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균열에 산다 147화
51. 요리 대결(2)
“세진이 형.”
“으응?”
퓨이를 배에 올려두고 소파에 편하게 누워 있는 나를 오연우가 불렀다.
“저번에 호수에서 물고기 잡아서 영상 찍었던 것 기억나세요?”
“얼마 전에 찍은 건데 당연히 기억나지.”
“흐음. 그 영상 반응이 미묘해서요.”
“왜?”
“그때 저희가 요리 망쳤던 것 때문에…….”
얼마 전에 잡았던 푸른빛이 맴도는 물고기를 요리하는 과정에서 꽤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손질부터 굉장히 버벅거렸고.
손질해낸 생선 살로 민어전을 만들어볼 생각이었는데 그것도 실패해 버렸다.
그나마 남아 있는 살코기 부분으로 급하게 라면을 끓여 먹었는데 굉장히 맛있어서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퓨이야. 그래도 라면은 맛있었지?”
“퓨이!”
누워 있는 내 배 위에 올라와 있던 퓨이가 웃으며 대답했다.
퓨이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굉장히 맛있게 라면을 먹었었다.
평범한 라면과는 다르게 묘하게 느껴지는 물고기 특유의 감칠맛이 은은하게 국물에 배어들어 아주 일품이었다.
“아니. 라면이 맛있었던 건 알겠는데. 좀 더 제대로 된 요리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반응이 많아서요.”
“흐음.”
“그리고 그 영상이 올라간 이후에 또 여러 군데에서 연락이 와서…….”
“아. 또 낚시꾼 아재들? 안 된다고 그래.”
호수에서 낚시하는 영상을 올릴 때마다 영상 속 호수에서 꼭 낚시를 해보고 싶다는 사람의 연락이 끊이질 않았다.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에 조용히 낚시를 즐기기에는 이만한 곳이 없긴 했다.
하지만 아무나 이곳으로 초대할 수는 없는 법.
오연우에게 그런 요청은 모두 정중하게 거절하라고 이미 말해둔 상태였다.
“아. 물론 낚시를 하고 싶다는 요청도 많았는데. 그거 말고요.”
“……?”
“요리를 직접 해주고 싶다는 요청이 많이 들어왔어요. 요청하신 분 중에 너튜브에서 요리 채널을 운영하시는 분들도 있고, 진짜 음식점을 운영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직접 요리를 해주겠다고?”
내가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이자 오연우는 잠시 망설이다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쉽게 구할 수 없는 재료인데, 우리가 너무 막 사용하는 것 같다고. 차라리 직접 가서 요리해 줄 테니 불러만 달래요.”
“쩝.”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머쓱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할 말을 잃어 입맛을 다시고 있는데 오연우가 살짝 흥분한 기색으로 말했다.
“와! 형. 요청하신 분들 중에 엄청 대단하신 분도 계시는데요.”
“응?”
“봐봐요.”
오연우는 허겁지겁 내게 달려와 노트북 화면을 보여주었다.
나는 퓨이를 잠시 옆자리에 내려놓고 자세를 바로잡아 화면을 바라보았다.
“5성급 호텔 주방장 경력에…… 지금은 고급 한정식 전문점 운영 중…….”
“저 여기 한번 가본 적 있어요. 엄청 유명한 곳이에요.”
“그래?”
“아버지가 중요한 손님 대접할 때는 항상 이곳에 예약하거든요.”
“허헛. 그것참.”
“그게 끝이 아니에요. 이것 보세요.”
다음으로 보여준 것은 SNS에 올라온 사진들이었는데. 그 중심에는 외국인으로 보이는 요리사가 있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운영하시는 분인데 SNS에서 꽤 유명하신 분이에요.”
사진 속에는 엄청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과 행복한 표정의 손님들로 가득했다.
퓨이도 신기한지 내 옆에 찰싹 달라붙어 사진들을 구경했다.
“아니. 이렇게 대단하신 분들이 직접 요리를 해주겠다고 요청하셨단 말이야?”
“네. 이분들 말고도 엄청 많아요.”
오연우는 화면에 수많은 쪽지와 메일을 보여줬다.
“어떻게 하실 거예요?”
“으음.”
“제대로 된 요리 좀 보여달라는 반응도 많았는데, 요청하신 분들 이야기라도 한번 들어보죠?”
꼭 영상을 만들려는 욕심이 아니라.
호수에서 잡은 물고기로 정말 실력 좋은 요리사가 만들어내는 음식을 먹어보고 싶기도 했다.
대충 굽거나, 라면에 넣어도 이정도 맛이 나는 재료인데, 제대로 된 실력으로 맛을 낸다면 도대체 어떤 맛일지.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린 내가 고개를 끄덕였고, 오연우는 신난 표정으로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 * *
우리에게 요청을 보낸 사람 중에 가장 경력이 화려했던 두 사람을 추릴 수 있었는데.
한 명은 고급 한정식집을 운영하는 유현성과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콜린 스미스였다.
원래는 두 사람을 한 명씩 만나보고 한 명을 선택하려고 했었는데. 일을 진행하다 보니 한꺼번에 두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반갑습니다. 요리사 유현성입니다.”
“저도 반갑습니다. 선생님.”
유현성은 인사와 함께 명함을 꺼내서 내게 전해줬다.
많은 연배에도 불구하고 정중한 인사에 나도 고개를 더욱 숙였다.
푸근한 인상에 미소 짓는 얼굴이 인심 좋은 옆집 아저씨를 떠올리는 인상이었다.
반면.
“반가워요. 세진. 콜린 스미스라고 해요.”
“어…… 미스터 스미스?”
“놉. 편하게 콜린이라고 불러요.”
만나자마자 격렬한 포옹과 함께 인사를 시작한 콜린.
갈색 머리칼과 푸른 눈을 가진 이국적인 외모의 그는 유창한 한국어로 나를 놀라게 했다.
상반된 분위기의 두 사람과 인사를 나누고.
나와 오연우, 유현성과 콜린. 이렇게 네 명의 남자가 한 테이블을 두고 둘러앉았다.
“어쩌다 보니 두 분을 동시에 뵙게 됐는데. 불쾌하시지 않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유현성은 괜찮다며 대답했고, 콜린은 싱긋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두 분 모두. 정말 대단한 요리사분들인데. 동시에 영상에 나왔던 물고기로 요리를 하고 싶으시다고.”
“그렇습니다. 한 번도 요리해 본 적 없는 음식 재료라.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으로 연락드렸습니다.”
유현성은 담담한 어조와는 다르게 형형한 눈빛에서 강한 열정이 느껴졌다.
진중한 그의 태도와는 상반되게 콜린은 가벼운 느낌으로 대답했다.
“요즘 세진의 채널. SNS의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굉장히 인기에요. 저도 영상들 재미있게 보고 있어요.”
그러면서 힐끔 유현성 쪽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젊은 사람들에게는 제가 좀 더 유리하지 않을까요?”
“크흠.”
슬쩍 자신의 강점을 어필하는 콜린의 모습에 유현성은 헛기침하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저도 젊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요리를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요리사 초청이 처음인 거로 아는데 시작은 당연히 한식 요리사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우. 노. 저도 한식 요리할 수 있어요.”
“어헛. 콜린 씨는 이탈리안 요리사이지 않습니까?”
“한국에서 7년 살았습니다. 김치 좋아해요. 독도는 우리땅!”
두 사람은 서로 자신에게 기회가 먼저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티격태격하기 시작했다.
최대한 원만하게 조율할 생각으로 두 사람을 같이 만난 것인데. 생각보다 두 사람의 욕심이 굉장했다.
내가 난감해하고 있을 때, 옆에서 지켜보던 오연우가 해결책을 제시했다.
“두 분. 이렇게 하시는 건 어떨까요?”
“……?”
“……?”
“모두 출현하는 대신에 요리 대결을 펼치시는 거예요.”
오연우의 요리 대결 제안에 유현성은 신중한 표정을, 콜린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콜린이 먼저 웃음기 넘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는 상관없어요. 재미있겠네요.”
자신만만한 그의 태도에 유현성 역시 지지 않겠다는 듯 곧바로 대답했다.
“새로운 재료로 요리를 해볼 수 있다면 저는 상관없습니다.”
두 요리사는 승부욕을 불태웠다.
그 모습을 본 오연우는 조심스럽게 나에게 속삭였다.
“형. 이거 조회 수 대박이겠는데요.”
“…….”
처음 생각과는 달리 일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 * *
두 요리사의 대결이 벌어지는 당일.
나와 아저씨 그리고 임진혁까지 대결에 사용할 물고기를 잡기 위해 모두 새벽부터 호숫가에 나와 있었다.
아무래도 나 혼자서 대결에 사용할 재료를 구하기 힘들 것 같아서 지원군을 부른 것이다.
“이야. 그러면 그 유명한 요리사들이 오늘 잡은 물고기들로 요리 대결을 펼치는거야?”
“네. 저녁에 라이브 방송도 할 예정이에요.”
원래는 영상 촬영을 할 생각이었는데, 오연우가 판을 키우고 싶은 욕심에 라이브 방송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채널 커뮤니티에 라이브 방송 계획이 올라가자마자 사람들의 반응이 굉장히 뜨거웠다.
일단 유명한 두 요리사의 이름값도 있겠지만, 드디어 제대로 된 요리를 볼 수 있겠다는 구독자들의 기대감도 무척 컸다.
“심사는 누가 보는 거냐? 대결이면 승패를 가려줄 사람이 필요하잖아.”
“일단 저랑 아이들. 그리고 연우가 심사할 예정인데요.”
“그럼 나도 끼워주면 안 되냐?”
“아저씨도요?”
“그래. 그런 유명한 요리사가 만드는 음식을 언제 맛보겠어.”
확실히 오늘 대결을 펼칠 두 사람 모두 굉장히 유명해서 쉽게 그 요리를 맛보기 힘들었다.
“방송에 나와야 하는데 상관없으세요?”
“뭐.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그럼 그렇게 하죠. 나중에 연우한테 말해놓을게요.”
“흐흐. 고맙다. 세진아.”
아저씨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나는 반대편에 있던 임진혁에게도 심사위원으로 참여할 생각이 있는지 물었는데, 그는 잔잔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저으며 거절 의사를 드러냈다.
그렇게 새벽부터 저녁이 되기 전까지 낚시한 결과.
저번에 내가 잡았던 대물보다는 작았지만.
그래도 제법 크기가 있는 비슷한 녀석 두 마리를 잡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마당에는 라이브 방송을 위해 전날에 미리 세팅해 둔 방송 장비들과 요리 기구들이 가득했고.
미리 도착한 오연우가 다시 한번 세팅을 점검하고 있었다.
그리고.
“안녕하세요.”
“정말 오랜만이네.”
오연우의 여자친구 손보미가 오랜만에 균열에 방문했다.
아무래도 라이브 방송을 하는 동안 오연우는 굉장히 바빠질 예정이었기 때문에 그의 여자친구에게 진행을 맡길 생각이었다.
“이쪽으로 오세요. 방송 전에 간단하게 메이크업해 드릴게요.”
“흠흠. 나도 부탁해도 될까?”
“당연히 해드려야죠. 대훈 아저씨. 기다리고 계세요.”
“나도. 나도 해줘!”
“당연히 해드려야죠. 공주님.”
“헤헤. 고마워.”
“어머. 네가 이엘이구나? 어쩜 피부 좋은 것 좀 봐.”
“엣?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티아와 이엘을 보면서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신나게 메이크업을 해줬다.
덤으로 퓨이와 모렛도 그녀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라이브 방송이 시작하기 1시간 전.
두 명의 요리사가 시간에 맞춰 이곳에 도착했고.
각자의 요리 도구와 기구를 점검하고, 준비된 물고기의 상태를 확인했다.
방송이 시작되기 직전.
두 명의 요리사는 진지한 표정으로 악수를 했다.
“오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콜린 씨.”
“저도 잘 부탁할게요.”
그리고 예정된 라이브 방송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