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균열에 산다 137화
47. 파티 편성(2)
임시로 8명이 포함된 파티가 만들어졌다.
파티의 리더는 내가 맡게 되었고.
균열관리 센터에 정식 파티로 등록까지 끝마쳤다.
애초에 파티를 만드는 일은 워낙 간단한 절차만 거치면 되는 일이라 어렵지 않았는데.
문제는 이 신생 파티로 골렘 균열 입장 허가를 따내는 일이었다.
“최동호 팀장님 어떻게 안 될까요?”
“끄응…….”
내 부탁을 받은 최동호 팀장은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평소에는 부탁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부탁하라고 말했던 그였지만.
신생 파티에게 C등급 균열 입장 허가를 내주는 것은 꽤 난감한 일이었다.
“하아…… 일단 한 번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제 선에서 해결해 드릴 수 없는 문제라.”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도움을 드렸어야 했는데.”
최동호 팀장은 방법을 한 번 찾아보겠다는 모호한 말과 함께, 미안한 감정을 내비치며 통화를 종료했다.
‘아아. 자신 있게 내가 해결해 보겠다고 했는데 안되는 건가?’
생각처럼 일이 잘 풀리지 않자 나는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와중에 최동호 팀장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세진 씨. 부탁하신 골렘 균열 허가. 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 확실히 확정 난 상황은 아니고, 허가 절차가 완료되고 일정 잡히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통화 내용과는 다르게, 곧바로 허가가 날 것 같다는 메시지의 내용을 보내왔다.
메시지 내용을 확인하고 살짝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곧 일이 잘 풀렸다는데 기쁨을 느끼며 다른 파티원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다.
-잘됐네요. 허가받기 어려웠을 텐데. 큰일을 해주셨네요.
-와! 어떻게 허가받았냐? 웬만해서는 신생 파티한테 잘 안 해주는데.
서율희와 아저씨는 그 소식을 듣고 모두 놀랍다는 반응과 함께, 어려운 일을 해줬다며 칭찬을 해줬다.
그 반응을 보고 그나마 파티 리더의 자존심을 세운 것 같아서 살짝 으쓱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관리 센터에서 허가를 내준 이유는 내 부탁 때문이 아니라, 미래 그룹의 로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딱히 미래 그룹에 이런 일까지 부탁하지는 않았는데, 어떻게 알고 관리 센터에 적절한 압박과 회유가 들어갔다고.
사실상 내 영향력은 거의 없었던 상황.
‘아오. 내가 가져다준 약초 뿌리가 몇 개인데…….’
살짝 민망함과 분함을 느끼면서, 지금까지 계속 이루어지던 약초 기부에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 * *
늦은 밤.
“퓨우우우…….”
“으음.”
“후우우모.”
세상 모르게 잠들어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이면 다시 그 거대 골렘을 만나러 간다.’
골렘 균열 입장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살짝 긴장되는 마음에 창문가에 서서 적막한 밤의 호숫가를 내려다봤다.
만약 내일 거대 골렘을 공략해내고 골렘 핵에 대한 실마리를 찾는다면.
병으로 고통받는 아주머니를 구하고, 어쩌면 수많은 사람을 구해낼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더 심란해졌다.
창문가를 떠나 이번에는 책상 앞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아르키트 회로 이론서를 펼쳐 들었다.
아직 끝까지 읽어내지 못한 아르키트 이론서.
나는 습관처럼 처음부터 이론서를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한때는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게 했던 이론서지만, 지금은 오히려 복잡한 글귀들이 내 마음을 바르게 정돈해 주었다.
“…….”
-사락. 사락.
방안에는 아이들의 고른 숨소리와 책장 넘어가는 소리만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별생각 없이 읽어내려가던 이론서는 어느새 마지막 부분까지 몇 장 남지 않았다.
끝까지 읽겠다는 마음을 비워서일까?
아니면 최근에 신지아의 연구소에서 많은 아티팩트 회로들을 다뤄서일까?
평소와는 전혀 다르게 내 눈이 거침없이 이론서의 글귀들을 읽어내려갔다.
그리고
달이 호수 위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갈 때쯤.
나는 충만한 미소와 함께 책을 덮었다.
* * *
“…….”
“…….”
“…….”
균열에 들어가기 위한 장소 앞에 모인 우리는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에 할 말을 잃은 상태였다.
미래 그룹에서 온 직원들이 지원 물자를 산처럼 쌓기 시작했다.
들어가는 것은 겨우 8명인데 지원 물자가 거의 거대 길드의 파티 급으로 도착한 것이다.
“이 정도면 우리 길드 최정예 파티 때보다 지원 물품이 더 빵빵한 것 같은데요?”
살짝 질린듯한 윤동현의 말에 서율희와 김유미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구하기도 어려운 최상급 포션부터, 치료용품, 휴대용 식량 등등.
거기에 화룡점정은 엄청나게 화려한 아티팩트였다.
“자. 이쪽으로 와서 아티팩트 하나씩 받으세요.”
신지아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보관함에서 아티팩트를 하나씩 꺼내 일행에게 나눠주었다.
아티팩트에 대한 지식이 아예 없는 사람이 보더라도 이게 범상치 않은 물건이란 것을 알아볼 정도였다.
아티팩트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서율희는 건네받은 아티팩트를 보며 살짝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겉에 사용된 재료부터 마정석, 내부의 회로 재료까지.
가성비 따위는 따지지 않고 오로지 효율성만 고려해 최상급 재료들만 사용된 물건이었다.
아저씨 역시 아티팩트의 가치를 알아보고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지아 씨. 이거 우리가 써도 되는 겁니까?”
“물론이죠. 여러분들을 위해 각자 사용할 아티팩트를 만들어 온 건데요.”
“이거 잘못해서 고장 냈다가는 집을 팔아야겠는데요?”
아저씨의 농담 반, 진담 반 섞인 물음에 나머지 일행들도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괜찮아요. 나눠드린 아티팩트는 그냥 드리는 거니까. 고장 나도 상관없어요.”
“…….”
쿨한 신지아의 발언에 모든 일행은 다시 할 말을 잃어버렸다.
재료 값만 따져도 신형 자동차를 구매할 가격의 아티팩트를 그냥 나눠준다니.
‘역시 미래 그룹인가?’
뭔가 불안한 표정으로 눈치를 살피던 김유미가 조용히 손을 들고 말했다.
“저기. 저는 마법사라서 아티팩트 사용을 못 하는데. 반납해야 하나요?”
“상관없어요. 유미 씨에게 드린 건 마법사용 아티팩트니까요. 나중에 사용해 보시면 알 거예요.”
“……?”
김유미는 잠시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일단 이 값비싼 아티팩트를 반납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모두 제 이야기 잘 들으세요. 기본적인 아티팩트 설명해 드릴 테니까요.”
신지아는 일행에게 나눠준 아티팩트 사용 설명을 짧게 해줬다.
그녀의 아티팩트 설명이 끝날 때쯤.
균열관리 센터에서 나온 직원이 인원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세진 씨.”
“네. 율희 씨.”
“파티에 3명 더 추가된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아아. 나중에 균열에 들어가고 나면 설명해 드릴게요.”
“……?”
서율희는 아리송한 내 대답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우우우웅!
거대한 진동음과 함께 균열 입구가 개방되고.
“인원 확인 끝났습니다. 준비되시면 바로 진입하시면 되겠습니다.”
센터 직원의 확인을 끝으로 파티는 균열 입구로 진입을 준비했다.
“잘 다녀오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우리는 서율희와 미래 그룹 직원들의 응원을 받으며 균열 입구를 넘어갔다.
균열 입구를 넘어 익숙한 풍경이 보이기 시작하고.
우리는 모든 파티원의 상태를 확인하고 본격적인 출발을 준비했다.
“저기. 잠시만요.”
나는 일행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함께 균열을 헤쳐나갈 친구들을 불러냈다.
-기계공학 병사 소환!
티아의 권능으로 세 명의 기계공학 병사를 소환했다.
“쿠모오오!”
“…….”
“…….”
검사 모렛은 우렁찬 포효와 함께 등장했고, 마법사 모렛과 궁사 모렛은 나를 향해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세진…… 씨?”
“형? 도대체…….”
“어멋!”
임진혁을 제외하고, 셋을 처음 본 사람들은 당황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이 녀석들도 같이 균열에서 전투를 도와줄 거예요.”
“쿠모!”
검사 모렛이 나서서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자신만만한 기세를 보였다.
하지만 일행의 눈에 그들은 믿음직스러움보다는 귀여움 쪽이 더 강했다.
서율희가 심각한 표정으로 나에게 뭔가를 말하려고 할 때.
임진혁이 나서서 일행에게 말했다.
“괜찮아요. 이렇게 보여도 실력은 확실하니까. 셋 모두 저랑 비슷한 수준이에요.”
그의 말에 정 씨 가족과 서율희는 놀란 표정으로 셋을 바라보았다.
임진혁의 실력은 파티원 중에서도 1, 2위를 차지할 만큼 대단한 실력을 자랑했기 때문이다.
한편 임진혁의 정확한 실력을 모르는 윤동현과 김유미만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진혁 씨가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일단 알겠어요.”
임진혁의 실력을 잘 알고 있는 서율희는 그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나는 세 명의 병사들을 서율희 쪽으로 불러 말했다.
“여기 있는 분의 명령을 내 명령처럼 잘 따라야 해 알겠어?”
셋은 내 말을 알아듣고 서율희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쿠모!”
“어. 어어. 잘 부탁해.”
열정적으로 눈을 빛내는 셋을 보며 서율희는 미묘한 반응을 보였다.
* * *
셋의 병사 모렛이 합류한 파티는 곧바로 거대 골렘을 향해 나아갔다.
처음에 일행은 병사 모렛에 대해 불안함과 의심을 하고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전투가 시작되고 그들이 보여준 능력을 본 뒤에는 그런 생각을 싹 지우게 되었다.
“쿠모!”
-꽝!!
두려움을 모르고 적을 향해 저돌적으로 돌진하는 검사 모렛.
그리고 서율희의 지시에 따라 적절히 공격 지원을 하는 마법사 모렛과 궁사 모렛.
이렇게 균열에서 여러 사람과 호흡을 맞추는 것은 처음인데도, 자신의 위치를 적절히 유지하면서 각자의 실력을 뽐내고 있었다.
특히 서율희는 지시를 내릴 때마다, 찰떡같이 알아듣고 지시를 완벽히 수행해 내는 그들을 보면서.
-가능하다면 조원으로 스카웃하고 싶을 정도예요.
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이렇게 병사 모렛의 활약과 더불어 일행을 놀라게 하는 것이 또 하나 있었는데.
바로 신지아가 제작해 준 아티팩트였다.
탱커진에게는 바람의 문양과 바위의 문양을 사용해서, 이동 속도와 방어력을 지원해 주었고.
딜러진에게는 각각의 특성에 맞게 더욱 강력한 피해를 입힐 수 있도록 보조해 줬다.
특히 마법사용 아티팩트가 놀라웠는데.
보통 마법사들은 마법을 사용할 때, 아티팩트를 착용하고 있으면 마력 회로의 혼재가 일어나서 아티팩트 사용을 꺼린다.
그런데 신지아가 만들어준 아티팩트는 착용하고 마법을 사용해도 마력 회로의 혼재가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럽게 마법에 호응이 일어나 빛 문양의 힘이 연동되는 효과가 발생했다.
빛 문양의 힘으로 생겨난 마법 관통력 상승은 적에게 엄청난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이렇게 병사 모렛의 활약과 뛰어난 아티팩트의 도움으로 우리 파티는 파죽지세로 거대 골렘을 향해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