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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균열에 산다-140화 (140/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140화

48. 골렘의 핵(3)

위험했던 순간을 이겨낸 일행은 모두 한곳에 모여 앉아 휴식을 취했다.

아저씨는 정말 힘들었는지 바닥에 털썩 누워버리며 앓는 소리를 냈다.

“흐아. 진짜 죽을 뻔했네.”

“고생하셨어요. 아저씨.”

“어르신 말대로 그냥 약초밭이나 열심히 길러야겠다. 이제 못 해 먹겠어.”

“크크큭.”

약초밭 이야기를 꺼내며 엄살을 떠는 아저씨의 모습에 나머지 일행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처음 균열에 입장할 때만 해도 서먹서먹한 분위기가 약간 있었는데.

함께 생명이 위험할 정도의 위기를 극복하고 나니, 어색한 분위기는 사라지고 서로 끈끈해진 기분이 들었다.

특히 서율희를 제외한 오성 길드 소속의 두 사람은 정 씨 가족과 임진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듯했다.

아무래도 거대 길드 소속인 자신들과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을 텐데.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정 씨 가족의 뚝심과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일행을 구하려 한 임진혁까지.

놀라운 정신력과 활약이었다.

특히 김유미가 임진혁을 바라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았는데, 이걸 아윤이가 눈치채고 경계하는 모습을 보일 정도였다.

“너희들도 수고했어.”

“쿠모!”

“…….”

“…….”

내 곁에 앉아 있던 병사 모렛에게도 수고했다는 말을 전해줬다.

“쿠모. 쿠모?”

“아…… 큭. 알았어. 나중에 집에 가면 맥주 실컷 마시게 해줄게.”

“쿠모! 쿠모!”

실컷 맥주를 마셔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지자 셋은 크게 기뻐하며 몸을 들썩거렸다.

근처에 있던 윤동현이 내 이야기를 들었는지 신기한 표정으로 셋을 바라봤다.

“저 친구들도 맥주를 마셔요?”

“하하. 네. 없으면 못 살 정도죠.”

“제가 취미로 수제 맥주를 만드는데, 다음에 한번 같이 마시면 좋겠네요.”

윤동현이 꺼낸 수제 맥주 이야기에 아저씨와 검사 모렛이 귀신같이 알아듣고 달려들었다.

“쿠모?”

“허헛! 수제 맥주?”

윤동현은 살짝 당황했지만, 웃는 얼굴로 말했다.

“네. 집에서 수제 맥주 만드는 게 취미라서.”

“허허. 다음에 꼭 같이 맛봤으면 좋겠구먼.”

“쿠모. 쿠모.”

의기투합한 둘은 윤동현을 바라보며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쉬면서 주변을 둘러보던 내 시선에 뭔가를 살펴보는 서율희의 모습이 보였다.

“뭐 하세요?”

“세진 씨. 이거 보셨어요?”

“……?”

그녀가 내게 내민 것은 엄청난 마력을 뿜어내던 구슬이 깨어지면서 사방으로 떨어진 구슬의 파편이었다.

“직접 보세요.”

나는 서율희가 건넨 구슬의 파편을 받아 살펴보았다.

[깨어진 최상급 마정석]

-매우 강력한 마력을 품은 마정석.

-세공에 따라 더 큰 효율을 낼 수 있다.

“와…….”

“조각나 버리는 바람에 가치는 조금 떨어졌겠지만. 이 정도 최상급 마정석이면 엄청난 양이에요.”

그녀의 말대로 구슬이 폭발한 주변 땅에는 수많은 최상급 마정석 조각들이 떨어져 있었다.

최상급 마정석은 B등급, 그것도 상위 B등급 균열에서만 구할 수 있어서 말 그대로 부르는 게 값인 귀한 물건이었다.

나는 약간 얼떨떨한 표정으로 마정석 조각들을 바라봤는데, 신지아는 오히려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그렇게 심각한 표정이세요?”

“하아. C등급 균열에서 최상급 마정석을 이만큼 가지고 나가면 어떻게 되겠어요?”

“아…….”

나는 서율희가 고민하는 이유를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 마정석이면 아마 난리가 나겠지?’

좋은 일이긴 하지만.

숨길 수 있으면 숨기는 게 좋다.

나중에 어떤 귀찮은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니까.

“그럼. 지금 가지고 나가지 말고. 나중에 가져가면 되겠네요.”

“예?”

* * *

잠시 휴식을 취한 일행은 골렘이 쓰러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땅에 떨어진 마정석 조각을 찾기 시작했다.

아무리 작은 조각이라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가격이기 때문에 일행은 눈에 붉을 켜고 땅바닥을 뒤졌다.

나도 일행과 같이 허리를 숙여 아래쪽을 유심히 살피는 와중에.

-…….

어디선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일행 중에 누가 나를 불렀나 해서 주변을 둘러봤으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 멀찍이 흩어져 정신없이 마정석 조각을 찾고 있었다.

-…….

다시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나는 귀신이 홀린 것처럼 속삭임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

내 발걸음은 거대 골렘이 지키고 있던 사원 쪽으로 향했다.

균열핵이 있는 사원 내부가 아니라.

내부로 향하는 입구 반대편으로 향했다.

“이건?”

그곳 벽면에는 아주 오래전에 보았던 낯익은 문양이 은은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문양에 손을 올리자 내 손길에 반응하듯 문양의 빛이 더욱 거세졌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벽면에 적힌 문양을 소리 내어 읽었다.

-파아아앗!

이전에 경험했던 대로 문양에서 엄청난 빛이 쏟아지며 나를 뒤덮었고,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느낌과 함께 의식을 잃어버렸다.

* * *

머릿속에서 크고 위엄 있는 목소리가 울리며 나는 정신을 차렸다.

-누가 아르키트 왕가의 무덤에 허락 없이 발을 들여놓느냐?

“…….”

형체는 보이지 않지만

앞쪽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존재감이 나를 향해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존재감에 짓눌려 내가 대답을 하지 못하자, 눈앞의 존재는 역정을 내기 시작했다.

-이런 무례한! 영혼을 소멸당해야 정신을 차리겠느냐?

숨이 막힐 것 같은 압박감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뿅!

“노여움을 거둬주세요.”

티아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 고개를 숙이며 사죄했다.

-너는 누구냐?

“아르키트 왕가의 공주. 아라스티아입니다. 찬란한 왕국의 영광을 이끄신 선조 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공주님스러운 티아의 모습.

그 덕분인지 나를 숨 막히게 하던 압박감은 사라지고, 약간 누그러진 어조의 물음이 이어졌다.

-왕가의 증표를 보여라.

티아가 두 손을 앞으로 내밀자 그 앞에 왕가의 문양, 그리고 그 안에 티아의 문양이 동시에 떠올랐다.

-증표를 거두거라. 그리고 고개를 들거라 왕가의 아이야.

이제는 자상해진 말투로 티아에게 말을 건넸다.

“네. 선조 님.”

-그대의 이름은 뭔가?

나에게도 이름을 묻자 살짝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전, 전세진입니다.”

-흐음. 특이한 이름이구나. 왕가의 아이야. 저 평민과는 무슨 관계더냐.

평민이라는 말에 잠시 고개를 갸웃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말이 나를 지칭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티아는 선조라 불리는 존재에게 꽤 자세하게 나와의 관계를 설명했다.

아르키트 왕가에 일어났던 비극적인 일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자신을 돌봐줬다는 이야기까지.

티아에게서 모든 이야기를 들은 선조는 안타까운 탄식을 터뜨렸다.

-허허. 어떻게 그런 일이 왕국에…….

티아 역시 고개를 떨구며 슬픈 기색을 내비쳤다.

-전세진이라고 했던가?

“네. 맞습니다.”

-정말 고맙다. 왕가의 아이를 지켜줘서.

“아닙니다. 티아는 이제 제 가족이나 다름없습니다.”

내 말을 들은 선조라는 존재는 흡족하다는 기색을 내보였고, 티아 역시 기쁜 듯 미소 지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왕가의 무덤을 침입한 것이냐?

“…….”

나는 순간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이 신전은 아르키트 왕가의 무덤이었던 것 같은데.

나는 그 무덤을 지키고 있던 경비병을 쓰러뜨리러 온 것.

내가 머뭇머뭇하자 앞에 있던 티아가 눈빛을 보냈다. 그냥 사실대로 말하라는 뜻이었다.

“사실은 골렘의 핵을 구하기 위해 거대 골렘을 쓰러뜨리러 왔습니다. 죄송합니다. 이곳이 왕가의 무덤인 줄 모르고 그랬습니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빠르게 사과를 했는데, 상대방의 반응이 기묘했다.

-응? 어째서 그런 귀찮은 일을 한 것이냐?

“……?”

-골렘의 핵 정도는 평범한 기술자들도 만들 수 있는 물건인데. 무엇하러 거대 골렘을 잡는단 말이냐?

밖의 상황을 모르는 듯한 그의 질문에 다시 티아가 나서서 설명을 해야 했다.

밖의 세상에는 이미 아르키트의 기술과 문명이 모두 사라졌으며, 나는 그 기술의 일부를 되찾기 위해 이곳에 왔다는 것까지.

설명을 들은 그는 다시 한번 더 긴 탄식을 터뜨렸다.

그리고 나에게 더 자상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아르키트의 사라진 기술들을 되찾고 있다니. 참으로 기특하구나.

“아닙니다.”

-보아하니 초급 기술자인 것 같은데. 안타깝구나. 그대에게 권한이 있다면 이곳에서 가르침을 베풀 수 있었을 텐데…….

그 가르침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굉장한 중요한 것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마음 한편으로 아쉬움을 숨기며 고개를 숙였다.

“괜찮습니다. 제가 해볼 수 있는 데까지 노력해 보겠습니다.”

-허허. 아주 바람직한 마음가짐이로구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눈앞의 희미한 형체에서 거대한 아르키트 왕가의 문양이 떠올랐다.

티아의 문양보다 훨씬 강렬하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위엄이 서려 있었다.

-정식으로 귀족의 작위를 부여하겠다. 그대는 왕가의 문양 앞에 예를 표하라!

내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멀뚱멀뚱 서 있자, 티아가 내 곁으로 다가와 무릎을 뒤쪽을 손으로 콱! 찔렀다.

“윽!”

나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한쪽 무릎을 꿇은 자세가 되었다.

-왕가의 무덤을 지키는 영령의 권한으로 전세진, 그대에게 아르키트 왕국 남작의 지위를 내리노라.

그의 선언과도 같은 말이 끝나고.

아르키트 왕가의 문양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내 몸속에서 나를 상징하는 문양이 빠져나와 왕가의 문양과 뒤섞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왕가의 문양과 합쳐진 내 문양이 다시 내 몸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평민’ 등급에서 ‘남작’ 등급으로 상승합니다.]

[각성 능력이 ‘균열 노숙자’에서 ‘균열 관리자’로 변경됩니다.]

-그리고 귀족 지위에 걸맞은 ‘아르키트 왕가의 권능’을 하사하노라.

[왕가의 권능 <대지주>를 획득했습니다.]

순식간에 변하는 내 상태창을 바라보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와중에

-원래라면 귀족 작위와 함께 그에게 걸맞은 봉토가 주어져야겠지만. 상황이 좋지 못하구나.

-아쉽지만 이것이라도 챙겨가도록 하여라.

나는 마지막 선물을 확인하고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겨우 참아낼 수 있었다.

-왕가의 아이야.

“네. 말씀하세요.”

-비록 어려운 일들이 많겠지만, 절대 스스로 왕가의 자랑스러운 일원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명심하겠습니다.”

의연하게 대답하는 티아를 자랑스럽게 바라보던 그는 잠시 후 다시 냉정한 어조로 우리에게 외쳤다.

-아쉽게도 만남의 시간은 여기까지. 왕가의 무덤에 허락받지 못한 자는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거라!

그의 우렁찬 외침과 함께 나와 티아는 거부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왕가의 무덤 밖으로 튕겨 나갔다.

* * *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사원 밖으로 나와 있는 상태였다.

“형!”

멍하니 서 있던 나를 발견한 선우가 향해 달려왔다.

“형. 어디 갔다 왔어요? 다들 찾고 있었는데.”

“어? 어. 미안.”

“빨리 가요. 마정석 조각도 벌써 다 모았어요.”

나는 선우의 손에 이끌려 일행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너 어디서 농땡이 피우다 온 거야.”

“죄송해요. 아저씨. 잠시 볼일이 있어서.”

“아무튼, 이것 봐라. 대박이지 않냐? 이정도 양의 최상급 마정석이라니.”

“아. 그렇네요.”

나는 흥분한 아저씨의 말에 영혼 없이 대답했다.

“세진 씨. 어디 있다가 오신 거예요?”

병사 모렛들과 함께 마정석 조각을 옮기던 서율희가 아저씨와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내가 멋쩍은 미소와 함께 머리를 긁적이고 있는데.

-다다다닷!

서율희와 함께 있던 모렛 병사들이 나를 발견하더니.

갑자기 내 앞으로 달려와 절도 있는 동작으로 경례를 하기 시작했다.

“쿠모모옷!”

“……!”

“……!”

-처억!

“세진아. 뭐냐? 얘들 갑자기 왜 이래?”

갑작스러운 셋의 행동에 일행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나 역시 그들의 행동에 잠시 당황하다가, 곧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 내가 귀족 작위를 받아서 그런 거구나.’

“으음. 그러니까. 편하게 있어.”

“쿠모!”

“…….”

“…….”

셋은 내 말에 따라 절도 있는 동작으로 경례를 풀었다.

병사 모렛들 때문에 잠시 소란이 있었지만, 일행의 화제는 다시 마정석으로 향했다.

“세진아. 이거 어떻게 할 거냐?”

아저씨의 물음에 모든 일행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원래 처음 이 균열 파티를 모집했을 때 조건은 거대 골렘에서 나온 모든 것은 내가 가지기로 돼 있었다.

원래는 골렘의 핵을 얻기 위해 내건 조건이었지만, 추가로 최상급 마정석도 얻게 된 상황.

“저는 필요 없을 것 같아요. 나머지 분들이 알아서 나눠 가지시면 될 것 같아요.”

“뭐엇? 정말로?”

“세진 씨. 진심이세요?”

내 말에 아저씨와 서율희가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다른 일행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내 발언에 꽤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다들 고생하셨잖아요. 저는 이미 원하는 걸 얻었으니. 마정석은 나머지 분들이 챙기시면 될 것 같아요.”

“오빠…….”

“세진 씨.”

내 말에 일행 모두가 엄청 감동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일행의 반응에 나는 최대한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려 했다.

‘나는 더 큰 걸 얻었으니…….’

아르키트 왕가의 무덤에서 얻은 것에 비하면, 저런 마정석 조각 정도는 큰 감흥이 생기지 않았다.

[아르키트 왕가의 힘으로 새로운 시설을 획득했습니다.]

[‘최상급 마정석 광맥’을 발견했습니다.]

일행은 이런 내 상황도 모른 채.

제각각 나를 향해 넘치는 호감을 주체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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