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균열에 산다 150화
51. 요리 대결(5)
심사위원은 각각 유현성과 콜린의 이름이 적힌 판을 두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조금 전에 맛봤던 두 요리사의 요리를 떠올리며 결정을 내리기 위해 생각을 정리했다.
유현성의 요리는 생선의 깊은 맛을 묵직하게 표현했고, 콜린은 반대로 깔끔하고 담백하게 표현했다.
두 요리사의 요리가 정말 같은 재료로 만들어 낸 요리가 맞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각자의 특색과 개성을 잘 살려낸 것 같았다.
그러니 더 결정하기가 힘들었다.
맛의 우열은 거의 가리는 것이 불가능했다.
애초에 요리 하나 제대로 못 해서 구독자들에게 욕을 먹은 내가 이 요리를 평가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이러면 완전 취향대로 선택해야 하나?’
퓨이 역시 내 옆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을 하는 중이었다.
“퓨우…….”
힘든 결정의 시간이 지나고.
손보미는 빠르게 진행을 이어나갔다.
“자. 이제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각 심사위원분들의 결정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정대훈 님부터.”
“으음. 저는…….”
아저씨가 들어 올린 판에 적힌 이름은 유현성이었다.
-역시!
-솔직히 아재는 저 요리를 선택할 줄 알았지.
이미 많은 사람이 예상했던 대로 아저씨는 유현성 주방장의 맑은탕 요리와 생선찜을 선택했다.
“콜린 셰프님의 요리도 정말 맛있었지만. 제가 처음에 말씀드렸던 대로 아재 낚시꾼에게 어울리는 요리는 유현성 주방장님의 요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저씨의 1표로 앞서나가기 시작한 유현성은 살짝 미소를 지었고, 콜린의 표정은 굳어졌다.
“정대훈 님의 1표로 유현성 주방장님이 앞서나가는 가운데. 티아 님과 이엘 님의 선택을 알아보겠습니다. 두 분은 어떤 결정을 내렸나요?”
“우리는…….”
티아가 들어 올린 판에는 콜린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파스타랑 스테이크가 너무 맛있었어. 그치?”
“네. 티아 공주님 말대로 정말 맛있었어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또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티아와 이엘은 콜린의 요리가 정말 마음에 들었던 모양인지 눈을 초롱이며 말했다.
두 소녀에게 1표를 얻은 콜린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감사의 윙크와 손짓을 보냈다.
티아와 이엘은 그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와. 이제 유현성 주방장님과 콜린 셰프님 1표씩 나온 상황입니다. 마지막으로 균숙자님과 퓨이님만 남은 상황.”
손보미의 멘트와 함께 화면은 이제 나와 퓨이를 비추기 시작했다.
“두 분. 결정하셨으면 판을 들어주세요.”
판을 들어달라는 그녀의 요청에 고민하던 나는 두 개의 판을 동시에 들어 올렸다.
-??
-??
내 행동에 지켜보던 시청자도, 진행을 하던 손보미도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였다.
“균숙자님?”
“저랑 퓨이는 마지막까지 고민했었는데. 두 분의 요리 중에서 도저히 우열을 가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두 분 모두에게 1표씩 드리고 싶습니다.”
“퓨이! 퓨이!”
“어…… 이렇게 되면?”
갑작스런 나와 퓨이의 돌발 행동에 매끄럽게 진행을 이어가던 손보미가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뭐야? 이러면 어떻게 되는 거야?
-무승부야?
잠시 방송 화면이 유현성과 콜린을 비추기 사이.
재빨리 뛰어온 오연우와 내가 이야기를 나눴고. 손보미에게 그 내용을 전달했다.
다시 화면에 손보미의 모습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 방송 진행이 매끄럽지 못했던 점 죄송합니다. 마지막으로 균숙자님과 퓨이님이 두 분 모두에게 1표씩 준 결과…….”
“이번 대회는 유현성 주방장님과 콜린 셰프님의 공동 우승입니다. 축하드립니다!”
그녀의 공동 우승을 알리는 멘트가 이어지고.
-공동 우승?
-ㅋㅋㅋㅋ 대회 참가자 전원 우승이네.
-아. 결말이 좀 시시한데.
-그러게. 수련회 메타도 아니고.
대회의 애매한 결말에 시청자들의 좋지 못한 반응이 채팅창으로 올라왔다.
마지막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유현성과 콜린 역시 조금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오늘 대회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혜택이 있습니다. 두 분의 멋진 요리의 우열을 가릴 수 없어서. 두 분 모두에게 우승자의 혜택을 드리겠습니다. 우승자의 혜택은…….”
손보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우승자 혜택이 알려지자.
유현성과 콜린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기 시작했고,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던 시청자 역시 180도 돌변해 열정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아. 최고다!
-역시 우승은 공동 우승이지.
-아 ㅋㅋ 이 사람들 태세전환 ㅋㅋ
-제발 나에게도 기회가!!
* * *
잡지에 음식에 관한 칼럼을 올리고, 맛집 정보 블로그를 운영하는 장도현은 익숙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들어섰다.
레스토랑 안에는 이미 먼저온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헤이. 콜린!”
“웰컴. 프렌드!”
그는 레스토랑에 들어서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오너 셰프 콜린과 반가운 악수와 포옹을 나눴다.
콜린이 운영하고 있는 이 레스토랑은 이전에 장도현이 자신의 블로그에 소개한 적이 있는 곳이다.
블로그에 맛집 정보를 올리기 위해 한 번 방문했던 것이 인연이 되어 이렇게 가끔 들리게 되었다.
물론 오늘은 그냥 방문한 것은 아니었다.
원래 콜린은 활발한 SNS 활동으로 어느 정도 인지도를 가진 셰프였지만, 최근 어떤 너튜브 채널에 출현하면서 순식간에 화제의 인물로 등극했다.
장도현 자신도 SNS와 블로그를 운영하기 때문에 이런 소식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직접 화제의 그 요리를 체험해 보기 위해 지인 찬스를 사용한 것.
장도현이 자리에 앉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콜린이 직접 두 가지의 요리를 내왔다.
“이게 너튜브에서 유명한 그 요리?”
“예스. 방송에서와는 조금 다르게, 좀 더 연구해서 다른 재료가 더 들어갔어.”
콜린은 특유의 시원한 미소와 함께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였다.
장도현은 눈앞의 요리들을 살펴봤다.
은은하게 올라오는 생선 파스타와 생선 스테이크의 향기가 자연스럽게 식욕을 돌게 했다.
‘흠. 특별한 건 없어 보이는데. 역시 너튜브 방송이라서 과장된 건가?’
평범한 겉모습에 살짝 실망한 그는 큰 기대감 없이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아무리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는 음식일지라도 자신은 있는 그대로 평가하겠다는 음식 칼럼니스트의 자부심을 상기하며,
포크로 파스타 한 입을 떠먹었다.
‘으음?’
장도현의 눈동자에 이채가 돌았다.
파스타 면 사이사이에 적절히 배어든 생선의 감칠맛이 씹으면 싶을수록 넘쳐흘렀다.
‘아니. 어떻게 생선에서 이런 감칠맛이?’
상상했던 것 이상의 파스타 맛에 정신이 혼미해진 그는 홀린 듯이 생선 스테이크로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먹기 좋은 크기로 잘린 생선 스테이크 조각을 입안에 넣는데.
‘으으음?!’
도저히 생선이라고 보기 힘든 고소한 육즙과 부드러운 생선살의 조화에 장도현은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는 맛 평가고 뭐고 정신없이 테이블 위에 올려진 음식들을 먹어대기 시작했다.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접시에 모든 음식이 사라진 뒤였다.
“어때?”
득의양양한 콜린의 모습에 장도현은 멍하니 한 마디를 내뱉었다.
“콜린. 한 그릇만 더 주면 안 될까?”
* * *
“오셨습니까? 회장님.”
“그래. 오랜만일세. 요즘 바빠서 들릴 틈이 없었어.”
“괜찮습니다. 방을 준비해 놨으니 들어가시죠.”
유현성은 오래전 자신이 계속 요리를 할 수 있게 후원해 주었던 기업의 회장을 자신의 음식점으로 초대했다.
은인이나 다름없는 회장에게 귀한 재료로 만든 요리를 꼭 대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회장과 그를 보좌하는 사람을 유현성이 직접 방으로 안내했다.
“금방 요리를 준비해 오겠습니다.”
“허허. 자네 표정이 살아났구먼. 젊었을 적을 보는 것 같아.”
“그렇습니까?”
유현성은 회장의 말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잠시 후.
유현성이 방 안으로 요리를 내왔다.
너튜브 요리 대결에서 선보였던 것보다 더 푸짐해진, 맑은탕과 생선찜 요리였다.
“이게 그렇게 귀한 요리라고?”
“네. 회장님. 그 균열이라는 곳에서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회장의 옆에서 보좌하던 사람이 요리의 정체를 알고 있었는지, 회장에게 자세히 설명해 줬다.
그리고 유현성은 직접 국자로 국을 떠서 회장의 앞쪽에 먹기 좋게 놓아주었다.
“고맙네. 그럼 한번 맛볼까.”
회장은 숟가락으로 천천히 국물을 마셨다.
“흐음.”
뜨끈하고 진한 국물이 목을 타고 뱃속으로 들어오자, 온몸에 뜨거운 기운이 도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계속 숟가락을 움직이며 국물 맛에 집중하던 회장은, 이번엔 젓가락을 들어 생선찜을 들어 올렸다.
입 안에서 부드러운 생선살과 양념의 맛이 어우러지자 절로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최근에 회장은 소화가 잘되지 않아 식사를 거르는 때가 많았는데, 오늘 유현성이 준비한 요리는 부담 없이 넘어갔다.
옆에서 그를 보좌하던 사람도 그런 회장의 모습에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은은한 미소로 식사를 계속하던 회장은 대뜸 옆에 있던 사람에게 질문을 던졌다.
“내일 오전 일정이 어떻게 되지?”
“오전에는 평소처럼 업무 보고 후에 회의에 참석하실 예정입니다.”
“흐음. 내일 일정을 조금 조정할 수 있겠나? 오랜만에 술이나 한잔하고 싶은데.”
“지금 바로 비서실에 연락해 놓겠습니다.”
그리고 회장은 서 있던 유현성을 향해 말을 걸었다.
“자네도 같이 앉지.”
“괜찮습니다. 회장님.”
“오랜만에 술이 마시고 싶은데 술친구가 없어서 그러네. 자네가 좀 상대해 줘야겠어. 안 되겠나?”
평소 같았으면 끝까지 거절했겠으나 회장의 애절한 부탁에 유현성은 쓰고 있던 요리사 모자를 벗고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다른 직원이 술을 내오고.
회장과 유현성은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나눴다.
“오늘 고맙네. 이렇게 귀한 음식을 대접해 줘서. 오랜만에 배불리 식사한 것 같아.”
“아닙니다. 회장님.”
“그런데. 어떻게 이 재료를 구하게 된 건가?”
“그게…….”
유현성은 아주 우연한 기회로 너튜브에 출현하게 됐고, 그 덕분에 귀한 재료를 얻을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을 회장에게 이야기해 줬다.
옆에 있던 직원의 휴대폰으로 너튜브 영상까지 직접 본 회장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껄껄. 자네 표정 좀 보게. 엄청나게 긴장한 모양이구먼.”
“아니. 그런 것은 아니고.”
“그래도 아주 보기 좋네. 다시 젊었을 적 열정을 되찾은 것 같아서.”
“감사합니다. 회장님.”
그렇게 두 사람 사이에는 작은 웃음소리가 계속 이어지고, 밤이 깊어지도록 이야기와 술잔을 나눴다.
* * *
조금은 이상한 이유로 개최되었던 요리 대회.
그 결과 또 많은 폭풍 같은 여파를 낳게 되었다.
요리 대회 우승자의 혜택은.
일주일간 직접 잡은 싱싱한 호수 물고기를 매일 제공해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공동 우승이 나옴으로써, 두 요리사 모두에게 호수 물고기가 제공되었고.
두 요리사가 운영하는 한정식 전문점과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호수 물고기 요리를 맛볼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두 사람의 가게로 몰려들게 되었다.
그리고 호수 물고기 요리를 맛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 맛을 극찬하기 시작했다.
-이건 진짜 대박이다. 너무 맛있음.
-거기 1인 1주문 제한만 없었으면, 한 세 접시는 다 먹어 치웠을 거임. 또 먹고 싶다.
-호수 물고기만 따로 안 파나? 먹고 싶어서 미치겠네.
거기다 ‘균숙자네 퓨이’ 채널의 이벤트로 두 요리사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호수 물고기 요리를 맛볼 수 있는 ‘2인 식사 예약권’을 이벤트로 뿌렸는데.
이게 또 큰 화제가 되었다.
-이벤트로 받은 식사 예약권으로 아버지, 어머니 식당에 보내드렸는데.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고맙습니다.
-여자친구랑 같이 가서 너무 맛있게 먹고 왔습니다. 콜린 셰프님도 직접 보고 왔는데 너무 유쾌하고 좋으신 분이더라고요.
식사 예약권을 받아 직접 요리를 맛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만족감을 표했고.
-‘식사 예약권’ 이벤트 또 안 하나요? 진짜 먹어보고 싶은데.
-으으. 미치겠네. 저번에 엘프 차도 아직 못 마셔봤는데.
‘식사 예약권’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그 덕분에 저번에 엘프 차가 인터넷에서 엄청난 고가로 거래된 것처럼, 이 식사 예약권도 말도 안 되게 비싼 금액으로 거래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가짜로 위조된 예약권마저 생겨나기 시작했다.
문제는 사람들의 반응이
-저 정도 돈을 주고라도 먹을 가치가 있다.
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라 더욱 문제가 심각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너무 과열되는 양상에 커뮤니티 게시판에 예약권 거래를 멈춰달라는 공지도 올렸지만.
호수 물고기 요리를 맛보지 못해 안달 난 사람들의 거센 항의만 되돌아올 뿐이었다.
우리는 이 사태를 어떻게든 무마하기 위해 일주일간 제공하는 호수 물고기를 한 달로 기간을 늘렸고.
나와 아저씨는 매일 호수로 나가 물고기를 잡아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