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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균열에 산다-135화 (135/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135화

46. 준비(3)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서율희는 자리에 앉아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 꼰대들이…….”

함께 뒤따라 들어온 윤동현은 그녀의 반응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너무 그렇게 화내지 마세요. 다른 조장분들이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도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니까.”

“나도 알아. 근데 이 꼰대 같은 사람들은 단지 내 의견을 반대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 같아서 화가 나는 거야.”

전세진의 부탁을 받아 조장 회의에 의견을 냈던 서율희는

다른 선배 조장들에게 좋지 못한 소리를 들었다.

그녀 나름대로 타당한 주장이라 생각했지만, 의견은 바로 기각되었다.

물론 거대 골렘을 공략하려는 전세진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 오성 길드에 확실한 이득을 주는 상황이 아니었고.

단순히 전세진이라는 인물을 믿고 지원해 주기에는 확실히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서율희가 봤을 때.

전세진이라는 사람은 그 정도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이었다.

“근데 이번에도 저번처럼 전세진 씨 도와줄 생각이에요? 그때도 길드에서 말이 많았는데…….”

지난번 핀테일 던전을 도와줬던 일도 길드에 알려지면서 약간의 논란이 있었다.

길드의 조장급이나 되는 인물이 개인적 시간을 이용했다고는 하지만, 아무런 논의도 없이 외부에 도움을 줬다는 사실이 꽤 많은 이들에게 거부감을 줬기 때문이다.

“아직 결정한 건 아닌데. 난 개인적으로라도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주고 싶어.”

“흐음.”

“왜?”

윤동현이 이상한 표정을 짓자, 서율희가 되물었다.

“누나, 혹시 전세진 씨 좋아해요?”

“……뭐?”

“아니. 다른 조장님들한테 계속 안 좋은 소리 들으면서까지 도와주려고 하니까. 누나는 보통 저런 소리 들으면 ‘내가 더러워서 안 한다’ 식으로 그만뒀었잖아요.”

“…….”

윤동현의 꽤 그럴듯한 말에 서율희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입만 벙긋거렸다.

“길드 내에서도 약간 그런 소문이 돌 거든요. 두 분이 혹시 깊은 관계가 된 건 아닌지 하고요.”

“도대체 누가 그런 소문을…… 아무튼 아니야. 그냥 몇몇 일을 계기로 조금 친해진 것뿐이지.”

“흐으음.”

“진짜야. 그리고 이번에 길드 차원에서 도움을 주려고 한 것도 그 사람이 그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서지, 절대 개인적인 감정으로 의견을 제시한 건 아니라고.”

서율희가 소문에 대해 강하게 부정을 하자 윤동현은 더는 소문에 관해서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대신 이번에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럼 소문은 사실이 아니라고 치고. 개인적으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데요?”

“어?”

“그렇게 깊은 관계가 아닌 건 알겠는데. 또 친분이 생긴 것도 사실이잖아요. 뭐, 남자로서 호감이 간다거나 그런 건 없어요?”

“그건…….”

윤동현의 질문에 서율희가 반사적으로 부정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깊게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전세진 씨를 남자로?’

알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처음 만났을 때부터 너튜브 채널의 영향 때문인지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것 같은 친밀함을 느끼고 있었다.

첫 만남 이후로 많은 일이 있었고.

사건들을 겪으면서 그에 대한 호감이 그녀 모르게 쌓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있는 귀여운 아이들도 그에 대한 좋은 감정을 가지는 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

‘외모는 평범하지만, 성격은 괜찮고. 책임감도 있어 보이고.’

마음속으로 전세진에 대해 평가를 하다 보니.

생각보다 남자로서 나쁘지 않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이쪽 일에 경험도 있으니, 내 일도 잘 이해해 줄 거고. 아이들도 잘 보살피는 것 같으니, 오히려 내조를 받을 수 있을지도?’

생각보다 괜찮다는 결론을 내린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누나?”

“생각해 보니까. 정말 나쁘지 않네? 오히려 상당히 괜찮을지도?”

“어엇?!”

반은 장난을 담아 던진 질문에 서율희가 진짜로 괜찮다는 반응을 보이자, 오히려 윤동현이 당황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왜 그런 표정이야?”

“아니. 매번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질색했었는데, 처음으로 누나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서요.”

“나도 언제까지 일에만 매달릴 수는 없잖아. 가능하면 빨리 좋은 사람을 찾아야지.”

“헐. 누나 진짠가 보네요.”

진심이 담긴 그녀의 말에 윤동현은 기묘한 표정으로 서율희를 바라봤다.

‘내가 스위치를 눌러버린 건가?’

* * *

신지아가 일하는 연구소를 처음 방문한 뒤로.

나는 매일 같이 연구소에 출근하고 있었다.

내가 가진 문양의 힘을 활용할 방법에 관해 연구한 자료를 가지고, 여러 가지 아티팩트를 만들어냈다.

아티팩트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미래 그룹은 거의 쏟아붓다시피 비용을 투자했고.

기밀이라고 할 수 있는 중요한 아티팩트 기술 역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덕분에 우리는 신지아의 아티팩트 공방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귀한 재료들과 최신 장비를 통해.

거대 골렘을 상대하기 위한 장비들을 하나둘씩 만들어나갔다.

-♩∼♬∼♪

“잠깐만요. 전화 좀.”

작업 도중 메시지 알람을 듣고 나는 휴대폰을 꺼내 내용을 확인했다.

‘서율희 씨한테서 왔네.’

메시지를 열어 확인해 보니, 저번에 거대 골렘을 공략하기 위해 부탁했던 일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길드 차원에서의 지원은 힘들고.

이번에도 개인적으로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대신 이번에는 서율희 혼자만이 아니라 조원 몇 명을 같이 데리고 지원해 주겠다는 의사를 보내왔다.

이번에도 서율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좋았지만, 오성 길드의 지원은 받지 못한다는 사실은 조금 아쉬웠다.

“무슨 연락이에요?”

내가 한참 동안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고 있자, 옆으로 다가온 신지아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저번에 도움을 줬던 분인데, 이번에도 도와주겠다고 연락이 왔네요.”

“잘됐네요.”

“네. 그래서 고맙다고 답장이라도 보내려고요.”

내 말을 들은 신지아는 뭔가를 잠시 골똘히 생각하더니.

“세진 씨. 잠시만 기다려보세요.”

“……?”

“세진 씨를 도와주실 분들 전부 만나볼 수 있을까요?”

“전부요?”

“네. 아무래도 아티팩트를 준비하는데 한 번쯤은 만나봐야 할 것 같아서요.”

신지아의 제안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대로 아티팩트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이번 공략에 참여할 사람들을 만나보는 게 필요할 듯했다.

“알겠어요. 한 번 자리를 마련해 볼게요.”

* * *

“퓨이!”

“어서 와!”

“후모!”

“오랜만이야.”

처음으로 통나무집을 찾은 신지아가 오랜만에 만난 아이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안녕? 네가 이엘이구나.”

“안녕하세요.”

처음 만난 이엘과도 살짝 어색한 첫인사를 나누고.

“오랜만이에요. 진혁 오빠.”

“그러네. 내가 경찰 퇴직할 때 보고 마지막인가?”

“네. 맞아요. 세진 씨랑 같이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 들었어요.”

“하하. 잠시 신세 좀 지고 있거든.”

이미 안면이 있는 임진혁과도 짧게 인사를 나눴다.

신지아는 처음 와본 통나무집을 둘러보고, 멋들어진 풍경과 상쾌한 숲의 공기를 느끼며 감탄을 터뜨렸다.

“와아! 정말 좋네요. 이런 풍경이면 매일 봐도 안 질릴 것 같아요.”

그녀의 모습을 본 나는 약간의 뿌듯함을 느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다시 1층으로 내려가 잠시 시간을 보내는 사이, 오랜만에 정 씨 가족이 통나무집에 도착했다.

“오랜만이다. 세진아.”

“그러게요. 아주머니는 좀 괜찮으세요?”

“그래. 네가 준 약초 덕분에 많이 괜찮아졌다.”

아주머니가 쓰러지신 뒤로, 평소와 같이 자주 찾아오지 못했는데.

오늘은 특별히 시간을 내서 아저씨와 남매 모두 집으로 찾아왔다.

처음 마주하게 된 정 씨 가족과 신지아를 서로 소개해줬다.

-툭. 툭.

“오빠. 그분 맞죠?”

아윤이 살짝 눈빛을 빛내며 내 옆구리를 쿡쿡 찔러댔다.

여러 의미가 담긴 질문에 나는 헛기침을 하며 대답을 피했다.

* * *

“으음. 조금 늦겠네요.”

앞에 사고라도 났는지 꽉꽉 막히는 도로 상황을 보며, 운전대를 잡고 있던 윤동현이 중얼거렸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서율희는 시간을 확인하면서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분명 약속 시간에 여유 있게 맞춰 출발했는데, 지각을 하게 될 것 같아 기분이 좋지 못했다.

윤동현이 서율희의 눈치를 보고 있을 때.

뒷좌석에 타고 있던 김유미가 불쑥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조장님! 거기 가면 정말로 퓨이랑 만날 수 있는 거죠?”

“그래요. 유미 씨.”

“아으. 설레라.”

김유미는 꿈에 그리던 퓨이를 직접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뒷좌석에서 몸을 들썩거렸다.

전세진의 거대 골렘 공략을 도우려고.

이번 일에 도움을 줄 사람을 구했는데 의외로 김유미가 지원을 했다.

이유는

-저번에 거대 골렘 사고를 일으킨 죗값을 치르고 싶어요.

라고 얘기했다.

사실 서율희와 전세진이 거대 골렘에게 공격을 받았던 일은 김유미와 전혀 상관이 없었지만.

그녀 스스로 그 일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무튼, 서율희의 조원 중에서 김유미와 윤동현이 따라나섰고, 전세진의 요청에 따라 모두 그의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서율희는 두 사람에게 전세진의 숨겨진 정체, 너튜브 채널에 대해 말해줬는데.

윤동현은 살짝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고.

원래 ‘균숙자네 퓨이’ 채널의 팬이었던 김유미는 까무러치듯 놀랐다.

그 이야기를 듣고 놀란 김유미는 처음에는 그 사실을 숨겼던 서율희에게 조금 실망감을 표했지만.

직접 퓨이를 만나러 갈 수 있다는 말에 금방 기분이 좋아져서 오늘 이렇게 따라나서게 되었다.

“근데 조장님. 오늘 엄청 신경 쓰고 나오셨네요.”

“어? 아니. 처음 만나는 분도 있는데, 신경 써야지.”

“으으. 저도 조금 차려입고 올 걸 그랬나 봐요. 그냥 평소 길드 회의를 생각해서 편하게 입고 왔는데.”

“…….”

서율희가 왜 이렇게 신경 쓰고 나왔는지, 진짜 이유를 짐작하고 있는 윤동현은 조용히 침묵을 유지했다.

막히던 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고.

일행은 태운 차량은 속도를 올려 금방 목적지에 도착했다.

도착한 곳에는 미리 연락을 받고 전세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죄송해요. 차가 조금 막혀서.”

“아뇨. 괜찮아요. 이렇게 와주신 것만으로도 고맙죠.”

이미 서로 얼굴은 알고 있는 사이라 간단히 인사를 나누는 와중에 참지 못한 김유미가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세진 씨가 정말로 균숙자님이신거죠?”

“네. 부끄럽지만 남몰래 너튜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럼 퓨이, 티아 공주님, 이엘, 모렛도?”

“하하. 모두 집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와아!”

김유미의 순진한 반응에 나머지 사람들은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쪽으로.”

전세진의 안내를 따라 인적 드문 골목에서 균열 입구를 통과하고.

통나무 집 앞에 도착한 일행은 처음 이곳에 온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이미 한 번 와본 적이 있는 서율희만 담담한 태도를 보였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퓨이!”

“안녕!”

“안녕하세요.”

“후모!”

아이들이 모두 조르르 달려와 인사를 건넸다.

“안녕. 얘들아. 오랜만이네.”

어느 정도 아이들과 친분을 쌓았던 서율희가 익숙하게 인사를 나눴다.

“어머! 어머!”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유미는 연신 감탄사를 터뜨리며, 부러운 표정을 지었고.

윤동현 역시 훈훈한 표정으로 귀여운 아이들을 살폈다.

전세진은 막 도착한 세 사람을 안으로 이끌고 들어와 이미 도착해 있던 사람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도록 도왔다.

정 씨 가족은 균열에서 호흡을 맞춘 적이 있어서 서로 얼굴을 알고 있었고.

처음 보는 신지아와 임진혁을 위주로 인사를 나눴다.

집의 거실이 좁은 편이 아니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이자 앉을 자리도 마땅치 않을 정도였다.

전세진은 부엌에서 식탁 의자를 거실로 가져와 자리를 만들어 자리를 만들었고 그중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그러자 신지아가 재빨리 전세진의 오른쪽 자리에 착석했다.

‘으음?’

그 모습을 본 서율희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또 정 씨 가족과 임진혁이 두 사람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모습이 보이자, 그녀의 마음속에서 뭔가 불편한 기운이 솟아올랐다.

서율희는 뭔가 욱하는 심정에 그 두 사람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전세진의 왼쪽 자리에 몸을 옮겼다.

순간.

자리에 붙어 앉은 세 사람을 중심으로 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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