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균열에 산다 155화
53. 그냥 하나 만들까?(2)
“예? 도대체 무슨 문제가.”
“하아…….”
다시 한숨을 내쉰 서율희는 김유미 쪽을 한번 슬쩍 바라보고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때 세진 씨의 배려로 최상급 마정석 판매 금액을 받은 사실을 길드에는 알리지 않았어요. 애초에 설명하기도 힘들뿐더러 일이 귀찮아질 우려가 있었거든요.”
“흐음.”
“그때 받았던 엄청난 아티팩트나, 마정석 판매 금액은 최대한 비밀로 하고 넘어가려 했는데. 얼마 전에 오성 길드에서 그 사실을 알아버렸어요.”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안절부절못하는 김유미의 태도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이번 일은 그녀가 시발점이 된 듯했다.
“죄송해요. 진짜로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정말 사고 싶었던 가방 하나를 사서 자랑을 조금 했을 뿐인데…….”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거대 골렘을 공략하고 얻은 최상급 마정석.
그 마정석의 판매 금액을 전달받은 김유미는 정말 오랫동안 쇼핑목록에 올려두었던 고가의 가방을 사게 됐다.
여기서 김유미가 행복해하고 끝났다면 정말 좋았겠지만,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오랫동안 원했던 가방을 사게 된 김유미는 SNS와 주변 길드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자랑하고 다녔다.
하지만 누군가의 행복이 꼭 모두의 행복이 될 수는 없는 법.
이 상황을 고깝게 바라보고 있던 누군가가 김유미에 대한 의혹을 제시했고, 이 의혹은 꽤 그럴듯하게 길드에 퍼져 나갔다.
사실 그 고가의 가방도 원래 김유미의 수입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는 금액대의 가방이라 의심을 받을 만한 일도 아니었는데, 일이 꼬이기 시작하니 걷잡을 수 없어지기 시작했다.
서율희가 이 사실을 알아차리고 수습을 하려 했을 때는 이미 상황이 굉장히 귀찮아졌다는 이야기.
“허어. 그것참.”
나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 탄식을 내뱉었다.
김유미가 뭐 훔친 돈으로 가방을 산 것도 아니고, 정당한 일을 하고 받은 돈으로 가방을 산 건데.
굳이 길드가 나서서 귀찮게 해야 할 일인지 자연스럽게 의문이 떠올랐다.
“이게 그렇게 큰일인가요? 수입을 숨겨서 그런 건가요?”
“하아. 이게 설명하기는 좀 복잡한데…….”
서율희는 벌써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두 손을 들어 양쪽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그 모습을 본 윤동현이 대신 설명을 자처했다.
“그 부분은 제가 설명해 드릴게요. 원래는 공식적인 길드의 균열 일정만 잘 소화한다면 자신의 개인 시간에 다른 균열에 들어가는 것, 흔히 용병일을 한다고 표현하는데, 이런 용병일을 길드에서 제한하지는 않아요. 물론 눈치가 좀 보이지만.”
“약간 회사에서 눈치를 받으며 투잡을 뛰는 느낌?”
“네. 맞아요. 장려하지는 않아도 길드 일에 지장만 없다면 금지하거나 간섭할 권리는 없어요.”
여기까지만 들으면 김유미가 저렇게 고개를 숙이고 있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어 보였다.
“단순히 마정석 판매 금액을 받은 것 때문이라면 조금 눈치를 받고 끝날 일인데. 문제는 금액이 너무 컸다는 게 문제가 됐어요.”
“……?”
내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윤동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설명을 덧붙였다.
“길드에 소속된 길드원들에게는 여러 가지 의무가 있는데. 하나는 균열에서 얻은 부산물들을 빠짐없이 길드에 가져다줘야 해요. 몰래 숨겨서 가져 나오다가 걸리면 바로 아웃이죠.”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덧붙여 또 하나 더 규칙이 있는데. 부산물뿐만 아니라 균열에서 얻은 도움이 될 만한 정보 역시 의무적으로 길드와 공유해야 합니다.”
“정보 공유?”
“쉽게 말하면 돈이 되거나 전투에 도움될 만한 정보를 획득하면, 무조건 길드에 먼저 보고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다른 길드에 그 정보를 먼저 제공한다거나, 숨기고 있으면 문제가 된다는 거죠. 유미 씨의 경우에는 이 규칙이 문제가 된 겁니다.”
윤동현의 꽤 장황한 설명 끝에 나는 어렴풋이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오성 길드는 이전에 내가 먼저 제안을 보냈기 때문에 우리가 거대 골렘을 공략했다는 사실을 쉽게 예상했을 것이다.
만약 그러고 끝이 났다면 오성 길드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을 테지만, 문제는 거대 골렘을 공략함과 동시에 참여했던 인원들이 모두 짭짤한 수입을 벌어들이게 되었다.
보통의 방법으로 골렘 균열을 공략해서는 절대 벌어들일 수 없는 막대한 수입.
오성 길드는 김유미가 짭짤한 수입을 벌어들였다는 사실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 수입을 벌어들였는지. 그 비밀을 궁금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성 길드 쪽에서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 그 과정을 궁금해하고 있는 거군요?”
“정확히 이해하셨습니다. 세진 씨.”
“쩝.”
껄끄러운 상황에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좋은 의도로 눈앞의 세 사람에게 최상급 마정석을 양보한 것인데.
결과적으로 굉장히 귀찮은 일에 휘말리게 만들어 버렸다.
“그냥 다 이야기해 주면 안 돼요? 거대 골렘을 잡아서 최상급 마정석을 얻었다고. 그것만 이야기해 주면 끝나는 이야기인 것 같은데.”
“하아…….”
“하아…….”
내 물음에 이번에는 서율희와 윤동현이 동시에 깊은 한숨을 이중창처럼 내뱉었다. 김유미는 아예 테이블에 이마를 찧을 정도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서율희는 관자놀이를, 윤동현은 눈 주변을 문지르며 극도의 피곤함을 표출했다.
잠시 관자놀이를 주무르던 서율희가 손을 떼고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이미 길드 간부에게 상황은 대충 설명했어요. 균열 안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과정으로 이 최상급 마정석을 얻었는지.”
“그럼 된 거 아닌가요?”
“아뇨. 저희가 설명하지 못하는 게 딱 하나 있죠. 그것 때문에 계속 일이 복잡해지고 있는 거고.”
“……?”
“거대 골렘을 처음 쓰러뜨리고 튀어나온 정체불명의 구슬. 저희는 그 구슬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설명할 수 없었어요. 왜냐면 세진 씨가 혼자의 힘으로 그 구슬을 처리했으니까.”
“아…….”
거대 골렘을 쓰러뜨리자 안에서 튀어나와 엄청난 마력을 내뿜으며 골렘을 좀비처럼 일으켜 세우던 구슬.
정확히 복잡한 문양의 힘과 엄청난 양의 마정석으로 만들어진 아르키트 마도 공학의 결정체, 골렘의 핵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 정체를 몰랐다.
내가 일일이 설명해 준적도 없으니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사실 마지막에 세진 씨가 그 거대한 구슬을 처리 못 했다면 우리는 전멸했을 거예요. 지금도 다시 그 상황에 부닥친다면 세진 씨 없이 해결할 수 없겠죠.”
서율희의 말에 옆에 있던 윤동현과 김유미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했다.
그녀의 말대로 아르키트 회로 이론과 문양의 힘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만 골렘의 핵을 제압할 수 있고.
아르키트 왕국의 기술이 거의 사라져가는 시점에서 그런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죄송한데. 구슬을 처리한 방법을 물으시는 거라면, 그 방법은 알려드리기가…….”
“아! 그건 아니에요. 저희도 염치가 있지 남의 비전을 쉽게 물어볼 정도로 무례하지는 않아요. 대신 다른 부탁이 있어요.”
“…….”
“저희랑 같이 오성 길드에 가서 설명을 좀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네? 제가 설명이요?”
내가 깜짝 놀라며 되묻자 서율희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흠. 제가 가더라도 딱히 할 말이 없을 것 같은데. 그냥 서율희씨가 잘 살명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저도 최대한 제 선에서 끝내보려고 노력했는데. 그 앞뒤 꽉꽉 막힌 꼰대 새…… 흠흠. 죄송합니다. 완고하신 선배 조장분들이 제 이야기는 안 믿으려고 하셔서.”
항상 냉정함을 유지하는 서율희가 보기 드물게 흥분하는 모습을 보이며 선배 조장들을 언급했다.
서율희가 잠시 끓어오르는 감정을 추스르는 사이 윤동현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세진 씨에게는 조금 죄송한 말씀인데. 오성 길드 내부적으로는 세진 씨나 정씨 가족 파티를 높게 평가하고 있지 않아요. 물론 임진혁 씨도 마찬가지죠.”
“…….”
“길드 사람들 대부분이 세진 씨가 결정적인 역할을 해서 거대 골렘을 처리했다는 사실을 믿지 않고 있어요. 오히려 저나 유미 씨, 그리고 누나가 진실을 숨기고 있다고 의심하는 쪽이 더 많아요.”
“그것참.”
일단 나를 포함한 정씨 아저씨 가족, 그리고 임진혁까지 무시를 받는다는 말에 일차적으로 기분이 나빴다.
그리고.
일반 길드원도 아닌.
이미 여러 번 실력을 입증해 조장 자리에 오른 서율희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말에 나는 어이가 없어졌다.
이 나라에서 모르는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로 유명한 길드 안에서 이런 비상식적인 일이 일어난다는 사실이 믿기 힘들 정도였다.
말을 꺼낸 윤동현도 내 마음을 쉽게 짐작했는지 면목 없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이 사람들이 무슨 잘못이겠는가.
오히려 나에게는 은인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인데 나와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상황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나는 기분 나쁜 감정들은 훌훌 털어버리고, 최대한 담담한 표정으로 서율희에게 물었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해드리면 될까요?”
“정말 죄송해요. 세진 씨.”
“아뇨. 뭐, 저도 율희 씨한테 여러 번 도움을 받았는데 이 정도는 당연히 해드려야죠. 어떻게 하면 되죠?”
서율희는 거듭 나에게 미안함을 표하고 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1시간쯤 뒤에, 길드에서 회의가 있을 예정이에요. 부담스러우시겠지만 그 회의에 참여해 거대 골렘 공략에 관련해서 해명을 좀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뭐.”
내가 쿨하게 부탁을 받아들이자 세 사람의 표정이 동시에 밝아졌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 때문에 이런 번거로운 일을…… 너무 죄송해요.”
김유미는 연거푸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와 사죄를 번갈아 했고, 윤동현도 좀 더 친근해진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죄송해요. 회의에서 말하기 힘든 내용이 있으면 말씀하지 않으셔도 상관없어요. 제가 조장 자리를 걸고서라도 책임질 테니까, 편하게 있는 그대로 말씀해 주시면 돼요.”
서율희는 회의에서 나를 지키겠다는 의무감을 불태우며 눈동자를 번뜩였다.
믿음직스러우면서도 왠지 귀엽게 느껴지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실소를 지었다.
“뭐, 별일 있겠어요. 회의에 계실 그분들도 다 사정 알 만한 분들일 텐데. 최대한 진실하게 이야기해 드리면 아마 충분히 이해해 주시겠죠.”
아주 낙관적인 내 태도에 세 사람은 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때는 그 표정의 의미를 알지 못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의미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 * *
“아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
“그냥 말해주기 싫으면 말해주기 싫다고 하지. 뭔 설명이 그렇게 많아.”
“…….”
“애초에 외부 사람이 회의에 참석하겠다고 말할 때부터 이상했어. 시간 낭비구먼, 시간 낭비야.”
“…….”
그래도 예전에 사업도 한번 말아먹고, 험한 상황은 꽤 많이 겪어봤다고 생각했는데.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은 인간적으로 꽤 참기 힘들었다.
한쪽 구석에 안쓰러운 표정의 서율희와 윤동현이 보였고, 반대편에서 한창호 조장도 절레절레 고개를 젓고 있었다.
나는 아까 세 사람이 동시에 지었던 묘한 표정과 서율희의 과격한 언행을 떠올렸다.
왜 이 사람들과 연관된 이야기가 나오면 서율희가 관자놀이를 주무르고, 윤동현이 한숨을 내뱉는지 정말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아…… 이 미친 꼰대 새끼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