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균열에 산다-151화 (151/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151화

52. 돕는다는 것(1)

-푸욱!

호수에 던져놓은 낚시찌가 수면으로 빨려 들어가자마자 짙은 선글라스를 낀 중년 남성은 재빨리 낚싯대를 낚아챘다.

-휘익! 휘익!

낚싯대가 강하게 휘어지는데도 남자는 흔들리지 않고 힘 싸움을 이어나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힘이 빠진 물고기는 낚싯줄에 끌려왔다.

물고기가 물 밖으로 건져 나오고.

꽤 묵직한 크기의 물고기를 확인한 중년 남자의 입에는 살포시 미소가 걸렸다.

“우와. 형님. 실력이 장난 아니신데요. 정말 10년 만에 처음 낚싯대를 잡으신 것 맞습니까?”

정대훈 아저씨는 선글라스를 낀 남자를 보며 대단한 낚시 실력에 감탄을 내뱉었다.

“허허. 그냥 운이 좋았나 보군.”

남자는 허허롭게 웃으며 운이 좋았다며 겸손을 떨었다.

하지만 운이 좋았다는 남자의 말과는 달리.

나와 정대훈 아저씨가 겨우 한 마리씩 잡을 때, 선글라스를 낀 남자는 벌써 7마리째 낚아 올리는 중이었다.

그중 크기가 작은 녀석들은 전부 풀어줬는데도 나와 아저씨가 잡은 마릿수보다 훨씬 많았다.

“이야. 세진아. 오늘은 형님 덕분에 금방 끝나겠다.”

“그러게요.”

최근에 유현성과 콜린의 식당에 호수 물고기를 보내주는 일 때문에 매일 낚시하러 나오는데.

오늘은 깜짝 등장한 손님 덕분에 할당량을 금방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

“집사람이네. 형님. 잠시 전화 좀 받고 오겠습니다.”

“낚싯대는 내가 봐줄 테니. 다녀와.”

“그럼. 갔다 올게. 세진아.”

“네. 다녀오세요.”

아저씨는 전화를 받으며 조용한 곳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중년 남성은 나직이 말했다.

“좋은 사람이구나.”

“네. 좋은 분이시죠.”

“그런데 이렇게 매일 낚시를 나와도 되는 것이냐? 보통은 이렇게 낚시하러 다니면 집에서 싫어할 텐데. 우리 집사람도 그랬거든.”

“아주머니요? 괜찮아요. 제가 도와달라고 부탁드린 거라. 제 부탁이면 아주머니도 괜찮다고 하셨어요.”

“허허. 그것참 축복받은 일이군.”

내 부탁이라면 뭐든지 들어주려고 하는 아주머니였기 때문에, 요즘 아저씨는 나를 도와준다는 명목하에 질리도록 호숫가에 나와 낚시를 즐기고 있다.

물론 내가 아주머니에게 눈치가 좀 보여 요즘 굉장히 귀하게 취급되는 ‘식사 예약권’ 2장을 선물로 드렸다.

-어머, 이런 거 안 줘도 되는데.

아주머니는 입으로는 사양하는 말을 하시면서도, 선물이 굉장히 마음에 드셨는지 아저씨의 낚시 활동을 너그럽게 허용해 주셨다.

나는 살짝 뚱한 표정으로 중년 남성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굉장히 편하게 대하시네요.”

“왜? 존댓말 해주랴?”

“아뇨. 그건 아닌데…….”

나는 뭔가 불만이 있는데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입을 오물거렸다.

남자는 그런 내 모습을 보더니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오늘 일은 미안하다. 갑자기 연락도 없이 등장해서.”

“알긴 아시네요.”

“하지만 지금 내가 마음껏 쉴 수 있는 곳이 별로 없어서 말이지. 거기다 네가 어떻게 지내는 지도 궁금했고.”

“하아…….”

진지하게 미안한 감정을 내비치는 모습에 나는 별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과거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낚시꾼 아저씨와 똑같은 모습을 한 중년 남자.

지금 내 옆에 앉아서 여유롭게 낚시를 즐기고 있는 중년 남자는 얼마 전 티머시 증후군 치료약을 전해줬던 미래 그룹 강유환 회장이다.

오늘 갑자기 아침부터 미래 그룹 비서실장에게 연락이 와.

-전에 말씀드렸던 치료제 보상에 관해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

라는 말과 함께 만날 약속을 잡았다.

거절해 봤자 계속 귀찮게 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순순히 약속 장소에 나갔는데.

약속 장소에 나와 있던 것은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낚시 장비를 챙겨 든 강유환 회장이었다.

침대에 누워 있는 모습을 봤을 때만 해도 온몸에서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에, 안쓰럽게 느껴질 만큼 왜소한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강렬한 눈빛에 조금은 모자라지만 건장해진 체격까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그는 다짜고짜 호수로 낚시를 하러 가고 싶다며 나를 앞장세웠고, 나는 당황하면서 그를 균열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 나를 돕기 위해 낚시를 하러 왔던 정대훈 아저씨와 의기투합해 호형호제까지 하며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강유환 회장은 저번이랑은 다르게 마치 예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나를 편하게 대하기 시작했고, 나 역시 그 시절처럼 그를 편하게 대했다.

어렸을 적 낚시꾼 아저씨 옆에 앉아 있던 시절이 떠올라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그는 이런 내 모습이 재미있는지 시종일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뭐하러 오신 거예요? 정말로 그냥 낚시하러 오신 거예요?”

“낚시는 겸사겸사해서 하는 거고. 오늘 비서실장에게 못 들었느냐?”

“치료제의 보상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그래. 그것 때문에 온 거다.”

“…….”

“따로 원하는 게 있느냐?”

강유환 회장은 마치 장난을 치듯 나에게 가볍게 물었지만, 그의 눈은 진지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 나라의 경제를 뒤흔들 수 있는 최고의 자리에 올라 있는 그의 진지한 질문.

마치 램프의 요정 지니에게 소원을 말해보라는 질문을 받은 것처럼 기분이 묘했다.

나는 왠지 작은 반항심이 생겨 장난스럽게 되물었다.

“정말 뭐든지 해주시는 거예요? 제가 미래 그룹 회장 자리를 달라고 하면은 주실 거에요?”

“한번 해볼 테냐?”

“……??”

“네가 원한다면 그렇게 해라. 지금 당장에라도 후계자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준비해 주마. 비서실장이 아주 좋아하겠군.”

“……???”

처음에는 그의 대답이 장난이라고 생각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장난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아뇨. 필요 없어요. 그냥 장난쳐 본 거예요.”

“그래? 흠. 그렇구먼.”

강유환 회장이 오히려 아쉽다는 반응을 보이자, 나는 등 뒤로 식은땀을 흘려야만 했다.

-쭈굴.

괜히 장난 한번 쳤다가 호되게 당한 내가 쭈그러져 있자, 강유환 회장은 담담한 목소리로 먼저 말을 꺼냈다.

“아스타나 약초 기부하는 걸로 아는데.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거냐?”

“네.”

내가 아스타나 약초를 길러 꽤 많은 양의 약초를 기부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다.

“그 일을 좀 더 키워볼 생각은 없느냐?”

“네?”

“정부에 그 일을 맡기지 말고, 네가 직접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방식으로 말이야.”

“…….”

강유환 회장이 전혀 예상외의 이야기를 꺼내자, 나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무리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저는 지금처럼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딱히 불편한 것도 아니고. 귀찮은 일은 그쪽에서 다 알아서 해주니까요.”

“…….”

내 말을 들은 강유환 회장은 한동안 다른 말을 꺼내지 않고 조용히 호수 수면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찾아온 무거운 침묵에.

마치 나는 잘못을 해 조용한 교무실로 끌려온 학생처럼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자리를 비운 아저씨의 낚싯대가 움찔거렸다. 수면 위에 있던 찌가 아래로 빨려 들어갔다.

물속에서 흔들거리던 찌가 다시 수면으로 떠오르고, 다시 호수가 잠잠해졌을 때, 강유환 회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세진아.”

“네?”

“너는 왜 약초를 기부하는 것이냐?”

“……그냥 비싼 약초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많으니까.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리고 싶어서.”

“그건 정말로 남을 돕고 싶어서 하는 것이냐? 아니면 자기만족을 위해 생색내기냐?”

“…….”

뼈가 담겨 있는 강유환 회장의 물음에 나는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너를 혼내거나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많은 약초를 기부하고 있다는 사실은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지.”

“…….”

“하지만 네가 약초를 기부하는 일이 누군가의 고통으로 돈을 벌고 있다는 죄책감을 덜려는 방편처럼 보인다. 내 말이 틀렸느냐?”

“…….”

조금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분명 많은 사람에게 약초를 기부했을 뿐인데 왜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 거지?’

하지만 곰곰이 강유환 회장의 말을 곱씹을수록,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가 말한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확실히 남을 돕겠다는 마음보다는 내 죄책감을 덜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을지도 몰랐다.

“저 정대훈 동생의 집사람도 네 도움으로 병을 치료했겠지?”

“네. 맞아요.”

“너는 나를 포함해 두 사람의 생명을 살려낸 것이다. 정말 대단한 일이지. 하지만 너에게는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을 살릴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내가 보기엔 그래.”

나를 바라보는 강유환 회장의 눈빛에서 강렬한 어떤 의지가 느껴졌다.

“만약 네가 조금이라도 그 사람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힘을 써준다면. 내 모든 것을 걸고 그 일을 도와주겠다.”

“…….”

“강요하는 것은 아니야. 너에게 다른 더 소중한 일이 있다면, 그 일을 이룰 수 있도록 해주겠다. 한번 잘 생각해 봤으면 좋겠구나.”

강유환 회장의 말을 끝으로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그 침묵은 아저씨가 아주머니와 전화를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 * *

해가 기울기 시작할 때쯤.

낚시를 정리하고 강유환 회장과 정대훈 아저씨는 떠나갔다.

아저씨는 떠날 때까지 강유환 회장의 정체를 짐작조차 하지 못했고.

오늘 새로 생긴 형님에게 나중에 꼭 술 한잔 같이하자는 말을 남기고 기분 좋게 떠나갔다.

강유환 회장도 필요한 게 있거나, 도울 일이 있으면 비서실장을 통해 연락하라는 말을 남기고 수행원들과 함께 떠나갔다.

나는 거실 소파에 멍하니 앉아 아까 강유환 회장이 나에게 했던 말들을 떠올렸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그의 말대로 나는 티머시 증후군으로부터 두 명의 생명을 살려냈지만.

아직 세상에는 그 병으로 고통받은 많은 사람이 존재했다.

스승님을 통해 병의 치료법을 배울 수 있게 되었어도, 그 치료법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는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티머시 증후군의 치료법을 배울 수 있다고 막연하게 좋아했을 뿐.

복잡한 표정으로 소파에 몸을 맡기고 있는 사이.

이런 내 모습이 걱정됐는지 살금살금 아이들이 다가왔다.

“세진? 무슨 일 있어?”

티아가 내 한쪽 팔 옷을 붙잡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나는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티아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아니야. 별일 없어.”

“으응.”

티아는 내 말에도 걱정이 풀리지 않는지 풀이 죽은 표정으로 입을 삐쭉 내밀었다.

-불쑥!

“퓨우우.”

반대편 옆구리로 퓨이가 불쑥 나타나 내 품에 얼굴을 비비적거렸다.

퓨이도 내 기분이 별로라는 사실을 알고는 애교를 부리는 것 같았다.

“나. 괜찮아. 퓨이야.”

“퓨이?”

솔직히 어른스럽지 못하게 아이들에게 위로받고 싶지 않았는데.

티아의 귀여운 모습과 퓨이의 애교를 보니 복잡했던 마음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후모!”

소파 아래에서 모렛이 나타나 내게 무언가를 건넸다.

방금 냉장고에서 꺼내왔는지 시원해 보이는 캔맥주였다.

아마 녀석도 나름대로 나를 위로하고 싶었나 보다.

“모렛. 고마운데. 진짜 괜찮아.”

“후모?”

“응? 대신 먹어도 되냐고?”

“후모. 후모.”

“풋. 그래 네가 대신 먹어라.”

“후모!”

녀석은 내 허락이 떨어지자 모렛은 방긋 웃으며.

처음부터 자신이 마시려고 했던 것처럼 거침없이 캔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살짝 어이없는 모렛의 모습에 나는 실없는 웃음을 지었다.

“아무튼. 다 고마워. 이제 진짜 괜찮아졌어.”

위로해 준 아이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마음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철컥!!

-다다다다닷!

누군가 현관문을 거칠게 열고 복도를 뛰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 아저씨!”

“이엘? 무슨 일이야?”

갑자기 집안으로 뛰쳐 들어온 이엘의 모습에 나와 아이들이 놀라 쳐다보았다.

“엄마가…… 엄마가 쓰러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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