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균열에 산다 138화
48. 골렘의 핵(1)
“쿠모!”
-꽝!!
검사 모렛의 강력한 검격이 골렘의 상체를 강타했다.
공격을 받은 골렘이 몸을 휘청거리는 사이.
-화르륵!
-슈욱!
김유미의 화염구와 궁사 모렛의 공격이 이어졌다.
-콰아앙!
폭발음과 함께 골렘의 상체는 완전히 구겨졌고, 충격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땅바닥 위로 쓰러졌다.
“왼쪽 골렘에 공격 지원!”
왼쪽에서 임진혁과 윤동현이 골렘을 막아서는 사이.
서율희의 지시에 따라 마법사 모렛과 내가 곧바로 마법으로 공격했고, 왼쪽에 있던 골렘 역시 바로 쓰러졌다.
그 골렘을 마지막으로 모든 골렘들을 쓰러뜨리는 데 성공했다.
“다치신 분 없죠?”
서율희의 물음에 모든 일행이 주변을 살피며 이상 없음을 알렸다.
“니들도 괜찮지?”
“쿠모!”
병사 모렛들도 서율희의 물음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잠시 휴식할게요. 동현이만 앞쪽에서 경계 좀 해줘. 나중에 교대해 줄게.”
“알았어요.”
윤동현에게 앞 쪽 경계를 부탁하고,
나머지 일행들은 잠시 휴식에 들어갔다.
“와아. 이 아티팩트 덕분에 골렘들도 픽픽 쓰러지네요. 원래는 마법으로도 잡기 힘든 녀석들인데.”
김유미가 팔목에 착용한 아티팩트를 쓰다듬으며 감탄했다.
“허허. 나도 엄청 좋은 것 같다. 힘도 넘쳐나고 몸도 훨씬 단단해진 느낌이랄까. 이 정도면 골렘이랑 정면으로 힘 싸움을 해도 될 것 같은 기분이야.”
“확실히 몸의 움직임이 달라졌네요. 이제 이거 없으면 허전해서 어쩌나 싶을 정도예요.”
아저씨와 임진혁도 차례로 아티팩트의 효과를 극찬했다.
서율희나 다른 일행들도 따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티팩트의 효과에 엄청나게 만족하는 중이었다.
“이거 다시 구하려면 비싸겠죠?”
선우의 물음에 일행의 표정들이 살짝 어두워졌다.
아티팩트의 효과는 확실해도, 가격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각자 자신의 아티팩트를 바라보다 자연스럽게 내 쪽으로 시선이 쏠렸다.
“왜. 왜요?”
“세진아. 너 지아 씨랑 친하잖아.”
“네…… 뭐.”
“어떻게 이 아티팩트 또 구할 수는 없겠냐?”
“그건 좀 힘들겠는데요.”
내 부정적인 반응에 아저씨는 애절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왜?”
“가격도 가격인데. 그 아티팩트에 사용된 기술이 미래 그룹에서 지원해 준 거라서 힘들어요. 원래는 이렇게 막 나눠줘도 되는 물건이 아니거든요.”
문양의 힘을 사용하는 부분은 내가, 나머지 회로와 아티팩트 부품은 신지아가 만들었어도.
몇몇 중요한 기술은 미래 그룹에서 지원해 준 것들이었다.
그중에는 아직 상용화되지 않은, 극비로 개발 중인 기술도 들어 있어서, 이번과 같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다시 만들어내기는 힘들었다.
거기다 아티팩트는 원래 소모품이다.
이렇게 가성비를 따지지 않고, 비싼 재료를 막 사용해도 되는 물건이 아니다.
기술력에 따라 안정적으로 여러 번 사용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결국은 중간에 수명을 다하는 물건.
그런 아티팩트를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제작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로 불합리했다.
물론 신지아가 미래 그룹 연구소의 소장이 돼버린다면 또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
“근데 저 친구들 정말 잘 싸우네요.”
“그러게요. 세진 씨. 어디서 저런 친구들을 데려온 거예요?”
사람들의 관심이 이번에는 병사 모렛들로 향했다.
“쿠모. 쿠모.”
녀석들은 스스로 칭찬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 모습을 본 일행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저 녀석들이 기계 공학으로 만들어진 존재라는 사실을 말하면 믿어나 주려나?’
* * *
우리는 막힘없이 거대 골렘이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
인원은 부족했지만.
엄청난 아티팩트의 도움과 병사 모렛들의 활약에 힘입어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거대 골렘이 지키고 있는 사원 근처에 도착했다.
멀리서 엄청난 크기의 거대 골렘이 보이기 시작했다.
“기본적인 작전은 다 알고계시죠?”
서율희의 물음에 모든 일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본적으로 거대 골렘은 선공을 취하지 않는다.
오직 먼저 공격하거나, 사원으로 들어가려는 존재에게만 공격한다.
보통 균열을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주변의 일반 골렘들을 먼저 처리하고.
느릿느릿한 거대 골렘의 움직임을 이용해 누군가 주의를 끈 사이. 사원으로 들어가 균열핵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균열을 클리어한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일반 골렘들을 먼저 처리하는 것까지는 같았으나,
목적은 균열핵 제거가 목적이 아니라 거대 골렘의 제거.
먼저 거대 골렘 주변의 일반 골렘들을.
앞서 잡은 골렘들과 마찬가지로 차례차례 쓰러뜨렸다.
7기 정도 되는 일반 골렘들을 정리한 뒤.
일행은 잠시 숨을 고르고 본격적인 거대 골렘 공략을 나섰다.
먼저 탱커진 세 명이 거대 골렘을 향해 나섰다.
세 명이 꽤 가까운 거리까지 다가갔음에도 거대 골렘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거대 골렘을 포위하듯 다가간 그들은 아티팩트를 겨누고 준비된 마법을 사용했다.
-체인 오브 라이트!
-차라라락!
빛의 사슬!
거대한 괴물들을 상대할 때, 녀석들의 움직임을 봉쇄하기 위한 마법.
아티팩트에서 환한 빛과 함께. 새하얀 사슬이 거대 골렘을 휘감기 시작했다.
-구구구구궁!
공격을 감지한 거대 골렘이 움직이고.
-차라라락. 콰곽!
거대 골렘의 양팔과 목을 옭아맨 빛의 사슬은 세 사람을 중심으로 땅바닥에 박혀 들어 단단하게 고정됐다.
골렘은 자신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사슬을 끊기 위해 몸을 뒤틀었지만, 빛의 사슬은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평범한 아티팩트가 사용하는 ‘체인 오브 라이트’였다면 거대 골렘의 힘을 버티지 못했겠지만.
문양의 힘으로 강화된 마법은 아슬아슬하게 골렘의 힘을 버텨냈다.
“모두 오른쪽 다리 관절을 노리세요!”
작전은 단순했다.
빛의 사슬로 거대 골렘의 움직임을 묶는 동안, 모든 화력을 동원해 골렘의 다리 관절을 파괴하는 것.
거대 골렘이 사슬을 끊어내지 못해 허우적거리는 사이, 나머지 일행은 다리 관절을 향해 화력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화르르륵. 콰쾅!
-파박!
아티팩트로 마법 관통력이 강화된 마법은 골렘의 두꺼운 장갑에 효과적으로 피해를 줬고.
뒤이어 아윤과 궁사 모렛의 예리한 공격이 피해를 받은 장갑 사이를 비집고 명중했다.
-그그그긍!
하지만 거대 골렘은 엄청난 화력이 집중됐음에도 쉽게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공격으로 인해 폭발이 일어날 때마다 고정된 빛의 사슬이 먼저 터져나갈 듯이 팽팽해졌다.
“사슬이 먼저 끊어지겠어!!”
빛의 사슬로 골렘을 묶고 있던 아저씨가 우리를 향해 소리쳤다.
“조금만 더…… 장갑이 거의 다 부서졌어요.”
연속적인 화력의 집중으로 두꺼웠던 장갑은 걸레짝처럼 너덜너덜해진 상황.
반면 이쪽도 비싼 재료로 만든 아티팩트에 계속된 강력한 마법 사용으로 과부하가 걸릴 정도였다.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기기긱. 끼익. 쿵!
골렘의 다리 관절 부분에서 금속이 찢어지는 굉음이 들려왔고. 그와 동시에 골렘의 거대한 신형이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체인 오브 라이트’ 마법을 유지하던 세 사람은 황급히 마법을 해제하고, 비틀거리는 거대 골렘을 피해 멀찍이 물러섰다.
그리고.
-쿠우웅!
엄청난 굉음과 땅의 진동을 일으키며 거대 골렘의 몸이 앞으로 쓰러졌다.
땅바닥에 몸을 붙인 골렘은 잠시 팔과 다리를 허우적거리더니 잠시후 완전히 움직임을 멈췄다.
“허헛! 잡았다. 잡았어!”
들뜬 아저씨의 외침과 함께 나머지 일행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걸렸다.
마지막에 조금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손쉽게 거대 골렘을 공략하는 데 성공했다.
쉴새 없이 화력을 뽑아낸 딜러진들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고, 서율희는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혹시 모를 상황을 살피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나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쓰러진 거대 골렘 쪽으로 향했다.
“조심하세요. 세진 씨. 아직 위험할지도 몰라요.”
윤동현이 골렘 쪽으로 다가가던 나를 제지하고 나섰다. 아저씨와 임진혁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거들었다.
“그래. 아직 어떻게 될지 모르니 조금 기다려 보자.”
“정 가까이 가고 싶으면 내가 먼저 살펴볼 테니. 너는 좀 기다려라.”
“알았어요. 일단 기다릴게요.”
빨리 골렘의 핵을 살펴보고 싶어 다급한 마음이 생겼지만, 다른 일행의 말대로 잠시 기다려 보기로 했다.
시간이 흐르고.
거대 골렘은 땅 위에 쓰러진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흐음. 이제 괜찮으려나?”
일행의 경계가 살짝 누그러지려 하는 순간.
-카캉! 철컥!
쓰러진 거대 골렘의 등 쪽에서 뭔가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행은 반사적으로 거대 골렘에서 멀찍이 떨어지며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프슈우우우.
해괴한 소리와 함께 골렘의 등 쪽에서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검붉은 색을 띠고, 거대한 구슬 같은 모습을 한 물체는 10m가량 높이에 멈춰섰다.
그리고.
-그아아아앙!!
귀를 울리는 굉음과 함께 엄청난 마력을 내뿜기 시작했다.
“으윽!”
“이게 뭐야?”
일행은 고막을 찌르는 듯한 굉음에
고통스러운 표정과 함께 반사적으로 귀를 막았다.
거대한 구슬 주변에 마치 불꽃처럼 넘실거리던 마력은 어떤 문양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 문양의 뜻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는 자연스럽게 그 뜻을 읽어내려갔다.
-아르키트 왕가의 무덤에 발을 디딘 침입자는 모두 제거한다.
-다시 일어나라 수호자들이여!
그 문장을 다 읽어내려가기도 전에 검붉은 문양은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흩어진 검붉은 마력은 쓰러져 있던 골렘들에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기긱. 그그긍!
검붉은 마력을 받아들인 골렘들은 공격에 피해를 보았던 부분이 복구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회복한 골렘들은 하나둘씩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런!”
“다시 진형 갖추세요. 전투 준비!”
우리는 낭패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골렘들과의 전투를 준비했다.
-쿵. 쿵. 쿵.
-쿵. 쿵. 쿵.
“서율희 씨. 뒤쪽! 뒤쪽!”
“아앗!”
거대 골렘 주변에 있던 골렘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금껏 쓰러뜨린 모든 골렘이 뒤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순식간에 수많은 골렘에게 포위가 된 상황.
더 최악인 것은.
구슬이 내뿜는 검붉은 마력이 조금씩 거대 골렘을 향해서 흘러 들어가는 것이었다.
“일단 포위를 뚫고 나가야 해요.”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쿠모!”
임진혁이 온몸에 붉은 기운을 휘감으면서 눈앞의 골렘들을 향해 쇄도했다. 그에 질세라 검사 모렛도 힘차게 뒤따랐다.
“흐읍. 타앗!”
-콰아앙!
임진혁의 기합과 함께 골렘의 가슴팍에 붉은 기운이 작렬하고,
버티지 못한 골렘이 곧바로 쓰러졌다.
“쿠모!”
뒤이어 검사 모렛도 방패를 앞세워 엄청난 속도로 골렘에게 몸통박치기를 시도했다.
-휘청!
검사 모렛은 몇 배 차이의 무게를 무시하고, 오로지 힘으로 골렘 하나를 다운시켜 버렸다.
둘의 활약으로 포위망에 구멍이 생겨났다.
“모두 사원 쪽으로 가요.”
신지아는 일행을 사원으로 이끌면서 슬쩍 나와 눈빛을 교환했다.
나는 그녀의 의도를 읽어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이 좋지 않으니 골렘의 핵은 포기하고
균열 핵을 먼저 제거해서 안전하게 이곳을 빠져나가려는 생각인 듯했다.
눈앞에서 골렘의 핵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은 너무 아쉬웠지만, 일행을 위험에 빠뜨리면서까지 고집을 부리고 싶지 않았다.
서율희의 지시대로 일사불란하게 포위망을 빠져나가던 우리는
온몸을 뒤덮는 거대한 그림자와 함께 걸음을 멈춰야 했다.
다시 일어난 거대 골렘이 사원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우리를 막아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