 보이는 진열대로 가장 먼저 뛰어가 두 눈을 빛내는 티아는 물론이고.

귀를 덮는 모자로 엘프의 큰 귀는 가렸지만, 특유의 귀여움은 숨길 수 없는 이엘까지.

이국적이면서, 국가를 초월하는 귀여움에 두 직원은 홀린 듯이 시선을 뺏겼다.

그리고.

“퓨우우우.”

“후모.”

나와 임진혁의 품에 안겨 아이스크림을 구경하는 퓨이와 모렛의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

“……인형?”

당연히 균열에서 나왔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한 두 직원은 퓨이와 모렛을 신기한 인형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굳이 슬라임과 마도공학 일꾼이라는 사실을 설명할 이유도 없었기에, 나는 모른 척 직원의 오해를 내버려 뒀다.

“세진. 아이스크림 사도 돼?”

“응. 대신 나중에 점심도 먹어야 하니까. 너무 많이 사면 안 돼.”

“헤헤. 알았어.”

“이엘도 먹고 싶은 거 있으면 골라봐.”

“알았어요. 아빠.”

티아는 평소에 자주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던 탓인지, 신나게 움직이며 아이스크림을 고르기 시작했고.

이엘은 조금 어색한지 내 손을 꽉 붙잡은 채 조심스럽게 아이스크림들을 둘러봤다.

한편 이 상황을 지켜보던 직원들은 이엘의 입에서 아빠라는 단어가 나오자, 굉장히 오묘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그 눈빛의 의미를 쉬이 짐작할 수 있었기에.

뭐랄까?

조금은 민망하면서도 약간은 뿌듯한 기분?

아무튼, 직원들의 의미심장한 시선을 받으면서 아이들의 아이스크림을 구매했다.

티아는 당연히 민트 초코 아이스크림 잔뜩에 다른 아이스크림을 약간 추가했고, 이엘은 무난하게 초코칩이 들어 있는 아이스크림을 선택했다.

퓨이와 모렛은 둘의 취향을 내가 알고 있기에 알아서 추가로 주문을 해줬다.

거기에 아저씨 아주머니와 임진혁, 남매의 것까지 포함해 꽤 많은 양의 아이스크림을 구매했다.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감사합니다.”

이제는 아이들의 모습에 익숙해졌는지 나가는 우리들을 평범하게 배웅했다.

“안녕!”

“안녕히 계세요.”

티아와 이엘이 미소를 지으며 직원들의 인사를 받아주자, 두 사람의 표정이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가게 문을 나서기 직전 퓨이와 모렛이 어깨 위로 얼굴을 빼꼼 내밀어, 인사하는 두 직원에게 각자의 손과 꼬리를 흔들었다.

“퓨이!”

“후모!”

“……?!”

“……?!”

두 직원은 다시 멍한 표정을 지으면서, 자신들도 모르게 손을 들어 퓨이와 모렛을 향해 흔들어줬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가게를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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