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균열에 산다-143화 (143/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143화

50. 소중한 일상(1)

“당신…… 괜찮은 거야?”

“…….”

아저씨의 떨리는 목소리에 아주머니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리고 긴장한 표정의 우리를 둘러보더니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호호호. 너희들 표정 진짜로 이상한 거 아니?”

아주머니의 장난스러운 반응에 아윤이 참지 못하고 외쳤다.

“이익! 엄마. 장난치지 말고. 정말로 괜찮은 거야?”

“괜찮아.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엄마. 정말 괜찮아?”

“그래. 괜찮아. 선우야.”

아주머니는 걱정스러운 표정의 선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고.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려 따스한 눈빛과 함께 내 손을 붙잡았다.

“세진이는 아직 내 친구를 못 만나봤지?”

“……?”

돌연 아주머니의 주변에서 청량한 기운이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숲속에서나 느낄 수 있을법한 시원하고 상쾌한 기분이 느껴졌다.

-후우우웅!

“아…….”

아저씨와 남매는 그 기운을 느끼며 기쁨의 탄성을 냈다.

방안을 가득 채울 정도로 뿜어져 나오던 기운은 천천히 하나의 형체를 이루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을 한 바람의 정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이야 친구.”

-끄덕. 끄덕.

바람의 정령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부드러운 바람을 일으키며 남매 둘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마치 오랜만에 만난 동생들을 챙기는 느낌이었다.

남매도 바람의 정령의 기운이 낯설지 않은지 눈물을 글썽거리며 미소를 지었다.

선우와 아윤의 주변을 맴돌던 바람의 정령은 이번에는 나에게로 다가와 부드러운 바람으로 내 주변을 감쌌다.

마치 포근한 담요에 덮인 것 같은 편안함이 느껴져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고마워요!

-쪽!

정령은 수줍은 감사 인사와 함께 내 볼에 부드러운 뽀뽀를 남기고 다시 아주머니의 곁으로 갔다.

“나중에 또 불러줄게.”

-끄덕. 끄덕.

아주머니의 손짓과 함께 정령은 아쉽게 모습을 감췄지만, 방 안에 남은 포근한 정령의 기운은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오랜만에 힘을 써서 피곤하다는 말과 함께, 아주머니는 우리가 지켜보는 동안 조용히 잠에 빠져들었다.

잠에 빠져든 아주머니의 표정은 더없이 평화롭고, 안정돼 보였다.

우리는 잠에 빠져든 아주머니를 놔두고 조용히 안방을 빠져나왔다.

마지막으로 방을 나와 조심스럽게 방문을 닫은 아저씨는 다짜고짜 나를 와락 껴안았다.

“어엇?! 아저씨?”

“크흑. 고맙다. 세진아. 흐흑.”

“아저씨. 울어요?”

“흑. 흐흑.”

방 안의 아주머니가 깰까 봐 억지로 울음소리는 참아내면서도, 눈물까지는 참기 힘든지 아주 펑펑 쏟아내기 시작했다.

옷 위로 떨어지는 아저씨의 눈물의 세례에 나는 난처한 표정으로 남매를 바라봤다.

아윤과 선우도 살짝만 건드리면 눈물을 쏟아낼 것처럼, 두 눈동자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와락!

-와락!

두 남매도 결국 울음을 참지 못하고 내 양 옆구리에 안겨들었다.

“오빠. 정말 고마워. 정말. 진짜 고마워.”

“형. 앞으로 진짜 말 잘 들을게.”

“하하하.”

처음에 치료제를 사용하기 전에는 이 정도로 효과가 좋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생각보다 뛰어난 약의 효과에 나는 마음속으로 스승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근데 언제까지 저 껴안고 있을 거예요. 저 답답하다고요.”

“…….”

“…….”

“…….”

기쁨과 감동에 취한 정씨 가족은 내 말이 들리지 않는지.

한참이나 셋에게 둘러싸여 있어야만 했다.

* * *

“형. 물 가져다줄까요?”

“오빠. 땀 닦아 줄까?”

“세진아. 나머지는 내가 다 할 테니까. 너는 어르신 계신 곳에 가서 좀 쉬어라.”

“아! 저는 신경 쓰지 말고. 빨리 밭일이나 해요!”

쉬지 않고 달라붙어 나를 챙기는 정씨 가족의 모습에 짜증을 내며 소리쳤다.

짜증을 냈는데도 정씨 가족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싱글벙글 웃으며 내 주변을 맴돌았다.

아주머니에게 치료제를 드린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나고.

나를 향한 정씨 가족의 태도는 엄청나게 변하게 되었다.

먼저 아저씨는

“세진아. 이제 나는 네 밭에서 평생 무료로 일할 거다. 약초밭이든, 감자밭이든, 고구마밭이든 상관없다. 뭐든 시켜만 줘라.”

평생 밭 일꾼을 자처하며 노동 의욕을 불태웠다.

물론 옆에서 듣고 있던 어르신이 아저씨를 보며

-쯧쯧. 평생 도움은커녕 말아먹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라며 비아냥거리긴 했지만.

뜨거운 열정으로 두 눈동자를 불태우고 있던 아저씨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아윤은.

“오빠. 안 피곤해? 어깨 주물러 줄까?”

“같이 쇼핑하러 갈래? 내가 멋지게 스타일링 해줄 수 있는데.”

“오빠. 내 친구 중에 괜찮은 애들 좀 있는데. 소개해 줄까? 여기 사진 봐봐. 마음에 드는 애 없어?”

아저씨와 같이 뭐든지 해주겠다는 심정으로 나에게 달라붙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조금 뿌듯한 기분도 들었는데, 너무 광적으로 신경을 써주다 보니 이제는 내가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누나는 저리로 가! 형. 누나 친구들은 다 이상한 사람들밖에 없어요.”

“뭐라고?”

선우는 누나가 화를 내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자기 휴대폰 화면에 귀여운 여자애들을 보여주며 말했다.

“누나 친구들 말고. 제가 아는 여자애들 소개해 줄게요. 진짜 착하고 예쁜 애들 많거든요. 여기 사진!”

“……선우야.”

“예. 형. 마음에 드는 애 있어요?”

“네 친구면 고3 아니니? 고3은 좀…….”

애초에 소개받을 생각이 없긴 했지만.

사진 속 여자애들이 예쁘고 귀여운 건 알겠는데, 동생에게 고3을 소개받는 것은 좀 아닌 것 같았다.

“고3은 싫으세요? 아니면 고2로 소개해 드릴까요? 친구한테 부탁하면 고1까지도…….”

“으아아아악!”

“……?”

“아냐. 선우야. 진짜 괜찮아.”

나를 위해 여러 가지 의미로 대단한 노력을 하는 선우를 바라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핀테일 던전의 진실 게임 때부터 범상치 않은 동생인 건 알고 있었지만…….’

“마음만 받을게. 선우야.”

“……?”

나는 선우의 두 어깨를 손으로 두드려 주며 진정시켜야만 했다.

이렇게 정씨 가족 모두가 나에게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이유로 너무 부담스럽게 행동을 해서 최근에 굉장히 난감한 상황이다.

거기다 아저씨와 두 남매가 끝이 아니었다.

“모두 새참 먹고 일하세요!”

아이들과 함께 새참을 가져오는 아주머니.

아저씨는 짐을 진 아주머니를 발견하자마자 빛과 같은 속도로 달려가서 짐을 받아들었다.

“이렇게 무거운 짐 들고 다니면 안 된다니까. 전화하면 가지러 가는데…….”

“일하는 사람 귀찮게 뭐하러 그래.”

얼마 전보다 훨씬 밝고 건강한 모습의 아주머니였지만, 아저씨는 아직도 걱정이 앞서는 모양이었다.

“아버님. 저 왔어요. 배고프셨죠?”

“허험. 그래. 아윤 엄마 왔구나.”

“오늘은 시원하게 냉면으로 준비해 왔어요. 시원할 때 얼른 준비해 드릴게요.”

아주머니는 가져온 짐에서 준비된 재료를 꺼내 뚝딱뚝딱 냉면을 준비해나갔다.

밭에서 일하고 있던 나와 임진혁, 두 남매가 평상으로 돌아오고 어르신과 아이들까지 평상에 올라오니.

널찍한 평상이 비좁아 보일 지경이었다.

“모두 맛있게 드세요.”

“잘 먹겠습니다. 아주머니.”

“잘 먹겠습니다.”

아주머니는 아이들까지 하나하나 챙겼다.

“너희들도 맛있게 먹어.”

“퓨이!”

“잘 먹을게!”

“잘 먹겠습니다.”

“후모!”

땀 흘려 밭일을 하다가, 시원한 평상에 앉아 아주머니가 준비해 준 냉면을 먹으니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세진아. 그러고 보니까 너 냉장고 다 찼더라.”

“네? 어제 비웠을 텐데.”

“오늘 반찬 해온 거 냉장고에 넣어두려고 하니까 자리가 없던데.”

“또 반찬 해오셨어요? 이틀 전에도 받았는데.”

“어머. 진혁이도 음식 잘 먹던데. 건장한 남자 둘에 아이들이 이렇게 많은데 이틀 전에 한 반찬은 벌써 다 먹어야지.”

아주머니는 나와 임진혁을 바라보며 오히려 혼을 내듯이 말했고, 우리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찔끔 몸을 떨어야 했다.

건강해진 아주머니는 마치 그동안 축적해 왔던 힘을 모두 요리에 쏟아붓는지 일주일 동안 엄청난 양의 반찬을 만들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그 많은 반찬은 모두 내 냉장고에 쌓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아윤이나 선우에게 듣기로는 정씨 가족네 집 냉장고에는 반찬이 텅텅 비어 있는 상황인데, 우리 집 냉장고만 계속 가득 차 있는 상황이라고.

웃긴 건 이런 상황에도 정씨 가족 중에 아무도 불만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세진아. 이참에 김치냉장고 하나 사는 게 어때?”

“김치냉장고요?”

“그래. 요즘 김치냉장고에 김치뿐만 아니라 과일이나 채소 같은 것도 보관하기 좋거든.”

“근데 저는 김장도 안 하는데 김치 냉장고까지는……”

“무슨 소리니? 김장은 내가 매년 하니까. 걱정하지 마. 내가 김치 냉장고에 김치 종류별로 꽉꽉 채워줄 테니까.”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아주머니에게 김장 김치를 받게 된 나는 기분이 살짝 좋으면서도 쑥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까지 안 해주셔도 되는데.”

“쯧! 그럼 안 되지. 설마 내가 해준 요리가 마음에 안 드는 거니?”

“아, 아뇨. 아주머니 요리는 정말 맛있어요.”

“그럼 됐네. 애들아. 너희도 이 아줌마가 해준 요리 좋아하지?”

“응! 맛있어!”

“퓨이!”

“정말 맛있어요.”

“후모!”

열렬한 아이들의 반응이 마음에 드는지 아주머니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호호. 고마워. 오늘 저녁에는 준비해 온 오리 불고기 맛있게 만들어줄게.”

“와아아!”

오리 불고기 이야기에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나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요즘 이렇게 매번 찾아와 반찬도 채워주고, 직접 요리까지 만들어주는 아주머니 덕분에 아이들은 굉장히 신나 있었다.

나도 아이들의 식사에 꽤 신경을 쓰긴 해도, 아주머니가 신경 써서 준비한 식사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아버님. 오리 불고기 넉넉하게 챙겨왔으니까. 나중에 챙겨가셔서 어머님이랑 같이 드세요.”

“험험. 고맙구나.”

살갑게 챙기는 아주머니의 모습에 어르신은 헛기침하며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괜히 옆에서 냉면을 맛있게 먹고 있던 아저씨에게 심술을 부렸다.

“너는 조상님께 감사하고 살아. 아내 복이랑 자식 복은 타고났으니까.”

“허허허. 저도 감사하게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에잉. 팔불출 녀석. 쯧!”

심술을 칭찬으로 받아들이는 아저씨의 모습에 어르신은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 모습을 본 나머지 사람들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 * *

“그럼 우리 가볼게.”

“내일 또 올게요.”

“나중에 봐요. 형!”

아저씨와 남매가 먼저 집을 나서고.

“이건 금방 상하니까 먼저 꺼내먹고, 이건 양이 많으니까 꼭 덜어 먹어야 해. 귀찮다고 젓가락질 막 하지 말고.”

“알았어요. 아주머니. 아저씨랑 애들 벌써 나가요.”

“어휴. 귀찮다고 애들 인스턴트 음식 같은 거 많이 챙겨주지 말고.”

나와 임진혁은 아주머니의 폭풍 잔소리를 들으며 집 현관문까지 에스코트했다.

“그럼. 나 가볼게. 세진아. 진혁아.”

“네.”

“반찬 잘 먹을게요.”

아주머니는 우리를 보고 환하게 웃어주고, 먼저 나간 아저씨와 남매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아주머니!”

“응?”

“정말 이제 괜찮으신 거 맞죠?”

“어머, 얘는. 당연하지. 요즘에는 현역으로 다시 돌아갈까 생각 중이라니까. 호호호!”

아주머니는 특유의 경쾌한 웃음을 남기고 마당을 빠져나갔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티머시 증후군을 완전히 극복한 아주머니의 건강한 모습을 보자, 내 방 구석진 곳에 숨겨놓은 치료제가 떠올랐다.

치료제의 효능은 확실했다.

원래 스승님이 아르엘에게 주려고 했던 한 병을 제외하고 남은 마지막 한 병!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치료제일지도 모르는 약병 속 우윳빛 액체를 떠올리며 나는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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