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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균열에 산다-141화 (141/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141화

49. 재회한 베른하르(1)

성공적으로 거대 골렘을 공략한 우리는 균열핵을 제거하고 안정적으로 균열을 빠져나왔다.

균열에 쌓아둔 최상급 마정석은 그대로 둔 채였다.

어차피 내 능력으로 균열 소유권을 얻어놨기 때문에 어떤 의미로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보관장소라고 할 수 있었다.

“수고하셨어요.”

“계속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뇨. 지금쯤이면 나오실 것 같아서 조금 전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균열 밖으로 나서자 신지아와 아침에 봤던 미래 그룹 직원들이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신지아가 노골적으로 내게 달라붙어 내 몸 상태를 확인하려 했다는 것 외에는 특별한 일 없이 균열 제거 작업은 종료되었다.

그리고 며칠 후.

균열에 쌓아뒀던 최상급 마정석은 미래 그룹을 통해 모두 판매했다.

각성자 협회나, 서율희를 통해 오성 길드 쪽으로 판매를 생각해 봤으나.

판매 물량이 너무 많았고 비밀 유지가 힘들 것 같아 실행하기 힘들었다.

결국, 이번 균열 클리어에 처음부터 큰 도움을 받았던 미래 그룹을 통해 모든 마정석을 처분하게 되었다.

애초에 나눠서 판매할 생각이 아니라면 이 정도 규모의 최상급 마정석을 조용히 처분해 줄 수 있는 곳이 몇 군데 없는 상황이었다.

신지아는 이 최상급 마정석들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하면서 벌써 연구 계획을 다 짜놨다고 한다.

아무튼, 생각보다 쉽게 처분한 최상급 마정석들을 통해 엄청난 금액의 돈이 내 손으로 들어왔다.

이전에 사업을 할 때도 쉽게 만져보지 못한 억 단위의 목돈이 들어오자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나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마정석 판매 금액 전부를 나머지 일행에게 나눠줬다.

어차피 최상급 마정석 광산이 생긴 나에게는 크게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었다.

처음에 임진혁은 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으니 받지 않겠다고 했지만, 안 받으면 전부 호수에 뿌려버릴 거라고 협박을 해서 억지로 돈을 쥐여줬다.

정씨 가족은 물론 서율희와 오성 길드 사람들도 돈을 전해 받고 모두 개인적으로 내게 감사함을 표했다.

골렘 균열을 클리어하고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

함께 했던 일행은 조촐한 회식 자리를 만들었다.

김유미가 주도적으로 회식을 주최했고, 장소는 우리 집으로 결정되었다.

호수에서 느긋하게 낚시도 하고, 마당에서 고기도 굽고.

적당히 술도 마시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특히 윤동현은 균열에서 말했던, 직접 만든 수제 맥주를 가져왔는데.

그 덕분에 모렛과 병사 모렛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 * *

스산한 새벽.

나는 잠이 든 아이들을 확인하고 조용히 집을 빠져나왔다.

숲과 호수에는 짙은 안개가 껴 있어 약간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겼지만.

이제 이곳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나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평소에 자주 내려오는 호숫가로 가서 안개 낀 새벽 호수를 감상하며 시간을 보냈다.

해가 떠오르고.

안개에 덮여 있던 호수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낼 때쯤.

등 뒤에서 사람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평소 같았으면 화들짝 놀라 주변을 살폈겠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이렇게 새벽부터 호숫가로 내려온 이유도 저 발소리의 주인을 기다리기 위함이었으니까.

“오랜만입니다, 베른하르 님.”

“잘 지냈나?”

3개월 만에 만났지만 변함없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베른하르는 이전에 보았던 것과 비슷한 복장으로 호숫가에 서서 나와 함께 호수를 바라봤다.

“여기 호수는 언제봐도 좋구먼. 맑은 기운 덕분에 가슴이 상쾌해지는 기분이야.”

“그렇죠.”

우리는 그렇게 한동안 말없이 호수의 상쾌한 기운을 즐겼다.

베른하르가 다시 말을 꺼낸 것은.

해가 산맥 위로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고, 호수의 안개가 다 걷혔을 때였다.

“어떻게. 3개월 전에 내가 부탁했던 것은 잘 해결됐나?”

“…….”

큰 기대감이 느껴지지 않는 질문에.

나는 대답하는 것 대신에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 베른하르에게 건넸다.

바로 골렘 균열에서 어렵게 획득한 골렘의 핵이었다.

내가 건넨 것을 조심스럽게 받아든 그는 한동안 유심히 그것을 살피더니 눈이 찢어질 정도로 크게 뜨며 외쳤다.

“아, 아니. 이걸 도대체 어디서 구한 건가?”

그는 잘 정리된 수염이 파르르 떨릴 정도로 흥분한 모습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의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먼저 약속에 대한 확인을 요구했다.

“이 정도면 3개월 전에 한 약속을 지킨 거라고 봐도 되겠습니까?”

내 질문에 베른하르는 복잡한 표정으로 나와 골렘의 핵을 번갈아 쳐다보다니 체념한 듯 내 질문에 대답했다.

“……충분하지. 오히려 내 상상 이상의 물건을 가져와 줬네.”

그의 인정을 받고 나는 해냈다는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드디어 그토록 원했던 티머시 증후군의 치료법을 얻게 된 것이다.

한편 베른하르의 표정은 굉장히 기묘했다.

골렘의 핵을 받고 확인했을 때 보였던 약간의 희열과 뭔가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표정이 뒤섞인 상태였다.

조금 걱정이 돼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약속은 지키시는 거죠?”

“물론! 마법사의 명예를 걸고 한 약속이야. 약속을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일.”

그는 내 의심이 불쾌하다는 듯 역정을 내면서도 고민으로 찡그린 표정을 풀지 않았다.

나는 그의 표정을 보며 살짝 걱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할아버지 설마 골렘의 핵만 먹고 도망가지는 않겠지? 지금이라도 다시 돌려받을까?’

골렘의 핵을 다시 돌려받을지 말지 고민하던 때에 베른하르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아. 이것도 나의 책임이라면 짊어져야겠지.”

“……?”

“자네. 이름이 세진이라고 했었나?”

“예, 맞습니다.”

“세진. 자네는 이 골렘의 핵으로 나와의 약속을 충분히 이행했네. 이제는 내가 약속을 지킬 차례인 것 같군.”

그는 품속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나는 기대감 넘치는 표정으로 그의 행동을 주시했다.

그가 품속에서 꺼낸 물건은.

‘……?’

고급스러워 보이는 인장이 찍힌 반지와 단검이었다. 그는 왼손에 반지를 끼더니 오른손으로 검집에서 단검을 꺼냈다.

“저기 베른하르 님?”

“……?”

“뭐 하시는 거죠? 왜 단검을 꺼내시고.”

“당연히 자네의 입문 의식을 준비하는 중이지.”

“네? 입문 의식이요?”

내가 당황한 표정으로 되묻자, 오히려 베른하르가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

“아니. 저는 입문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치료법을 배우고 싶은 건데요.”

“허헛. 저번에 이야기하지 않았나? 치료법은 학파의 비전이기 때문에 외인에게 함부로 알려줄 수 없다고.”

“듣긴 했는데…….”

“그럼 당연히 학파에 입문하는 것이 순서 아니겠나?”

그의 설명은 이해했지만, 왠지 학파에 입문하게 되면 굉장히 귀찮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나는 다급하게 내가 입문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저기, 베른하르 님. 저는 원래 이쪽 세계의 사람도 아니고, 저번에 재능도 별로 없다고 하셨는데 제가 입문하게 되면 오히려 민폐가 아닐까 싶은데.”

“…….”

“입문은 하지 않고, 예외로 치료법만 알려주시는 건 어떠신지?”

“어허! 예외는 있을 수 없네. 자네가 학파에 입문하고 싶지 않다면 약속은 없던 거로 하겠네. 자! 여기 골렘 핵도 돌려받게나.”

골렘의 핵까지 돌려주려는 그의 강경한 태도에 나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 알겠습니다, 베른하르 님. 입문하겠습니다.”

“흐흠.”

내가 입문의 의사를 밝히자 베른하르는 잠시 흥분했던 감정을 가라앉히며 입문 의식을 계속 준비했다.

그는 검집에서 꺼낸 단검으로 엄지손가락에 살짝 상처를 내더니, 흘러나온 핏방울을 왼손 반지에 떨어뜨렸다.

-우우!

반지는 떨어진 핏방울에 반응하듯 울음소리를 내더니 신비한 빛을 주변에 뿌리기 시작했다.

그 빛은 마치 홀로그램처럼 나와 베른하르 주변에 수많은 문양을 만들어냈다.

“이스타 학파의 28대 수장 베른하르. 학파의 전통에 따라 새로운 제자를 받아들이려 합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허공에 생겨난 문양들이 내 주변을 감싸기 시작했다.

잠시 어지러운 기분이 들고난 뒤.

수많은 문양은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베른하르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에게 자신이 들고 있던 단검을 내게 건넸다.

나는 눈치껏 그가 했던 것처럼 단검으로 손가락에 상처를 냈다.

그리고 베른하르가 내민 반지 위에 그가 그랬던 것처럼 핏방울을 떨어뜨렸다.

-우웅!

다시 한번 반지가 핏방울에 반응을 일으키더니,

밝은 빛과 함께 새로운 문양을 허공에 만들어냈다.

바로 나를 나타내는 문양이었다.

-파아아앗!!

허공의 문양들이 엄청난 빛을 뿜어내며 다시 반지로 되돌아갔고, 나의 문양은 가장 마지막으로 반지에 빨려 들어갔다.

-우웅!

마지막으로 반지의 묘한 울림이 내 가슴을 크게 떨리게 했다.

베른하르는 반지와 단검을 다시 품속에 챙겨 넣었다.

“이것으로 이스타 학파의 입문 의식은 끝났다. 세진! 너는 이제 나의 제자이며, 미래에는 이스타 학파의 29대 수장으로서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한다.”

나를 대하는 베른하르의 태도는 어느새 정말 제자를 대하는 것처럼 변해 있었다.

뭔가 굉장히 일이 연달아 일어나는 기분이었지만, 일단 위엄있는 베른하르의 말에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네, 베른하르 님.”

“앞으로는 스승님이라고 불러라.”

“알겠습니다, 스승님.”

내가 스승님이라고 부르자 베른하르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자야, 먼 길을 왔더니 조금 피곤하구나.”

“아. 저와 함께 집으로 가시죠.”

일단 나는 공손한 태도로 베른하르를 집으로 데리고 갔다.

* * *

“우와! 그럼 아저씨가 마법사 할아버지의 제자가 된 거예요? 정말 대단해요!”

“허허. 그렇게 됐구나.”

집으로 찾아온 이엘은 베른하르…… 아니, 이제는 스승님에게 내가 제자가 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엄청나게 기뻐했다.

“마법사 할아버지는 항상 제자를 찾아야 한다면서 걱정했거든요. 그럼 마법사 할아버지도 여기에 계속 지내시는 거예요?”

“아직은 힘들겠구나. 밖에서 해결해야 할 일들이 있어서. 하지만 조만간 제자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이곳에 머물러야 하겠지.”

이엘과 스승님의 대화를 지켜보던 임진혁이 내 옆구리를 찌르며 물었다.

“세진아, 이게 어떻게 된 거냐?”

스승님과 이엘은 한국말이 아닌 엘프어를 사용해 대화를 나눴기 때문에 임진혁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설명하기는 복잡한데. 일단 제가 저분의 제자가 됐습니다.”

“흐음. 그럼 좋은 일인 거 아냐?”

“저도 잘 모르겠네요. 이게 좋은 일인지.”

솔직히 치료법만 얻으려고 한 일이 이렇게 꼬여버릴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물론 스승님이 대단한 마법사고 그 제자가 되는 일은 정말 흔치 않은 기회겠지만.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듯.

이스타 학파를 이끌 차기 수장이 된다는 것이 나에게는 영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이런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이엘을 포함한 아이들은 스승님 곁에 달라붙어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스승님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저기, 스승님.”

“왜 그러느냐?”

“그럼 저는 언제 치료법을 배울 수 있는 건지?”

“흐음. ‘이리스의 저주’ 치료법 말이지? 정확히 확신할 수 없지만, 아마 착실히 공부한다면 2, 3년 뒤에는 배울 수 있을 거다.”

“네?!”

스승님의 답변에 나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연한 일이지. 치료법이 쉬운 것도 아니고. 아직 마법의 기초도 닦지 못한 너에게는 아직 한참 무리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약속을 지키면 바로 치료법을 알려주겠다고 하셨는데.”

“그래서 너를 제자로 삼지 않았느냐?”

지금 당장 도움이 필요한 아주머니에게 2, 3년이라는 시간은 너무나도 긴 시간이었다.

“저는 지금 당장 치료법이 필요하다고요.”

“아까도 말했다시피 치료법은 지금 당장 알려주기 힘들다. 대신…….”

스승님은 가져온 가방에서 우윳빛 영롱한 빛을 내는 3개의 약병을 꺼내놓았다.

“이게 뭐죠?”

“저주의 치료제다.”

“치료제요?”

나는 놀란 눈으로 스승님이 가져온 약병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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