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균열에 산다 139화
48. 골렘의 핵(2)
-구우우웅!
거대 골렘은 묵직한 기계 소리와 함께 우리를 공격했다.
“모두 피해!”
아저씨의 날카로운 경고 외침과 함께 일행은 공격을 피하려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다행히 느릿했던 거대 골렘의 공격을 모두 피할 수 있었지만, 똘똘 뭉쳐 있던 일행의 진형이 흩어져 버렸다.
그 결과 사방에서 포위망을 좁혀오던 일반 골렘과 불리한 위치에서 전투가 일어났다.
탱커와 딜러의 포지션이 잡힌 전투가 아닌, 이리저리 뒤섞인 혼전 양상의 전투.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어떻게 해요, 언니!”
야윤은 서율희를 향해 외쳤지만, 평소에는 거침없이 지시를 내리던 서율희도 인상을 찡그린 채 아무런 지시를 내리지 못하고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위험한 상황 속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이 모든 일의 원흉을 바라보았다.
계속해서 검붉은 마력을 쉴 새 없이 뿜어내는 커다란 구슬.
‘저 녀석을 없애 버린다면?’
나는 곧바로 거대 구슬을 향해 아티팩트를 발동시켰다.
다른 일행들도 빠르게 내 생각을 파악하고 같이 거대 구슬을 향해 공격을 시도했다.
-매직 미사일
-파앗! 콰지지직.
뇌기를 품은 5발이 매직 미사일을 빠르게 쏘아졌다.
뒤이어 일행들의 마법과 흉흉한 기운을 품은 화살 공격이 이어졌다.
허공에 가만히 떠 있던 구슬은.
-우우우웅!
-퍼엉!
이 모든 공격을 간단하게 막아냈다.
정확히 표현하면 우리의 모든 공격을 무효로 돌려 버렸다.
“뭐야 저게?”
“전혀 안 통하잖아!”
일행들이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나는 구슬이 공격을 무효로 하는 순간에 구슬 표면에 반짝인 문양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정확히 어떤 문양인지는 알 수 없어도, 저 문양의 힘이 모든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구우우웅!
잠시 우리의 시선이 구슬을 향하는 사이.
골렘들은 다시 우리를 향해 바짝 다가오며 위험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다.
일단 눈앞으로 다가온 골렘들을 허겁지겁 쓰러뜨렸지만, 구슬이 내뿜는 검붉은 마력 때문에 쓰러진 골렘들은 다시 몸을 일으켰다.
“이건 뭐 좀비도 아니고…….”
윤동현의 허탈한 중얼거림에 일행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아이스 필드!
-촤자자자작!
내가 앞으로 나서 수많은 골렘의 움직임을 잠시 막아냈다.
그때 임진혁이 비장한 표정으로 서율희를 불렀다.
“서율희 씨!”
“네?”
“어쩔 수 없어요. 제가 저 거대 골렘의 주의를 끌 테니, 그 사이에 일행을 이끌고 사원으로 빠져나가세요.”
“…….”
“말도 안 돼! 어떻게든 같이 버텨봐요!”
혼자 주의를 끌겠다는 말에 서율희는 침묵했고, 아윤은 버럭 화를 냈다.
주의를 끌겠다고 했지만, 사실 임진혁 스스로 희생해서 일행을 구하겠다는 말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실력의 임진혁이라도 이런 상황에서 혼자 주의를 끌고, 무사히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언니, 설마…….”
“…….”
서율희는 흥분한 아윤과는 다르게 냉정한 표정을 유지했다.
“서율희 씨. 골렘들과는 다르게 우리는 점점 지쳐가고 있어요. 지금이 아니면 아예 기회가 없어질지도 몰라요.”
“그럼 차라리 제가…….”
“미안하지만 동현 씨의 스피드로는 충분히 놈의 주의를 끌 수 없어요. 빠져나가는 사람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만들어주지 못할 겁니다.”
“…….”
“제가 나서야 합니다, 무조건!”
냉기 마법에 잠시 멈췄던 골렘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고, 임진혁이 말한 방법밖에 없다는 사실에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서율희 씨!”
임진혁이 재촉하듯 서율희를 향해 외쳤고, 그녀는 결심을 굳힌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럼…….”
“잠깐! 기다려 봐요.”
“……?”
“모두 저 한 번만 믿고, 조금만 버텨줘요.”
다짜고짜 버텨 달라는 말에 나를 바라보는 일행의 표정에 의문이 떠올랐다.
“세진아, 시간 없다. 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
“형. 저 한 번만 믿어봐요. 만약에 내가 실패하면 그때는 형 마음대로 해요.”
“…….”
나는 임진혁의 대답은 기다리지 않고 바로 서율희에게 말했다.
“서율희 씨. 저를 저 구슬 같은 놈한테 던져줘요.”
“……네?”
“그 촉수 같은 거로 저 구슬 위로 던져 달라고요.”
“하아. 세진 씨. 제가 무슨 야구선수인 줄 아세요? 그러다 떨어지면…….”
“떨어져도 원망 안 할 테니까 빨리 던져줘요!”
마법도 일반 공격도 문양의 힘 때문에 통하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봐! 뭐든지 좋으니까 빨리해!”
“쿠모!”
앞에서 골렘을 막아내던 아저씨와 검사 모렛이 다급하게 외쳤다.
“저는 책임 못 져요.”
서율희의 주변에서 마법진이 생겨나고, 두 개의 커다란 촉수가 내 몸을 휘감았다.
기분 나쁜 촉수의 촉감을 느끼면서 내 몸이 가볍게 공중으로 떠올랐다.
“가요!”
-꿀꺽.
나는 대답 대신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휘이익!
“흐윽!”
나를 휘감은 두 개의 촉수가 빠르게 휘둘러지고, 엄청난 압박감과 함께 내 몸이 구슬을 향해 쏘아 보내졌다.
본능적으로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중심을 잡던 내 눈에 구슬의 모습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된다!’
중력의 영향으로 구슬을 향해 나아가는 내 속도는 점점 줄어들고.
‘으윽.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간절한 내 기도와는 달리 구슬에 살짝 못 미치는 거리에서 내 몸은 완전히 허공에 정지했다.
“제발!”
팔을 힘껏 뻗어봤지만, 손은 구슬에 닿지 않았고.
날개 없는 내 몸뚱이는 중력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회오리바람!!
-휘이이이잉!
그때 부드러운 바람이 아래쪽에서 불어와 내 몸을 감쌌고, 떨어지려던 내 몸이 다시 한번 두둥실 떠올랐다.
-털썩.
“허억, 허억.”
무사히 구슬 위로 올라온 나는 벌렁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형! 괜찮아요?”
아래쪽에서 들려오는 선우의 목소리.
“어, 괜찮아! 고맙다, 선우야!”
“조심해요.”
희미하게 들려오는 선우의 목소리에 최대한 크게 대답해 준 뒤, 나는 빠르게 구슬의 표면에 양손을 올렸다.
-Sanye(질서)!
내 의식은 빠르게 구슬의 내부로 녹아 들어갔다.
내부를 살펴보니.
놀랍게도 이 구슬은 하나의 거대한 마정석으로 이루어진 녀석이었다.
그것도 낮은 수준이 아닌 최상급의 마정석!!
‘미친. 이러니까 그렇게 마력을 끊임없이 뿌려대지.’
놀라는 감정은 잠시 접어두고. 계속해서 내부 회로를 살피며 공격을 무효화시키는 문양을 찾아 헤맸다.
‘찾았다.’
생각보다 빠르게 구슬 표면에 새겨져 있는 두 개의 문양을 찾아낼 수 있었다.
하나는 마법 무효화의 문양, 나머지는 공격 무효화의 문양이었다.
내가 알고 있던 단순한 문양이 아니라, 몇 배나 복잡하게 구성된 문양이었다.
아르키트 회로 이론 초급 수준으로는 해석조차 힘든 수준의 어려움.
‘물론 내가 초급 수준이었다면 어려웠겠지만.’
나는 득의의 미소를 지으며 두 개의 문양을 해석해 나가기 시작했다.
균열에 도전하기 전날 밤.
나는 ‘아르키트 회로 중급 이론서’를 끝까지 읽어내는 데 성공했고, 그 덕분에 구슬에 새겨진 복잡한 문양을 해석해 낼 수 있었다.
내가 문양 해석에 집중하는 사이.
아래쪽에서 일행들이 외침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조금만 더 버텨줘요!’
나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분전하고 있을 일행의 안전을 빌었다.
그리고 문양 해석을 계속해 나갔다.
다급한 마음 때문일까.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심장 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집중. 집중.’
잠시 후.
나는 두 개의 문양을 해석해 낼 수 있었고, 그와 동시에 회로를 조작해 더 이상 공격을 막아낼 수 없게 조작했다.
-매직 미사일
-파앗! 콰지지직.
다시 한번 5발의 매직 미사일을 발동시킨 나는 그대로 구슬에 꽂아버렸다.
-푹. 푹. 푹!
매직 미사일은 마치 두부를 찌르는 것처럼 푹푹 안으로 파고들었고.
공격을 막아내지 못한 구슬은 아주 불안정하게 마력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우우웅. 우웅! 웅!
마치 폭탄이 터지기 직전과 같이 불안한 모습의 구슬.
‘아…… 근데 나는 어떻게 하지?’
급한 마음에 뒷일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나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우웅!! 우웅!!! 지지직!
-파박!
구슬 표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누가 봐도 폭발 직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안 돼!”
나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고 구슬에서 뛰어내려 땅을 향해 낙하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콰아아앙!!
내 비명과 동시에 등 뒤로 구슬의 폭발 소리가 들려오고.
빠르게 눈앞으로 다가오는 지면을 바라보며 눈을 질끈 감았다.
-회오리바람!!
-휘이이이잉!
다시 한번 부드러운 바람이 몸을 휘감았지만, 떨어지는 속도만 조금 느려졌을 뿐 나는 계속 땅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내 몸이 지면과 조우하기 직전!
“쿠모!!”
거대한 몸집과 어울리지 않는 검사 모렛의 날렵한 움직임으로 나를 허공에서 낚아챘다.
나를 껴안은 검사 모렛은 그 반동으로 땅바닥을 심하게 뒹굴었다.
세상이 뒤흔들리는 충격이 끝나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길고 부드러운 털들이 내 몸을 감싸고 있었다.
“쿠모. 쿠모.”
나를 감싸느라 온통 흙먼지로 뒤덮인 검사 모렛은 오히려 나를 걱정하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스스로 몸 상태를 살피니 약간 쑤시는 부분만 있고, 크게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그 높은 곳에서 자유 낙하를 했는데 이 정도면 다쳤다고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나는 괜찮아. 고마워.”
“쿠모!”
내가 괜찮다는 것을 확인한 녀석은 크게 기뻐하며 나를 껴안았다.
살짝 녀석의 강한 포옹에 충격을 받은 부위에서 통증이 느껴졌지만, 검사 모렛의 기뻐하는 감정이 느껴져서인지 나도 함께 웃어버렸다.
“세진아! 괜찮냐?”
“오빠!”
“세진 씨!”
뒤쪽에서 나를 부르며 달려오는 일행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껴안고 있던 모렛의 품을 빠져나와 주변을 둘러보니.
좀비처럼 끊임없이 일어나던 골렘들은 모두 건전지가 빠진 로봇 장난감처럼 움직임을 멈춘 상태였다.
-툭. 툭. 툭.
하늘에서는 내가 폭발시킨 구슬의 파편들이 쏟아졌다.
위험한 상황은 끝났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아, 잠깐만! 골렘이 핵은?!’
뒤늦게 이번 균열에서의 최종 목적을 떠올린 나는 황급히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주변으로 모여든 일행은 이런 내 마음도 모르고, 사방에서 달려들어 내 몸을 살폈다.
“너 괜찮냐? 어디 아픈 데는 없고?”
“잠깐만요. 아저씨. 찾아야 할게…….”
“어헛! 어디를 가려고. 진혁아,이놈 좀 붙잡아봐라. 내가 직접 확인해야겠다.”
“아니,아저씨.”
내가 말을 듣지 않자 아저씨는 임진혁을 시켜 나를 붙잡게 했다.
억센 임진혁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에 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형. 혹시 이거 찾으세요?”
“어엇?!”
나는 선우가 건네는 붉은 구슬을 발견하고 놀란 표정과 함께 그 구슬을 받아들었다.
[부서진 거대 골렘의 핵][전설][재료]
-아르키트 왕국의 마도 공학의 결정체.
-최고 등급의 골렘까지 운용할 수 있습니다.
-충격으로 부서져 사용할 수 없습니다.
-골렘 제작자의 솜씨로 다시 수리할 수 있습니다.
어려움 끝에 드디어 골렘의 핵을 찾아냈다는 사실에 나는 기쁨의 탄성을 내질렀다.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